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4/10/31 16:16:32
Name sylent
Subject OSL 관전일기 - 내 머릿속의 '임진록'
OSL 관전일기 - EVER 스타리그 8강 3주차(2004년 10월 29일)


내 머릿속의 '임진록'

<EVER 스타리그> 8강이 끝나고 '박정석 vs 최연성', '임요환 vs 홍진호'라는 4강 대진이 결정되는 순간, 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가슴을 꽉 움켜쥐는 듯한 벅찬 감동을 느끼고 말았다. 당대 최고의 프로토스 플레이어 '영웅' 박정석 선수와 최고의 테란 플레이어 '괴물' 최연성 선수의 대결이 주는 기대에 더해 다시 한 번 준비된 '임진록'까지.

무엇보다, 팬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져 가던 '황제' 임요환 선수와 '폭풍' 홍진호 선수가 새로운 아침을 맞고 있다는 사실이 필자를 기쁘게 한다. 아침은 아침에 되어야 밝아 오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그 어둠과 밤을 세워 싸우면서 준비해온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두 선수가 펼쳐온 치열한 격전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기에 그들의 분발에 입술을 떠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시즌 내내 팬들의 비판을 면치 못했던 맵 밸런스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네 선수가 우리를 풍성한 감동의 장으로 안내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이유는, 희망이 무거운 짐이며 어깨 아픈 고통임도 불구하고 '희망'이기에 그들이 결코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1경기 <머큐리> : 서지훈(T9) vs 박정석(P11)

'평범함 속의 비범함'으로 무장한 '퍼펙트 테란' 서지훈 선수의 대 프로토스전은 언제나 맞춰 잡는 투수처럼 수동적이다. 물론, '수동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의미를 날려버릴 정도로 침착하고 단단한 플레이를 펼쳐왔던 서지훈 선수이지만, '영웅' 박정석 선수의 스타팅 포인트를 확인한 순간 '이길 수 있다'는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나보다. 벌쳐 1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잃은 서지훈 선수는 5기의 마린과 탱크로 압박을 시도하지만, 박정석 선수의 드래군 컨트롤에 탱크를 잃으며 승기를 빼앗기고 말았다.

환상적인 드래군 컨트롤로 마인과 벙커를 제거하며 서지훈 선수의 앞마당 멀티를 취소시킨 박정석 선수는 다크 템플러 드랍으로 혹시 모를 서지훈 선수의 '한 방'을 원천봉쇄 하고, 템플러 드랍을 통한 일꾼 사냥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4강행 티켓을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지난 <질레트배 스타리그> 이후 다시 한 번 8강에서 무너지고 만 서지훈 선수에겐 '살인적인 스케쥴'이라는 나름의 면죄부가 준비되어 있지만, '퍼펙트 테란'의 팬들은 그에게 감히 요구하고 있다.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을 테니!".

테란을 상대하는 박정석 선수의 가장 큰 결점은 캐논 건설에 드는 비용을 아끼는 것이었다. 경기 초반의 강력한 압박 혹은 전략적인 플레이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다가도 벌처 난입을 허용하여 치명적인 일꾼 피해를 입어 결국 패배하고 마는 경우가 잦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개수의 캐논을 준비해 놓는 꼼꼼함과 더불어 물량 의존도를 줄이고 2차, 3차에 걸친 승부수를 준비하는 전략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비록 언젠가의 예상과는 달리 주인공이 바뀌고 말았지만, 리치와 날라의 퓨전이 성공적임을 증명해 보였다. 늦은 가을, 프로토스의 전설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고 있다.


2경기 <레퀴엠> : 최연성(T6) vs 이윤열(T12)

두 선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번 경기는 당대 최고의 테란 플레이어를 결정짓는 중요한 한 판이었고, '괴물' 최연성 선수가 '천재' 이윤열 선수를 꺾음으로서 일부 팬들이 보내왔던 불신의 시선을 일거에 거두게 하였다.

최연성 선수와 이윤열 선수 모두 이번 승부의 열쇠를 레이스라 생각하고 스타포트를 중심으로 병력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대동소이한 빌드로 시작한 두 선수의 승패를 결정지은 것은 '우직함'. "죽으려 하는 자 살 것이고, 살려고 하는 자 죽을 것"이라 했던가. 최연성 선수는 레이스만으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 반면, 이윤열 선수는 혹시 모를 지상전을 대비해 소수의 탱크를 확보하는데 자원을 사용하였고, 이러한 미세한 차이가 공중전의 열세를 가져오고 말았다. 결국 서로의 앞마당을 교차 공격하는 시점에서 이윤열 선수의 커맨드 센터가 파괴되며 승부의 추는 급격히 최연성 선수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소수의 탱크로 상대의 컴셋 스테이션을 제거하고 클러킹 레이스로 공중을 제압하는 이윤열 선수의 센스는 여전히 발군이었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연성 선수는 레이스를 산개하여 대피시키는 기교를 보이며 자신의 특기인 자원전으로 이끌어 끝내 승리를 낚아냈다.

이윤열 선수는 승리에 대한 기대 혹은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게임에 임할 수 있는 대범함을 다시 한 번 체화하지 않는 한, 최연성 선수와의 또 다른 대결에서도 같은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포기하고 주저 앉으면 주저앉은 그 자리가 바로 영원한 당신의 자리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최연성 선수의 가장 큰 무기는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며, 이윤열 선수가 패배한 이유는 그러한 믿음이 최연성 선수보다 조금 모자랐을 뿐이다. 몰입은 천재를 이기는 법이다.


- sy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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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0/31 16:19
수정 아이콘
몰입은 천재를 이기는 법이다.
음~~ 멋있는 말이군요
청보랏빛 영혼
04/10/31 16:28
수정 아이콘
와... 너무 공감가는 글이네요.
확실히 최연성 선수의 가장 큰 무기는 '내가 판단하는대로 하면 무조건 이긴다.' 라고 생각하는 믿음에 있는 것 같습니다.
04/10/31 16:33
수정 아이콘
허헛; 그러고 보니 박정석선수의 캐논을 자주 보이는 ; 강민선수와의 퓨전은 정말 되었나 봅니다. ^^;;
리드비나
04/10/31 16:50
수정 아이콘
박정석 선수가 강민선수의 것을 많이 퓨전했듯 강민선수도 하루빨리
리치의 많은것을 흡수하여 다시 한번 날라봅시다!! 화이팅 Nal_rA
박지헌
04/10/31 17:05
수정 아이콘
sylent님의 관전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_^;;
스타리그 보는 재미가 두배로 늘어가는 느낌입니다^^
밀림원숭이
04/10/31 18:09
수정 아이콘
휴가 나오셨나 보네요.
언제나 그렇지만 멋진 글입니다.
하루 빨리 매주 이 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편히 쉬다 복귀하세요~
04/10/31 18:53
수정 아이콘
^^ 잘 보았습니다.
기다림의끝은
04/10/31 19:01
수정 아이콘
정말 반갑네요.

뻥 뚫리는 것 같아 시원합니다. 휴가 잘 보내세요.
秀SOO수
04/10/31 19:07
수정 아이콘
게임 후기 같은 글은 후기에 못올라가나요?
이런 글은 올라가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듯 한데...

아니 다른 게임을 보고난 후기를 쓴 글도 모두 다 보면 추게감이 널린
듯 한데...유독 자유게시판에 있는 글만 추게로 올라가는 것 같아서...

아쉽네요.
하와이강
04/10/31 19:19
수정 아이콘
외박나오셨답니다. 그리고 다시 복귀하셨답니다. ㅠ.ㅜ
게임의법칙
04/10/31 19:33
수정 아이콘
확실히 박정석 선수가 강민 선수에게서 흡수한 최고의 장점은 캐논인 거 같습니다.
한동안 슬럼프이던 시절 언제나 투팩 벌쳐에 견제당하다가 졌었죠.
이뿌니사과
04/10/31 20:44
수정 아이콘
에구..벌써 복귀하셨다니아쉽지만.. sylent님 정말 감사드리고 필력이 존경스럽습니다. ㅜ.ㅜ 어째 저도 같은 시간 같은 게임을 보는데 말이죠... -_-a;
이뿌니사과
04/10/31 20:46
수정 아이콘
희망이 무거운 짐이며 어깨 아픈 고통임도 불구하고 '희망'이기에 그들이 결코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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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선수들에게 미안하면서 고마운 이유입니다.
특히.. 가을만 되면 그 어깨의 짐이 두세배가 되어 버리는 리치에게
결과와 상관없이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홍승식
04/10/31 21:12
수정 아이콘
크하.. 역시 명문 중의 명문입니다. 곳곳이 주옥같은 글이군요. 경기를 보는 그 날카로움에다가 문장의 아름다움이 더욱 향기롭습니다.
이런 글을 매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깝군요.
Sulla-Felix
04/11/01 04:48
수정 아이콘
이번 머머전은 센게임배의 재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나 레이스 컨트롤, 반응속도는 모두 머신이 앞서지만 결국 승리하는 것은 머슴.....
머슴, 그는 승리를 위한 운영이라는 명제를 가장 정확하게 실현하는 선수입니다. 마치 프로토스유저의 플레이를 보는 듯 합니다. 200대 후반의 느린 apm이지만 칼같이 정확한 클릭, 낭비없는 손동작, 그리고 전체적인 판을 이끌어 나가는 능력... 정말 대단합니다.
04/11/02 11:12
수정 아이콘
최연성 선수 승리의 열쇠는 초반 6기(7기?) 마린의 활용에 있었다고 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앞마당 멀티를 방어하거나 최소한 띄워서 날리지도 못한 이윤열 선수의 실수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레이스에서 다소 밀리던 윤열 선수가 섬으로 커맨드를 날렸더라도 방어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 정도로 멀티가 늦어지고 버스모드가 발동되지는 않았겠지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여지를 만들어내는 윤열선수, 그런 여지를 적절히 끊어내는 연성선수 모두 훌륭했습니다. ^^
04/11/02 11:12
수정 아이콘
참, sylent님 무지하게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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