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항의 좀비들
다행히 제주도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바람도 별로 불지 않고. 하지만 함정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여행 계획의 메인은 우도에서 탈것을 빌려 종일 돌아다니는 거였습니다. 우도는 성산항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배를 타면 금방 가지만 배가 늘 다닐 수 있는건 아니죠. 하지만 워낙 날씨가 좋아서 별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일 아침 일찍, 미리 이동수단을 대여한 업체에서 취소를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먼 바다에서 파도가 높아 배가 못떠난다는 겁니다. 좀 지나면 다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일출봉에서 시간을 보내다 배가 출발하는 '성산 여객 터미널'에 문의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걸어보니 없는 번호라고 뜨는 겁니다. 여기저기 뒤져서 간신히 다른 번호를 찾아서 걸어보니 한없이 통화중 이었습니다. 우도는 포기하더라도 그냥 성산항을 한 번 보고 싶어서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일출봉에서 성산항에 이르는 코스는 풍광이 근사해서 잘했다 싶었죠. 한 20분쯤 걸어 도착하니 터미널 입구에 손으로 휘갈겨쓴 글씨로 오늘 파도 때문에 배가 다니지 않는다고 써붙여 놓았습니다. 그걸 보자마자 돌아가는 사람들도 몇 있었구요. 그런데
안에 들어가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승선 신청서를 열심히 작성하는 사람들, 아무도 없는 매표소 앞에서 줄지어 서성이는 사람들... 그들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전부 중국인들이었습니다.
입구에 작게 붙여놓은 무성의한 손글씨 임시 안내판은 오직 한글로만 쓰여 있었고 그밖에는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배가 안다니면 터미널 기능이 완전히 정지 되는지 직원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다국어 ARS가 나오는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제주도에 중국인 관광객들 많이 다니는게 하루 이틀이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제주 까페 거리
여행 계획을 짜면서 무심히 지도를 뒤지다 공항 근처에 '제주 카페 거리'를 발견하고는 출발 전 시간 좀 남을 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나름 기대가 있었죠. 해변을 따라 특색 있는 핸드드립 전문점이나 로스터리 카페들이 늘어서 있는. 그런데 그곳은 카페 거리가 아니라 '횟집 거리' 였습니다. 게스트 하우스도 있고 작은 빵집도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게 횟집 이었습니다. 물론 카페가 없는건 아니었습니다. 한참 가다보면 하나씩 둘씩 카페가 나오긴 합니다. 그런데 죄다 아주 익숙한 가게들이었습니다. 탐앤탐스, 파스쿠찌, 심지어 스타벅스... 무인카페라던가 개인샵이 아예 없는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이런 프렌차이즈였습니다.
고기국수
이건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지만, 저는 최근 스리슬쩍 이 음식이 제주도의 대표가 된게 이상합니다. 본 적도 없었을 때에도 너무나 상상이 가는 맛이었고 실제로 먹어보니 별로 벗어나지 않았는데, 다니면서 기분내며 한 끼 떼우기에는 좋지만 이걸 차타고 찾아가 줄서서 먹는다는건. 컵라면 - 사리곰탕면의 상위 버전, 혹은 돈코츠 라멘의 담백한 버전. 맛은 있지만 그다지 특별할게 없는. 제주까지 가지 않아도 집 근처에 나름 알려진 고기국수집이 있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안 갈 것 같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