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간 어마어마하게 풀린 돈으로 자산가격이 올라가자, 그것을 자신의 예리한 통찰, 총명한 안목으로 오해하고 서로의 공적을 치하하던 놈들도 다 사라졌다. 나 역시 직장부터 자산까지, 모두 시장 베타에 온전히 노출되어 있었으니 두 배로 아플 수밖에 없다.
성과급이 안 나올 뿐, 설마 잘리기야 하겠어 싶은 안일함은 이미 수 차례 부정되었다. 옆동네, 옆회사는 이미 피바람이 불고 있다. 돈놀음을 혐오하는 반자본주의자가 기뻐할 만한 풍경이다. 물론 그네들도 본인 집값이 떨어지는 건 시뻐하는 듯 하다.
우리 회사는 당장 멀쩡해보이지만(그러니까, 충분한 유동자산이 있는 것 같지만), 당장 다음 주에 '쨔잔, 그런데 절대라는 건 없군요.'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 일단 회사랑 가깝다고 얻어놓은 비싼 월셋방부터 정리해야할지, 매일 저녁 혼자 배달해먹던 치킨의 호사를 포기해야할지, 뭐라도 일단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도 책임질 입이 나 혼자라는 것은 축복이다.
과거 금융위기도 이랬을까? 젊은이의 끝자락을 아직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나는 IMF도, GFC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으니 알 도리가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흘러가자 자연스레 과거 IMF 시절에는 어땠을까 싶다. 지금보다 더 낮은 노동자 인권, 외벌이가 당연하던, 시총 10위 기업들도 속절없이 무너져가던 시절, 옆동네 춘식이가 시장에 그대로 두드려맞고 직장과 자산을 모두 상실하는 것을 보던 마음을, 자신도 곧 그 모습이 되리라 짐작할 수 있던 상황을 보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혼자인 나와는 다르게, 자신의 지갑만 바라보는 세 명의 식구가 어깨 위에 얹힌 채로 받는 스트레스는 어땠을까.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나야, 돈벌이 수단을 잃고 빚더미 위에 던져져도 욕 한번 시원하게 박고 자살하면 되지, 속편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가족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치기어린 나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눈앞의 끔찍한 미래가 해결책이 없는데 죽음조차 탈출구가 될 수 없는 기분을, 그것을 견뎌낼 수 있게 해준 믿음을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볼 수 없다. 물어보기에는 이미 10년도 더 훌쩍 늦었다. 그 때 내 나이보다야 아버지가 당시 조금 더 나이가 많았겠지만, 나는 열 살을 더 먹는다고 쳐도 의연히 맞바람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미리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존경했을 텐데.
나이가 들면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도 한참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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