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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9/13 02: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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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오랜만에 차인 사연 (수정됨)
연애 참 어렵네요. 모든 것이 어렵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 그 사람이 나를 마음에 들어할 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잘 성립할 타이밍까지.

직장동료 A가 있었습니다. 10살 차이인 후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참 별로였습니다. 일도 못했고, 개선의 여지도 없었고, 동료로 참 별로였던.
일과는 별개로 사사로운 대화를 하면, 그건 또 뭔가 장단이 잘 맞더군요. 유머코드도 비슷하고, 대화 자체는 잘 안 끊기고 자연스레 이어진다는 생각. 그래도 역시 문제는, 우리는 일을 같이 하는 사람이니, 일을 하면 또 스트레스가 확 들더군요. 후.
그렇게 한 2년, 지났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던 저는, 이직이 확정됩니다.
공교롭게도, 이직이 확정된 작년 6월경, 코로나 정책이 풀리면서 이래저래 회식도 늘어났고, 회식 후에는 같은 동네에 살던 A와 저는 동네에 와서 한잔을 더하곤 했죠. 저는 술을 어정쩡하게 마시는 걸 싫어했고, 친구도 별로 없기에 처음엔 그냥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생각으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

A는 여전히 일적으로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그걸 떠나서 술 마시면서 여러 얘기를 주고받으면 참 좋은 술친구다 싶었습니다. 대화는 즐거웠니까요. 그렇게 마음이 생겼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요.

6월 이후 서너번의 회식 후엔 항상 A와 동네에 와서 한잔 더 했습니다. 노래방도 가고, 노래 취향도 잘 맞아서, 즐거웠죠. 항상 그렇게 놀고, 헤어지고, 회사에서 일하고.  일을 떠나서, A는 인간적으로 호감이었고, 여러 술자리가 쌓이니, 저도 모르게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눈이 높다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취향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좀 둥글둥글한 사람이 좋고, 마르기보다 살집이 있는 편이 좋고, 조금 배울 만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 좋다, 정도였죠. A는 모든 면에서 반대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계속 가더군요.

하지만 저는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기로 하였습니다. 9~10살 차이는 제가 생각하기에 쉽지 않는 차이이기도 하고, 상대가 먼저 다가오면 모를까, 제가 먼저 들이대기는 힘들더군요. 개인적으로 25와 34면 모를까, 30과 39는 차이가 크더군요. (물론 주변에 17살 연상과 연애를 한 경험이 있는 여사친은 10살이면 개꿀이라 하더군요 크) 그리고 이제 나는 이직을 하니,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서, 마음이 깊어지기 전, 더 마음을 주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작년 여름이 지나고, 저는 이직을 하였습니다.

A는 일이 서투르다고 했죠? 인수인계를 해주었지만, 역시나 일 때문에 가을까지는 꽤나 자주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걸로 그쳤죠. 그러다가 전 직장 동료들이 한번씩 술자리를 만들면, 저를 부르곤 했습니다. 이직을 하면 볼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2~3달에 한 번씩은 그 친구를 보게 됐고, 전에 그랬듯이, 늘 같이 마시다가 동네에 와서 둘이 또 한잔 더 하고, 그렇게 지냈죠. 좀 더 가까워지긴 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다음날 A가 생각나는 시간들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더 뭔가 하진 않았습니다. A가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해서요. 내 생일 때 따로 연락이 없다든지, 같은 것들요. 그냥 단지 A의 어떤 니즈를 내가 채워줄 순 있고, 딱 그것 정도겠구나. 나는.
그게 작년 12월쯤 일이고, 그 후로는 뭐, 큰 일은 없었습니다.
저도 다른 인연을 찾고자 했고, 잘 안 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습니다.

봄쯤에 한번 보긴 했습니다. 전 직장 동료와 같이 밥을 먹는 자리라든지.
지난 8월엔 그 친구도 퇴사를 하게 돼서, 송별회 자리에 같이 하게 되었기도 했지만, 늘 그랬듯이 큰 진도는 없었습니다. 저도 더 마음도 없었구요.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 9월초, 헬스 갔다가 샤워하고 혼맥하는데 밤 12시에 전화가 한 통 옵니다. 전 직장 동료인데, A가 만취했으니 괜찮으면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걱정이 되니, 바로 택시 잡고 갔습니다.

가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잊혀질 듯, 잊혀질 듯, 계속 이어지는구나. 싶은.
A는 퇴사 기념 다른 송별회에서 어쩌다 만취를 했고, 그걸 업어다가 저는 A 집 근처로 왔습니다.사는 동, 호수는 모르기에, A가 깰 때까지 벤치에 눕혀두었죠. A는 얼마 안 가 깼고, 새벽 4시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헤어졌고, 다음날 저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커짐을 느낍니다. A가 계속 생각이 났고, 아쉬움이 있었죠. A도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밥을 사겠다고 하더군요. 바로 1주일 뒤 약속을 잡았고, 그것이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느낌엔, A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 전까지의 분위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보내는 카톡에 A도 정성스레 답을 해주고, 계속 이어가는 느낌이, 혹시...?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주말에 만났고, 밥을 먹었습니다. 술도요. 처음엔 A도 저도, 그렇게 많이 마실 생각은 아니었지만, 뭐, 개가 똥을 끊지요..
식당에서 한잔, 근처 공원에서 한잔, 노래도 들으면서, 감성이 충만해졌습니다. 그렇게 A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나 너 좋다고.

A는 그러더군요. 나도 너 좋다고. 그리고 니가 나를 좋아하는 걸 전부터 알았다고.
언제부터 알았냐고 물었습니다.
작년 여름쯤이라고 하더군요.
딱 맞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호감 쌓였다고.

하지만,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왜냐고 하니, 자기는 10살 차이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5살만 어리지 그랬느냐고..)
딱히 어려서 좋아한 건 아니었습니다.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나이 차이가 난 거였죠.

그 말을 들으니 딱 떠올랐습니다.
아, 이 사람이 나를 아주 많이 좋아한 건 아니구나.

자기도 저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그러니까 계속 술 마시고 만난 거라고. 저의 퇴사 후 보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망설인 적이 많았다고.
하지만 나이가 아쉽다고. 더 마음 주기 어렵다고.

뭐, 나이.

한 3년 전에, 10살 연하의 여자분이 저에게 고백을 해왔습니다.
거절했어요. 나이를 떠나서, 별로 매력을 못 느껴서요.

어떤 사람은 10살의 차이가 큰 벽이고, 어떤 사람은 상관없을 수 있다. 이상한 건 아니죠.

고백 아닌 고백 후, 거절을 당하고, 2시간 정도를 더 얘기하다가 A와는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궁금하니까요. 너도 나 좋아했다며, 근데 왜 그랬냐. 자기는 연애 자존감이 낮아서, 누구를 좋아하더라도 절대 티를 안 낸다. 따위의 대화.

A는 미안한지, 내가 집에 간다고 하니, 데려다주겠다며 걸었죠. 걸었고, 같이 있어주며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사실 별로 위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여튼, 저는 제 마음을 전했고, 그것에 후회는 없어요.

10년 전의 나였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직진했겠습니다만, (전형적인 호구 스타일)
이제 저도 그 정도의 에너지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랜만이었어요. 고백도 오랜만이고, 뭐, 차인 것도 오랜만이네요.
고백은 확인사살이라지요. 사실 잘 될 것 같다는 행복회로를 돌리면서도, 약간 쌔한 게 있었는데, 역시는 역시군요.

인연 만나기 참 어렵군요. 크

긴 하소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A는 마지막에 이제 우리 못 보는 거냐고 물었지만, (아 이거 전형적인 어장..) 저는 A와는 이제 가능성이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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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3 02:33
수정 아이콘
또 인연이 올꺼에요.. 토닥토닥. 소주 한잔 같이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네요
23/09/13 05:41
수정 아이콘
한 번 해보고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오랫만에 달달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저는 7살 차이... 주변에도 여자가 8살 연상도 다수
문재인대통령
23/09/13 06:14
수정 아이콘
고백한 순간 이 미래는 결정된것이 아니었을까.. 고백하지 말고 계속 보시지.. 아쉽네요
톤업선크림
23/09/13 06:43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습니다 꽤 긴 인연이었네요
전 사람 마음이 고백이라는 행위 하나로 끊긴다고 생각 안합니다 찬쪽이든 차인쪽이든요
정말 성격이 잘 맞고 마음에 드시면 그냥 일상대화로 카톡 보내보시고 답장 오면 예전처럼 연락하고 시간 맞으면 밥 한 번 먹고...그렇게 선선하게 지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잠님 마음이 내키신다면요!
신동엽
23/09/13 07:44
수정 아이콘
왠지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제 착각이겠죠?
오렌지 태양 아래
23/09/13 08:10
수정 아이콘
막줄에서 어장안들어가시고 깔끔하게 마음 잘 정리하고 나오셨네요. 이제 신의 손이 되신 겁...(응?)
미메시스
23/09/13 08:27
수정 아이콘
인연 끊지는 마시고 다른사람 만나시다보면 기회가 올것 같네요.
23/09/13 08:37
수정 아이콘
추천..꾹
오타니
23/09/13 09:14
수정 아이콘
33 42 면 가능합니다.
23/09/13 09:21
수정 아이콘
이게 맞을 거 같아요.
23/09/13 09:29
수정 아이콘
30과 39는 세계가 많이 다르죠. 지금 처한 상황도 바라보는 것도.
저도 같은 나이고 8살 9살 차이 나는 동생들이랑 월에 몇 번은 술 마시며 놀지만
내가 싱글이었더라도 이 친구들이랑 이성으로 얽힐 일은 없었을 거란 생각 해 본 적 있습니다.
조금 더 가까운 나이의 더 좋은 분 만나시길 기원합니다.
마술사
23/09/13 10:03
수정 아이콘
이건 그린라이트 같아 보이는데...
10살차이인만큼 나를 더 설득해달라 라는걸로 읽히는데요?
이리프
23/09/13 10:41
수정 아이콘
33, 43(저) 커플이고 올해 5월 결혼했습니다. 크크크
힘내세요!
23/09/13 11:28
수정 아이콘
저도 그린라이트라고 읽힙니다.
서로가 조금 멀어진 타이밍에 들어온 고백이라 쉽사리 승낙하기도 어려울꺼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만나면서 나에게 나이차 같은건 별거 아니다 라는 믿음을 달라는 태도로 보이네요!

선택은 자유입니다만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마시고 만남은 지속해보시는건 어떨까요?!
콩순이
23/09/13 12:45
수정 아이콘
저는 별로 그린라이트 처럼 보이진 않긴 한데요. 여자분이 10살차이라는데 좀 거부감이 있는 거 같고, 글쓴님 호감을 눈치 채고 어느정도 좋아하긴 하지만 사귈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 적당히 호감을 이용하는 정도 같아보여요. 그러니 술마시고 뻗었다고 주변인들이 글쓴님 부르는 거겠죠? 글만 봐선 여자분이 적당히 간보는 느낌이라...
더존비즈온
23/09/13 13:10
수정 아이콘
가능성은 있어보이는데요...
생겼어요
23/09/13 13:16
수정 아이콘
썸을 좀 타다 그 깊이가 가장 깊어지던 시기는 이미 지났고 당시에는 양측 모두 아무런 액션이 없었으니 마음을 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좀 담아 당시 내 마음이 이랬다 교환하는 정도로 보입니다. 그 아쉬움의 바탕은 여전히 당신을 좋아한다는 성질의 마음이 아니라 썸 타던 시절의 달달함과 당시의 추억이구요.
수정과봉봉
23/09/13 13:49
수정 아이콘
결국 10살 차이라는 이유는 핑계고, 좋아하지 않는겁니다.
인연이 있거나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옆자리를 굳이 비워놓으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3/09/13 19: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많은 분들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야 하루 일정 대강 마무리하고 댓글 달 짬이 나네요.

위에 호감을 적당히 이용했다는 댓글이 와닿네요. 저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저로서는 한번 확인해둘 필요는 있었습니다. 고민하는 데 에너지 소모를 하기도 싫고, 아쉬움을 가진 체 이렇게 어정쩡하게 있기는 싫었거든요. 상대도 나를 좋아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말을 할 때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한때 자신이 가졌던 감정을 힘들게 꺼냈던, 그 표정은 진심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후의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전망을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긴 합니다만, 글쎄요. 어찌될진 모르겠습니다. 일단 힘 닿는 데까지 해볼 작정입니다.

오랜만에 마음을 표현해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로서는, 누구 좋아해본 지 4년 정도 됐는데, 말라버린 마음이 빛날 수 있었네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노둣돌
23/09/14 10:01
수정 아이콘
업무 전수과정에서 A가 님으로부터 어떤 벽을 느꼈을 겁니다.
연애로는 잘 맞을 수 있어도 결혼을 하면 천대받을 수 있다는 느낌.

전달력이 너무도 좋은 참 깔끔한 글이라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kissandcry
23/09/14 10:48
수정 아이콘
글에서 뭔가 설렘과 아쉬움 등등 감정이 느껴지면서... 역시 연애와 사랑은 좋아요.. 당장 결혼이나 연애가 급하신게 아니라면 굳이 끊어내실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냥 어떤 목표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다 보면 진짜 인연이라면 이어질 것이고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끊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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