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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얼마 전 '4월은 너의 거짓말' 을 보았습니다. 실은 작년 5월 쯤엔가 보려고 했었는데, 어찌저찌 하다가 보지 않았었습니다. 그 때 마침 덕질의 기운(?)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기도 했고...... 해서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게 되었네요. 보고 나니 '내가 왜 이걸 진작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한 때 천재라 불리웠던, 그러나 어머니가 죽은 다음 자기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어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 천재 피아니스트 아리마 코우세이의 일상은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후로 모노톤의 연속이었습니다. 4월, 어느 맑은 날, 벛꽃이 화사하게 핀 어느 공원에서 같은 또래인 금발의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한 그녀의 이름은 미야조노 카오리. 이 소녀로 인해 모노톤이던 아리마 코우세이의 일상은 아름다운 색채로 물들어 가게 되는데......
기본적인 줄거리는 'A boy meets a girl' 의 클리셰를 따르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주인공인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피아니스트 아리마 코우세이가 어느 날 소꿉친구인 사와베 츠바키의 부탁으로 역시 소꿉친구인 와타리 료타를 츠바키의 친구에게 소개시켜 주는 자리에 나가게 됩니다. 약속 장소인 공원에 조금 먼저 나간 코우세이는 멜로디카(애니에선 '피아니카' 라고 부름. 우리나라에선 멜로디언이라고 부르는 악기입니다.)를 연주하고 있는 소녀를 보게 됩니다. 약간의 해프닝 끝에 악연으로 소녀와 첫만남을 가지게 되고, 그 소녀는 츠바키가 와타리에게 소개해 주려던 그 친구였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미야조노 카오리로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 직후 바로 옆의 홀에서 하는 바이올린 콩쿨 대회에 나가게 됩니다. 그 홀, 토와 홀은 아리마에게는 다소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였는데요, 피아노 연주를 하면 중간부터 자신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 증상으로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곳입니다. 콩쿨 대회에서 악보를 무시한 채 자기만의 개성으로 연주하는 카오리에게 코우세이는 일종의 동경심 같은 것을 가지게 됩니다. 연주자로서 카오리도 코우세이를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와타리 대신 코우세이와 '친구 A'로서 빵집에서 빵을 같이 먹게 되고 마침 거기 있던 피아노로 (역시 약간의 해프닝 끝에) 코우세이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키게 되고, 거기서 코우세이가 자신의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되는데, 어쨌든 코우세이에게 콩쿨 2차 예선의 반주를 부탁하게 되고, 코우세이는 당연히(!) 거절하는데, 카오리는 끈질기게 부탁합니다. 거기다, 코우세이가 갈 만한 곳에 모두 악보를 붙여 놓고, 또 점심시간에는 2차 예선에서 연주할 곡만 틀어 줍니다. 하지만, 콩쿨 당일까지 코우세이는 계속 거절하고 도망다니다가, 콩쿨을 몇 시간 남겨 놓고 학교 옥상에서 카오리가 눈물로 하는 부탁을 듣고 결국 수락합니다. 거의 맞춰 볼 시간도 없었지만, 그 동안 눈이 닿는 곳마다 악보가 있었고, 또 점심시간마다 곡을 틀어주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곡에는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거기에 천재 주인공 버프까지!) 콩쿨 시간에는 늦지 않게 도착하였고, 이윽고, 카오리와의 연주를 시작하지만, 예의 자기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 갈등하다가 결국 반주를 멈추게 되어 버립니다. 카오리는 그럼에도 꿋꿋이 연주를 계속하지만, 결국 카오리 또한 연주를 멈춥니다. 그러나 잠시 뒤 코우세이에게 보라는 듯 다시 홀로 연주를 시작하고 멍하니 지켜보던 코우세이 또한 다시 힘을 내서 반주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의 한 장면을 떠올린 후 각성하여 카오리와 멋진 연주를 하게 됩니다.
스토리를 더 적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일단 줄이고요. 여기까지만 보면 코우세이와 카오리의 관계가 중심인 것 같아 보입니다. 물론 그것이 메인 스토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 외에도 코우세이와 그 주변인물들의 추억과 아픔, 깨달음, 극복, 연주가로서의 고뇌 및 서로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펼쳐집니다.
등장인물들이 다른 유명한 만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거나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이치고 동맹' 에서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는 장면이 있고, 그 외에서 스누피 등에서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는 장면이 몇 군데 있습니다.
작화는 전반적으로 좋습니다. 캐릭들도 잘 나온 편이고 배경 또한 아름답습니다. 이 애니를 보면서 처음 느낀 게 '배경 참 예쁘게 그렸다' 였으니까요. 실사와 같은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잘 살려낸 아름다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작붕도 거의 없는 편이며 작화 수준도 매 화수마다 고른 편입니다. 또 작화진의 세심함이 엿보이는 것이 카오리의 병세가 악화되는 후반부로 갈 수록 카오리의 입술이 핏기가 없게 그려지고, 머리카락 색깔도 탈색되듯 점점 옅어집니다.
주인공인 코우세이와 카오리가 연주가인 만큼, 연주회 장면이 자주 나오는 편인데요. 작화가 좋은 만큼 이의 묘사가 또 멋집니다. 단순히 연주하는 모습, 현란한 손의 움직임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는 사람, 특히 코우세이의 심리상태에 따른 배경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의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는 물 속에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든가, 소리에서 빛이 난다고 느껴질 때는 빛망울들이 공중에 떠 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든가, 또 소리가 화사해질 때는 벛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든가...... 이 부분에서 가장 압권인 것은 역시 마지막회에서 카오리와 환상 속에서 합주를 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 아니, 무대 자체가 사라지고 구름이 예쁘게 펼쳐져 있는 하늘 위에서 카오리와 합주를 하는 장면이지요. 환상 속에서 카오리는 건강하다는 듯 즐겁게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코우세이가 치는 피아노에 비친 구름은 아름답기만 하고요. 그리고 날리는 색색의 빛의 눈송이...... 제작진이 이 장면에 온 힘을 기울인 듯 이 부분은 첫장면부터 끝장면까지 음악과 함께 버릴 장면이 없이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왔고요. 장면, 음악, 그리고 그 조화...... 너무 아름다와서 슬픈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여담으로,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신 분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적어도 아리마 코우세이가 연주하는) 모든 연주회 장면이 좋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사소한 단점들까지 모두 가려진다고 할 정도로요. 3D로 표현된 피아노도 멋졌구요.
그 외에 연주하는 사람의 심리묘사 또한 뛰어난데요. 연주를 하기에 앞서 느끼는 긴장감이라든가, 연주를 하고 있을 때의 심리상태, 연주를 하고 나서 긴장이 풀린 상태 등이 인물의 행동 및 대사, 배경의 변화 등으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장면에선 '무대 뒤편의 이야기' 를 살짝 엿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애니메이션이므로 만화적인 과장이 있긴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리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원작작가 실제 이 쪽 종사자들의 조언을 많이 참고로 했고, 실제 연주 장면도 촬영을 했다 하니 그 결과물이 아닐까 합니다.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가 '에어 바이올린' 을 켜는 장면인데, 21화에서의 병원 옥상에서의 에어 바이올린을 켜는 장면도 아름답지만, 18화에서 아리마 코우세이와 아이자 나기의 피아노 연탄을 병실에서 핸드폰을 통해 들으면서 에어 바이올린을 켜는 장면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선 바이올린이 그려지지 않지만요. 처음 볼 때는 그저 그랬는데 몇 번 보다보니 뭔가 그 장면에선 가슴에 울컥 하는 것이 느껴지더군요.(예, 이 애니 다 본 다음에 각 연주회 장면만 각각 20~30번씩 돌려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모든' 연주회 장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끝까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결론적으로는 슬픈 애니메이션입니다. 근데, 단순히 슬픈 것이 아니라 슬픔을 '연주' 하는 느낌이 듭니다. 리듬과 멜로디를 따라 완급을 조절하고 강약을 맞춰 가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일반적인 슬픈 애니메이션이 후유증이 강하게 남는데 비해 이 작품은 '슬픔의 여운' 이 진하게 남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잘 보지 않는 사람이 제게 '애니 하나만 추천해 달라' 고 했을 때 막상 추천하려 하여 그 동안 봤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면 추천할 만한 작품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어느 정도 애니메이션을 알고 본 사람이 아니면, '이게 뭐야?!' 할 것 같은 작품이 대부분이라서요. 하지만, 이 작품이라면 애니,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에게라도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많지 않은 제 인생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후 ── 작품은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데, 제 필력이 부족하여 그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한입니다. 여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뭐,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미 스포를 많이 당하신 셈이지만, 어차피 이런 이야기는 지금은 많이 나와 있어 신선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이 부분에서 이 작품은 스토리를 아름다운 연출 및 음악과 함께 잘 풀어갔다고 생각합니다.)
P.S. - 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는 동영상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4월은 너의 거짓말' 에 관련된 댓글이 달려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뭐,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보고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 라는 말들이 많이 보이고요. (예를 들면 이 게시물 같이 말이지요. → (베토벤의 크로이쳐 소나타. 독일 바이올리니스트인 안네 소피 무터가 연주한 영상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선 카오리가 2화에서 '멋대로' 연주했었죠.)) 애니 제목이 'Shigatsu wa Kimi no Uso' 라고도 나오고 'Your Lie In April' 이라고도 나오는 걸로 보아선 여러 나라의 유저들이 보고 댓글들을 단 듯합니다.
P.S. 2 - 코우세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친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카오리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 했는데, 실제로 그 입장에 있었던 것은 코우세이가 아니라 와타리였다는 것이 참...... 하지만, 자기를 금방 잊어버릴 것이라는 카오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와타리도 카오리를 정말 좋아했고, 잊지 못하는 듯 합니다. 카오리가 죽은 후에도 카오리와 같이 찍은 핸드폰 배경화면을 지우지 못 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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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타미나라는 시간대에 방송하는 애니메이션들이 대체로 일반인에게도 진입장벽 낮은 작품들이죠
4월구라는 단점이 있긴한데 장점이 단점을 덮을 만한 완성도로 만들었다는 느낌입니다
마침 국내 블루레이 정발도 이번 달이면 전부 발매되네요
우리말로도 더빙되어 있고 우리말 코멘터리로 조금이나마 있어서 엄청 만족스럽습니다!
KBS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와 비슷한 시기에 방영했죠.
카오리와 순봉씨(이성계.. 가 아니라 유동근 씨가 연기하셨죠)가 소심&선량 -> 다혈질 -> 병원행 -> ??? 테크를 똑같이 타더라고요?
비교해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같이 보니 정작 감동이 줄었습니다. 자장면 세 그릇 먹은 기분이랄까...
결말이 어느정도 예정되어 있고 진부할 수 있는 내용을 깔끔하게 풀어나간 점에서 이미 그럭저럭 괜찮은 작품인데, 연주와 같은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상당히 좋은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만화를 괜찮게 보신 분들은 애니메이션으로 꼭 한번 더 보라고 권해드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OST도 평가가 좋습니다. 1기 오프닝인 "힘이 나요 힘이 난다요"(?)가 워낙 유명한 곡이긴 해도 역시나 2기 엔딩인 오렌지가 압권이 아닐까 싶어요.
작가 인터뷰 보면 애초에 곡의 흐름에 맞춰서 장면들을 다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마지막 연주 장면에서도 카오리가 언제 나타나고 언제 퇴장하고 그런 부분을 전부 생각해 뒀었다고 하니....애니 제작진도 원작을 전부 엄청 많이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꽉꽉 채웠다고 하니 사실 작정하고 만든 애니도 맞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