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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구독할때 끼워주던 머니투데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챙겨보던 칼럼에서 발췌했습니다(분량상 약간 편집).
몇년전 어린이날 무렵 올라온 글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공감이 많이 되어 유념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네요.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중국 단체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아이들이 상점에서 조잡한 비행기 모형을 샀는데 아들도 사달라고 했다. 한국 돈으로 5000원 정도였을까, 적은 돈이었지만 나는 쓸데없다며 끝까지 안 사줬다. 아이 버릇을 잘 들이려면 단호해야 한다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들은 다른 아이들의 비행기를 보며 풀이 죽어 있었다.
이 일은 묘하게 내 6살 유치원 크리스마스 때 행사 장면이 중첩된다. 나는 며칠 전부터 엄마 앞에서 “산타할아버지가 공주 인형을 줬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 날 내가 받은 선물은 스웨터였다. 엄마는 “지금 입기에 딱 좋네”라며 옆에서 흥을 돋우려 했지만 난 스웨터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엄마는 어린 내게, 내가 원하는 선물이 아니라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사줬다. 그게 싫었는데 나 역시 시시껄렁한 장난감과 만화 캐릭터 카드가 보물이었던 어린 아들에게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주로 했던 것 같다. 어린이날, 이제는 현금이 제일 좋은 나이로 커버린 아들을 보니 싸구려 장난감에 세상을 다 얻은 듯 좋아하던 어린 아들이 그리워지며 내가 참 아들 마음을 무시하며 나 좋은 대로만 키웠구나 후회가 든다.
◇내가 옳고 아이는 틀렸다는 생각=더 오래 살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늘 내가 옳고 아들은 어려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쓸데 없는데 돈을 써?”라든지 “너 커서 고생하지 말라고 공부하라는 거야”, “크면 엄마 말이 다 맞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넌 그냥 엄마 하라는 대로 해” 라는 말들로 7살 아들, 10살 아들, 12살 아들의 세계를 무시했다.
그 나잇대에 소중한 것이 있고 경험해야 할 것이 있고 시행착오 속에 배워야 할 것이 있는데 어른의 입장에서 소중한 것을 주입하고 어른의 입장에서 필요한 경험과 쓸데 없는 경험을 재단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낭비라고 몰아붙이고 가능한 실수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내 방식대로 끌고 오려 했다. 이제 나이 들어 보니 내 시각이 아니라 종종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줘야 했는데 5000원짜리 비행기 모형이 아들 버릇을 얼마나 나쁘게 한다고 안 사줬는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내게, 내가 원하는 선물이 아니라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사줬다. 그게 싫었는데 나 역시 시시껄렁한 장난감과 만화 캐릭터 카드가 보물이었던 어린 아들에게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주로 했던 것 같다."
"그 나잇대에 소중한 것이 있고 경험해야 할 것이 있고 시행착오 속에 배워야 할 것이 있는데 어른의 입장에서 소중한 것을 주입하고 어른의 입장에서 필요한 경험과 쓸데 없는 경험을 재단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낭비라고 몰아붙이고 가능한 실수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내 방식대로 끌고 오려 했다."
그 나잇대에 소중한 것, 경험해야할 것, (시행착오속에) 배워야할것.
어른 기준이 아니라 아이의 기준에서 생각하자.
엄마 아빠 모두 아이를 위해 돈을 벌지만, 정작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갖고있는가? 어른의 관심사만 물어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