“푸우웁!!!“
초겨울 중국 허베이(河北)를 달리고 있는 기차 안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복작복작한 객실 안의 시선들은 어느 세상물정 몰라 보이는 한국인 승객의 화끈거리는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 승객의 울상인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핸드폰 화면에는 “1호 매칭 축하드립니다. 좋은 인연 생기시길 기원합니다.”라는 누가 보아도 좋은 기원의 말이 적혀있었다.
시작은 솔직히 거의 장난이었다.
누군가와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장난으로 내뱉는다는 것은 지독히 경솔하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이번만큼은 부담 없이 장난으로 할 수 있었다. 그는 로또를 사더라도 당첨될 가능성에 대하여 눈곱만큼의 기대도 없이 OMR용지에 색칠을 하는 재미로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고, 이번 이벤트는 로또에 비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확률이었으니까……. 그저 ‘PGR이 여초사이트라니 이번 기회에 남자가 얼마나 많은지 실증적 데이터를 만들어 버릴 테다’ 라는 그릇된 의도를 갖고 던진 이벤트 신청이 ‘축하합니다!’로 돌아올 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벤트에 대하여 깜빡 잊은 채 중국 여행을 하다가, 무심코 한국 소식을 확인하고자 PGR이란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 장소가 하필 기차 안이었고, 하필 주위 사람들과 되지도 않는 중국어로 나는 한국인입네, 아직 미혼입네, 어디어디 갔다 왔네 하면서 호기심 많은 외국인 여행객 티를 낸 후였다.
전혀 마음의 준비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갑작스럽게 뿜고 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과거 그가 “제게 인연을 주십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가 별 다른 효험(?)이 없자, 한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하느님이란 존재가 “용용 죽겠지” 하면서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란 소설의 주인공은 초콜릿 공장 초대권이 들어있는 황금 티켓을 얻은 뒤, 할아버지와 춤을 춘다. 이와 같이 영광스럽고 기쁜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 주위 사람과 잠시나마 기쁨을 나누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고 있는 중국 여대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마오쩌둥 배지를 자랑스럽게 가슴에 달고 있는, 야구선수 최준석을 연상케 하는 외모의 아저씨 방향으로는 몸을 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는 급하게 할 일이 있었다. 카카오톡……. 그것도 중국 열차 안에서…….
중국의 인터넷과 핸드폰은 빠르게 발전하여 한국의 수준을 거의 따라잡았다. 단 대도시의 경우엔 말이다. 열차에서 무선 인터넷은 연결이 드문드문 되었고, 그가 중요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잘 되던 무선 신호는 사라졌다. 카카오톡으로 상대방을 검색하는 데 여러 번 실패하였고, 입사지원서를 방불케 하는 분량의 쪽지를 2번 날려먹었고, 일단 메모장에서 작성을 한 다음 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오락가락 하던 무선 신호는 잘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은 원래 그랬다.
그렇게 어렵고 어렵게 쪽지를 전송하고 난 후, 비로소 그는 주위 풍경이 많이 바뀌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최준석을 닮은 아저씨 대신에, 처음 보는 그리고 지금의 그에게는 불필요하게도 꽤 예쁜 중국인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여기가 베이징이냐고 물어보자, 껄끄럽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무어라고 대답하였다. 거의 다 왔다는 말인가 보다. 중국어를 좀 더 공부해야겠다.
베이징을 헤매면서, 끊임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았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밥도 먹지 못하였고, 자판기는 고장이었으며, 면세점 직원은 백오십(一百五十:이빠이우싀)위안을 달라고 하자 멍청한 표정으로 이백오십원을 대뜸 내미는 한국인 때문에 당황하였고, 비행기에서 그의 옆자리에 앉은 중국인은 행여 그가 말이라도 걸까 봐 경계심이 가득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하느님이 쉴 새 없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여 핸드폰을 켰을 때, 쪽지가 도착하였다는 알림이 떴다.
허겁지겁 확인해 본 쪽지의 제목은 “아 죄송합니다ㅠ”였다. 새하얘진 머릿속에서 하느님이 배를 잡고 웃고 있었고, 그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쪽지 제목을 클릭하였다.
(1편)
중국 열차 안에서의 열악한 전파에 힘입어, 쪽지 보내기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그의 쪽지 내용은 길어져 갔고, 최종적으로 전달된 쪽지는 무려 200자 원고지 5매에 달하는 장문의 쪽지가 되어 있었다.
이런 쪽지를 받고 상대방은 크게 당황하고 부담감을 받아, 죄송하다는 제목의 쪽지를 보내온 것일 뿐, 쪽지의 내용은 전혀 죄송할 이유가 없는 내용이었다. 순조로운 만남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자판기가 지폐를 거부하는 바람에 서울로 진입하는 지하철을 놓칠 뻔 하였다. 아슬아슬하게 공항철도를 잡아타고, 핸드폰을 꺼내자,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네가 바로 두꺼비냐?”
그가 중국 열차 안에서 간신히 보내는 데 성공하였던 바로 그 쪽지에 담겨 있던 접선 메시지가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가 요청한 메시지(... 닉네임으로 부르셔도 좋습니다. "네가 바로 두꺼비냐?" 하고요...)였지만, 상대방은 막상 치면서도 민망했는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저 메시지를 받고 그가 얼마나 밝게 웃었는지를 보았다면, 굳이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저 메시지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그는 중국에서부터 함께 온 긴장과 부담을 날려버릴 수 있었고, 머릿속 하느님은 비웃음을 그쳤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주말 약속이 생겨버렸다. 막연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가볍게 잠을 잔 후, 일어나자 그에게는 중요한 퀘스트가 생겨 있었다.
약속을 잡는 것은 그에게는 매우 난처한 일 중에 하나다. 약속을 잡을 일이 얼마 있었어야지... 단지 막연하게, 사전조사 없이 약속을 잡았다가는 만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경험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멘붕에 빠져 있는 그에게서 의도와는 다른 메세지가 발송되기 시작하였다.
“혹시 사진 좋아하세요?”
무리수다. 정말 무리수다.
처음 만나면서 “스튜디오 사진 찍으실래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고 또 그것을 승낙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그걸 정말로 물어보았다.
왜 그걸 물어 보았는지는 그 자신도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막연히 오래전 옛날에 스튜디오에서 찍어본 사진에 대한 불만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 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무리수를 던졌고, 상대방은 가볍게 피한 다음 카운터를 날렸다. "같이 가 드릴 수는 있어요."라고...
하느님... 쫌...
왠만하면 무리수는 자제하자, 정 무리수를 던지려거든 카운터를 대비하고 던지자.
전세가 역전되었다. 그는 이제 처음 보는 분 앞에서 쇼를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크게 당황한 그의 무리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거 먹는 건 어때요? 저거 좋아하시나요? 무리수는 무리수를 낳았고, 그는 저녁 회의중에 카톡 메세지를 받았다.
"음 혹시요.. 이번 매칭이 마음에 좀 안드신다거나 생각하신 거랑 많이 다른거 같으시면
괜찮으니까 만나기 전에 말씀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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