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양념장에 머리카락이 너무 많다.”
“신경 쓴다고 썼는데 그리 많더나?”
나는 장갑을 벗고 양념장에서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분리해낸다.
행여나 머리카락이 더 빠질세라 머릿수건을 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백 포기가량 되는 배추들은 삼등분 되어 절여진 채 소쿠리에 한가득 담겨있다.
김장 날이었다.
몇 시간 동안의 고된 노동을 달래줄 건 역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뿐이었다.
가족 구성원 중 김장에 참여하지 않은 누군가의 성격은 도대체 아빠를 닮은 것인가 엄마를 닮은 것인가, 하는 짤막한 논쟁이 이어지고 우리는 각자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그래도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딱 하나 있다. 어릴 때 아빠 오토바이 앞자리에 탔는데 아빠가 나쁜 공기, 찬 공기 마시지 말라고 입을 조심스럽게 가려주더라.”
언니가 말했다.
나는 생각해본다. 내게 당신이 남겨놓고 간 추억의 조각들을.
나는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창틀에 매달린 어린 내 뒤통수를 떠올리곤 한다.
그때보다 더 어렸던 어느 날, 창밖에는 눈이 설레게 내리고 눈만큼이나 나를 떨리게 만드는 당신이 눈을 헤집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구두에 묻은 눈을 툭툭 털고, 종이봉투를 주욱 찢어 펼쳐낸다. 빵이다.
그 빵이 무슨 맛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서로 갈라서네 마네 고성이 오가고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두들겨 맞는 소리가 들리는 그 나날들 속에서 아빠가 가져온 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을 만큼 생경한 것이었다.
그날부터였을까. 겨울이 오면, 성탄절이 다가오면 창틀에 매달렸다. 오지도 않는 눈을 기다리며. 오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어두운 밤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만 눈에 한가득 담겼던 날들이 계속되었다.
불편하게 몸을 구부려야 창밖을 볼 수 있을 만큼 키가 자라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겨울이 오면 창밖을 들여다봤다.
성탄이 가까울 무렵의 어느 겨울이라는, 정확한 시기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진 기억을 붙든 채 오지도 않을 사람을 기다렸다.
당신이 남긴 추억의 조각들이 내겐 너무 단단해서, 그걸 깨트리는 덴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난 운동 갈 때마다 아빠 맨날 본다. 매일 피해 다니지.”
또 다른 언니가 말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 모두 당신을 피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버림받았다면 지금은 우리가 당신을 버린 셈인가....
각자의 추억으로 치덕치덕 치댄 김장이 끝나고, 한참 뒤였던 올해 성탄절. 나는 버스를 타고 언니 집엘 갔다.
버스가 당신이 사는 곳을 지나쳐 간다.
이젠 남이 된 것처럼 무심하게 굴고 있지만 불현듯 떠올릴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다. 차창 너머로부터 나를 비추는 햇살과 함께, 물밀듯 밀려온다.
‘나는 북적거리는 언니 집으로 가는데... 당신의 성탄절은 어떤가요.’
당신이 느낄 고독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는 동안 평생 고독하고 아프길, 바랐던 순간들이 있었다.
우리만큼 고통스럽길, 바랐다.
그런 관심마저도 당신에겐 사치라며 그만두고만 숱한 시간들이 있었다.
원망이라는 양분을 먹고 자란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글을 쓰며 생각건대 나는 아직 당신이 남긴 조각들을 모두 깨트리지 못한 것 같다.
아직도 창밖의 눈을 기다리는 내가 정말 눈을 기다리는 것인지, 오지 않을 무언가를 기다리는지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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