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불해님의 글을 보고 삘 받아 글 한 편 올립니다. 사색의 기회를 마련해 준 훌륭한 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이 글은 영화를 보는 제 관점이면서 동시에 신불해라는 글쓴이에 관한 비평이기도 합니다. 혹시나 불편하게 느껴지신다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철수는 영화를 보고 나와 영희에게 전화를 건다.
"방금 <여인의 향기>를 봤어."
"무슨 내용이야?"
그럼 철수는 영화의 줄거리를 줄줄 이야기한다.
"수류탄 사고로 시력을 잃고 퇴역한 군인이 있어. 몸은 늙고, 눈은 멀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지. 성격도 괴팍해서 가족들도 싫어해. 그래서 자살을 결심하고 자기를 돌봐주러 온 알바생하고 최후의 여행을 떠나. 뉴욕 최고급 호텔에 묵고... 근데 또 탱고를 기가 막히게 추는 거야... 페라리도 장난 아니게 몰아..."
철수의 이야기를 들은 영희가 대답한다.
"거 영화 재밌겠네."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나누는 대화다. 우리는 영화를 보통 줄거리로 파악한다. 영화뿐만이 아니다. 소설, 드라마, 만화, 대개의 픽션을 줄거리로 파악한다.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을 때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줄거리를 떠올린다.
그러나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다. 줄거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그럼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주제다.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설파하고자 하는 메시지이자 사상이고 철학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화의 내용'으로 줄거리를 말한다. 다음처럼 질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영화 주제가 뭐야?"
왜 그럴까? 주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제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접하는 매체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보통 작가는 작품의 주제가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작가와 관객 사이의 소통은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객은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지 않는다. 지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래서 작품을 출시하면 그 순간 작가의 손을 떠난다고들 한다. 작품은 작가에 속하지 않는다. 작가로부터 독립된 세계로서 존재한다. 관객이 그 세계로부터 어떤 의미를 얻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가도 모르고, 심지어 관객도 모른다. 작품을 온전히 경험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더 기막힌 지점은 경험할 때마다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누구는 <여인의 향기>를 두고 "스텝이 꼬이면 그게 바로 탱고예요."라는 문장을 주제로 꼽을 것이다. 누구는 "비겁하지 않은 순수와 용기"라고 말할 것이다. 나에게 20대까지 <여인의 향기>는 후자로 다가왔다. 지금은 전자의 울림이 더 크다.
그 울림을 글로 풀어쓰면 비평이 된다. 작품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비평가의 마음속에 울리는 소리를 풀어낸 것이다. 작품은 거울이다. 비평은 그 거울을 통해 비평가의 메시지, 사상, 철학을 설파하는 일이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표현하며, 독자에게 나를 보내는 행위다. 그래서 비평도 예술이 된다. 예술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영화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영화가 될 수 없다. 거울이 아무리 왜곡 없이 맑고 깨끗하다 한들, 그에 비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평은 정답이 중요한 게 아니다. 별점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결론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 있고, 논리적이며, 탄탄한 근거를 갖추었느냐가 중요하다. 비평가의 천재성은 정확한 점수 판정에 있지 않다. 독자가 생각하는 점수나 토마토 지수를 잘 맞춘다고 좋은 비평가가 되는 게 아니다. 비평가의 천재성은 참신한 논리와 독특한 표현을 풀어내는 과정에 있다.
나는 역사를 잘 모른다. 역사를 비평과 똑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비평은 취향으로부터 시작되고, 역사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근본부터 다르다. 어쩌면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그냥 역사다."라는 문장에 담긴 고뇌와 열정의 세월을 생각할 바, 내가 감히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 자격도 없다.
다만, 신불해라는 역사가에 관해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역사가 그냥 역사였다면 나는 아마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으리라. 나는 역사를 잘 모른다. 흥미도 없다. 여타 역사 서적이나 교과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겠나? 사실 감흥 따질 여유도 없었다. 시험이 아니면 역사를 펴놓고 집중할 이유가 어디있겠나. 그러나 신불해의 글은 다르다. 그의 글은 흥미를 돋우고, 맥락을 짚어주며, 읽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든다. 멋들어진 비유부터 개드립까지 활용하며 당시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하이퍼 텍스트에 어울리는 적절한 그림 자료와 짤방도 훌륭하다. 역사라는 결과는 나를 끌어당기지 못한다. 그러나 신불해라는 과정은 나를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신불해의 글을 좋아하고 경외하는 이유는 그게 '그냥 역사'라서가 아니다. '신불해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유머 글을 올리며 출처를 따라가다 세종실록을 살펴본 적이 있다. (
https://cdn.pgr21.com/?b=10&n=311955)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적인 기록 문화유산이라고는 하나, 그걸 읽는 것은 그닥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풀어쓴 글도 별로 재미없었다.
망한 유머 그렇게 어설피 흉내내고 난 후 알게 되었다.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어렵다. 더구나 재미지고 빠져들게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걸 해낸다는 건 그야말로 예술적인 경지라 할 수 있다.
역사는 역사일 수 있지만,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비평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역사는 그냥 역사다. 그러나 신불해의 역사는 예술이다."
※ "역사는 그냥 역사다."라는 문장은 사실의 엄정함을 강조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역사를 통해 무엇을 보느냐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역사라는 불변의 사실조차 왜곡하는 허무맹랑한 해석마저 용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양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사실을 해치지 않는 경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너무 깊이 파고들다 중심을 잃고 헤매서는 안 된다. 기발함이 지나치면 탄성이 아니라 헛웃음이 나오는 법이다. 억지로 짜 맞춘 논리와 과장된 의미부여는 원전을 훼손하기도 한다. 비평은 다양한 해석을 권장하는 편이다. 비평이란 그럴듯한 헛소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작품이라는 경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벗어나면 정말로 헛소리가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