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6월 8일, 영국의 3차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대원 조지 맬러리와 앤드류 어빈은 일찍 정상을 향해 출발합니다. 앞서 두 차례의 정상 공격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고 이번 세 번째 정상 공격이 이번 원정대의 마지막 정상 공격이 될 터였습니다. 이날 오후 또 다른 원정 대원인 노엘 오델이 에베레스트 산 북동능선을 따라 세컨드 스텝을 오르는 두 개의 작은 점들을 목격합니다. 그 직후 에베레스트 정상은 구름으로 가려지게 되었고 그것이 이들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조지 맬러리와 앤드류 어빈은 다시는 캠프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조지 맬러리가 다시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그로부터 75년 뒤인 1999년 5월이었습니다. 마침 TV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이들을 행적을 쫓아 에베레스트로 나섰던 원정대가 그의 시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시신으로 보건대 맬러리는 어떤 이유에서든 능선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의 시신에서 제일 찾고 싶었던 물건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코닥 VPK 카메라였습니다.
이 카메라는 앞서 이들을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대원인 오델 노엘이 맬러리에게 빌려준 것이었습니다. 맬러리는 물건을 잘 안 챙기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정상 정복을 증명해 줄 사진을 찍을 본인의 카메라 역시 깜빡하고 아래 쪽 캠프에 두고 올라왔던 것입니다. 이에 노엘이 그에게 자신의 코닥 VPK 카메라를 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만약 맬러리와 어빈이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랐다면 틀림없이 사진을 찍었을 것이고 카메라가 발견되고 필름이 온전하게 보전이 되어 있다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또 한 명의 등반대원, 앤드류 어빈에게 쏠리게 되었습니다. 1933년 영국의 4차 에베레스트 원정 대원이었던 퍼시 윈 해리스가 해발 약 8,460미터, 퍼스트 스텝으로 불리는 암벽 약 20미터 정도 아래 부근에서 어빈이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피켈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1991년에는 이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산소통 역시 퍼스트 스텝 부근, 약 8,480미터 높이에서 발견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오델이 목격했던 두 점들이 당시 퍼스트 스텝을 오르고 있었는지 세컨드 스텝을 오르고 있었는 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앤드류 어빈의 시신은 지금까지 발견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로 추정되는 시신을 봤다는 몇몇 목격담들은 있어왔지만 아직까지는 그를 찾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만약 둘이 정상 정복에 성공했고 누군가는 포즈를 취했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다면 포즈를 취했을 사람은 맬러리, 사진을 찍었을 사람은 어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추측입니다. 누가 뭐래도 당시 원정대의 얼굴은 조지 맬러리였으니까요. 어빈은 원정대의 막내였습니다. 그렇다면 코닥 VPK 카메라 역시 등반 중에, 혹은 촬영 이후에는 어빈이 소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맬러리의 경우처럼 어빈의 시신이 극적으로 발견되고 그의 시신 곁에 코닥 VPK 카메라 역시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이 된다면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산 최대의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추측의 영역이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오델이 목격한 바대로 만약 이 둘이 정말로 세컨드 스텝을 올라갔다면 거기서부터 정상까지는 사실상 장애가 될 만한 지형이 없습니다. 써드 스텝이라고 불리는 작은 암벽이 하나 있긴 하지만 난이도는 세컨드 스텝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물론 이들이 정상을 정복하지 못했고 사고로 인해 둘 다 추락을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빈의 시신은 산 정상 부근이 아니라 깎아지른 것 같은 에베레스트 북벽의 아래쪽, 까마득한 절벽 아래의 깊은 눈 속에 파묻혀 있으며 카메라는 산산조각이 나서 여기저기 흩뿌려져 버렸을 가능성 역시 얼마든지 있습니다.
진실이 어디에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 두 사람이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열악한 등반 장비들을 가지고도 최소 8,500미터 부근까지 올라갔던 것은 엄연한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둘이 대단한 사람들이었음을 인정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