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종교인이라는 것이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게 좋은 직업이 되어줄 수 있다면야. 뭐라 하겠습니까? 당장 석가모니도 ‘아버지는 날 이해 못해!’ 하면서 뛰쳐나갔고. 수많은 사람의 영적인 영혼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누군가가 성공적인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면, 적어도 그 기술이 시대에서 블루오션일 필요가 있습니다. 수도꼭지가 온 가정에 보급되었는데도 물장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꼴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오늘은 사베타이 체비(Sabbetai Zevi)의 불쌍하고도 기가 막히는 삶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내가 바로 미륵... 아니 메시아다! (모든 이미지 출처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입니다.)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수’가 구세주였다는 것을 유대교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 없는, 따라서 소수민족인 유대인들이 고통을 받을 때 그들이 비록 ‘예수’는 인정하지 않더라도, ‘메시아’, 즉 구세주가 언젠가는 등장하여 다시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왕국을 되찾아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단체로 그렇게 믿고 있으니, 시간이 조금씩 지날 때마다. 하나씩 ‘구세주야? 나도 끼어야지!’ 라고 말하며 자칭 메시아들이 등장하는 것은 신기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성을 한 꺼풀 벗기자면 ‘예수’의 등장도 그런 문화적 맥락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사베타이 체비가 등장했습니다. 로마니옷(Romaniote) 유대인, 즉 동로마 시절에 현재의 그리스 지역에 정착하여 사는 부유한 유대인 공동체에 속하는 출생이었지요. 아버지는 닭장수로 사업을 시작하여 영국계 무역회사에 납품하는 일로 지역에서 돈을 꽤나 번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베타이의 삶도 상당히 유복했습니다. 이 중산층의 유대인 청년은 신학과 철학에 심취해서 23살 때 드디어 많은 인물들이 도달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내가 바로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다!’ 라고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의 이름 ‘사베타이’도 토성, 그러니까 영어로는 ‘새턴’으로 읽힐 만한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상징 중에는 ‘토성’도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운명에 납득해버린 사베타이였습니다.
사베타이는 교주가 될 만한 모든 자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변이 대단했고, 당시 유대교의 신비주의 운동이었던 ‘카발라’에 대해서도 상당히 깊게 공부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이걸 다시 말하자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신학적인 논쟁에 있어서 그가 질 수 없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가 중동의 제국 내부의 영토를 돌아다닐 때마다 그의 신성을 증명하는 추종자들이 이곳저곳에서 등장했습니다. 그에게 물심양면으로 엄청난 지원을 해주는 유대상인들의 경우에는 그들을 대표할 사회저명인사로서 사베타이와 자주 만나줬고요. 그러니 사베타이 입장에서 유대인들의 메시아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습니다. 어쩌면 다른 종교를 따로 거대하게 만들 수도 있을지 몰랐지요.
그런데, 사베타이가 태어났던 제국이 어디냐고요?
17세기 오스만 제국이요. 16세기 술레이만 대제가 종묘사직을 대대적으로 개혁한 이후 개국 초기 유럽전체를 공포로 몰아넣던 정복제국으로서의 역동성을 잃어버렸지만, 서방과 동방을 잇는 거대국가로서의 체급은 아직 녹슬지 않았던 17세기의 오스만 제국에서 사베타이가 태어났던 것입니다.
이미 사베타이의 시대에서 구세주는 레드오션이었습니다. 이미 선지자와 창시자들이 만들어놓은 종교를 숭배하는 대제국들로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사베타이는 그걸 몰랐거나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지요.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4세는 사베타이에 대해서 꽤나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밑의 실무자, 재상 아메드 쾨프륄루는 진지하게 사베타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베타이가 상징적인 의미든,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든 콘스탄티노플에 와서 터키 술탄의 왕관을 뺏어서 쓸 것이라는 ‘자칭 예언’을 실현하려고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자. 아메드 쾨프륄루 재상이 손을 써서 바로 사베타이를 연행해버립니다. 쾨프뢸루 재상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나마 황가에 대해서 헛소문이 돌까 봐 사전에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SNS로 중계되지는 못했겠지만, 그렇지도 않아도 뜨거웠던 사베타이의 유명세에 오스만 제국의 공권력이 직접 답변을 날려주는 모양새가 되어 사베타이를 전유럽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어줍니다. 그에 대해서 떠드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그를 메시아로 믿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나톨리아에 있는 감옥으로 이감되자 그를 보려고 온갖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메시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는 모습을’ 보기위해 성지순례를 하게 됩니다. 그가 있던 감옥은 ‘미그달 오즈 (Migdal Oz)’ 즉 힘의 요새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베타이는 신나는 파티타임을 가집니다. 일단 거기 교도관들을 포함한 터키인 관리들이 인간적으로 매력적이면서도, 추종자들이 보내준 수많은 돈과 선물을 가지고 있는 사베타이에게 모질게 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괜히 ‘파티’ 타임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수감될 때 유월절이라는 유대인의 축제 절기가 오자 다 같이 모여서 양을 구우면서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어느 구세주나 그렇듯이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 소문이 커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 정도 소문이 돌 정도의 수감생활이라면 부럽기는 하네요.
어느 성공한 종교인이 그렇듯이, 이제 어디까지가 사베타이의 본심일지, 지지자들의 부추김일지는 모르겠는 영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도 사베타이는 자신이 술탄을 무찌르고 유대인들만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선언을 하는 등 현실성 없는 이야기만을 계속해서 떠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큰일이 일어납니다. 사베타이의 패기 넘치는 발언을 가만히 재미있다 재미있다하면서 듣고만 있던 술탄 메흐메드 4세가 사베타이를 직접 부른 것이지요. 그리고는 쾨프뢸루 재상과 상의한 다음에 사베타이에게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합니다.
1. 궁수들이 화살을 쏴볼 태니 기적으로 고슴도치가 되는 것을 막아보아라
2. 꼬챙이에서 멋지게 처형당할 기회를 주겠다.
3.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조용히 살아라.
레드 오션의 메시아 사베타이는 하룻밤을 고민한 다음 여기서 3번을 고릅니다.
그러자 신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사베타이는 분명 자칭 구세주로서 많은 기행을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창녀와 결혼했으며, 자신에게 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어기고, 자신의 생일을 신성한 기념일로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신도들은 이것이 모두 구세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엄청나게 선한 행위이고 따라서 신성한 행위임을 의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 빗나가거나, 실패하거나, 오스만 제국의 공권력에게 제한당해도 그의 ‘고난’으로서 정당화되었고 이 무적의 논리는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과해! 나의 사베타이는 그러지 않아!그러나 이슬람교로의 개종이라니요! 신이 된 예언자들로 이미 가득한 세상에서 태어난 레드오션의 선지자답게 사베타이는 죽음으로서 역사에 영원히 남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다른 종교인들과는 대비되는 방식으로 3번을 선택했습니다. 결말조차도 사베타이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엄청난 행동에 따라서 그의 지지자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고 흩어졌습니다. 비록 그를 지지하던 극성 추종자들이 일부 남았었지만 역사는 그들에 대해서 깊게 기록을 남겨두지 못하였습니다.
사베타이 그 자신도 이슬람교도가 된 대가로 술탄이 직접 자신의 문지기로 임명하고 많은 연금을 주었지만, 끝내 술탄의 총애에서 벗어나 현재 몬테네그로에 해당하는 먼 영토로 유배당하여 쓸쓸하게 죽었습니다.
흑해 무역 권을 타고 동유럽에서 사베타이를 지지하던 유대인들이 많았기에, 한 세기쯤 뒤에 폴란드의 야코프 프랑크(Jacob Frank)라는 인물이 사베타이의 환생임을 주장하여 폴란드의 가톨릭 당국과 재미있는 일을 벌입니다. 애석하게도 야코프도 자신이 죽고 나서는 역사에 별 영향력을 남기지 못하고 맙니다. 정확히는 딸인 에바 프랑크가 온갖 재미있는 책과 주장을 남겼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던 시대라 정확하게 기록이 남지는 못했습니다. 아쉽게도 말이죠.
저같이 신비주의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사베타이와 야코프가 특유의 이단적인 방법으로 카발라를 정리하여, 인간 내면의 선한 세피토르에 반대되는 악한 클리포트니, 육신을 통한 구원이니 하는 책을 남겼다는 말에 조금은 흥미로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역사에서 초라한 퇴장을 한 것은 바뀌지 않지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살고 있는 자칭 구세주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메시아는 결국 레드오션 업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직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자신이 좋다면 좋은 것이겠지요? 사실 사베타이 정도면 그를 관찰하던 술탄만큼이나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비주류 역사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수정: 오타수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