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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2/21 18:39:14
Name Farce
Subject [일반] "욥기": 이해할 수 없지만 충분히 우리에게 자비로운 우주 (수정됨)
안녕하세요!

자유게시판에서 간만에 성서가 아닌 소설으로서의 성경 이야기를 접하다보니 재미가 생겨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챕터도 가져오려고 마음 먹은 Farce라고 합니다.

종교경전이 다 그렇지만, 성경책도 서로 다른 시기와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수십권의 별도의 책을 묶어 놓은 것이다보니,
꽤나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부분에 따라서 읽는 재미의 편차가 심하다는 것은 신앙심이 깊으신 분들도 이해하실 겁니다 크크크...

창세기에 천지창조가 펼쳐지고 악마가 등장하고 좀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나 싶더니,
출에굽기에서 온갖 기적으로 이집트 사람들을 괴롭히고 (괜히 만화영화로 잊으만하면 각색되는게 아닙니다 크으) 가나안에 도착!
해놓고는 이제 갑자기 율법을 만들었다며 나열하고, 가나안은 정복도 못하고 계속 고구마 전개가 이어지면서 드르렁하는
레위기와 민수기의 쌍벽 철벽이 대표적인 예시이지요. (신: 얘들아 우리 이거하자! 이스라엘 놈들: 싫어요! 안해요!)

그나마 종교를 믿겠다고 교회에 오신 분들은 '끄으응... 그래도 성서의 중요한 부분이려니...' 하면서 온몸을 비틀면서 읽고,
그런 생각 없이 성경이 판타지 등 영향을 준게 많다고 읽기 시작한 사람은 창세기에 혹해서 여기까지 와놓곤 책을 닫고 던져버리죠.

job-00
[그래서 사람들은 구약 절반이 넘어야 나오는 이 개꿀잼 파트인 "욥기"를 놓치고는 합니다.]

욥기가 뭐 그리 재밌냐고요? 창세기가 재밌는거랑 같은 이유입니다.
일단 이야기의 스케일이 큽니다.

일단 악마가 나옵니다. 신도 나옵니다.
성경책 직접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은근히 이 책에서 신과 악마는 직접 등장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job-08
[이런 2차 창작을 많이 보신 분들에게는 되게 심심한게 성경책입니다. 이거 모서리로 때리면 사탄이 아야하는 책 아니었나요?]

job-04
[그런데 사실 성경에서 악마는 이렇게 되게 개인적으로 나오거든요. 후대에 세일즈맨 소시민 이미지가 박힌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욥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천상에서 회의가 열립니다. 본격적으로 천상 관료제의 업무시작에 앞서서
하나님 옥좌 앞에서 천사들의 아침 조회가 열렸습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고, 오늘 처리할 일은 무엇이고 그런 지루한 얘기 있잖아요.

job-10
그런데 우리 사장님, 하나님은 잠시 또 상관 없어보이는 말씀을 이 와중에 하십니다.
"야 얘들아. 근데 동방 땅에 '욥'이라는 인간이 사는걸 봤냐? 진짜 그렇게 착한 사람이 없더라.
와 나 보면 그냥 복을 막 내려주고 싶어져. 돈도 많은데 겸손해서 제사도 하나도 안 빼먹는다? 진짜 그거 필멸자 맞냐?"

이 뜬금 없는 말을 듣고서는 다른 천사들은 묵묵히 웃고 있는데, 야근에 찌든 중간관리직 한명이 눈치 없이 정색을 해버립니다.
누군가하고 쳐다봤더니 검은 양복 위에 찬 사원증에 '사탄'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이름이면서 직위이죠.

job-11
['대적자', '동의하지 않는 자', '반대하는 자' 정도 되는 뜻과 자리입니다. 닉값하는 것이었죠.]

"그거야 하나님께서 이미 충분히 축복을 뿌려주셔서 그런거 아닙니까? 와 나도 인간하면 좋겠네 하늘에서 떨어지는 꽁돈 받게.
부자인데도 교만하지 않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부자를 만들어주시니 얼씨구나하고 그리도 송아지를 바치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데요. 한번 그 '욥'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걸 모두 다시 가져가보세요. 그 필멸자 낯짝이 얼마나 두꺼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러면 바로 하늘에다가 욕을 할 것 같단 말이죠? 원래 인간은 그런 존재에요."

이야 역시 사탄입니다. 자신의 일을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욥기'가 특이하다는 걸 보여주는 전개가 나옵니다.
우린 이미 대부분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모른다고 가정하고 추리해봅시다. 선하신 하나님은 여기에 대고 뭐라고 하셨을까요?

'엥이 무슨 망발을... 사탄아 물렀거라!'가 정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되게 이상한 말씀을 하시죠.

job-07
["재밌네? 진행시켜"] 아니 하나님? 하나니이이임!?

자 잠시 '욥'의 시점으로 이동해볼까요. 욥은 성경에서 '동방인'이라고 나오는데,
이건 당연히 이야기를 적은 유대인들의 기준에서 동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동쪽에 어떤 나라가 있죠? 그렇습니다. 요르단이 있습니다. 욥은 요즘 말로는 '아랍인'이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아랍인이었냐면, 양과 소를 키우는 것에 있어서 진심인 유대인들이 이렇게 소설에 묘사했습니다.

"양이 칠천 마리에, 낙타가 삼천 마리에, 소는 오백 마리고..."
지금 21세기 한국인 독자들 입장에서는 영농후계자인가 싶은 소개멘트이지만 이때는 마땅한 산업이 없던 고대입니다.

job-12
[즉 욥이 낙타 부자 아랍인이라는게 무슨 뜻이냐면, 딱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런 이미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결재를 받고온 악마가 욥의 모든 것을 하루 만에 앗아가버렸습니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강풍이 불고, 옆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서 욥에게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재산 뿐만이 아니라, 집 그리고 많았던 자식들까지요.

job-15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하지만 욥은 악마의 비웃음과는 달리 정말로 강인한 선인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욥은 흐느끼면서도 이리 생각했습니다.
'아 하나님. 항상 저에게 축복을 나눠주시더니, 오늘 거두시는군요.' 그리고는 불경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천상의 관료제는 한 인간의 비극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잘만 굴러갔고, 시간이 흘러 며칠이 지났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의 표현은 "그리고 또 하루는"입니다.)

'그리고 또 하루는' 하나님이 조회 시간에 지나가듯이 욥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고보니 사탄아 요즘에 또 무슨 일을 하고 세상을 돌아다니느냐?"
그 말에 사탄이 '아~'하는 눈치로 맞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욥이 있었지 하는 표정을 짓자 이어서 신이 말합니다.

"네 말과는 달리, 욥은 자신의 선함을 지키고 신을 욕하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꽤나 경박하게 굴던 처음의 모습과는 다른 고단수 하나님에게 사탄은 말려들어가다가 이렇게 주장해버리지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본래 사람은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아무리 재산이 귀하다고 하지만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절박하겠습니까? 이번에는 질병을 내리겠습니다."

그랬더니 또 하나님이 이런 끔찍한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계시다가, 별거 아닌 말을 더하듯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하십니다.
"좋다. 그러나 그의 생명을 결코 건들지 말아라."

성경에는 안 적혀있겠지만, 악마는 이 말을 들으면서 침을 꿀꺽 삼켰을 것입니다.

job-16
[속은 다 썩어버렸고, 피부에는 종기가 가득하고, 온 몸에서 털이 빠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도자기 조각으로 욥은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이 꼴을 보다못한 욥의 아내는 울면서 "차라리 지금 신을 저주하면 생명이라도 빠르게 뺏어가지 않으실까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몸을 계속해서 긁으면서 "아닙니다. 어떻게 사람이 신께 좋은 것만 받고, 나쁜 것은 받지 않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러죠.

욥은 아랍인들의 땅에서 부자였던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에게도 친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오직 사람이 거지꼴이 되었을 때만 찾아볼 수 있는 법이라지요.

정확히 세 사람의 친구가 이런 욥을 만나러 찾아와서 그의 피부병에 아랑곳 하지 않고 부둥껴안고 울면서 일주일을 보내줍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작품의 프롤로그는 이제야 끝이 난 것이고. 이제야 '욥기'의 본편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찾아와서 열심히 울어주던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일주일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job-18
[아이고 욥아! 도대체 네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생이냐! 어서 잘못했다고 빌어라!]

그렇습니다.

job-17
['진정한 친구'인 것도 좋은데, 이들은 '진짜 친구'들이었어요. 욥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친구들은 병문안을 오긴 했는데, 그냥 '다 괜찮아질거야'라고 상투적으로 위로하려고 온게 아니었습니다.

친구라면서요? 친구는 원래 다른 친구가 지옥에 빠질려고 하면 충고를 해줄 수 있어야지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들은 충분히 위로도 해줬겠다. 잘못한게 있을테니 빨리 광명을 찾으라고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job-02
[그래서 그런지 욥기 중반부터는 사탄의 존재가 증발합니다.]

'엘리바스'는 "내가 너를 친구로서 잘 안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까 하나님이 벌하시는거지!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는 너를 괴롭히심?"
이라고 포문을 열고, 욥은 여기에 당황하면서 "아니 나 진짜 모르겠는데? 내가 미흡했던 점이 있었나? 진짜로? 모르겠어!?" 외치죠.

이에 대해서,
'소발'이 "와 저 녀석 봐라? 지금 나는 죄가 없어요, 거리는거임? 하나님보다 지가 더 잘 아나봐? 이렇게 불경하니 벌 받지."
'빌닷'은 "욥의 자식 중에서 나쁜 놈이 있었나보네. 원래 자식이 죄지으면 부모도 벌 받아" 하면서 죽은 자식에게 못할 말을 하죠.

어쩌면 악마는 하늘에서 고개를 도리도리하고 기립박수를 치면서 친구들의 '우정'에 감탄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옥불에 구워진 팝콘을 와그작와그작거리면서 씹었겠지요.

job-19
엘리바스는 계속해서, "몰라? 아 그렇지. 너는 잘 모를 수도 있지. 근데 하나님은 안 까먹으시는데 어쩌나?" 라고 비꼬죠.
소발도 "원래 이런건 회개하면 다 끝나는 감당되는 고난이야. 안 끝나는거 보니 네가 찐 악인이라서 안 뉘우치는거지?" 충고하고,
빌닷은 "악인도 가정 교육 문제인거 모르냐? 정의로우신 신께서 선한 집안을 박살낸다는 네 말은 말이 되고?"
라면서 자신이 하던 말을 좀더 확장시키죠. 미치고 펄쩍 뛸 노릇입니다.

job-20
한국어 번역에서는 조금 맛이 죽은 느낌이 있습니다만, 친구들 사이의 논쟁 (내지는 집단폭력...?)은 운문입니다.
현대적인 말로 하자면 아주 비트를 깔고 맛깔나게 3인조 래퍼들이 욥을 디스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니 합쳐서 네 명이면 댄스배틀을 하든 힙합 사이퍼를 하든 2대2로 나눠서해야지 1:3은 너무 비겁하지 않나요? 

그래서 결국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욥이 울부짖어버리지요 "사장님 나와~! 신 나와! 나 억울해서 안 되겠어!"
얼마나 소리를 크게 쳤는지, 나오라는 신은 안 나오고 '지나가던' '엘리후'라는 동네 젊은이가 튀어나옵니다.

엘리후는 욥의 한탄을 듣더니만, 이상한 궤변을 시작하지요. 무슨 크툴루 세계관의 고대신 광신도처럼요.

job-21
["그런데 신이 우리랑 똑같은 기준으로 생각하기나 할까요? 만나면 대화가 가능할까요?"]
"저는 세상에 왜 육체적인 고통이 있나 생각했는데 사실 이게 신이 우리랑 소통하는 법이 아닐까요?
아프면 행동거지를 바로 고치잖아요. 그런데 이런 고통을 주는 존재하고 직접 대면하면 살아남을 것 같습니까?
아 왜 감당 못하는 존재를 여기에 부를려고 해요?"

무슨 러브크래프트가 쓴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성경에서 등장하는 논리의 수준이 이렇습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파멸적인 발언'이 드디어 신의 심기를 세 친구의 앞선 말보다 더 불편하게 했는지

마침내 마른 하늘의 폭풍우의 형태로 신이 욥의 앞에 직접 강림합니다. "나다."

그러나 신은 그 다음에 입을 열고 '욥은 죄가 없다', '욥은 죄인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욥의 팔을 잡고서는 다만 '지혜'를 보여줄 뿐이었죠.

job-13
[욥의 눈 앞에서 세상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세상의 소스코드가 개발자 도구의 형태로 그에게 보입니다]

job-14
두 명 이상이 세상에서 기도하면 정해져있는 처리 순서, 물리법칙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자연현상들,
욥이 지금 쓰러진 곳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어쩌면 과거의 공룡을 의미하거나 우주 건너편 행성의 존재일지 모를)
거대괴수 레비아탄과 베히모스를 보여주고 이들의 존재 조차도 담을 수 있는 우주라는 거대한 샌드박스의 구성을 그에게 보여줍니다.

"내가 관리자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 질문 받는다. 어디 코딩이 그리도 이상하거냐? 너라면 어디를 고치겠느냐?"
노쇠한 욥은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넋이 나가있다가 간신히 대답을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job-23

만일 이때, 엘리후의 말처럼 신의 존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크툴루 신화가 흔히 말하듯이
'우주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광기와 악의로 가득차있다'라는 세계관이었다면 욥 또한 뻔하게 미쳐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기독교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욥은 말합니다.
"제게 일어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인간적인 요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걸 눈으로 보았습니다."

정말로 형이상학적인 고백이지요. 역-크툴루 신화입니다. 그는 우주를 보았고, 거기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하고 엄청난 세계를 봤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과 신앙이었습니다. 우주는 인간에게 자비로웠습니다.

job-24

그리고는 더 이상한 말을 합니다. "회개하겠습니다. 이 회개를 받아주시옵소서."
도대체 무엇에 대한 회개란 말입니까? 지금 이 사건은 순전히 악마의 장난질이 아니었던가요?

하나님은 끝내 욥이 시험에 든것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욥이 마땅한 죄를 받았다고 말하지도 않았죠.
흔히 욥기를 요약할 때, "죄인 욥이 신께 용서를 받았고 다시 재물을 몇배로 돌려 받았더라"라고 요약하는데 정말 틀린 요약입니다.

욥은 모든 병이 나았고, 다시 자신의 모든 부를 돌려받았습니다.
아니, 돌려 받은 것이니까 할까요? 회복일까요? 배상일까요? 아니면 그냥... 이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변덕일까요?

job-25
[하지만 욥은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신을 저주하며 악마 숭배를 시작하지도, 모든 것은 하늘의 변덕이라며 멋대로 굴거나 노력을 멈추지 않았지요.

어쩌면 그는 성경에서 '인격신'을 만난 몇 안되는 인물인지도 모릅니다. 전능하지만 꽤나 '사람 같은 존재'요.
막상 대화를 해보니까 그렇게까지 끔찍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애초에 사람도 아니지만요).

오히려 신은 욥과 헤어지기 이전에 "그대들의 말에는 욥과 달리 옳은 것이 없다!"라며 친구들을 꾸짖고는 사라지셨죠.
이에 친구들은 놀라서 제사를 신에게 올리고, 욥은 이 때 이들을 벌하지 말라고 기도를 더합니다. 이 이후에 다시 본 것 같진 않지만요.

욥은 이후에 나이가 들어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 그는 어떤 것에도 고난을 다시 받지 않았지요.

(설정에 한글 자막 있음)

저는 이 이야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신의 개념을 논하는 현대 SF 소설 같거든요. 
(위 영상도 꽤나 SF 적으로 각색을 했습니다. 한번 보시는걸 추천드려요.)

신을 믿는 사람에게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우주는 잔인한 장소입니다.
인간의 선호사항인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를 무참하게 짖밟는 사건과 법칙으로 가득찬 곳이지요.

기독교는 이 소재를 가지고 한권의 책을 만들어보려고 했나봅니다. '기승전믿음'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지만,
상당히 기묘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오히려 '신이 있어도 세상이 괴상한 것에 대한 변명'처럼 읽히기도,
또는 그 이상의 '신 그 이상의 우주 자체의 살만함에 대한 믿음'의 우주신론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를 정말로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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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時雨
22/02/21 18:50
수정 아이콘
자식을 무슨 대체품 취급하는 게 싫더라고요...
레비아탄이랑 베히모스를 언급해서 여기저기 갖다쓸 거리를 만들어 준 업적은 인정합니다 크크
jjohny=쿠마
22/02/21 18:52
수정 아이콘
고대 경전의 문제점이랄까... 한계점이랄까...
현대 도덕관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여러 부분들 중 하나죠.
及時雨
22/02/21 18:52
수정 아이콘
신의 일을 인간이 측량할 수 없다는 주제지만 너무... 게임하는 느낌이 들죠.
22/02/21 18:5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오히려 자식 이야기가 굳이 들어간 것에 대해서 우주의 무심함을 강조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걸 흔히 교회 설교에서 쓰듯이 '시험이 끝나고 회복해줬다'라고 보면 자식을 뭐 교훈 준다고 죽였다가, 자식 더 낳았으니 문제 없음! 이라는 결론이 되지만...

그냥 어쩌다보니 우주가 사람의 자식을 빼앗았고 사과도 안했으며, 그 사람은 아무튼 사과도 필요 없이 그 뒤에 자식을 더 낳았더라면 그냥 평범한 재난물이니까요. 인격신과 우주적인 신 사이에서 되게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이는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악의는 없고 오히려 선의가 많은"이라는 이 기묘하고도 복잡한 포지션이요.
及時雨
22/02/21 18:59
수정 아이콘
롤러코스터 타이쿤 플레이 할 때 제가 신 같이 하더라고요.
롤러코스터 발사!
22/02/21 19:02
수정 아이콘
아니 선생님 그건 무심한게 아니라...
及時雨
22/02/21 19:02
수정 아이콘
물에다 관람객을 던져넣으면서 저 또한 신의 갈고리에 걸리지 않기를 기원하며 살고 있읍니다
WeakandPowerless
22/02/22 22:30
수정 아이콘
명백한 악의 아닙니까 크크크 롤코를 즐기는 그 '신'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선의가 있어보이지 않아요 크크
及時雨
22/02/22 22:30
수정 아이콘
짜잔 입장료가 무료입니다
jjohny=쿠마
22/02/21 19:01
수정 아이콘
아니 오늘 무슨 날인가요...! 교회덕후에게 이렇게 선물같은 글들이...
게다가 Farce님이 욥기 글을 쓰셨다는 제목을 보고, 만사를 제쳐두고 이 글부터 읽었습니다. 캬캬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장르소설이랄까... 설정놀음 같은 부분은 사탄이나 신이 아니라 역시 욥이라고 느낍니다. 본문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주신 욥의 대사인데,

욥기1:21 ...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기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 욥기의 주제의식이 반영된 구절이기도 하지만, [이런 인간이 있을 수가 있다고...? 인간이 맞다고...?] 라는 느낌이랄까... 욥기에서 제일 비현실적/비인간적인 설정이라고 (= 그 어떤 설정보다도 욥기가 [기록]이 아니고 [창작]임을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vs사탄, 인간vs인간 설정놀음으로 제대로 한 판 벌이려면 이 정도 설정은 해줘야겠고... 그래서 재밌기도 하지만요.
22/02/21 19:08
수정 아이콘
제가 모호한 이야기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저는 교훈도 모호한 '욥기'가 성경에서 가장 좋습니다 크크크... (두번째로 좋아하는건 메소포타미아 문화권 특유의 괴물 크리처들이랑 동방제국들의 패권 전쟁이 넘치는 다니엘서요!)

옳으십니다. 진짜 욥의 멘탈은 진짜 마지막에도 침착함을 크게 잃지 않고 '신님 이쯤하면 나오십쇼!'할 정도로 강철 그 자체죠. 그래서 저는 본문에서는 아무래도 욥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기 전에도 '모종'의 지혜가 있는 '에휴... 인간이 여기서 받기 싫습니다 하면 뭐 신이 안 주시더냐?'하는 체념내지 통찰이 있지 않았나 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내뇌보정이 없이 그냥 한 말만 남아있는 욥의 대사가 더 멋지군요!

그렇습니다. '욥기'가 정말로 특이한게, 분명 성경적으로 뻥튀기된 내용들이 엄청 많은데도 그걸 일일히 '아 성서의 말씀이라고요. 못 믿습니까?' 하면서 진짜 역사라고 우기거든요? (실제로 고고학이나 사료 같은걸로는 아니던데!) 그런데 욥기는 노골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라면서 성경 속의 '소설'임을 스스로 팍팍 티를 내죠. 되게 이질적입니다.
jjohny=쿠마
22/02/21 19:09
수정 아이콘
그리고 좀 다른 얘긴데, 저는 욥기 읽을 때면 복음서들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인간의 질병이란 게, 그 환자가 뭔 죄를 지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설정]은 욥기에서 충분히 강조된 것 같은데,
유대의 절정급 설정덕후들이 이 설정을 까먹은 건지, 아니면 구약의 다른 부분들하고 설정충돌된다고 제거해버린 건지는 몰라도
질병의 책임/원인이 환자 측의 죄에 있다는 시각이 여전히 유대 사회 내에 강하게 존속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점이... 신경쓰여요...
22/02/21 19:18
수정 아이콘
성경에 설정충돌이 한두개던가요. 쿠쿠쿠...
jjohny=쿠마
22/02/21 19:21
수정 아이콘
저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2/02/21 19:47
수정 아이콘
뭐 모세시기에 말 안들어서 병들게 한거 있지 않...
대충 그 모든 것도 다 하나님 뜻이라하면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지도?
22/02/21 20:2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 제가 또 좋아하는 주제로군요!

레위기를 보면 '피부병'에 대해서 엄청 길게 다룹니다. 요즘에 시국을 따라서 되게 설교에서도 많이 쓰이는 부분이죠. 신앙공동체에서 전염성이 있는 질환이 발생했을 때, 레위 제사장들에게 환자는 확인을 받고 격리하거나 소지품을 불태우고 심각하면 공동체를 떠나서 돌아오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발진이 나있고 옮기는 자는 부정해서 환영받지 못하고 예배당을 떠나야한다'라는 식의 말은 있어도 '질병에 걸린 사람은 죄를 지어서/사탄의 종이니 쫓아내버려라'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근데 아 다르고 어 다른거죠.

당장 신약성경만 봐도 예수님에게 '제가 죄를 지어서 절음발이입니다.' 또 '눈이 멀었습니다.'하고 빌어서 치유받는 사람들이 나오고, 대놓고 그들을 '죄인'이라고 부르고 '예수님이 죄인과 함께하셨다'라고 기록하죠. 이 말을 바리새인들이 면전에서 쳤다가 예수님이 성경에서 유일하게 욕설을 내뱉은 "독사의 자식들아!"가 나오기도 했고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성경에서 '죄 지으면 병에 걸린다'라는 언급을 안하거나 오히려 변호를 해줘도, 현대적인 감염학에 지식이 없는 대중들은 계속해서 질병을 죄의 결과물로 봤다는 것입니다.

근대에 마녀사냥을 할 때도, '악마에게 복종을 맹세하고 입맞춤을 받은 곳'이라면서 헤르페스나 두드러기가 있는 여자를 마을사람들이 멋대로 불에 태우고 했다는 것처럼, 오히려 욥기에서도 굳이 '악마'가 '피부병'을 내려줬다는 설정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논리전개를 택한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욥에게 하늘에서 고난을 주자!" "무슨 고난을 줄까?" "그래 악마의 피부병이야!"라고요. 아무튼 간에 어느 종교나 문화도 그렇지만 '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하거든요 (이건 솔직히 기독교 신학의 영역은 아니고, 인류학 '황금가지'의 영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흔히 욥기 관련해서 설교를 할때 '욥이 몸은 부정해졌지만, 결코 부정한 말은 하지 않았다'라고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21세기의 눈으로 보자면, 여기서 부정은 '감염체를 뿜어내는 오염상태'를 뜻하는게 아니죠. '신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정결하지 못한 영적 타락상태'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왜 악마는 빙의를 하는지, 흡혈귀나 좀비가 왜 '부정'한지, 늑대인간도 언데드의 한 종류로 간주하는지 등등도 말해볼 수 있습니다. '영적 타락'과 '육체적 타락'은 하나라는 것이죠. 욥기도 이걸 논쟁의 소재로 쓴 것이지 "이거 박테리아/바이러스 문제야!"라고 일갈하지는 결국 못한 것 같습니다 크크크.
22/02/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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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인 부분의 기독교와 현실신앙적인 기독교의 괴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론적으로야 욥기의 이야기가 맞지만, 여하튼 병을 가진 환자는 전염의 위험이 있으니 현실적인 면에서는 쫓아내야 했을 것이고, 그것을 신앙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모순이지 싶습니다.
전자수도승
22/02/2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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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대지진때나 와서야 저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뭔가뭔가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게 참......
22/02/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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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을 지옥에 보낼 결단력과 명확한 도덕 기준이 있지만 아무튼 자비롭고 인격적으로 고매하신 인격신을 믿는 장로교도의 모자를 잠시 벗어놓고, 마르크스의 변증법 모자를 쓰고 답변을 드리자면

개신교의 등장이 그렇듯이, 결국 신앙의 해석이 바뀌려면 사회의 기반이 기존보다 좀 크게 바뀔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이전에도 수많은 반가톨릭 운동이 있었지만, 발트해-대서양 무역을 통해서 북유럽의 경제력이 발달하고, 지중해의 정치혼란이 계속되면서 '개신교 영주'들이 등장하면서 부의 축적이나, 현지어 성경번역, 인쇄혁명으로 보급된 성경근본주의 등등의 여태까지 가톨릭이 제시해주지 못하고 틀어막던 문제가 터졌으니까요. 그래서 개신교들보다 먼저 신대륙과 아시아에 구교식 복음을 전달하자는 예수회가 등장하는 트리엔트 공의회 쯤 되면, 가톨릭 신자라고 해서 '신교인들은 하나님이 천벌로 알아서 벌하시려니' 같은 이야기는 안하고 조용히 제도와 교리를 정비하죠. 그만큼 사회가 고도화되었고 교권으로 '통일 기독교 세계'에 저항하는 민족국가를 찍어누를 수 없다는 것도 명명백백해진 것이고요. 그 이전에도 지진과 자연재해는 있었지만 '유럽의 영혼있는 문명인들의 하나된 세계'를 흔들지는 못했지요.
Energy Poor
22/02/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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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가면 많이 붙어 있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구절도 빌닷이 욥 까던 중에 그냥 지 멋대로 말한거죠. 신이 말한 것이 아니라.
jjohny=쿠마
22/02/2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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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일선 수사기관에서 강압수사하면서 자백 유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야. 자백하고 반성의 뜻을 밝히면 윗분들이 선처해주실 거야'
닉네임을바꾸다
22/02/2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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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원래 내용이야 그렇다하더라도 일단 나중에 욥은 다시 창대해지긴했으니...얻어걸린거?으음?
22/02/2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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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신은 '니가 뭔데 내가 정하지도 않은 길흉화복을 말하냐 이 유사 이교도야'라고 디스하고 퇴장하는데 말이죠 크크크크
파란무테
22/02/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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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단어가 하나도 안나오는 [에스더]서가 개꿀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1도 모르는 장모님께 1장 에피소드 말해드렸는데, 그때부터 제가 클레오파트라가 되었죠
크크크
及時雨
22/02/2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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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교체하고 시작 크크크
22/02/2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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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아 그러고보니 에스더서도 진짜 재밌죠! 하만이 처단 될때까지 하렘 정치극에 스릴러적인 요소까지 있으니 그냥 별도의 소설로 팔아도 꽤나 베스트셀러가 됐을 것 같습니다 크크크크.
BlessTheFall
22/02/2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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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자 에스더 '죽으면 죽으리이다'
파란무테
22/02/2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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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개팔. 죽으면 그게 내 운명이지.
마 비키라. 드간다.
22/02/2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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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 욥기를 제대로 읽으면서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내가 어릴때 배운 주일성경학교의 성경이야기는 다 개구라였구나... (물론 애들한테 본래 스토리를 있는 그대로 가르칠수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 아멘
22/02/2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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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결국 신약성경까지 합치면 우주로 날아간 욥이 무엇을 보고 그렇게 평온해지고 겸손해졌는지 알 수 있지요.

실제로 우주 탐사선을 보내봐야 우주의 주요구성물질을 알 수 있겠지만, 기독교는 적어도 이걸 '사랑'이라고 일단 봤다라... 멋지네요!
엘제나로
22/0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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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괴담동아리라는 장르소설을 보는데 욥기랑 마태복음(마귀의 시험)관련 내용이 나와서 반갑네요 크크크
22/02/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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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나중에 고대-중세 토착신앙들하고 결합하면서 '솔로몬의 악마'니 하는 세계관 확장이 이루어지지만 은근히 성경 본편의 마귀는 그냥 교훈만 상대방에게 주고 사라지는 나약한 존재들이죠 크크크.

이야 제목이 괴담인 소설인데 성경 이야기까지 섞나요? 재미있겠군요!
Limepale
22/02/2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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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에피소드 읽을때는 괴담 관련된 양산형 상태창 판타지 소설인가 싶습니다만 재밌습니다!
추천하는 이유는 스포가 될수 있으니 직접 읽어보시는걸 권장합니다.
괴담 소설 작품에서는 요즘 제가 제일 재밌게 읽고있고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가님 건강이 안좋아져서 무기한 휴재라는 사실은 안좋아합니다...흑흑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중입니다. 관심있으면 읽어보시는거 추천드립니다.
22/02/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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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동 정말 재밌죠.. 요즘 작가 건강 이슈로 비정기 연재가 되어 아쉽습니다.. 클라이막스였는데 흑흑
과수원옆집
22/02/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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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호 작가의 “당신의 과녘”이 욥기를 웹툰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지요. 덕분에 역으로 욥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욥기 소개가 더 반갑네요. 믿음이란 무엇인지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인듯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22/02/2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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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고 선하신 신을 믿으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다! 라고 주장하기에는 살다보면 갑자기 온몸의 털이 서버리는 무심한 우주와 두 눈을 마주치고는 하죠. 좋은 작품 추천 감사합니다. 이런 작품도 있었군요. 잘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
22/02/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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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참된 믿음이란 온 우주의 경륜이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게임 속 캐릭터가 게임 코딩을 이해하게 된다는 놀라운 사건... 이 또한 신의 위엄이겠지요!
22/02/2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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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그래서 결국 '매트릭스'의 조상님인 '영지주의'가 결국 정통 기독교와 수천년간 싸우고서도 끝끝내 승리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현실의 소스 코드를 보는 순간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불공평한'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알게되고 그걸 깨부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죠. 뭐 결국 돌고돌아서 공산주의로 돌아오긴 했지만, 기독교는 결국 다른 그 무엇도 제공할 수 없는 것을 욥에게 보여주는데 성공했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죠 "(모든 것을 알고나니)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라는 것이요.
22/02/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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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당신이다.'

욥기의 스토리 가운데 절묘하게 섞여 들어간 언더테일의 이 대사가 묘한 전율을 줍니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당신이다.
22/02/2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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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저 문장을 직접 해보시고 이해해주신 분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제가 언더테일 리뷰글을 올리자고 몇번이나 마음을 먹어봤지만 결국 무엇을 적든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는 게임의 특성상 도저히 리뷰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욥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보면서 딱 저 대사가 생각나더랍니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다.
22/02/2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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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테일 리뷰도 해주세요! 해줘잉! 해줘잉!
어차피 이제 스포당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안할 사람들이라구용
22/02/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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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어차피 안할꺼 스포 잔뜩들어간 리뷰로 간접적으로나마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크크크
세츠나
22/02/2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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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도가의 자연관이 더 크툴루적일 수도?
22/02/2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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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의 프롤로그인 창세기만 봐도 아담과 하와가 신의 말을 듣지 않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것이 시작이니, '천지불인'은 어쩌면 기독교의 근본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다른 책들에서는 '봐봐 신의 말을 안 들으니 혼나잖아'에 가까운 신에 대한 서사가, 유독 '욥기'에서는 진짜 '이만물위추구'한 모습을 보여주죠. 욥에게 이유 없이 고난을 주고, 사과도 한마디 없고, 보상도 제대로 하는게 아니라 뒷맛이 씁쓸하게 '왜 신이 제물을 다시 내려줬냐고요? 몰라요!'하고 끝나죠.

제가 도가는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크툴루적으로 '천지즉악'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크툴루 세계관은 '영지주의'와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에 크게 영향을 받아서 "잘 생각해봐.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주는 선한 신이 있다면, 사람이 너무나도 미워서 사람에게 나쁜 짓만 골라하는 악신이 있어야 우주의 균형이 맞지 않을까?"라고 주장하는 것에 가까우니까요. 괜히 공산주의를 최후의 이원론 종교(manichaean)이라고 부르는게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악신이 창조한 근본적으로 문제 많은 세상을 깨부수라! 분노해라! 자유로워져라!" 그래서 오히려 크툴루 작품도 '던위치의 공포'를 포함해서 은근히 '신'이라지만 그 '외계인'들을 퇴치하는 내용이 많죠 크크크크. 종교가 아니라 장르소설 세계관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을 처음 봤는데요... 되게 멋진 구절이군요!
지니쏠
22/02/2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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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신앙심 없이 성경을 보다 궁금했던 부분이 있는데, 본 글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생기네요. 구약에서는 인간이 신앙이나 선행등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사후세계가 존재하지 않나요? 본문에서도 욥을 시험할 때 목숨만은 뺏지 못하게 하고, 후의 축복도 다시 재산이나 건강을 돌려주는 등에 그치더라고요. 이전의 축복들도 대부분 자손이 번창하게 되리라 라는 정도에서 끝나고요. 구약에서는 그러한 사후세계의 존재를 암시하는 구절이 전혀 없는지, 그렇다면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다가 신약에서부터 사후세계가 강조되는 것에 대한 종교적인 해석이 따로 있나요? 다른 종교에서 차용해온것이라는 해석 대신에요.
22/02/2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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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일단 구약 자체가 유대인들도 '이 문장은 이 당시에 쓰였을 때는 의미가 있었을텐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라는 내용이 되게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레위기에 '염소를 아자젤에게 바쳐라'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후대에 염소머리 악마의 이름으로 아자젤이 성립하는데 영향을 주긴 했지만 그게 도대체 무슨 문장인지 아자젤이 누구고 무엇인지는 지금 사람 중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구약의 사후세계 개념은 상당히 모호하다'라는 모호한 말씀을 드려야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스올(Sheol)'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죽으면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데, 딱히 후대의 '지옥'처럼 고통을 받는 곳은 아닙니다. 그래도 신이 안계신 음침한 곳이라는 이미지는 있습니다. 반면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존재하듯이 '천국'은 존재하긴 했으나, 지금 이슬람교의 형태에 가깝게 '신과 천사가 있고 정상적인 사람은 가볼 수 없는 곳'에 가깝지, 신약에서처럼 믿음 있는 사람들이 사후에 모이는 곳은 아닙니다.

일단 원하시는 내용은 아니시겠지만, 신약성경은 지옥/음부라는 단어를 히브리어인 '스올'이 아니라 전부 그리스말인 '하데스'로 표현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다른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 지옥불에서 불타오르는 타르타로스의 사촌이 되었지요. 하지만 이것에 대한 종교적인 해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신약에서 등장한 주님의 존재입니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계속해서 '세상 사람들아 내 말을 들어라'라고 예언자도 보내고 다양한 이적도 보이셨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주셨'습니다, 어디에 내어주셨습니까? 사망에 내어주셨죠. 즉 예수님이 진짜로 우리 죄를 사해주기 위해서 온 신의 아들이라고 믿으면 여태까지 죄인이었던 사람도 다른 사람이 뭐라고 수군거리든지 간에 천국으로 직행합니다. (이건 제가 개신교도라서 이쪽 해석을 먼저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가톨릭은 입장이 살짝 다릅니다)

왜 구약에는 이런 언급이 없었냐, 이게 신약에 예수님의 보혈로 뚫린 특급 구원루트다 이말입니다. 반면에 이것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요? 이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릅니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마가복음 12장 (아이고 이거 이야기는 기억이 나는데 구절이 생각 안나서 찾는데 오래 걸렸네요. 죄송합니다)의 이야기가 있죠. 포도밭의 농부들에게 소작을 받으려고 종을 보냈는데 그때마다 종이 얻어맞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포도밭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죠. 설마하니 자신의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유일한 아들을 해코지할까봐요. 그랬더니 그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땅을 아주 가져버릴려고 아들을 죽여버리고, 이 소식을 들은 주인은 농부들에게 복수하고 빈 땅을 다른 더 나은 사람들에게 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자꾸 '죽는다'라는 점잖치 못한 비유가 반복되고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기독교에서 인간의 영혼은 불멸합니다. 그러면 '사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로 '끔찍한 시간을' 지옥에서 보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와서 피 값을 대신 지불했는데 이것도 무시할거면 안 챙겨주는 것을 넘어서 아들을 잃어버린 진노까지 책임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리적으로 '예수님 안 믿으면 착한 사람도 지옥에 가나요?'에 대한 대답이 "네"인 것입니다.
지니쏠
22/02/2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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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해석 감사합니다. 비기독교인 관점에서 잘 납득이 되진 않지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22/02/2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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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른 종교에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종교 내부의 해석을 원하셔서, 비기독교인의 비교종교학 이야기는 빼고, 교인으로서 납득할만한 내부의 구원론 중심으로 말씀해주시라는 줄 알았는데 제가 완전히 잘못된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썼군요... 죄송합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요소가 신약의 시대에 보강이 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는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천국과 지옥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어디 사는지, 젓가락 갯수도 아는 유대인들끼리의 이야기였으니까요.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블레셋이나 아시리아 같은 외세요? 걔네는 하나님 안 믿죠. 그러니 지옥에 갈거 같긴 한데... 멀리 사는 외세들이라 사실 그 자들 사후에는 관심이 없달까요~ 하는 식이었던거죠)

그런데 신약의 시대는 로마제국의 유대 속주의 이야기이듯이 세상 사람의 영혼이 어디에 가는지가 상당히 중요해졌습니다. 처음 이야기를 듣는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조차도 예수를 보면서 '당신이 신의 아들임을 믿습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이 와중에 바리새인 같은 유대교 전통교단은 오히려 예수를 거부했죠. 자 그러니 다시 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는 당신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다. 다만 당신이 우리 그리스도가 당신의 죄를 씻어줬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당연히 죄가 없으니 천국으로 간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정리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중요한 인물이 로마시민권이 있는 외부인인 '사도 바울'이고요. 신약성경 자체가 4권의 복음서로 예수의 생애를 다루다가, 사도행전부터는 바울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교리를 정리하는 과정인게 괜히 아닙니다. 그러면서 이건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유대인과 다른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다르다며 선을 긋기도 시작하고요.
김연아
22/02/2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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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재미(?)나게도 제가 기독교를 절대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서 하나 나와요

제가 세상보는 눈이 그리 떨어진다고 생각지 않는데. 이 세상에서 소위 사기치려는 방식의 구조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와 미래를 살아갈 기독교인들이 치열하게 고민해야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2/02/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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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크크크크~ 반기독교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자주 사용하시는 표현이 있죠. "기독교는 정말 잘 만들어진 인류 최대의 사기다!"

그런데 저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정말 잘 만들어진 다단계이지요. 우리가 왜, 언론보도나 인터넷 게시물 같은거 보면 같은 사기사건이다 해도,
"이야 누가 이런거에 당했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짜 잘 만들어지지 않은 기망이 있는가 하면,
"이야 내가 당사자였어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홀리겠구나"라고 감탄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 기독교도 말씀해주신 것처럼 후자가 아닌가 싶거든요~ 고대에 등장해서 유럽을 통일하고, 근대에는 반으로 갈라졌지만
그래도 이 유럽이라는 든든한 역사적인 뒷배를 타고 지금도 세상에 남아서 다양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구태이자 미신이라고 비판하기에는 다양한 다른 사상이나 종교조차도 이보다 더 확산되지 못하고 사멸한 것도 많거든요.
(핫하, 도대체 누가 누구보고 인민의 아편이라는 겁니까!), 그래서 저는 이번에 '욥기'를 소개시켜드리면서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다, 치열하게 고민해보자! 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기독교를 변호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독교를 믿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가끔은 다른 종교가 어떤 점에 있어서는 더 나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준다고 보고,
가장 먼저 광신을 경계하고, 과학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계속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치 공산주의가 그렇듯이,
믿지 않는 분들은 계속해서 이상한 광신도들을 만나보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의 이해가지 않는 아둔함에 혀를 차실 수도 있지만,
적어도 도대체 어떤 요소가 자꾸 다른 사상과는 달리 이런 사람들을 끌어당기는지는 한번 들어보시는 것도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연아
22/02/2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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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부분에는 동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 올라오는 글들도 재밌게 읽고 있구요.
또한, 기독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로 사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개인적으로 댓글타래로 이어서 하고 싶었던 말은요. 뭐 아둔함 이런 부분이 아니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는게 제 생각이에요.
한 번 댓글을 이어가보고 싶어서 요 부분은 첫 댓글에서 뺐습니다^^

그리고 인민의 아편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좋은 의미로 쓰였던 말이고, 전 그 부분에 굉장히 공감하는 면이 있습니다.
22/02/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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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다른 분들하고는 속터놓고 말씀나누지 못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쁩니다.
저는 꽤나 좌익적인 사람으로, 민중신학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 마르크스의 '아편'이라는 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르자면 이 세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또 구조적으로 '불의' 그 자체인데,

그 매트릭스를 깨부시지 못하고 오히려 달콤함에 빠져서 제대로된 분노를 하지 못하고 자신들끼리 위안을 주고 받으면서,
이 기울어진 세계 속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악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종교는 세상에 대한 치료제가 아니라 진통제라는 것으로요.

이런 점에서 생각하시는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행동'이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사도 바울의 '바울 서신'에 담겨 있는 '신앙 공동체'라는 단어는 결코 '세상과 너희를 격리해라'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에베소서'는 오히려 좋은 소식 (=복음 =너희는 구원 받을 것임)을 받았으니 여기 땅에 교회를 차리고
사람들에게 그걸 전해줘라~ 라고 권하는 내용이죠. 그래서 저는 좋아합니다. 다단계인가요?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어떤 이상한 사람들이, '저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해놓고 괴상한 의식을 하면서
'내가 세상에게 탄압을 받고 있으니 우리의 신앙이 정말로 옳구나'라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전자가 더 건실한 방향이며,
다른 다양한 삶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22/02/2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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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독교인으로서 어렸을 때 이걸 읽으면서 정말 불공평한 이야기라고 투덜거리고 넘어갔는데 지금 이 글을 접하니까 새로 배우는 게 많네요.
'지옥은 신의 부재'가 여기서 따 왔나 봐요.
22/02/2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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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선하고 사랑이 가득한 우주에서 배제된다는 것, 그것이 죄인이 지옥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라고 기독교는 말하고는 합니다.

하도 자극적인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자꾸 뭐 지옥불이 100도인지 200도인지 300도인지 설정을 고민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 과정에서 '신곡'이나 '천로역경' 같은 2차 창작 작품들이 뭐 가롯 유다가 지옥의 최심부 밑바닥에서 사탄에게 몸을 씹혀먹히고 있냐니 하는 썰을 풀고는 하지만, 성경책만 보면 사실 지옥의 묘사는 후대에 생각하는 것보다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욥기가 포함되어있는 구약에서는 윗 덧글에 적었듯이 분량도 상당히 적고요.

좀 위험한 발언이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지옥은 신의 부재'라는 개념 자체로는 별로 충분히 무섭지 않았나봅니다.
VinHaDaddy
22/02/2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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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지금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반갑습니다.
그렉 이건 작품 중에 네 인생의 이야기는 읽고 눈물을 흘렸는데 지옥은 신의 부재는 읽고 멍…해서 한참 있었습니다.
사하라
22/02/2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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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욥기를 본 적이 없어서 막연히 욥은 그 모든 고난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욥도 참참못으로 절규하고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만나주셨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갓난 아기의 죽음, 전쟁에 희생되는 사람들,, 한창 살아야 할 청년들의 죽음 등 세상에 이해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데 그런 욥을 납득시키고 회개하게 한 세상의 진리는 무엇이었을까요 허허
글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추천추천
구라리오
22/02/2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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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발버둥쳐봐야 어짜피 내 뜻대로 돌아감.
원인과 결과로 세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전부 니들이 이해못하는 원리로 돌아감.
그게 니가 사는 세상의 진리임.

그래? 그렇다면 이래나 저래나 내 의지와 행동이 세상의 움직임과 상관없다면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겠다.
이것만이 내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니.

이런게 아니었을까요?
22/02/2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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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이게 참 기독교의 신론에서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여기 욥기에서도 두 가지 이미지의 신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다투는 느낌이 좀 있거든요.

하나는 매우 인간적이고 사람을 사랑하며, 따라서 세상에서 나쁜 일을 허락할리가 없는 선하신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만 세계에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그렇다면 모든 것은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야할 것이고 (예측도 가능할 것이며), 인간들에게 남은 것은 최대한 재롱을 떨어서 원하는 선물을 받아내는 것이겠죠.

그래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또 다른 신이 이야기에 등장하는데, 감히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 만물의 원리를 조종하고 인간의 관점을 초월하신 분이며, 애들이 앞에서 이것좀 원한다고 가볍게 들어주는 분이 아니고 오히려 서버유지에 관심이 많은 전형적인 관리자죠. 그런데 또 이런 신만 존재하면 '아니 이런 신을 왜 믿어요?'에 도착하게 되지요. 이 두가지를 버무리면서 결국 기독교의 신을 '함부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선함을 부정할 수 없는, 충분히 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면 인간적인 분, 사람이 존재할 세상을 충분히 사람을 생각하며 운영하시는 분'으로 설정하려는 것이 욥기에서 시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2/02/21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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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을 보다보면, 항상 상반되는 명제속에서 줄타기를 해야하는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예정론-자유의지의 문제도 그렇고, 믿음-행동의 문제도 그렇고.. 굉장히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어느 한쪽을 강조하면 답이 안나온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됩니다.
그런데 그 상반되는 명제들 속에서 길을 찾는건, 결국 자기만의 해답으로 가게되더라고요. 아무리 목사님들이 설교를 잘 해줘도, 결국 신학과 개인의 신앙이 일치되어야만 진짜 신앙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2/02/2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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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욥기의 결말부는 참으로 문학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욥에게 보여준 걸 나한테도 보여줘라!' 라고 떼를 쓰고 싶지만 어쩌면 그 진리는 욥 같은 선인에게나 허락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정론'이라는 소재는 언제나 생각해봐도 참으로 신이라는 절대자를 통해서 오히려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가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욥은 마지막에 '세상은 살만하다'라고 느끼고는 선과 악 따위는 초월해버렸지요. 어쩌면, 선과 악은 그냥 종교나 인간이 멋대로 정하는 것이라는 현대인들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는 그런 결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인간적인 휴머니즘을 느낀 것이고, 어떻게 보면 말 그대로 신이 아니라 양자 역학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것이었으니까요.
구라리오
22/02/2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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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영문으로 Job...
그 당시 욥기에 꽂혀서 영어 이름을 Job로 지었다가 이름 소개할때 참 힘들었습니다.
그냥 무난한거 할껄...
22/02/2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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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리오님 굿 잡!

크크크크 그러고보니 되게 성경 인명을 사람 이름으로 많이 쓰는 영어이름 주제에 Job은 '일'이랑 겹쳐서 그런지 잘 안 쓰는군요. 심지어 막나갔던 요나도, 'Jonas'로 잘 만 쓰면서 말이에요!
계층방정
22/02/2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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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다고 Job이 영어에선 사람 이름으로 전혀 안 쓰이냐면 그건 또 아니라는 게 충격입니다. 외국 이름을 영어로 번역한 게 아니라 진짜 영국인이나 미국인 같은 사람이 Job을 이름으로 쓴다는 게 신기합니다.
구라리오
22/02/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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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이쪽은 성이네요..
이런적으론 job jobs라는 분이 있을수도...크크크
22/02/2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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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성경이야기 잘 봤습니다.
전 언더테일을 해보진 않았지만,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당신이다.'
이 문구는 많은 울림을 주네요.
22/02/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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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더테일을 해보지 않으셨다기에 장난스럽게 '와! 언더테일!'하고 댓글을 달았습니다만...
무엇을 적어도 스포일러가 되는 게임의 특성상 이리저리 지우고 쓰다가 유일하게 남은 문장이었는데
다음날 다시 읽어보니 너무 장난스럽게 적었네요.

'힘겨운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자신을 버려주지 않아서 고마워'
어쩌면 욥기와 언더테일은 생각보다 더 주제가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혼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울림 있는 칭찬일것 같네요.
22/02/2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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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입니다. 글 좀 더 자주 써주세요. 현기증 날 것 같아요. 크크크.
22/02/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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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셔서 감사합니다! 크크크 이런저런 소재는 많은데요... 글 하나 적는데 한나절씩 걸려서 여유가 잘 안 나고 있어 저도 슬픕니다 흑흑...
다음에는 더 재밌는 주제로 돌아올게요!
22/02/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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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죽은 자식들이 되살아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거 보면 그들은 행인1, 행인2, 행인3 등이었을 뿐이지요.
파란무테
22/02/2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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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욥기 주석가들은, 현실의 욥이 100프로 치유와 보상을 받은것이 아닌 (인간을 대표하는) 슬픔도 간직한 인간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습니다.
22/02/2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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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하나님은 무조건 착하고 선물을 뿌려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비유라고 저는 본문에서처럼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간세상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해도 신께서는 눈도 깜짝 안 하시죠. 가끔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의 삶에 나타나서 이렇게 파멸을 일으키기도, 그리고 또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짖궂게 자식을 다시 늘려주시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래도 선하시다고 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고 이 이야기는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황금경 엘드리치
22/02/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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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잘 봤습니다. 신도긴 하지만,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이 욥기란 게 성경에 들어있고 없고가 정말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착하면 복받고 나쁘면 벌받고'란 단순한 논리를 정면으로 대놓고 직시하고 세상이 그렇게까지 단순하지는 않다! 하고 일갈하는 부분이라서..
22/02/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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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요약 감사합니다! 아 본문에 그런 이야기를 적고 마쳤어야했는데 저는 길게 횡설수설은 잘해도 꼭 이렇게 요약을 못하더라고요...

다만 댓글의 여러 분께서 지적해주셨다싶이, 이건 결국 기독교인과 세상사람들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단순하지 않고, 충분히 복잡한 세상에서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 라고요.
8시 53분
22/02/2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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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라면 언제나 명함좀 내밀었는데 이제는 다 까먹어서 글 보면서 아 맞다 이런거였지 이러고있습니다. 크크크.
자주 써주세요.
22/02/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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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주제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2/02/2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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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너무 좋은글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욥기 자체는
착한 사람이 왜 나쁜일을 당하는가? 라는 질문에 말되는 답을 제시해보려다 실패하고,
‘마.. 미천한 인간은 모르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
하고 우물쭈물하다 ‘그래도 임마 열심히 믿으면 결국 복받게 되어있어!’ 하고 만것 아닌가 합니다………………..
22/02/2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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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저도 동의합니다. 결말부에 대해서는 확실히 만족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게 세속화된 장르소설이 아니라 종교경전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체검열한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부분이 생각할 수록 여운이 안 좋은 쪽으로 (기분 나쁘게) 남는 것이, 확실히 신성해야할 책에서 혼자 좀 이상한 챕터 같다고는 생각합니다~
22/02/2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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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부분 독자들이 양과 소는 두배로 숫자가 늘면 되지만 자식들은 아니지 않나! 하는데 사실 양과 소 같은 동물들도 아무 죄없이 희생된 것 아닌가요…..;;;;;;;; 거의 홀로코스트 아닌가 싶습니다.
22/02/2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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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이것도 맞는 말씀이시네요. 양이나 소의 입장에서는 역시나 '재산' 취급으로 다시 채워졌다는게 전혀 이해가 안가는 주장이죠. 아무래도 당시 가장 대표적인 재산이 가축이라는 시대상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역시나 욥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하나의 암시로는 볼 수 있겠네요!
22/02/2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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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욥기는 힘들때 많이 찾아서 읽었지만, 여전히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가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저는 엘리후의 발언들이 더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나저나 진짜 저런 논리구조였나 싶긴한데... 책을 다시 읽어야...)
인간의 고통과, 그에따르는 신정론은 기독교의 오랜 주제였고..
항상 그 결말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다'로 끝나긴 합니다. 그게 참 답답한데, 한편으로는 그 명제를 '개인적으로 이해해가고 받아들이는' 과정속에서 각자의 체험이 다 다르더라고요.

어릴때 읽었던 욥기는 그냥 '의인'의 이야기였고.
고통받는 상황속에서 읽은 욥기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받아서,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라고 외치는 욥의 절규가 참 와닿더라고요.
이 욥기가 제가 이해가능한 진정한 신앙의 이야기가 되려면 아직도 한참 남은것 같아요.
22/02/22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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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감정적인' 책이었다면 이야기의 전개가 '욥은 악인이었다!' 내지는 '악마의 시험을 이긴 욥은 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았다!'하면 될텐데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모호한 태도로 임하고 있는 책이라서 아쉽긴 합니다. (성경책은 가만보면 사이다보다 고구마를 되게 좋아하는것 같아요)

엘리후의 이야기는 확실히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보다 많이 추상적인 내용이라 제가 좀 윤색을 하긴 했습니다. 제가 이 등장인물에 대해서 특이하게 생각한게 '신의 관점이 인간의 관점과 다르고 따라서 욥 당신이 죄가 없다고 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라는 식으로 되게 외계인적인 신론을 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의 관점에서만 작품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욥 개인의 납득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엘리후가 옳은 말을 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좀 들어서요, 그걸 다같이 정리하다보니 좀 복잡해졌습니다 히히. 제가 추가적으로 검색을 해보니 엘리후 자체가 나중에 가필된 정황이 매우 높다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에 친구 셋이 혼날 때 언급이 안되어서 이게 단순한 가필의 흔적인지, 후대에도 엘리후를 옳다고 여겨서 그런 장면에서 빼버린 것인지 제가 판단하기도 좀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리스 희곡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아아 최선이여. 그것은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 차선은 가장 빠르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참 옛날 사람들도 무시무시한 생각을 많이 했겠다 싶더라고요. 아무리 현대사회가 고통을 많이 새롭게 발명했어도, 소독제도 소화제도 없던 그 과거도 참 사람 살기 힘든 시기였겠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도달한 결론이 어떤 '신앙'이라면 비록 지금에는 이런저런 한계에 도달하더라도, 인간본연의 날것에 호소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 남아있지 않나 저는 다시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주를 보고서 세상이 살만함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진짜 우주선도 본적이 없는 옛 이야기꾼의 머리에서 나온 전개치고는 정말 대단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층방정
22/02/2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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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리자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 질문 받는다. 어디 코딩이 그리도 이상하거냐? 너라면 어디를 고치겠느냐?"

저는 이 문장을 보고 욥기 40장 10-14절을 떠올립니다. 요약하자면 욥에게 욥 스스로 악인들을 징벌할 수 있다면 욥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인정하겠다는 구절입니다. 이건 삼국지평화에서 염라대왕이 선비 사마모에게 어려워서 밀린 판결을 맡기니 사마모가 염라대왕이 만족할 만큼 해결해줬다는, 인간의 선악과 정의에 대한 판타지스러운 해결과는 전혀 반대되는 해석입니다. 사람은 흔히 큰 권력이 있으면 모든 악을 처단하고 정의를 세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선악의 판단을 사람이 이렇게 깔끔하게 항상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실은 큰 권력을 쥐고 모든 악을 처단하겠다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에 진정한 악을 구현해내는 사람들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욥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 욥기 23장 10절이죠.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를 기반으로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이라는 찬양곡이 있는 유명한 구절인데, 사실 이 구절 바로 앞의 8-9절을 보면 10절의 의미는 더욱 강렬해집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하나님이 자신을 전혀 보시지도 않는 것 같다고 절망을 부르짖으면서도 나온 고백이 바로 그 10절의 고백입니다. 사실 살다 보면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고, 하나님과 자신이 매우 멀어진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반드시 오거든요. 그런데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욥의 모습이 저에게는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여겨졌습니다. 현대 개신교의 민폐들 중에서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하나님을 느끼고 항상 그의 임재에서 떠나면 안 된다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다가 그만 성속의 이분법적 흑백사고에 빠져버린 점에서 비롯하는 것이 있다는 점에선 이런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힌트가 된다고도 생각하고요. 어떻게 보면 욥이 참 인간 같지 않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요.
22/02/2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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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염라대왕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는 스티븐 크레인이라는 시인이 썼다는 엄청 짧은 시가 생각나네요!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4049/a-man-said-to-the-universe

A man said to the universe: / 한 사람이 우주에게 말했다
“Sir, I exist!” / "저는 존재합니다!"
“However,” replied the universe, / "그러나" 우주가 대답하였다
“The fact has not created in me / "이 사실은 나에게 어떤"
A sense of obligation.” / "의무감도 주지 못하는구나"

만화 "데스노트"의 '사신'은 세상의 악인에게 벌을 내리겠다는 주인공 '라이토'를 보면서 "역시 인간은 재미있어"라고 낄낄거리지만,
실제로 사신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들먹이는 주인공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말씀하신 욥기 40장의 '악인을 그럼 네가 대신 심판해보아라'라는 신의 목소리 역시 그런 것을 꼬집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마저 말씀해주셨듯이, 욥은 정말 대단한 등장인물인 것이 그럼에도 끝끝내 '신을 보고 말하겠다'라는 우직함을 보여주죠.
심지어 막판에 엘리후가 등장해서 '신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너와 신은 다른 층위에서 존재한다'라고 일갈하는데도
결국은 신을 보고서 직접 대화해보겠다고, 어떻게보면 역설적이게도 '신의 인간성'을 믿는 굉장한 사람이죠.

어우 저는 이러지 못할 것 같아요. 갑자기 가진 것을 모두 뺏어놓고, 끔찍한 피부병을 줘놓은 신에게 '이건 오해야. 말하면 풀려!'라고
믿는 욥은 정말 훌륭한 소년만화의 주인공이죠. 그렇게 두들기고 구했기에 다른 인물과 달리 유일하게 욥의 눈에만
'우주의 인간성'이 수줍은 진리를 드러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당히 잔인한 이야기를 갑자기 섞게 되겠습니다만,
제가 몇번이나 쓰려고 했다가 포기한 꼭지 중에 하나가 '존스타운 사건' 관련 글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 말씀해주신
'성속의 이분법적 흑백사고'라는 개념이 반복해서 등장하더라고요. '컬트'라는 단어와 함께요.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더러운 속세'로부터 멀어지는 쿨에이드 음료가 아니라,
그냥 삶 속에서 바로 바로 '어 신님? 잠깐만요 이거 아닌거 같은데? 잠깐 말씀좀 나눠봅시다'라고 할 수 있는 담대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층방정
22/02/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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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타운 사건을 다시 찾아보니 쿨에이드라는 게 상당히 섬뜩한 의미로 다가오는군요. 참 믿음은 속세와의 단절 같은 뭔가 대단한 결단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내가 참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뭔가 대단한 결단에서 찾고자 하다가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22/02/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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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건입니다만, '믿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성숙한 종교인이라면 고개를 돌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허하게 한번은 알아보고 직시해야하는 사건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신앙의 공동체'라는 단어를 처음 꺼냈을 때, 그건 동굴 속에 숨어있는 컬트로서의 기독교인들을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로마제국의 조직적인 박해는 이런 형태를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각인시켜줬지만요). 숨어서 사는 이상한 종교인들이 아니라, 옆집에서 살고 다만 서로 상부상조하며 더 도덕적이고 더 선한 모습을 보여서 남의 귀감이 되고 따라서 가정에서 시작하여 공동체가 되어서 곧 세상이 될 진취적인 사상이었습니다. 괜히 '전도'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죠. 그리고 결국 이 바울의 모델은 서방세계 그 자체였던 로마가 기독교화되는 것으로 성공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신비'라는 것이 무엇인지, 오히려 기독교와 경쟁하던 온갖 동방밀교 (미트라교, 키벨레교, 영지주의 등등)의 비밀결사라는 것을 받아들여서 '나는 고행을 하고 있으니, 핍박을 받고 있으니, 세상과 동떨어진 일을 하니 신성하다'라는 그 감각을 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야 다양한 종교 모든 것을 공평하게 신비하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너무 강하게 비판하진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 그건 기독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퀀텀리프
22/02/2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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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로 이런 맛나는 글을 쓰시다니 .. 피쟐 핫산으로 추천합니다.
22/02/2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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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맛나는 소재로 찾아오겠습니다
22/02/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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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추천게시판으로!!! 오늘은 양질의 글이 많이 올라와서 참 좋군요.
22/02/2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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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종교덕질 글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
22/02/22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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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가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라는 썰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군요. 저는 아무리 이성적으로 풀어내려고 해도 결국 핵심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종교의 '신비'에 관한 챕터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족으로 저도 원인 불명의 피부병으로 대학병원까지 다녔던 시기가 있는데, 이게 눈에 보이는 데다가 지속적으로 고통을 주니까 다른 질병보다 훨씬 정신적으로 힘들더군요. 그래서 사용된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22/02/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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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가 상당히 나머지 구약성경과는 이질적인 챕터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도 처음에 천지창조를 빼면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계속해서 가계도를 언급하고, 앞선 누구의 자손이 누구고, 그래서 누가 누구를 낳았고 하면서 '역사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구약의 주인공이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고, 신약의 주인공이 '다윗의 후손' 예수입니다. (물론 예수는 또한 '신의 아들' 이기에 성경에서 '다윗의 후손'이라고 불리는 장면에서 바로 '그게 아니라 (나는) 다윗의 하나님이다'라고 바로 잡습니다. 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삼위일체'에 대한 이야기는 주화입마에 빠지기 정말 쉬운 주제라 이렇게만 다루겠습니다)

그런데 노골적으로 욥기의 배경은 '동쪽 땅'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노골적으로 '이거 비유적인 우화입니다. 소설이에요!'라고 주장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갑자기 이야기도 막 악마와 신이 직접 대화하는 노골적인 '비현실성'내지 '문학성'을 가집니다. 다른 책들은 '누구 자손 누가 살다가 힘들어서 하늘에 물어보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 라는 식의 전개를 가졌지, '한편 누가 고생하는 동안 하늘에서는 이런 회의가 열렸는데~'라고 적지 않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창세기의 초반부와 함께, 그리고 오히려 성경 끄트머리의 '묵시록'과 함께 '신비'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반영하는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성경 자체의 내부인과에서 오히려 초월적으로 '원초적'으로 읽히게 의도한 것이라고 저는 한번 생각해봅니다. '신비'는 그리스 말로 '미스터리'고 이건 다시 풀어서 '신들의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결코 이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이게 있어야 종교가 성립한다는 비교종교학의 관점이 다시 등판하겠네요.

그런 고생을 하셨다니 정말로 힘드셨겠군요...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아니 과학적으로 규명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가득차있는 이 우주의 본질은 참 비인간적입니다. 도대체 사람은 무슨 부기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비인간적인 존재를 연명하는 것일까요? 니체라는 사람은 '아모르 파티' 즉 '이런 운명도 사랑하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통을 받을지어도 이 고통은 너의 것이다. 얼마나 기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없었을 것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이라고 말했지만 이 말을 언급하는 저에게도 참 성경의 욥 못지 않게 비인간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니체는 이것에 도취해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죠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세상이 그렇게 너에게 고난을 주거든 콱 죽어버리지, 아침밥이 조금 맛있고, 해가 뜨는게 조금 아름다우면 울면서 오늘도 살아가고 내일도 살아가는 너희가 참 인간적이고 사랑스럽고 불쌍타!"

탈인간적인 욥 역시 마지막에 역설적으로 인간성 그 자체의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이라서 인간적이지 않은 것 같은 존재요. 그 모든 고난을 겪고나서도 마침내 위대한 깨달음과 함께 선언합니다. "세상은 살만하다. 나는 살아갈 것이다." 참으로 존엄합니다.

존엄하게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22/02/22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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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정예배때마다 피지알에 올라오는 성경소설에서 얻은 생각거리를 던지는데 반응이 다들 좋습니다 흐흐
앞으로도 이런 좋은 생각거리들이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22/02/2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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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호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야기가 모호하면 읽은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지!?'라고요. 가끔은 '아이고 이 답답한 사람들아 이걸 이렇게 풀어야죠 왜 그렇게 하고 있어요!'라는 공략도 세상에 필요합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세상 공략집 같은건 아직 세상에 없습니다. 조각조각은 뭐 흩어져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크크크크.

그런데 사이즈별로 알아서 잘라쓰는 그런 열쇠가 있다면, 그 열쇠도 남들이 보기에는 모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쓸 수 있는 물건인가 싶으시겠지요. 하지만, 제가 깨달은 것은 그런 종이열쇠는 만명 앞에서 한번만 나눠지면 적어도 팔천 개의 문을 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걸 누가 저에게 알려줬냐고요? 교회와 학교에서요.

앞으로도 더 괜찮은 생각거리를 많이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2/02/22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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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로마서 9:20]

전 욥기를 읽어도 이 분인 인간적이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아메바의 희노애락과 정의가 인간에게는 별 의미 없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네요. 아메바가 인류님의 큰 뜻이니 선하신 계획이니 열심히 찬양해 봤자...

미물에게 내려온 동앗줄 한 가닥이 무한한 감사의 이유가 될지언정 그걸 인간적이라고 느끼기에는 그런 감상 자체가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지

아니면 비전이니 주님의 뜻이니 뭐니 하면서 자기 인생 포장하기 좋아하는 기독교인 지인들에게 배알이 꼴려서 늘어놓는 헛소리일수도 있구요
22/02/2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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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고민은 저도 평상시에 정말 많이 가지고 있는 고민입니다.

신을 자연법칙으로 만들어버린다면, 인간중심에서 멀어지고, 그렇다면 그만큼 존재의 의의도 떨어지니까요.
모세에게 불타는 덤불의 형태로 등장해서 "나는 야훼다. (이름을 풀어서)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라고 했다는데,
아니 스스로 존재하면 왜 인간이 필요하시답니까? 엘리후 말처럼 뭐 고난을 뿌려줘서요? 그건 퇴치의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이 못되죠.

이것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두 가지 캐치프레이즈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 "알라는 자비로우시다". 둘 다 많이 들어보셨죠? 크크크.
이게 참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각각 두 관점이 주안점을 무엇으로 봤는지가 명백하게 비교되는 요소거든요.

욥기에서 도대체 우주여행을 다녀온 욥이 무엇을 보았는가에 대해서 기독교인에게 물어본다면 '사랑'이라고 답합니다.
비록 우리는 태초에 아담에서부터 원죄를 지녔지만, 신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이렇고,
그런 신께서 운영하는 세상은 일견 잔혹해보이지만 거시적으로는 사랑으로 가득차있습니다. 세상은 살만합니다.

그런데, 이슬람교도에게 물어본다면, 상당히 댓글에서 말씀하신거랑 비슷하게 봅니다. 무엇을 보았냐면 '자비'를 보았습니다.
알라는 아유브 (욥의 아랍발음)의 이야기에서 보셨듯이, 하늘에서 불을, 땅에는 파괴를, 인간에게는 고통을 줄 수 있는 전능자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온 사람이, 봉투를 만지는 고양이를 발로 차지 않듯이,
선하고 자비로우신 분이기에 악인이 세상에 걸어다닌다고 다른 분들이 언급하신 데드 창의 소설이나
드라마 '지옥'처럼 불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쿠란에서 알라께서 예언자가 과거에 지은 죄와 앞으로도 지을 죄를 모두 사해주자,
바로 예언자는 감사의 기도를 엎드려서 올립니다. 이에 주변 사람들은 '신께서 죄를 사해주셨는데 어찌 또 기도를 드리십니까?' 묻죠.
그러자 무함마드는 '그렇다네. 그러니 그것에 대해 마땅히 감사해야하지 않겠는가?'라고 답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이슬람에서 말하는 자비는 악인 앞에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의 유보상태라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끔찍한 일들 못 보셨습니까? 이게 악인에게 안 일어나고 있다고요?

이러니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감히 술술 떠들어대는 욥의 친구가 되기는 쉬워도, 욥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선하다고 칭하기는 쉽고, 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죠.

'선한 영향력'은 분명 주님처럼 되는 과정 즉 '카리스마'이며, 언제든 거두어질 수 있는 것이거늘,
요즘에는 사람 개개인에게 이런 말을 씁니다. 이게 우상숭배죠 (물론 제가 은사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욥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우주는 무심한 장소입니다.
갑자기 욥처럼 '제가 주님을 느낄 수 없습니다!'라고 외쳤을 때, 그 무심한 별들 사이의 검은 심연의 두 눈과 마주쳤을 때,
그때 비명이 아니라 찬양이 나올 수 있다는 이 소설을 기억할 수 있도록요.
스칼렛
22/02/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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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가 떠오르네요. 욥에게 배상해주지 않는 욥기…
22/02/2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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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신의 부재'가 그러고보니 최근에 많이 언급된 시기가 넷플릭스에 드라마 '지옥'이 나왔던 때군요.

아무래도 '사람에게 친근하고 복을 내리는 신'에서 세계관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는 복잡한 우주의 관리자'가 등판하는데, 그런 신은 아무래도 무심하게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는 자연재해가 되어버릴 수가 없다는 점에서 말씀드린 두 이야기가 시작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하죠. 우리는 분명 신이라는 존재를 착하고, 우리의 편이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고 배웠는데, 우주와 자연은 악한 사람에게 축복이 쏟아지고, 선한 사람이 가쁜 숨을 쌕쌕거리는 사악하기보다도 그보다 더 무정한 곳입니다. 그래도 신은 착하다고들 말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세상은 어떨까요? 그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옥인거죠. 신의 사랑이 없는 곳. 즉 기독교는 지금 이 세계를 지옥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까 한번 소설적으로 꼬집어본 것이고요. 근데 돌이켜 생각해보면요.

정말로 몰랐을까요, 테드 창이? 이미 고대에서부터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는 '삶에는 관심이 없고 죽은 이후의 세계나 떠드는 죽음숭배자들'부터 비꼼을 당했습니다. 어쩌면, 테드 창은 이 당연한 이야기를... 그러니까, 세상의 주도권은 삶 숭배자들이 아니라 죽음 숭배자들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스칼렛
22/02/2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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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 부록 창작노트에 이런 부분이 있었군요.

"내가 욥기에서 불만족스럽게 느꼈던 것들 중 하나는 마지막에 가서 신이 욥에게 복을 내린다는 점이다... 욥기의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 중 하나는 선이 언제나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욥은 마침내 이 교훈을 받아들임으로써 미덕을 실행해 보이고, 그 결과 축복을 받았다. 이 부분은 본래의 메시지를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보기에 욥기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완수할 만한 용기를 결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이 이야기의 저자가 선은 언제나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정말로 공감하고 있었으면, 결말에 가서도 욥은 모든 것을 박탈당한 상태로 남아 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랬다면 유다복음 비슷한 취급이었을지도 모르죠 크크
여수낮바다
22/02/2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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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래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창세기가 원픽입니다
그 다음은 정복기인 여호수아기, 그 다음은 다윗 이야기들입니다
뒤쪽에, 무슨무슨 사람 이름 붙는 이야기들은 뭔가 내용에 빠질만하면 이야기가 툭 끊기고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바뀌어서...
22/02/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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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정말로 멋진 도입부이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록 '인간이 세상이 만들어지자마자 큰 잘못을 했다'라는 좀 괴상한 줄거리이지만,
그 이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충분히 계속해서 책을 읽어내려갈 만큼 인간에게 희망적인 이야기죠.

제물을 바치지 않아도 믿음만으로 구두약속을 해주는 이삭의 번제, 어쩔 수 없는 갈등에 따른 아벨과 가인의 살인과 죄값에 대한 이야기,
선한 사람은 종말을 피한다는 노아의 방주, 다른 형제들에게 밀려 죽을뻔 했다가 영웅이 되는 요셉까지...

그러나 모세까지 정말 말 그대로 '신이 함께' 한다는 서사는 갑자기 출애굽의 후반부에
이게 개개인의 이야기에서 '가나안을 향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가 되면서 옅어지기 시작하고,
저는 오히려 '뭐야? 신에게 선택 받았다는 선인들이 그냥 군왕/대추장이잖아?'라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다윗에 가서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소시민적인 이야기나, 예언자 개인의 시점을 다루는 뒷부분 이야기들이 더 맘에 들더랍니다.
잘 만든 영화나 책은 여러가지 사람이 본다고 해도 그만큼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더니, 역시 성경은 재밌네요!
트루할러데이
22/02/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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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올라오는 성경글은 짤 퀄이 일품이군요?? 크크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해줘! 더해줘!
22/02/2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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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에게 가톨릭 사제들이 성모상을 들고서 전도했다고하지요 크크크크. 우상 자체를 숭배하게될 우려가 있다는 성상파괴주의의 주장도 들어볼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만의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지 못해서 역사에 오래남지 못하였습니다.

복음이라는 단어가 '좋은 소식'이라고 하지않습니까. 저는 이걸 또 '재밌는 소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재미의 문제냐고 하는 더 보수적인 분들도 계시겠지만, 원래 복음 자체가 읽다보면 입이 귀에 걸린다고 그렇게 이름을 붙여놓고 왜이리 엄근진하게 굴려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22/02/2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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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썰 더 풀어주세요!
22/02/2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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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에 대해 제가 썰을 좋아하는 꼭지가 한 3개 정도 더 있으니 나중에 시간을 두고 하나씩 써먹겠습니다 크크!
허허실실
22/02/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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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그냥 에피쿠로스의 역설은 논리로 풀겠다고 들면 팔수록 노답이다로 정리되죠. 신의 선함과 전지전능함? 이건 못 섞어요. 인격신까지 끼얹으면 노답도는 더 올라가고. 안 되는 건 안되는 건데 된다고 하려니 쌩쇼를 하게 되는데 그게 재미있는 부분이긴 합니다.
22/02/2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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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관에서도 '정말 신이 너의 생각만큼 마냥 선하고 복을 나눠주시는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죠. 그래서 재밌습니다 흐흐. 오히려 '두려워하지 말지어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덮어놓고 믿어라... 왜냐면 선하신 존재이니까... 그러면 왜 선하신 존재이냐... 악한 존재가 세상을 만들었고 지배한다면 지금 너희가 이런 망발이나 여유롭게 떠들고 있겠냐, 라는 협박이요 크크크크.

그런데 이걸 세속적으로 말하면 '인류 원리'가 되긴합니다. 물리법칙이 조금만 가혹했다면 인류는 없었겠죠. 우리의 뇌가 좀더 단순했다면 세상을 더 단순하게 이해하며 '와 이거 짱 복잡해'라고 감탄했을테니, 우리가 보고 있는 지금의 세계가 '가장 인간적이며 인간의 존재를 용납하는 우주'인 것이지요. 놀랍게도 욥기의 접근법도 이와 비슷합니다. 선함과 악함 따위는 이런 놀라운 세계에 있어서 사소한 문제라는 것이니까요.
허허실실
22/02/2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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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천지불인이 언급됐지만 사실 기독교든 크툴루든 세계관이 너무 자의식과잉이긴해요. 우주는 인간(지성)이 존재하든 말든 구애받지 않는데. 휴가때 신을 군화를 물광내든지 불광내든지 세상이 알 게 뭡니까.
22/02/2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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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비빅거리는 스푸트니크를 하늘로 쏘아올리기 전 발명품들이 아니겠습니까 크크크크. 그리고 저는 사실 이런 인본주의는 인간의 오만함이라고 가끔씩 그 편협함을 꼬집을 순 있지만, 그래도 사람의 고민은 사람의 시점에서 사람이 풀어야한다고 보기에, 가끔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크크크.

우주도 사람에게 알 게 뭐야 할 수 있지만, 사람도 만만치 않게 우주가 알 게 뭐야를 시전하는 종족이죠!
허허실실
22/02/2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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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본주의는 항상 좋다고 봅니다. 사람을 사랑해줄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니 서로 사랑하고 살아야죠.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거 부터가 쉽지 않긴 한데...
루체시
22/02/2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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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무 재미있게 댓글까지 다 잘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2/02/2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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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글로 다음에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멍멍이개
22/02/2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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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이름이 엽기같아서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읽어본 챕터네요. 그 당시에는 '뭐야 이거 열심히 살았는데 신이 자기 변덕으로 괴롭히고 조지고 하는 내용이잖아?' 했었는데 친구가 그 챕터는 원래 인생이 그렇다는 내용이라고 얘기해준 기억이 나네요. 하느님이 욥한테 코드를 보여줬다는 부분에서 요새 이런저런 재판 결과로 툴툴대는 사람들한테 판결문보여주면서 이게 다 이치가 있고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시키는 느낌도 들고...
22/02/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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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생각해보니 옛날에 '엽기'가 참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그런 시대가 있었죠? 그런 시점에서는 참으로 '엽기'적인 챕터이긴 합니다. 좋게 말하면 선한 사람이 고난을 받아도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지만, 나쁘게 보자면 아무튼 선한 사람도 언젠가는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염세적인 이야기잖아요. 인생이 그렇다? 아니 인생이 그럴거면 도대체 왜 신을 믿고 종교를 가진답니까~ 세상에 이게 종교경전의 일부라니...

그런데 말씀하신 예시를 들으면서 '사법불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어쩌면 욥기의 교훈은 '신에 대한 불신'의 해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듭니다. 실제로는 우리는 판결문을 보면서 '그건 내적인 논리가 정합성이 있는거지, 스스로 법이 어떻게 법논리를 비판하겠냐?'라고 툴툴거릴 수 있지요. 마치 다른 분이 댓글에 인용해주셨듯이 로마서에서 '자신을 만든 토기장이에게 토기가 대든다는 것이 말이나 되냐?' 그릇은 사람에게 항의할 수 없다는 '비인간적인' 비유를 인간에게 썼듯이요. 완벽하신 신이 짠 코드인데 당연히 여기서 욥이 '아 이거 좀 스파게티인데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겠죠 크크크크. 하지만 아무튼 간에, 양자역학을 보고온 것인지, 통일장이론을 보고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욥의 결론은 '으음 우주는 살만하군'입니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죠. 극단적인 낙관을 가정하고 있는 기독교의 소설인 것입니다. 이게 진짜일까요? 한번 두고 봐야죠... 후후.
22/02/2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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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대2병에 빠져서 (사실 아직도 헤어나지 못 한거같긴 한데...) 무신론자 클럽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거기서 성경의 모순은 뭐가 있고 종교는 해악이고 도킨스는 신이야… 이런 얘기 하면서 '캬아.. 우리는 종교같은 허황된 것에 휘둘리지 않는 식자들이야...'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거 또 크면서 이런저런 경험도 해보고 삶에 얼굴을 비유적으로 후드려맞다가 보니까 또 신이란 게 그렇게 허황되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게 본문에서 하신 이야기와는 일견 달라보일 수 있는데, 은근 제가 보기에는 비슷한 점도 있다고 느끼거든요. 왜냐면 저는 신을 부정하는 입장에 있다가 삶의 경험으로서 말미암아 '흠.. 세상이 이런데 신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겠네...' 로 바뀐 것인데, 욥기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이 서술의 역에서 시작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세상이 왜 이래' 하는 질문이니까요.

덕분에 욥기를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됐는데, 전개가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난 잘못 없는듯 함. 이거 세계가 망겜인거 아닌가?’ 이라고 하는 남탓충인데, ‘이성적’으로 ‘네가 뭔가 잘못한게 있지 않겠냐?’ 하고 옆에서 충고해주는 친구들은 나중에 벌을 받구요. 엘리후라는 이상한 소리 하는 아해도 하나 있고, 하나님은 막판에 딱 등장해서 ‘내가 만들었는데 망겜이라고? 꼬우면 니가 만들어보던가’ 하고 딱 논란을 종결시켜버리고 말이죠.

다만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면, 욥기의 결론은 욥이 풍요로운 삶을 보낸 것도, 고난이 찾아온 것도, 그리고 다시 풍요를 찾은 것도 결국 욥의 관할하에 있는 일이 아니었다… 는 것이겠죠? 욥이 아무리 열심히 선하게 살았어도 결국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풍요 그런건 없다.. 는 것인 건데. 결국 욥이 맞다, 망겜이다는 결론이죠. 그래서 사르트르 같은 사람들은 이런 망겜 하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로 우리가 행복을 찾자, 그 삶이 풍요롭거나 풍요롭지 않음에 관계 없이…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되짚어 생각해보면 참 이 이름모를 욥기의 작가의 문제의식이 시대를 앞서는 예언적인 면이 있었다는 놀라움도 들고요.

여하튼 말씀하신 것과는 다르게 저는 이 욥기의 결론이 자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욥이 풍요로운 삶을 되찾은 건 단순히 하나님이 그 자신의 이유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고, 그 말은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하지 않으면 풍요로운 삶을 되찾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비로운 세계가 있다기보다는 너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아무 이유없이 사라질 수 있고, 아무 이유없이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니, 신을 따르는 데에 있어 이런 것들은 상관없는 것이고, 너의 믿음은 믿음 그 자체를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22/02/2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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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우연의 일치겠지만 상당히 칼뱅주의적/이슬람적으로 욥의 이야기를 꿰뚫어보셨네요!

칼뱅이 말하는 '전적 무능력'과 이슬람의 '자비'의 관점에서 보자면, 욥의 한탄은 한탄이 아니고 세상에 대한 올바른 질문조차도 아닙니다. 왜냐면 말씀해주셨다시피, '욥에 대한 구원은 신의 영역'입니다. '내가 선한 일을 했습니다'라는건 하나도 의미 없는 전혀 엉뚱한 주장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선행을 한 사람과 악인의 구별이 있으므로, 이런 접근이 위험하다고 당연히 보겠지만요. 그러니 신조차도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더라'라고 첨언하는 법이 없이 그냥 세상 자체만 보여주고는, '멋대로' 나중에 다시 제물을 손에 쥐어주죠. 마치 권선징악에 대한 믿음을 무너트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요.

이렇게보면 결국 결론은 말씀처럼 '믿음을 위한 믿음'이라는 칼뱅주의 선전물이 되어버리지요. '언제부터 우리가 신이 우리에게 복을 내려준다고 믿었냐, 중요한건 구원 그 자체야 이 바보야!'라고요. 욥이 본 것은 이런 끔찍한 세상에서도 결국 구원이 내려온다는 진리를 보고 평안을 찾은 것일테고요. 신께서는 이 잔인한 우주에 한 가지 구명정을 내려주셨다라는 식이겠죠. 그리고 건방진 세상 사람들은 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도 잘난게 없습니다. 모든 건 그냥 신께서 사랑을 이 죄인들에게도 배풀어서 그런거에요. 아주 일방적인 관계입니다. 인간은 결코 따라할 수도 없는 완전히 비인간적인 관계죠.

반면 이슬람적으로 보자면 '아유브 (욥)'는 알라의 무한한 자비를 체험하고 온 것이었겠죠. 이토록 원하신다면 악인을, 아니 평범한 사람이나 선인조차도 고난을 줄 수 있는 말 그대로 전능한 분이지만 그분은 '그러지 않기로 선택하셨'습니다. 마치 이걸 본받아 '너희도 악행을 택하지 마라'라고 할 수 있는 도덕적인 경지에서요. 그러니 죄인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면서 언제 이 '유보'가 '선고'로 바뀔지 침을 삼켜야하고, 선인조차도 '나는 선하니까 무적이다'라고 교만한 일 없이 겸허하게 감사기도를 매번 드리면서 자신의 행동거지를 바르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선택지로는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망겜 안함 수고!'라고 로그아웃을 하는 것이겠죠 크크크크. 니체나 사르트르처럼 '이것은 나의 삶이오. 힘들어도 내 삶이다'라는 태도도 있을 것이고, 마르크스-레닌주의처럼 갑자기 이신론과 영지주의의 전통을 되살려서 '이거 망겜 맞다니까? 근본적으로 설계가 불공평함 우리는 이걸 부수고 진짜 세상을 만들어야한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욥기의 문제의식은 참으로 현실적으로 현대적으로 시대를 앞서나가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그리고 탈종교적인 관점에서도 한번은 읽어보고 고민해볼만한 그런 괜찮은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이 왜 이래~'
22/02/22 19:26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우연의 일치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칼뱅주의와 이슬람의 논지에 흥미가 가네요. 대충 이런 이론에 대해 뼈대는 알고 있어야 할 일인데 제 무지가 조금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22/02/22 19:5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아닙니다. 제가 그냥 종교 덕질에 심취한 것인 뿐인걸요 크크크. 저도 말씀해주신 내용이 없다면 이런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말씀해주신 덕분에 생각해보니, "테스형" 노래에서 첫 가사가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였지요? 제 닉네임이 이렇듯이, 저는 저런 표현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도 좀 정상적인 취향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크크크크)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들은 결코 수줍게 미소짓지도, 작게 웃지도 않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겠죠. 사람의 턱을 빠트리는 이 놈의 '부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 망자를 부러워하게 만드는 요소니까요.

그러나 사르트르와 까뮈조차도 '이런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 죽음과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심지어 더 끔찍한 이야기를 하자면, 세상의 근본적인 모순에 분개한다는 공산주의자들조차도 자신들의 사상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강제수용소를 세우고 그리도 사람을 죽여대면서 말이죠.

그런 맥락에서 반출생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욥기를 어떻게 평할지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고전문헌학에 바로 처박아버리지 않는다면요) 참으로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제가 신좌파에 비판적이고 구좌파를 옹호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사람의 가죽을 쓰고는 사람의 삶을 긍정하지 않는 입장은 도대체 어떤 질문에 어떤 답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파시즘에 패배한다면 우리는 파시즘의 노예가 되겠지만, 저들에게 패배한다면 우리는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겠죠.
22/02/22 20:2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실존주의자들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마도 말씀하신 맥락과 어느 정도 동치되는 생각이라 여겨져서 말씀드리는 바입니다만 (물론 제가 잘못 해석한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현대 철학의 몇 분파는 분명... 뭐랄까요? 무책임하다 해야 할까요? 책임에 대한 집착적인 회피가 좀 있는 것 같아요. 반출생주의라던가, 어떤 특정 페미니즘 분파라던가, 몇몇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던가. 그래서 이들은 더더욱 이론적 윤리관으로서 윤리를 도식화, 기계화하는데 집중하는데, 그 맥락에서 말도 안되는 무책임한 결론이 도출된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면 반출생은 극단적인 공리주의적 윤리관에 입각한 시각에서 나오고, 요즘 문제가 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경우 어떤 사회적 권력관계나 억압의 구조에 집착해서 이상한 비대칭적인 결론이 되출되는 거죠(여혐은 가능 남혐은 불가능 등등). 포스트모더니즘은 워낙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몇몇 분파는 비슷한 문제가 있는 것 같구요.

그래서... 뭐랄까요, 제가 생각할 때에는 저런 말도 안되는 '철학'들은 책임에 대한 감정이 부재할 때 나오는 영혼의 타락이고, 지적 비겁함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그런 면에서 책임은 거래관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삶의 존재 자체가 책임을 동반한다는 실존주의자들의 입장은 이들에 비교하면 영웅적 용감함이라고 볼 수 있죠.
뉴타입
22/02/22 20:33
수정 아이콘
엘리후라는 인물이 이상하리만치 이질감 느껴지고 뭔가 튄다는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후대에 덧붙여진 부분이라는 설도 있긴 하더군요.지금은 무교지만 과거에 모태신앙이었던 입장에서 욥기는 잊을수 없는 내용입니다 여러모로요.어릴때 읽었던것과 나이 들어서 다시 복기해보면 확실히 다르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22/02/22 21:16
수정 아이콘
'어린 왕자'나 '걸리버 여행기'처럼 어릴때 쉽게 접할 수 있던 아동축약본하고 본래 어른을 겨냥하던 작품의 주제하고 전혀 다르게 드는 그런 느낌이죠 크크크. 술은 인생의 쓴 맛을 느껴볼 수록 달다고 하는데, 어쩌면 욥기가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기분 상해보고, 세상에 '억까' 당해본 사람만이 다시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책이니까요.

성경책을 무조건 신성하다고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가 이 엘리후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다른 파트인 다니엘도 그렇고, 성서비평학적으로 보자면 후대에 편집해서 '한 권'이라고 불리는 책이 여러 명의 사람이 여러 시대에 나뉘어서 만든 결과물일 때가 많습니다. 본래 욥의 이야기도 세 명의 친구만이 등장했다가, 나중에 어떤 점에서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엘리후를 가필했다는 것이지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풍문으로들었소
22/02/22 21:5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어디서 주워들은것만 적절히 있는 40대 아재 교회집사입니다...
일단 종교적인 내용이 들어가는것을 미리 사과말씀 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욥기에 대한 생각은
1.천하의 사탄조차도...하나님께 허락 받고 뭔가를 합니다 (제가 있는 교회 목사님께서 이런 늬앙스로 얘기하셧던거 같습니다)
즉, 악한 무언가, 어떤 세력의 공격? 같은것도 잘 넘기면 더 좋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이건 물론 하나님이라는 신은 사랑이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는 것이지만요...)
2.고통, 인생의 고난의 문제는 (마치 욥기에서 레비아단이 있다 얘기하고,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있는것처럼...) 사람의 인과관계, 논리와 이해론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심지어 아무 잘못이 없는, 무고한 사람인 욥조차도 고난을 겪습니다(유투브 바이블클래스 욥기에서 주워들은듯...)
3.'인과응보'의 교리, 욥의 세친구와 지나가는 엘리후와 심지어 욥 자신도 '인과응보'의 논리를 넘어서는 가치관,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욥의 세친구 : 욥 니가 뭔가 잘못했다
욥 :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무고하다, 억울하다.
생각해보면 이 생각의 기반에는 '인과응보,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 논리가 기본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을거 같습니다. (이것도 유투브 바이블클래스에 영향을 받은거 같습니다)
4.하나님께서 짠 하고 나타나주셨다. 비록 나타나주셔서 욥이 이해할만하게 잘 설명한거 같다는 느낌은 사실 아닌거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전혀 기대도 안했을지도 모르는 욥에게 신께서는 그걸 버려두지 않고 직접 나타나주셔서 얘기하시고 만나 주셧다는거 자체가 욥에게 큰 감동일지도 않을까? (이것도 유투브 바이블클...)

적어도 2가지 문제는 고민 해 볼만 하겟죠

1.고난의 문제는 뭘까? 왜 이런 고난이 나에게 있는걸까? 신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전능하시다면
신께서 어떤 깨달음을 나에게 주실 때 충분히 어떤 고통과 고난 없이 주실 수 있을거 같은데 왜 안그랬을까? 등등을 스스로 물어보고 질문하고 고민하고 기도해도 아무 결과물들이 없고
(저는 해결이 안되는 병을 가지고 있는데, 25년째 가고 있네요. 누군가에 비하면 큰 병이 아닐수도 있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한계가 지어버린 병인거죠. 법적으론 장애인이 아니지만 제가 느끼는 감정은 가끔 장애인 느낌?)
뭐 심지어는 성경에서 완전하다 적혀있는 욥 조차도 그런 고난을 당했으니 비교를 하는 식으로 논리를 접근하자면 할 말은 없는지도 모르겟습니다
저는 병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그냥 달관해버렸습니다
병은 내 친구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눈에 드러나는 병과 (저같은...) 눈에 드러나지 않은 병들을
사실은 모두 가지고 살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병이 있든 없든, 그런 고난이 나에게 항상 있든 없든
그냥 안고 산다, 병이 내 친구인것처럼 적절한 고난 오는것도 내 친구다. 그런걸 고민 해 본들 답이 안 나오니 그냥 안고 살아가고, 고난이 있든 없든 그런 것에 인과를 따지지도 않고 매 순간마다 올바르게 살고 올바른 방향을 따라 산다
로 40대 넘어가니 거의 결론 났습니다. 오는 고난 피해볼려고 용써보지만, 안피해지면 그냥 받아들인다 로 말이죠.
고난은 마치 자연현상이 이해 안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이해 밖에 있는 영역인것에 좀 동의 하는 편이고, 그래서 그냥 안고 사는 개인적 관점이죠.

2.인과응보의 논리를 넘어서는 가치관은 무엇일까?
착하게 살았을때 결국 잘되는 사람도 물론 있고, 악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결국 악이 드러나고, 법의 심판도 받고 벌 받는 것도 여럿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악인이 잘 되는 것도 제법 많이 보게 되죠. 그런걸 보면 실망을 하곤 합니다.
뭐 이걸 넘어서는 가치관중 하나? 제 무지한 머릿속에서 드는 이것을 넘어서는 가치관 한개밖에 생각 안나서 (눈물 유유)
문자적으로 적자면 '신의 뜻대로' 인지도 모르겟습니다.
기독교적으로 적자면 '하나님의 뜻' 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것?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공의를 행하고 자비를 베풀고 올바른 행동을 할려고 애쓰는것
뭐 그정도로 생각을 개인적으론 하게 되네요

종교적인 결론을 내서 죄송합니다 꾸벅...게다가 적고보니 너무 길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꾸벅꾸벅
22/02/23 03:29
수정 아이콘
저도 교회의 입장을 귀동냥 할때는 스스로 남에게 장로교인이라고 소개를 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런 세속적이고, 종교에 회의적이며, 별로 신성함을 존중하지 않는 방법으로 글을 쓴것에 대해서 사과를 드립니다.

비록 저는 모호하다는 식의 생각을 내비쳤지만, 실제로 '신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믿는 개신교인이시라면 이 이야기가 상당히 직설적이고 단순한 결론을 다루고 있을 것일텐데도 제가 그 쉬운 이야기를 피하고 변죽을 울리는 것처럼 읽히셨겠군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을 미물 취급하지 않으시고 결국은 한명 한명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지요.

주일예배가 끝나면 목사님께서 교회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병을 났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리시고는 합니다. 저도 큰 문제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몸에 불편한 점이 있어서 이런 순간에 관심을 지키고 들어보고는 하는데, 가끔 들리는 소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을 받지 못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도대체 이런 세계에서 이해하기 힘든 '신의 뜻'이라는 것이 무엇일지를 저도 고민해보고는 합니다.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오히려 욥의 친구는 그걸 함부로 주장하다가 혼나기도 했으니까요. 아무래도 중요한 것은 이런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담대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 밖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풍문으로들었소
22/02/23 08: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Farce님 글을 재미있게 읽어서 사과 안하셔도 됩니다. 세속적인 글이라고 생각해본적도 없어요 흐흐. 오히려 이런 관점을 좋아합니다. 도리어 제가 쓴 글의 표현이 이상해서 불편함을 드렷다면 도리어 제가 사과해야할 부분이겟죠. (제가 글의 분위기와 핀트를 잘못 읽은건지도 모르죠) 성경에 대한 이런 다양한 관점, 다른 분들의 생각 보는걸 좋아합니다. 저 또한 QT 종종 할때도 저 나름대로의 소설이나 '지금 시대로 치환한다면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수 있을까?' 라고 소설쓰듯이 접근하곤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이런 글들이 많아졌으면 좋겟습니다. 전 진짜로 이런 글들 좋아합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의 이야기는 너무 고리타분 하고...그들만의 세계 느낌을 받곤 합니다. 성경이야기를 더욱 이 시대에 맞게 잘 녹여서 해석하고 적용하고, 성경의 가치에 따라 올바른 것들을 더 잘 표현했으면 좋겟어요 제가 아는 신께서는 속 좁으신 분이 아니셔서 이런얘기 해도 괜찮아 하시고 도리어 좋아하실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욥기는 단순하지 않고 읽을때마다 어려움을 느낍니다 흐흐흐 그나마 이런 생각은 최근에 가지게 된거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Foxwhite
22/02/22 22:02
수정 아이콘
비종교인인데도 본문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어요.
제가 성경을 처음 접했던건 초딩때 옆집사는, 교회다니는 친구랑 같이 교회 놀러가봤다가 얻어온건데, 두번째 갔을때였나? 그 뭐라고 부르던가요. 사람들 기도하다가 막 흐느끼고 알수없는소리 막 하고 크크크크크. 그거 보고서 학을 떼서 그 뒤로는 아예 생각도 안하는 쪽입니다. 그런데 그거랑 별개로 성경이라는건 재밌었어요. 세계관이라는 쪽으로 보면. 그래서 시원하게(?) 불신론자들 수장시켜버리고 싹다 죽여버리는 구약이 속시원하고 재밌긴 했네요 크크크. 포경수술의 조상격인 문장도 성경에서 봤던 기억이 있구요.

본문도 댓글도, 대댓글도 정성가득한, 그래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볼법한 글 잘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22/02/23 01:56
수정 아이콘
보편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내용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저 만의 종교덕질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상당히 다양한 곳을 오갔는데요 (괜히 이런저런 종파의 교리차이를 외우고 있는게 아닙니다 크크) 아직까지도 '은사주의'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에 관련해서 이런저런 제 논박과 생각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습니다만, 또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도 그냥 첫 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게 원인인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참 말씀하신 할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우면서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주제이지요. 저는 솔직히 이슬람교의 돼지 문제와 고양이 사랑처럼 초기 공동체의 '취향'이 교조화되서 문제인 그런 율법으로 보긴 하지만요. 하지만 이런저런 과거와 현대와의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좋은 책이 이 성경이라는 것이라고 저도 보긴 합니다. 히히, 좋든 싫든 결국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나치게 오래된 책이지요.

다음에도 더 재밌는 주제로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WeakandPowerless
22/02/22 22:31
수정 아이콘
와 성경 해설 1타 강사시네여
22/02/23 02:03
수정 아이콘
신학을 직접 열심히 공부하시면서 더 많은 고민을 하시고, 영적인 만남을 직접 가지신 분들이 한국에 많을텐데, 저같은 세속적인 종교덕후는 갈길이 멉니다 흐흐흐... 저도 제가 만나볼수 있어서 좋았던 많은 목사님들과 또 다른 분들의 문학서적이나 교리집도 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게 그냥 제가 한번 제 입맛대로 짜집기해본 내용으로, 다른 분들께서는 신을 믿으시면 믿으시는대로, 믿지 않으시면 믿지 않는 그대로 자신의 해석을 찾아가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되고 왜곡된 내용'이 아니라 '옳은 말씀'만을 전해야하는 진정한 목회자들께는 이런저런 선을 넘나드는 저는 오히려 골치 아픈 존재겠지요. 저는 언제든지 '그런데 종교는 전부 지어낸 이야기인거 아시죠?'하면서 도망갈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어떤 분들은 서서 신념을 지키셔야합니다. 그게 더 많은 지혜와 용기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은 제가 계속 종교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답니다.
22/02/23 10:04
수정 아이콘
정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성경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작가에 의해서 제작]된 것이, 다시 서로 다른 편집자들의 투사 또는 스스로의 이해나 언어의 한계에서 비롯된 왜곡이 누적된 결과물이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융이 '그렇게 인간이 창조한 [인격화된 신]'을 믿는 '종교' 그 자체로부터는 멀어진 바가 이해 되기도 합니다.

융이 현대시대에 맞춘 기독교의 변화의 필요성을 피력한 것처럼, 기독교가 앞으로도 효력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이런 식의 설교나 가르침이 포함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22/02/23 17:06
수정 아이콘
오... 융이 그런 말을 했군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의 말을 들어보니 '팔만대장경'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신성함이란 무엇일까요? 굳이 신이 존재하지 않고도 그냥 사람들이 엄청나게 고생하면서 종이를 쌓아올렸으면 그 자체로도 어떤 영성을 가지지 않을까요? (애니미즘 같은 접근법이긴 합니다) 이런 누적의 결과물이 '주술'이 될지, '인격신의 종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둘다 동등하게 아름답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조화를 경계합니다. 여태까지 잘만 논해놓고서 '여기서부터는 이야기를 더하지 않겠습니다. 충분히 온전하니까요'는 교만이지요. 어째서 현대에도 잘 살아있는 신을 고대의 죽은 신으로 만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기독교가 얼마나 더 현대사회와 더불어 살 수 있을지는 우리가 잘 지켜봐야할 영역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생각이 더 깊어지는 말씀 감사합니다.
22/02/23 19:07
수정 아이콘
(수정됨) 공감합니다.

그 자체가 지닌 '영성'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보다 근원을 보는 통합적인 눈일 것이고,
'(왜곡됐으니) 의미없다' VS '(기록됐으니 이 글자 그대로가) 진실이다' 중 택1 하는 흑백논리를 보는 눈은 동물적 본능에서 비롯된 이원적인 눈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니, 혹은 성경에 그렇게 적혀있으니 무조건 믿어야지 하는) 교조화'보다
'그래서 진리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더 중요한 듯 싶습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는 말에서 두드리는 자는 질문하기 위해 노크하는 자를 의미하기도 하겠지요.

다시 한번 본문 글 감사드립니다.
중세에서 현대로 넘어오며 이제는 현대인의 머리가 너무 커버려 고대의 신 이야기를 점점 믿지 않는다는 융의 이야기를 차용한 것은,
저 또한 본문 글을 읽으며 '어렸을 때부터 간헐적으로 갔던 교회들이 이런 식으로 말씀 주셨다면 발길을 돌리지 않았을텐데'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 잘 부탁드립니다!!
23/11/20 22:28
수정 아이콘
저는 전도서를 보고 맥이 탁 풀려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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