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11시 40분] 첫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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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베이천(方北辰)
중국 쓰촨성 청두시는 삼국지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청두시에는 1100년이 넘은 사당인 무후사라고 한다. 이곳에는 제갈량의 묘지와 함께 사당이 있고, 촉나라의 창업 영웅인 유비, 관우, 장비, 조운 등을 함께 모시고 있어서 삼국지를 좋아하는 애호가들과 여행객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곳 청두 무후사 박물관에서 학술위원을 지낸 팡베이천은 중국 내 삼국지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역사학을 전공하던 학창 시절부터 80세가 넘은 지금까지 오로지 삼국지 연구에 몰두해 왔다. 중국 쓰촨대에서 역사문화학 교수를 지낸 그는 중국 중앙방송의 ‘백가강단’이라는 대중 강연 프로그램에서 ‘삼국명장’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후 삼국지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중국 정부로부터 ‘특출난 공헌을 한 중국 박사’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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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삼국지는 어떻게 쓰였나
5월 21일 (화) 방송
삼국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건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 사람인 나관중이 쓴 삼국지인데요. 중국의 역사학자 팡베이천은 ‘정사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평생 삼국지를 연구해 온 그가 ‘정사 삼국지’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삼국지는 어떻게 기록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동양 최고의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걸까요.
2강. 연의는 어디까지 사실인가
5월 22일 (수) 방송
1800년 전 위, 촉, 오, 이 세 나라의 영웅들과 정세 변화를 기록한 역사서가 진수의 ‘정사 삼국지’라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삼국지에 극적 요소를 가미해 창작된 소설입니다. 팡베이천은 ‘정사 삼국지’가 당시 민중들이 읽기에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를 덧붙이거나 극적인 요소를 강조했다고 하는데요.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인물의 모습부터 성격도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인 걸까요.
3강. 위촉오 격동의 96년
5월 23일 (목) 방송
삼국지는 후한 말기인 184년부터 위촉오가 멸망하고 진나라로 통일되는 시기인 280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채 100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당시 중국의 정세는 변화무쌍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영웅이 전투를 벌이거나 회합을 가졌습니다. 이들을 포함해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540여 명에 이르는데요. 팡베이천은 당시 많은 영웅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시대적으로 필연적인 배경과 이유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4강. 누가 더 강한가
5월 24일 (금) 방송
후한 말의 어지러운 정세를 극복하고 드디어 세 나라가 들어서게 됩니다. 북쪽에는 조조가 세운 나라인 조위, 서쪽에는 유비의 촉한 그리고 중국의 동쪽 지역을 바탕으로 손권이 세운 손오가 있습니다. 이들은 정벌을 위해 때로는 대립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하고 때로는 힘을 합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위, 촉, 오 중 어느 곳이 가장 강한 나라였을까요? 팡베이천이 오랜 시간 연구한 사료를 바탕으로, 위, 촉, 오나라의 인구, 병력, 토지 등을 전격 비교 분석해 봅니다.
5강. 조위(상) 스스로 길을 개척한 조조
5월 27일 (월) 방송
위나라를 세운 조조에 대해 흔히 ‘난세의 간웅’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뛰어난 군사력과 용병술을 갖추었지만 계책에 능하고 간사한 꾀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조의 모습은 과연 사실일까요? 팡베이천은 정치에 뜻을 두었던 조조가 자신의 집안 배경을 이용해 성공하려 하기보다 본인의 힘으로 정치적 업적을 남길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긴 인물이라고 평가합니다. 난세의 영웅이 되기 위해 인재를 모으고 군사력을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위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6강. 조위(하) 강대국은 왜 멸망했나
5월 28일 (화) 방송
위나라를 대표하는 관료는 사마의입니다. 그는 조조 때부터 조방 때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위나라를 섬겼으며 최고위직에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사마의는 촉한의 책략가로 유명한 제갈량과의 지략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인물이기도 한데요. 동시에 그는 위나라의 멸망과 관계가 깊습니다. 팡베이천은 당시 집안 대대로 벼슬을 지냈던 사마 씨 가문의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 3대가 위나라를 45년간의 역사로 남게 만든 장본인들이라고 말합니다. 위나라의 멸망과 사마 씨 가문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위나라 멸망의 근본적 이유는 뭘까요.
7강. 손오(상) 권력을 잡은 19살 청년
5월 29일 (수) 방송
삼국지의 3대 전투 중 하나이자 오늘날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삼국지 속 전투는 바로 적벽대전입니다. 서기 208년인 후한 말기, 북방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조조는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남하했습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유비와 연합해 조조의 군대를 물리친 인물이 손권입니다. 손오는 적군의 공격에 살해된 아버지와 형을 대신해 19살에 권력을 잡았습니다. 유비나 조조에 비해 우리에게 덜 알려진 손권은 어떤 인물일까요?
8강. 손오(하) 반평생만 훌륭했던 군주
5월 30일 (목) 방송
손권은 유비, 조조보다 스무 살 이상 어린 군주였습니다. 팡베이천은 손권이 나이는 비록 제일 적지만 손권의 용병술과 나라를 운영하는 능력은 뒤지지 않았다고 평가하는데요. 아버지 손견으로부터 물려받은 병사들을 키워 군사력을 갖춘 손권은 북쪽으로는 조조의 공격을 막고 서쪽으로는 유비의 견제를 방어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조조 역시 손권을 크게 칭찬한 적이 있는데, 아들을 낳으려면 손권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팡베이천은 손권을 반평생만 훌륭했던 군주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9강. 촉한(상) 한계를 극복한 유비
5월 31일 (금) 방송
젊은 시절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의형제를 맺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팡베이천은 유비의 집안 배경을 그 이유로 제시합니다. 고위직 관리 가문 출신의 조조와 유능한 군벌 집안 출신인 손권과는 달리, 유비에게는 그를 지지해 줄 정치적 자원이나 집안의 힘이 없었다고 합니다. 본인 가문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유비가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와 정치적 뜻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촉한을 세우기까지, 유비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봅니다.
10강. 촉한(하) 제갈량은 왜 유비를 섬겼나
6월 3일 (월) 방송
원천우인(怨天尤人). 하늘을 탓하고 타인을 탓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팡베이천은 유비에 대해 원천우인과 정확히 반대되는 성품을 가진 인물로 분석합니다. 황건적의 난에 참가한 이후 유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울 뜻을 펼쳤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실패에 좌절했지만, 절대 포기하지는 않았다는데요. 그런 유비에게 앞날을 함께하게 될 책사가 나타나는데, 그는 바로 제갈량이었습니다. 팡베이천은 제갈량이 유비를 주군으로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 이유들이 여러 개 있다고 말합니다. 제갈량은 왜 유비를 군주로 받아들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