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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5/28 18: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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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사복불언(蛇福不言)
어릴 때 누구나 한번 쯤은 읽으셨을 겁니다- 삼국유사.
커서는 전문적으로 파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이 분들이 보시면 '야 그게 아니야. 웬 헛소리냐'라고 하시겠지만...
어느 날 문득 삼국유사 의해편(義解編)의 사복불언蛇福不言조에 대해 생각난 것을 써 볼까 합니다.


『삼국유사』 의해편(義解編)의 사복불언蛇福不言 이야기는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인터넷 검색해서 나오는 것을 퍼왔습니다].

서울 만선북리(萬善北里)에 있는 과부가 남편도 없이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12세가 되어도 말을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므로 사동(蛇童; 아래에는 사복蛇卜이라도고 하고, 또 사파蛇巴·사복蛇伏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사동蛇童을 말한다)이라고 불렀다.

어느날 그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그때 원효(元曉)가 고선사(高仙寺)에 있었다.
원효는 그를 보고 맞아 예를 했으나 사복(蛇福)은 답례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대와 내가 엣날에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지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원효는 "좋다"하고 함께 사복의 집으로 갔다.

여기에서 사복은 원효에게 포살(布薩)시켜 계(戒)를 주게 하니, 원효는 그 시체 앞에서 빌었다.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

사복은 그 말이 너무 번거롭다고 하니 원효는 고쳐서 말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우니라."

이에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가 말한다. "지혜 있는 범을 지혜의 숲 속에 장사지내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복은 이에 게(偈)를 지어 말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라수(裟羅樹) 사이에서 열반(涅槃)하셨네.
지금 또한 그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蓮花藏)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

말을 마치고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밑에 명랑하고 청허(淸虛)한 세계가 있는데, 칠보(七寶)로 장식한 난간에 누각이 장엄하여 인간의 세계는 아닌 것 같았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속에 들어가니 갑자기 그 땅이 합쳐 버렸다. 이것을 보고 원효는 그대로 돌아왔다.

후세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 금강산(金剛山) 동남쪽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도량사(道場寺)라 하여, 해마다 3월 14일이면 점찰회(占察會)를 여는 것을 상례(常例)로 삼았다.
사복이 세상에 영험을 나타낸 것은 오직 이것 뿐이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황당한 얘기를 덧붙였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찬(讚)해 말한다.

잠자코 자는 용이 어찌 등한하리.
세상 떠나면서 읊은 한 곡조 간단도 해라.
고통스런 생사가 본래 고통이 아니어니, 연화장 세계 넓기도 해라.


이 이야기를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아래 내용은 인터넷 검색해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을 퍼온 것입니다]. 중고생들이 달달 외우겠죠?

'불법이 멀고 숭고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있다'던지,
'인간 세상의 아주 가까운 곳에 연화장이라는 초월적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전생의 인연이 소중하여 현생에까지 이어지니 사람의 삶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던지.


어린 시절 아무 것도 모르고 읽었을 때는 그냥 그랬습니다. 좀 커서 읽었을 때도, 이런 의미부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길을 걷다가 저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원효가 사복과 함께 장례를 치렀다면, 왜 원효의 기록에는 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극락정토를 눈 앞에 두고서도 담담히 돌아선 이야기라면, 해골 바가지의 물을 마신 이야기만큼이나 의미있는 이야기일텐데.

어쩌면 사복은, 어머니의 장례를 간신히 치르고 그냥 사라졌던 것이 아닐까?
과부가 남편도 없이 낳은 아이, 더구나 장애로 사람 구실도 못해서 사복이란 이름이 붙었던 아이라면 고향에서 받았을 대접은 뻔합니다.
사복에게 고향은 아픔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는 곳이었을테고, 자신 때문에 고생만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더 머물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몸도 성치 못한 자신을 먹여살려주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냥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닐까?

사복의 주위 사람들은, 몸도 성치 않은 사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사복의 행운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사복은 어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라고 얼버무렸던 것은 아닐까?

그 이야기가 옆 마을, 다른 고을로 퍼지면서 부풀려졌던 것을 아닐까?
사복보다는 나았겠지만, 배고프고 힘든 나날만 살아온 사람들- 촌주가 멋대로 부려먹어도, 귀족에게 얻어맞아도 어디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던 사람들. 그래서 몸서리쳐지도록 이 땅이 싫었지만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자신만도 못한 사복이 극락정토로 갔다는 이야기는 마치 복음처럼 다가왔던 것이 아닐까?  

그런 사람들의 마음과 바람이 한 데 모여, 절을 짓고 모임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삶이 힘들지만, 극락정토를 바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에 모임이 커지게 되었고,
여기에 민초들의 바람과 마음을 이용할 줄 알았던 사람들이 끼어들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복의 어머니 장례식 때 집에서 자고 있던 원효가 불려나와서 사복에게 핀잔을 먹고, 어디선가 한 많은 삶을 마쳤을 사복은 신라 10성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아닐까?  

뭐 그냥 해본 생각입니다.

* 제가 이제 가야해서, 댓글에 답은 못해드립니다.
이상한 글만 싸고 튀는 것 같아서 뭐하긴 합니다만,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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