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버 관전일기 - MBC MOVIES 8th 서바이버리그 2round D조
천재복귀
나는 이윤열 선수의 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음악은 멈췄는데 사람들은 모르고(혹은 알면서도) 여전히 춤추고 있다. 그 무조건적인 신뢰에 보답하듯, 몇 번의 실패와 영원한 실패가 동일하지 않음을, 이 젊은 천재 테란은 다시 한 번 연주를 시작하며 증명하였다.
1경기 <아카디아>/<디아이>/<러시아워3> : 박정석(P) vs 이병민(T)
모처럼 무난한 경기를 준비했던 박정석 선수에게 이병민 선수의 2팩토리 벌처 운영은 환영할만한 출발이었다. 이병민 선수는 3기의 마린을 드래군에게 밀어내며 억지로 벌쳐의 등을 떠밀었지만, 약속된 듯 정확한 옵저버 생산과 박정석 선수의 차분한 대처에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서로의 병력을 제거한 뒤 혹은 쫓아낸 뒤, 박정석 선수와 이병민 선수는 차례로 앞마당 멀티를 선택했다.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박정석 선수는 곧이어 세번째 넥서스를 소환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병민 선수의 탱크가 전진해 있던 박정석 선수의 드래군을 모두 잡아냈다. 경기의 결과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박정석 선수의 납득할 수 없는 유닛 관리 한 차례로 인해, 이병민 선수의 모든 병력은 질주 할 수 있었고, 자리 잡을 수 있었고, 경기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페이스가 떨어진 박정석 선수는 <디아이>에서, 급기야 드래군의 사업을 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병민 선수의 드랍십 견제와 이어진 소수 벌쳐 난입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별다른 교전 없이 대규모 물량전을 맞게 된 박정석 선수는 결국 이병민 선수의 진출에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센터를 내주었다.
고민 끝에 캐리어 생산을 선택한 박정석 선수는 이병민 선수와의 교전을 결심했고, KTF 프로토스만이 구사할 수 있는 정교한 셔틀 컨트롤을 통해 이병민 선수의 주력 병력을 일소시키며 힘겨운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3경기는 프로토스의 늪 <러시아워3>. 박정석 선수의 빠른 다크 템플러와 이병민 선수의 스캔을 동반한 조이기가 얽히고 설킨 사이 이병민 선수의 탱크 1기가 생존한 채 터렛이 완성되면서 승부의 추는 이병민 선수를 향해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절정의 김정민 선수를 보는듯한 이병민 선수의 밀도 있는 메카닉 운영에, 박정석 선수는 마치 피라미드 속 어두운 미로를 헤매는 도굴꾼처럼 절망적인 심정으로 헤매다가 결국 경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단추를 한꺼번에 풀려면 옷이 찢어진다. 다크 템플러와 앞마당 확장의 콤보는 박정석 선수 답지 않은 소극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지나친 욕심이었다. 보다 공격적으로, 셔틀을 이용해 본진을 견제하는 편은 어땠을까. 1경기의 단순한 패배, 2경기의 흔들림에 이은 3경기의 안전 지향적인 모습은, 우리가 기억하는 박정석 선수라고 하기엔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다.
영웅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용감한 것이 아니라 다만 5분 동안 더 용감할 뿐이다. 비록 거칠었지만, 겁없던 그 시절의 '단호한 결의'를 기대하는 것은 ... 이제, 무리일까?
2경기 <러시아워3>/<디아이>/<아카디아> : 이병민(T) vs 이윤열(T)
이윤열 선수는, 수비적으로 시작해 한 차례의 수세를 잘 견뎌내고,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공격을 퍼부은 <러시아워3>와 <아카디아>에서 승리했고, 스피디한 공세로 출발한 <디아이>에서는 패했다. 그리고 승리한 두 경기의 화두는 '드랍십'이었다.
<러시아워3>에서, 이병민 선수의 클러킹 레이스 기습을 간단히 제압한 이윤열 선수는 앞마당 멀티와 동시에 드랍십을 준비하여 이병민 선수의 멀티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병민 선수는 매번 적절한 방어로 손해를 최소화 했지만 주병력을 운용하는데 머뭇거렸고, 이에 반해 이윤열 선수의 화력은 맵의 주요 지점 사이를 빠르게 기동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드랍십은 차곡차곡 늘어갔고, 지상과 공중을 종횡무진하며 공격 지점을 자유롭게 선택한 이윤열 선수의 파상공세에 백기를 들수밖에 없었다.
<아카디아>에서 펼쳐진 마지막 경기 역시, 승리의 주역은 드랍십이었다. 경기 초반, 이병민 선수는 이윤열 선수의 정찰이 끝남과 동시에 시간차 3팩 벌쳐라는 날카로운 페이크를 선보였다. 하지만 무리한 벌쳐 운영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무위로 돌아갔다. 먼저 멀티에 성공한 이윤열 선수는 탱크의 우위를 바탕으로 먼저 센터를 장악하고, 풍부한 자원을 이용해 드랍십 생산을 시작했다. 멀티와 본진을 번갈아가며 유린하는 이윤열 선수의 드랍십 운영에, 이병민 선수는 레이스로 맞서 지상전 중심으로 판세를 유도하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7시 멀티를 제압당하고, 이윤열 선수의 1시 멀티를 저지하지 못했기에 점차적인 자원 부족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고 이윤열 선수의 집요한 드랍십 견제는 그 격차를 충분히 벌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윤열 선수의 드랍십은 '폭사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MSL 진출을 자축하였다.
경기 양상은 스타리그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순환되어 왔고, 오늘 이윤열 선수에 의해 테테전의 트랜드가 '드랍십 운영'으로 재정리 되었다. 원천봉쇄 당하지만 않는다면, 자원 수급 방해와 더불어 일꾼 및 유닛 손실까지 덤으로 꾀할 수 있는 드랍십 중심의 운영은 passive한 문법의 기초이자 active한 공식의 시작이다.
by sylent, e-sports 저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