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 보고 온 [밤의 해변에서 혼자] 후기입니다. 볼까 말까 고민했는데 너무 궁금한 마음에 보고 왔습니다.
일단 혼란스럽습니다. 익히 제가 알던 홍상수 영화와 아주 닮았지만 또 상당히 다릅니다. 늘 홍상수 영화는 자기 비판과 자기 합리화를 누구보다도 솔직히 보여줬습니다. 근데 이번은 다르죠. 온 국민이 아는 관계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양심이 없는 영화처럼 보이면서도 전반적 구도와 형식 면에서는 반성의 태도를 취합니다. 또한 이 정도로 그의 작품에서 '외로움'이 가볍지 않고 무겁게 작품을 지배한 경우가 있었나 싶습니다. 유머러스한 부분도 꽤나 있는 편이지만 그 유머의 쓰임은 철저히 지금 홍감독-김민희 관계와 대비됩니다.
김민희는 그의 속 얘기를 오롯이 다 꺼내어 늘어놓고 나머지 조연들은 홍상수 본심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두 현실과 현실 아님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정신이 없는 거죠. 그 상태에서 상당히 수위 높은 솔직함을 보여줍니다. 김기덕의[아리랑]이 생각날 정도로요.
두 사람이 매체에 나온 것처럼 그들의 사랑을 포장하거나 과시하지 않습니다. 이런 요소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다만 두 사람이 어떤 면 때문에 연인이 됐고 '이 지경'에 왔는지 명료하게 보여주기에 분명 거부감이 드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것 또한 '그들 나름의' 비판적 시각 아래 묘사하고 있지만요.
어떨 땐 그들이 파렴치하고 노골적으로 느껴지면서 다른 장면에선 그저 저들도 한낱 인간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감정도 다가와요. 양가적 감정으로인해 보는 사람이 다 어지럽습니다. 이런 복합성 때문에 0점을 주고 싶은 5점 영화이면서, 5점을 주고 싶은 0점짜리 작품이라고 느껴집니다.
어쨌든 영화는 신선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도덕적 우위에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명사들의 속내를 관찰하면서 그 도덕적 우위 아래 그들의 변명을 판단합니다. 마치 영화 [라쇼몽] 캐릭터들의 각자 항변들을 듣는 것처럼요. 이런 식의 영화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 불륜을 소재로 배우부터 감독까지 그 당사자들로 극 영화를 채워서 이런 영화적 체험을 유도하는 한국 작품이 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무엇보다 '외롭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지금이 순간까지 제가 갖는 하나의 감정이 고독입니다. 저들의 외로움을 비웃었지만 그들보다 외로운 게 저 자신이니까요. (그런 생각을 영화가 유도하기도 합니다.)
아, 연기 얘기를 안했군요. 네. 베를린에서 상 받을만합니다. 특히 첫 술자리 롱테이크 씬은 연출과 연기 모두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연이었던 서영화와 정재영도 잘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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