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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7 12:34
저 시절에 군대 진군로 상에 강 건널 수 있는 지점은 극히 한정적일거고 하니 도하할 때 혹은 보급부대랑 전투부대 강으로 쪼개질 타이밍에 기습 제대로 먹이면 데미지가 엄청날것 같긴 합니다.
고대니까 더더욱 식량운반, 식수 수급이 가능한 진군로가 엄청나게 적기 때문에 응 우회 이런게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22/06/17 12:39
그래서 이순신 장군도 쇠사슬질로 200:13 이겼다는 이야기 나오고 그랬죠
무슨 학원만화도 아니고 혼자 1:200으로 깨부수고 있으니까 도망간 부하들이 합류해서 다같이 줘팼다고 하면 누가 믿어요
22/06/17 12:31
고대의 수공은 뻘을 길어지게 만들어서 도하시 약해지는 구간을 늘리거나, 강을 낀 도시를 조금 잠기게 만들어서 역병전파와 식량보관을 까다롭게 만드는정도의 효과가 있었다더군요
22/06/17 12:36
흔히 하는 오해
상상속의 수공 : 반지의제왕 1편의 영상처럼 급류가 와장창 (영화처럼의 급류는 현대 토목기술로도 어려움) 실제 수공 : 그 일대를 침수시켜 땅바닥을 늪으로 만듬, 음식(쌀은 습기에 쥐약)도 썩고 발도 축축해지고 잠도 잘 못자고 풍토병도 돔, 주로 적 성을 침수시키는 방법(최소 몇주~개월 단위의 시간이 걸리는 전법) -> 예시 관우의 번성포위, 수공을 쓴건아니지만 강이 범람해서 번성이 침수됨, 문제는 관우의 형주군진영도 침수되서 식량난 발생..
22/06/17 13:08
지나가던 스님이 돌을 쌓아 둑을 만들고, 수나라군이 챠들어오자 무너트려 물리쳤다는 민간설화가 있는데 이 설화가 발전된 버전이 조선 상고사에 실리면서 현재 우리가 오해하는 수공설이 퍼졌다고 합니다.
“흔히 살수 대첩 하면 귀주 대첩과 함께 수공(水攻)을 떠올린다. 그러나 《삼국사기》, 《수서》, 《자치통감》, 《동사강목》, 《해동역사》 등 한국과 중국의 사서에서는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했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오직 근대 기록(신채호, 조선상고사)에만 등장하는데 이는 [민간의 전설이었던 칠불전설(七佛傳說)이 변형되어 수록]된 것이다. 실제 수공을 활용한 전투는 흥화진 전투뿐이다.” https://ko.m.wikipedia.org/wiki/살수_대첩 “을지문덕은 미리 사람을 보내서 모래 주머니로 살수의 상류를 막고 정병 수만 명을 뽑아서 천천히 한가롭게 수의 군사를 뒤쫓게 하였다. 살수에 이르니 배가 하나도 없어서 우문술 등이 물의 깊고 얕은 데를 알지 못하여 머뭇거리는데 돌연 일곱 사람의 고구려 중이 다리를 걷고 물에 들어서면서 “오금에도 차지 않는 물이오. ” 하고 건너가니 수의 군사가 크게 기뻐하며 다투어 물에 들어섰다. 채 중류에 미치지 못했을 때 상류의 모래주머니로 막은 물을 터놓아 물이 사납게 내리닥치는데 문덕의 군사가 뒤쫓아와서 맹렬히 공격하니, 수의 군사는 거의가 칼과 화살에 맞아 죽고 물에 빠져 죽고(후략)” https://ko.m.wikisource.org/wiki/조선상고사/제10편
22/06/17 12:43
살수대첩에 대해 언급할 때 적어도 20여년 전 정도부터 투입된 역사교육 인력들은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례가 있었다면 결격.
보통... 예전 분들이죠. 그 분들도 바뀌셨을겁니다. 나이 좀 있으신 타과목 선생님들이 역사얘기할 때 꼭 저런 이야기 잘 섞임. 이순신 쇠사슬이나 사명당 마법천자문 같은 거. 민담이 섞인 케이스 들입니다.
22/06/17 12:45
그냥 보급 역량 안되서 털린 거라고 봐야죠
고구려도 지연전 펼치면서 이것저것 시도하는 중에 도하 중인 부대 습격도 했을 거고 그게 와전된 거라고 봅니다
22/06/17 12:52
저도 처음 알았네요 크크
당시의 교육수준이나 정보의 불균형을 생각하면 저런 민간신앙이 충분히 생길만한거 같아요 제가 스1을 방송으로 처음본 경기가 왕중앙전 국기봉 기욤전인데, 스타를 개뿔도 모르는 상태다 보니까 친구한테 국기봉이 멀티 한번에 5개씩 먹고 저글링 히드라 수백마리 보냈는데 기욤이 다 막고 이기더라고 설명했거든요 크크
22/06/17 13:16
대충 기억하는대로 전개과정을 정리해보면 아마 아래와 같은 전개일겁니다.
1. 수나라가 100만대군으로 침공 2. 요동성 공략에 실패, 몇개월동안 시간을 보내며 보급문제 발생 3. 최후의 수단으로 별동대 30만이 평양으로 직행, 내호아의 수군이랑 평양에서 만나서 평양성 공략 계획함. 4. 무리하게 식량을 짊어지고 가던 별동대는 식량을 버리며 진군. 5. 간신히 평양성에 도착했지만 이미 무리한 진군으로 다들 지침, 평양성에서 만나기로 했던 내호아는 고건무(영류왕)에게 박살나서 수군의 지원도 못받음. 6. 수나라군 후퇴시작, 고구려군 추격시작 7. 살수에서 수나라군이 도하하는 중에 고구려군이 총공격, 대승리. 30만명중 2천여명이 살아남음.
22/06/17 13:25
고구려 기록에 대승이라 되있고, 수쪽의 기록도 대패라 되있으니, 뭔가가 있었던건 맞는데, 중간이 없어서 소설이된걸로 압니다 크크
22/06/17 13:43
을지문덕 본인도 기록이 잘 없는데 이게 정치 문제든 뭐든 저런 대승은 승자의 기록에서 찾고 적게 기록됐을 패자의 기록으로 교차검증이 일반적일텐데 둘다 적어서 이렇게 됐나..
22/06/17 14:30
예종도 내성발톱같은 족질때문에 발이 썩어서 죽었는데
신발같지도 않은 신발 신어가면서 전쟁터 나가는 병사들 입장에서 늪지대행군은 지옥이죠.
22/06/17 14:44
귀주대첩에도 수공얘기 붙어있는데 당연히 사실이 아니고요.
귀주때도 도하할때 공격해서 대승거둔건데 더 극적인건 도하시기를 노려 공격하기로 짠 게 아니라 기병부대가 길을 잃어 전장에 늦게 도착했는데 도착하고보니 도하중이라 그대로 공격해서 대승하게 된 거.
22/06/17 15:12
귀주대첩은 도하 중 싸운 전투가 아니라 양군이 도하 이후 싸운 전투입니다
12월에 소배압 등이 개경에 이르자, 적들이 무너졌다. 이에 군사들을 풀어 사로잡고 노략한 다음 돌아왔다. 군사들이 다타이하(茶陀二河)를 건널 즈음에 추격하는 고려의 군사들이 쫓아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고려의 군사들로 하여금 두 강물을 건너게 한 다음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야율팔가 혼자서만 안 된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적들이 만약 두 강물을 건너게 되면 반드시 결사적으로 싸울 것인 바, 이는 위태로운 방법이다. 그러니 두 강물 사이에서 치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그러자 소배압이 그 의견에 따라 두 강물 사이에서 싸웠다.
22/06/17 15:21
후퇴하다 도하 중 쓸린건가요?
전근대 시기에는 직접적으로 맞붙는 전투에서는 많이 안죽고 승패가 결정된 다음 패잔병들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전사자가 많이 발생했다던데
22/06/17 15:59
우리에게는 평화의 땜이 있죠…
한 200년쯤 지나면 북한의 공격을 막은땜이 될수도… 그와는 별개로.. 저 전쟁은 참으로 대단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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