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05/21 09:47:45
Name 지니팅커벨여행
Subject [일반] 아이스크림과 회장님 이야기
어제 아침 뉴스 기사를 보면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집 자식들이 그리 착했다"

그러시고는 짤막한 일화도 덧붙이셨죠.


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어렸을 때 그집 아이들이 놀러 오면, 아이스크림을 매우 좋아해서 엄청 많이 먹고는 했는데, 그런 모습을 그분이 못마땅해해서 하루에 먹는 아이스크림 갯수 제한을 두도록 요청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아이스크림 교환권'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그 표를 아버지께 내밀면 아이스크림을 주도록 하는 방식으로 너무 많은 군것질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다고 하네요.


예전부터 들은 얘기로는,

그분은 1년에 몇번씩, 자주 못 오더라도 한두 번은 방문을 했는데, 아이들의 방학과 방문 기간이 맞아 떨어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들과 같은 또래여서인지 잘 돌봐 주셨고, 항상 예의바르고 착했던 그집 아이들의 성격을 칭찬하시곤 했죠.

그런데 어느날 그집 아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중학교 때였나, 어느날 아버지께서 퇴근하신 뒤 어머니께 그 소식을 전하시며 나누시던 대화가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그집 아들이 죽어부렀다네, 그리 착했던 아들이..."

"아이고 어쩌다 그랬다요"

"모르겄네. 갑작스레 그랬다니..."


아무튼 아버지께서는 아이스크림 일화를 꺼내시면서, 이야기 하나를 더 해주셨습니다.

아들이 죽고 한두 해쯤 지났을 시점인지, 그분께서 또 업무차 내려오셨고, 영빈관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는 그 일행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분이 회사 부장급 이상의 간부들과의 회식자리에서, 흥이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그 자리에 아버지를 부르셨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우리 미스타 김이 정말 성실하고 부지런해요. 자네 덕분에 즐겁게 지내다 가네. 정말 수고했어요"

회식을 마치고 나서는 숙소에서 또다시 아버지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아까 회식자리에서 하신 얘기를 재차 하셨고, 아버지는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으셨지만 마음 한구석엔 안타까운 생각으로 만감이 교차했다고 하셨죠.

아버지는 당시를 이렇게 추억하십니다.

"나를 보면 항상 그때가 생각나셨던 모양이다. 특히 그날은 자기 아들 죽고 처음 방문했던 때인데, 나를 보자, 여기 올 때마다 자기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잘 대해줘서인지 아마 아들 생각이 나서 두번이나 불러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분과 아버지는 불과 다섯살 정도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매우 동안이셨고, 직급 차이도 꽤나 났던 터라 그분은 아마도 10살 이상 어린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전부터 얘기하셨던, 간혹 머리를 식히기 위해 업무를 마치고 낚시를 가셨던 일이나, 아이들과 있을 때 겪은 이야기들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요.


유교적 가풍이 매우 엄격했고, 그로 인해서인지 아랫사람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온화했으며, 뿐만아니라 자녀들도 예의바르고 착했던....

이것이 어제 별세하신 한 재벌가 회장님에 대한 아버지의 인상입니다.


아버지는 직업적 특성상 일을 하시면서 험한 꼴도 많이 보고, 기분 좋은 일도 겪고, 이런저런 희로애락을 유난히 많이 겪으셨는데, 그럼에도 그분의 가족들로부터는 항상 좋은 기억만 가지고 계십니다.

뭐 그 회사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법적으로 연좌제가 없어지고 아버지도 드디어 정착을 하게 되면서 이십 년 동안이나 한 직장을 다닐수 있도록 해준 회사였기에 더 좋게 생각하시는 것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인지 저도 그 회사를 좋은 쪽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물론 10여 년 전 취업할 때, 다른 회사보다 높고 까다로운(?) 영어성적 기준으로 인해 한 전자회사에 입사지원서도 못 넣은 흑역사가 있었지만.



말 나온 김에 예전에 적은 글 하나를 링크합니다.

아버지와 연좌제 이야기
https://cdn.pgr21.com/?b=8&n=74792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05/21 10:45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 재벌중에 그나마 괜찮은 집안이라고 알고 있습니자. 앞으로도 계속 그랬으면 하네요. 존경은 못하더라도 욕먹을 장도는 아닌...
지니팅커벨여행
18/05/21 16:21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존경은 못 받더라도 욕은 안 먹을 정도로 잘 해주면 좋을텐데... 특히 요즘같은 시대에 협력업체와 상생하면서 계속 성장하면 좋겠어요.
잉크부스
18/05/21 11:35
수정 아이콘
저도 몇번인가 업무상 뵜는데 너무 소탈하셔서 그분 아닌줄 알았어요
지니팅커벨여행
18/05/21 16:24
수정 아이콘
직접 보지는 못한 터라 단정하긴 좀 그렇지만 대표 계열사 경영은 그럭저럭 잘한 것 같아요.
사실 처음 회장에 취임했을 때 식품사업 진출이다, 반도체 빅딜 실패다 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 그 이후부터는 별 소리 안 나왔죠.
이른바 마이너스의 손이다, 갑질계의 끝판왕이다 하는...
괄하이드
18/05/21 11:55
수정 아이콘
재벌가 회장들 중 제일 인간적이고 소탈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들이 예전부터 많이 들리더라고요.
뭐 LG 마케팅팀이 열일해서 그런 소문을 내기는 쉽지않을것같고, 그정도로 얘기가 많이 퍼지려면 실제로 그런 사람이었단 이야기겠지요. (갑자기 파도파도 괴담만 나오는 모 항공사 오너일가 생각이...)
지니팅커벨여행
18/05/21 16:27
수정 아이콘
아버지께 물으면 그분 젊었을적 시절의 일화가 더 나올 것 같긴 한데 워낙 오래된 일이고, 일부분만 해당되는 내용일 수 있고 하니 좀 조심스러웠네요.
아무튼 지금 대한항공 같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오너의 횡포들을 보면, 적어도 그 갑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수도 있었던 위치를 겪은 아버지가 미담을 얘기할 정도이니 저들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겠죠.
Lord Be Goja
18/05/21 14:09
수정 아이콘
(수정됨) 폰분야때문에 그룹전체가 까여 그렇지 사업도 잘하는 편이죠.사람이 조금만 권력과 재력을 가져도 망가지기 쉬운데-드루킹까지 갈것없이 부녀회장이나 네이버카페 운영자만 시켜도 돌변하는게 대부분의 사람- 저정도면 굉장히 좋은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니팅커벨여행
18/05/21 16:28
수정 아이콘
스마트폰과 반도체는 아마 본인도 두고두고 아쉬워하지 않았을까 하네요.
유열빠
18/05/21 18:44
수정 아이콘
반도체는 진짜 이장석 외 ADL 때문에 뺏긴거라..
사랑기쁨평화
18/05/21 20:57
수정 아이콘
착하지 않아도 되는데 착한 사람은 대단한 인격자죠.
저는 착하게 사는 편이 세상 사는 게 편해져서, 본의 아니게 착해지는 중인데
재벌가 출신 자녀들이 착하다는건 타고났던가, 부모가 교육을 어마어마하게 잘 시킨거죠.
답이머얌
18/05/22 16:07
수정 아이콘
호감간 점

1. 동업자와 사이좋게 오랜 기간 함께했고, 사이좋게 헤어진 것. 양쪽 모두 칭찬해줄 부분이죠. 단돈 10만원에도 파탄날수도 있는게 인간관계인걸 보면.

2. 상속세 얘기가 1조원 가량이라 나오죠. 이건 두고 봐야겠지만, 모 회사처럼 별별 꼼수로 나가지 않은 듯 보입니다. 꼼수를 썼을지라도 낼 만큼의 금액을 보여준게 (1조원) 아닌가 싶습니다.

깬 점

장자 승계가 원칙이라고 언론 이곳저곳에서 떠들어 댈만큼 고리타분한 문화.

뭐, 염치있는 거대 자영업자 라고 봐야할지 아니면 재벌이라는 독특한 체제하에서 그래도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할 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래도 가장 나은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니팅커벨여행
18/05/22 19:39
수정 아이콘
원래 유교적 가풍이 강한 곳이라 예전부터 장자 위주로 경영을 했고 여자들은 회사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네요.
게다가 이른바 왕자의 난이나 승계 싸움 같은 것도 안 하고 장자인 조카가 회사를 물려 받으면 숙부들은 분사를 거쳐 그룹을 독립시키곤 했고.
그러다 보니 종손인 아들이 죽자 첫째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결국 장자에게 물려주는...
조선시대라면 당연하겠지만 현대에는 사실 이해하기 힘든 점이예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7060 [일반] PC방 전원차단 실험 뉴스 그후 7년 [68] 즐겁게삽시다17534 18/05/23 17534 7
77059 [일반] <버닝> - 청춘에게 바치다 [28] 마스터충달7249 18/05/23 7249 14
77058 [일반] 작전과 작전 사이 (7) - 경적필패 [6] 이치죠 호타루6474 18/05/22 6474 9
77057 [일반] Daily song - 월급은 통장을 스칠뿐 of 스텔라장 [7] 틈새시장6349 18/05/22 6349 2
77056 [일반] 모스크바 사진 몇 장 공유합니다.jpg [10] aurelius8283 18/05/22 8283 8
77055 [일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행사 가는 영국기자가 올린 북한 원산의 모습.jpg [28] 光海13759 18/05/22 13759 4
77052 [일반]  석촌고분·한성백제역…지하철 9호선 3단계 4개역 이름 확정 [46] 군디츠마라12089 18/05/22 12089 0
77051 [일반] 편파수사 논란에 대해 경찰청장이 결국 사과했습니다. [370] 그라나다아19615 18/05/22 19615 14
77050 [일반] 이창동 버닝에 관한 잡설(줄거리 내용 언급 있음) [10] 한종화8487 18/05/22 8487 2
77049 [일반] 마블, 30초 [9] 니나노나10644 18/05/22 10644 0
77048 [일반] 심심해서 써보는 미스테리 쇼퍼 알바 후기 [31] empty30534 18/05/22 30534 36
77047 [일반] 16년 전, 어느날 책 구매리스트 (의외의 페미니즘 동화) [21] 1026459 18/05/22 6459 0
77046 [일반] 연아를 보기위해 서울에 왔습니다. [8] 러브레터6514 18/05/21 6514 6
77045 [일반] 컴플렉스 이야기 [24] 위버멘쉬10626 18/05/21 10626 25
77044 [일반] 조던 피터슨 - 젊은 여성들을 위한 조언 [333] 삼성우승20565 18/05/21 20565 46
77043 [일반] 이영도 작가님 신작 일정입니다 [16] Cand7759 18/05/21 7759 0
77041 [일반] 초등생 고속道 휴게소 방치 교사 구체적 판결 내용. [127] Rorschach19368 18/05/21 19368 5
77040 [일반] 본가에 내려가서 뒤적거린 추억 (사진있음) [46] 글곰9124 18/05/21 9124 4
77039 [일반] 아이스크림과 회장님 이야기 [12] 지니팅커벨여행8485 18/05/21 8485 15
77037 [일반] 모스크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련의 흔적 [10] aurelius9003 18/05/21 9003 3
77036 [일반] 남한과 북한의 언어차이 [19] 키무도도9787 18/05/21 9787 0
77035 [일반] 올해 공무원 공부 끝낼 것 같네요. [46] 엄격근엄진지15576 18/05/21 15576 13
77034 [일반] 요즘 얘들과 대화하면 나도 이제 아재라고 느끼는 옛날과 지금 이야기들 잡담. [13] 장바구니6854 18/05/21 6854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