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2/20 23:06:10
Name TheWeeknd
Subject [일반] 누군가의 감정의 기록 1
01

사실 잘 모르겠다.

웃어 본 지도 아주 오래되어서 어떻게 웃는 건지도 까먹어 버린 것 같다.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이 된 나머지

오히려 사소한 감정 변화에도 크게 반응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느낌으로 성급히 결론을 내려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날 싫어하는 걸까? 사실 나한테 싫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냥 내가 사람들이 날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일 뿐이다.

싫어하지는 않더라도 같이 있으면 어딘가 불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날 더 싫어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직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다.

그 전에 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뭐였지?

모르겠다. 그냥 생각없이 사는 느낌이다. 너무 오래 이 느낌이 지속되어서 이젠 무뎌져 버렸다.

일시적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건 내 감정의 기록이다.


02

난 고등학교 친구가 4명 있다.

우린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서 같이 고기를 먹는다.

사실 나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나는 대화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고기만 먹는다.

나는 게임이나 만화, 애니 문화를 좋아하고 친구들도 비슷한 취미를 공유한다.

얘내들 이외에는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내가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인가?

그저께는 내가 좀 품어왔던 그 생각을 술김에 생각 없이 내뱉는 바람에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말았다.


03

한동안 그 생각을 별로 하지않았다.

L-티로신을 비타민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먹는다.

더 나아진거 같다.

안 먹는것보다는.

국민카드도 결국 발급할수 있었다.

101에겐 이젠 전화가 안온다.

이제는 좀 생각한다. 심하진 않다.

그냥 심각해지지 않는거 뿐이다.

물을 많이 마시려고 한다.

항상 이랬던걸까?

잘 모르겠다

과거의 나를 별로 욕하고 싶진 않다

기록을 조금 해놨으면 어땠을까 아쉬울 뿐이다

사실 진짜로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에 대해 관대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수동적 방어를 하는 것일 뿐이다


04

어린 시절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별을 보며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포기했다.

그냥 안 될 거 같아서.

그리고 그 포기에 납득할 만한 이유를 붙이기 시작했다.

천문학자는 사실 별만 보며 사는 직업이 아니다.

수학도 잘해야 하고 물리학도 잘해야 한다.

나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배로 노력해야 한다.

근데 사실 그렇게까지 노력하면서 별을 보면서 살고 싶진 않았다.

그냥 주변 어른들이 물어보니까 뭔가 대단한걸 꿈이라고 말하고 싶었던거 같다.

목표는 원래부터 없었던 거 같다.

생각도 원래부터 없었던 거 같고.

적당히 사는 게 꿈이었던 거 같다.

적당히 일해서 적당히 벌고 적당히 노는거.

그래서 누군가 나를 단죄해주었으면 하는 심리가 있다.

적당히 살면 언젠간 세상의 철퇴를 맞을 테니까

그 철퇴를 미리 휘둘러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철퇴에 맞고 나면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게 되겠지.

아니면 그냥 맞아죽을 수도 있다.


05

모든 것이 의미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은 거 같다.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는다.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것보다 생각을 안하는게 나은 거 같다.

현실 감각이 사라지는 거 같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어떤 이유로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행복하든 불행하든 모두 자신의 삶에 충실한 거라면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데.

나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예전에는 이렇게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부정적이거나 무감각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정상적인 판단과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걸까? 무엇이 문제인 걸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힘든 상태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직장에서 평범하게 일하고 있던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3/02/21 08:20
수정 아이콘
(수정됨) 공각기동대 이노센스하고 공의 경계 첫 화죠. 너무 오래 부감하지 않는 것하고 질리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Valorant
23/02/21 08:4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23/02/21 12:0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전 오늘이 언젠가 어느 의미에 닿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기를 씁니다. 이런 기록들이 theweeknd 님을 좋은곳으로 인도하길 바랍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7983 [일반] 노동현장에서 말하는 노동개혁의 필요성 [70] 동굴곰11354 23/02/24 11354 26
97982 [정치] 경찰 수사 총괄하는 '국수본' 검사 출신 임명, 경찰 내부 술렁 [33] 빼사스12110 23/02/24 12110 0
97981 [일반] 스테이블 디퓨전으로 노는 요즘 [18] 닉언급금지9913 23/02/24 9913 5
97980 [일반] “13세, 성인과 같은 처벌 부적절”… 법원행정처, 법무부 ‘촉법소년 연령 하향’ 법안 반대 [95] dbq12313525 23/02/24 13525 4
97979 [정치] 갈수록 점입가경이 되어가는 전당대회... [42] 13850 23/02/24 13850 0
97978 [일반] 드디어 국대 홈 유니폼이 배송 되었습니다 [1] 광개토태왕8512 23/02/24 8512 3
97977 [일반] 나로서 살기 [17] 도큐멘토리9203 23/02/23 9203 29
97976 [일반] 쌉소리, 얼마면 참을수 있나요? [77] 쿠라13827 23/02/23 13827 7
97975 [일반] 칼 빼든 교육부, 새학기부터 교권침해 학생 엄중제재 [74] 된장까스16474 23/02/23 16474 15
97974 [일반] ChatGPT 가 꼭 대체해 줬으면 하는 직업 [70] VictoryFood15137 23/02/22 15137 10
97973 [일반] 오챠즈케 한 뚝배기 하실래예? [32] 海納百川13589 23/02/22 13589 18
97972 [정치] 독도와 일본 근황 [72] petertomasi15602 23/02/22 15602 0
97971 [일반] "그러면 장기매매 허용도 찬성하냐" "응" [130] 상록일기18487 23/02/22 18487 15
97970 [일반] 日 기시다, LGBT담당 총리보좌관 신설…모리 전 법무상 임명 [23] 사브리자나11196 23/02/22 11196 3
97969 [정치] 작년(2022) 합계출산율 '역대 최저' 0.78명 [204] 덴드로븀21068 23/02/22 21068 0
97967 [정치] 이복현 금감원장 "김건희 주가조작, 한톨 증거 없다고 확신, 전 정부 정치적 수사에도 기소 못했다" [153] 홍철20419 23/02/22 20419 0
97966 [일반] 금 가격이 하락한다고? 금 숏으로 돈 복사하자! [56] 민트초코우유14310 23/02/21 14310 20
97965 [일반] 7950X3D/7900X3D 리뷰 엠바고 해제일은 2월 27일 [18] SAS Tony Parker 9183 23/02/21 9183 0
97964 [일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동성부부 인정 첫 사례가 나왔네요 [98] 굄성16265 23/02/21 16265 20
97963 [정치] 국힘 성일종, "의사 수급 불균형은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 결과, 의대 정원 확대 필요" [220] 홍철22316 23/02/21 22316 0
97962 [일반] 마법소녀의 33년 이야기 (1) : 60년대, 그 첫 시작 [14] 카드캡터체리11517 23/02/21 11517 13
97961 [일반] 고2 학력평가 성적 유출 [64] The Unknown A17872 23/02/20 17872 1
97960 [일반] 누군가의 감정의 기록 1 [3] TheWeeknd7405 23/02/20 7405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