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드래곤나이트의 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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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드래곤나이트의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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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드래곤나이트의 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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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드래곤나이트의 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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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드래곤나이트의 모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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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드래곤나이트의 사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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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대한 업적이 대체로 그러하듯 그것은 실로 보잘것없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용사는 그날 심심했고, 벼랑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입에 올렸다. 그것이 발단이고 곧 시작이었다.
“고귀한 드래곤이여, 혹시 뭐 필요한 게 없는가?”
용사의 질문에 드래곤이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그건 왜?”
“무언가 선물을 주기 위함이다만.”
“이런 망할.”
드래곤이 짜증을 내자 대지가 진동했다. 용사가 당황하여 물었다.
“아니, 필요한 게 없는지 물었다고 그렇게 화를 낼 것까지야 있는가?”
드래곤은 용사를 노려보았다. 고귀한 드래곤나이트는 가까스로 그 시선을 받아낼 수 있었다.
“드래곤이 선물을 받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아니. 그렇지는 않다만.”
“당연하지. 우리들 드래곤은 자존심이 강한 존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용사는 물으려 했다. 그러나 드래곤이 먼저 설명했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힘으로 빼앗거나 위협해서 얻는 것이 우리의 행동 원리야. 그러니 선물을 받는다는 건 곧 내게는 그것을 얻을 능력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치욕스러운 행동이나 다름없다고. 그건 정말 모욕적인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만.......”
용사가 혀를 차더니 중얼거렸다.
“거 생각보다 까다로운 족속이구만 그래.”
드래곤이 노려보자 용사는 찔끔하며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날 용사는 갑옷을 입고 칼을 찬 후 길을 떠났다.
용사는 걸었다. 위대한 드래곤나이트로서 드래곤에 탑승하여 날아가는 대신 스스로의 두 발로 걸었다. 천년설과 만년빙으로 뒤덮인 산맥의 줄기를 따라, 가장 높은 산의 중턱에 입을 벌린 가장 어두운 동굴로 용사는 들어갔다. 신이 생명을 창조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원초의 동굴을 따라 그는 들어갔다. 태곳적 생명이 창조됨과 동시에 분리된 어둠의 조각들이 그림자 속 악령으로 화한 암흑 속으로. 태초 이래로 그 어떤 생명체도 가지 못한 곳으로.
영겁의 죽음이 지배하는 암흑의 공간에서 용사는 유일한 생명이었다. 어둠의 피조물은 그것이 창조된 원리에 따라 생명을 향해 이끌리듯 다가왔다. 단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흔적조차 소멸시킬 수 있는 존재들 사이에서, 용사는 오직 한 자루 검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장벽은 한 장의 종이처럼 얇디얇았다. 그것이 부서지는 순간 용사의 존재는 무(無)로 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용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고 날아드는 사멸을 뛰어넘으며 그는 전진했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그는 오직 발걸음을 앞으로 떼어 놓는 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비틀리고 왜곡되다 마침내 그치고야 마는 곳에 이르렀을 때, 용사는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었다.
신화는 절대자가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했다. 전설은 그 세계의 중심이 마력을 띤 금속인 아다만타이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용사는 그 전설이 사실임을 직접 확인한 최초의 생명체였다. 지상의 햇빛이 이르지 못하는 지하 가장 깊은 곳에서, 아다만타이트는 스스로가 내뿜는 빛으로 찬란하리만큼 빛나고 있었다.
용사는 허리에 찬 곡괭이를 끌렀다.
용사가 돌아왔을 때 드래곤은 자고 있었다. 용사가 다가가 입 주변을 두드리자 그녀는 한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뭐야. 오랜만이네.”
드래곤이 뒤이어 두 눈을 모두 뜨더니 날개를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살짝 헛트림 소리를 낸 후 용사를 쳐다보았다.
“너 좀 늙은 거 같다? 수염도 덥수룩하고.”
“이 년하고도 석 달 만이로다.”
“얼마 안 되었는데?”
드래곤이 고개를 갸웃하다 곧 끄덕였다.
“아. 너희 종족들은 우리와 세월의 기준이 다르지. 가끔씩 잊어버리네.”
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드래곤으로서는 생애가 고작 칠팔십 년에 불과한 필멸자의 관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드래곤이 늘어지게 하품을 한 후 그렇지 않은 척하며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래. 어딜 갔다 왔는데?”
“이 물건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용사가 등에 둘러맨 가방을 내리더니 안을 뒤적였다. 그곳에서 빠져나온 용사의 손에는 자신의 머리만 한 덩어리 하나가 들려 있었다. 드래곤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것을 관찰했다. 잠시 후 드래곤의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좀처럼 놀라지 않는 그녀가 어지간해서는 나타내지 않는 감정이 실려 있는 목소리였다.
“이거, 설마 아다만타이트?”
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이 말했다.
“이만한 크기는 보는 것조차 처음이야. 게다가 그거, 세공이 된 거 같은데?”
“그러하다.”
용사가 대답했다.
용사가 손에 든 아다만타이트는 천 년을 넘게 살아온 그녀로서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크기였다. 그것은 인간의 왕국 열두 개를 사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을 정도로 큰 아다만타이트 덩어리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매우 정교한 솜씨로 다듬어져 특정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도 강인한 재료인 아다만타이트를 다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다만타이트로 만든 도구가 필요했다. 그 도구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질문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지만, 어쨌거나 아다만타이트를 가공하려면 그 몇 배나 되는 아다만타이트를 소모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세공된 아다만타이트 조각상이란 상상하기조차 힘든 물건이었다. 인간으로서 왕 된 자 중 가장 강성한 자에게조차 아다만타이트 세공품은 고작 반지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왕국의 주인임을 나타내는 증표로 대대손손 내려온 것이었다. 심지어 드래곤 자신조차도 지니고 있는 아다만타이트 세공품은 작은 잔 하나가 고작이었다. 그 잔은 그녀의 보물더미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드워프 대장장이의 우두머리에게 부탁한 것이로다. 예전에 빚을 준 적이 있어서.”
용사가 덧붙였다. 하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 아다만타이트를 가공할 수 있는 존재는 드워프뿐이었다. 필시 그 드워프 대장장이는 가공 과정에서 나온 아다만타이트의 가루와 부스러기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드워프가 되었음이 틀림없었다.
그 아다만타이트 덩어리가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그녀는 어렵잖게 알아볼 수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불꽃은 루비요, 빛나는 눈동자는 금강석이었으며 발톱은 푸른 사파이어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나, 심지어 오래된 고대의 드래곤조차 매혹시킬 만한 물건이었다. 그녀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두 눈으로 용사의 손에 들린 조각상을 응시했다.
용사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말했다.
“강대한 드래곤이여.”
드래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아다만타이트 조각상에 못 박혀 있었다.
용사는 헛기침을 한 번 더 한 후 다시 불렀다.
“고래로부터의 맹약에 따라 드래곤나이트가 부르나니, 그대 강대한 드래곤이여.”
“......왜?”
모든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가까스로 조각상에서 시선을 떼어낸 드래곤이 말했다. 용사가 대답했다.
“혹 괜찮다면 나를 위협해 주지 않겠나?”
“응? 어째서?”
“내게 필요한 일이라 그러는 것이다.”
드래곤이 미심쩍은 듯 쳐다보자 용사가 덧붙였다.
“드래곤나이트의 율법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정 필요하다면 내가 부탁이라도 하지.”
“아니 뭐 그럴 것까진 없는데.......”
드래곤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곧 험악한 표정으로 불길을 내뿜었다. 그녀의 입에서 토해진 불길은 멀리 날아가 산맥 중턱에 부딪히더니 곧 산 두 개를 증발시켜 평지로 만들어 놓았다. 뒤이어 그녀는 마력이 담긴 포효를 내질러 날아가던 불사조가 까무러쳐 추락하고 공기의 정령이 겁에 질려 도망치도록 했다. 그리고 발을 굴려 지진을 일으키고, 날갯짓으로 오래된 숲 하나를 통째로 뿌리째 뽑아버린 후 그녀는 물었다.
“이 정도면 됐나?”
용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가롭게까지 들리는 어조로 말했다.
“참으로 두려운 힘이로다. 그런고로 나, 브루하스의 용사 바그네스 폰 바니반스는 강대한 그대의 힘에 굴복하여 이 조각상을 빼앗기도다.”
그리고 용사는 조각상을 쥔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드래곤의 얼굴이 당황으로 가득 차자 용사가 재촉하듯 덧붙였다.
“선물은 아니다. 그저 강대한 그대의 위협에 굴복하여 바칠 뿐이지.”
드래곤은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간 후에 팔을 내밀었다. 그녀는 두 손가락 끝으로 조각상을 살짝 받아들었다. 아다만타이트 조각상의 무게에서 해방된 용사는 어깨를 살짝 으쓱인 후 몸을 돌렸다.
“그럼 이만 가 보겠노라. 멀리 다녀왔더니 좀 피곤한지라.”
그리고 용사는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터무니없을 만큼 길고 오래된 삶 속에서조차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드래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해가 졌다. 달이 떠올라 하늘 한가운데를 유유히 지나 다시 서쪽으로 넘어갔다. 동녘 하늘이 천천히 백색으로 물들 무렵에 마침내 그녀가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의 동굴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리고 높은 단상에 아다만타이트 조각상을 조심스레 올려놓은 후 한동안 그것을 응시했다.
조각상의 모습이 어쩐지 자신과 닮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