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반나절을 날리며, 차 박고 도망간 사람 찾아내서 해결본 이야기 입니다.
혹시나 후에 비슷한 경험을 하시게 되면 도움이 될까 하여 남겨봅니다.
재미 없더라도 읽어주신 분들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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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늦잠을 즐기고 막 일어난 일요일 오전, 임신중인 와이프가 떡볶이가 땡긴다고 합니다.
사실 좀 귀찮았지만, 임신한 사람에게 찍히면 오래 간다는걸 첫째때 경험했기에,
군말없이 멀지 않은 곳의 재래시장으로 향합니다. 떡볶이 뿐만 아니라 만두 순대 등등을 저렴하고 맛나게 즐길 수 있죠.
갈때는 와이프 차를 이용했습니다. 두달전 뽑아준 새차입니다.
경유차라 연비가 좋아서 휴일 외출에는 거의 이녀석을 이용합니다.
제 차는 업무용으로 회사에서 지급받은 것인데, 딱히 연비가 좋지는 않거든요.
그렇게 떡볶이, 어묵, 순대, 만두 등의 분식류로 배를 채우고 이것저것 장을 보고 차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와이프가 차를 보며 비명을 지릅니다.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가만히 손가락으로 조수석쪽 뒷범퍼를 가르킵니다.
그곳에는 주차중 충돌한 사고의 흔적이 보입니다. 살짝 긁은게 아니라 제대로 먹어서 들어갔다 나온 자국이 있습니다.
보통 주차중 벽이나 기둥에 박아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쿵'까지는 아니더라도 차가 기우뚱 할 정도로 충돌한 이후 흔적을 말이죠.
외부엔 페인트가 벗겨지고 그 중앙에 원 형태로 자국이 나있죠. 페인트는 떨어져 있지 않더라도 뭔가 먹은 자국. 딱 그거였습니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블랙박스의 메모리를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저는 블랙박스 1세대때 그 구린 화질로 인해서, 비슷한 상황에서 유력한 용의차량을 찾고도 야간이라 번호판 식별이 어려워 잡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다르죠. 그리고 요즘 블랙박스의 충격시 자동 녹화되는 '이벤트 녹화' 는 상당히 쓸만해졌습니다.
일단 와이프가 주로 운전하던 차. 와이프는 운전 중 사고가 발생한 기억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또한 본인이 주차중 일어난 사고는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나름 운전경력이 있는 사람이라 그 말을 믿고,
해당 사고는 '주차중 충격 후 뺑소니' 라고 가정하고 주로 '이벤트 녹화' 영상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둘 점이 있습니다.
바로 주차된 차를 충격하고 달아나는 것을 '뺑소니' 라고 부를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제 경험상 해당 경우는 굳이 '뺑소니' 라고 부르기도 좀 뭐합니다. 적어도 국내 교통관련법에서는 그렇습니다.
'뺑소니' 라고해서 가중 처벌을 받는 경우는 서로가 사고가 있었다고 인지가능한 주행중 상황이어야 하는데,
이것은 바로 '인사사고'와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주행중의 상황에서는 어느 차량이든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고 후 미조치는 큰 과실이 됩니다.
사고를 인지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피해차량이 해당차량에게 피해를 입었음을 알려오면 차량을 멈추고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피해차량이 분명이 인지하도록 피해를 알렸음에도 미조치 후 진행한다면 마찬가지로 뺑소니 입니다.
적어도 사람이 탄 차량간의 사고에서의 뺑소니는 '몰랐다' 는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상황, 대표적으로 주차중 상황에서의 뺑소니는 그냥 단순히 '사고 후 미조치' 정도로 취급됩니다.
당한 사람이야 열불터지지만, 힘들게 찾아내서 대질까지 가도 결국 차량 손해 외에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찾아야 본전, 못찾으면 독박이고, 반대로 가해자 입장에서도 안에 사람이 없으면 도망가면 그만인거죠.
걸려봐야 대물 물어주고 끝이거든요. 굳이 할수 있는 복수라고 해봐야, 미리 이래이래 사고냈다 죄송하다 했다면 부분도색으로 끝날거,
화가 나서라도 범퍼 다 교체하고, 칼 같이 렌트하는 정도겠죠.
저는 개인적으로는 고의성이 입증된다면 벌금을 높이거나 좀더 엄중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분제는 '고의성' 을 입증할 증거겠죠. 주행중 사고처럼 피해차량이 죽자사자 쫒아와 알려줄 수도 없으니 말이죠.
암튼, 각설하고...
저는 집에 돌아온 이후 세시간의 영상 검열 끝에 가해차량을 찾아냈습니다.
제 예상대로 해당 화면은 '이벤트 녹화' 에 담겨있었습니다.
최근 블랙박스는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녹화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주행중 녹화 - 시동을 걸면 블랙박스가 해당모드로 이동하여 주행중 상황을 녹화한다.
2. 이벤트 녹화 - 차량에 약간의 충격이 가도 따로 녹화하여 다른 폴더에 저장한다.
이때는 차 문을 열고 닫거나, 방지턱을 넘는 정도의 강도에도 반응하여 귀찮기도 하지만,
이정도 강도에는 반응을 해야 차량의 외부 충격에도 반응하니, 굳이 설정을 바꾸지 않도록 하는게 좋다.
3. 주차녹화 - 시동을 끄는 순간 해당모드로 이동하여 주차중인 상황을 녹화한다.
여기서 각 번호당 저장 우선순위는 2,1,3 순입니다.
이벤트 녹화의 경우 충격이 온 상황이 사고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장 오래 보관되며,
주차중 녹화보다는 주행중 녹화가 더 오래 보관됩니다. 아무래도 사고시 시시비를 가릴 일은 주행중에 주로 일어나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주차녹화를 살펴보려고 했지만, 딱 전날 저녁때 우리 아파트에 주차한 이후의 화면만 담겨있었습니다.
와이프가 아파트에 주차한 위치는 해당 범퍼가 다친 위치로 차량이 주차할 수 없는 위치였죠. 그래서 일단 패스.
주행중 녹화도 와이프의 증언을 믿고 패스. 결국 이벤트 화면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오늘은 22일, 이벤트 영상은 16일 부터 담겨있습니다. 전부 살펴봅니다. 해당 사고가 언제 일어났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살펴본지 세시간.
바로 어제인 21일 15시에 와이프가 들렀던 마트 주차장에서 와이프 차를 충격하는 검은색 세단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와이프는 주차를 전면 주차를 해두었는데, 뒤쪽 채널의 카메라에 해당 장면이 담겨있더군요.
충격 순간 블랙박스가 이벤트 영상을 저장하는 소리 '띵동' 하는 소리가 나고 차가 흔들리는게 느껴집니다.
해당 차량도 이상함을 감지하고 잠시 섰다가 차를 빼고는 다른 곳에 주차하려 이동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차량 번호는 숫자는 모두 파악이 되지만, 한글자의 한글이 정확치가 않습니다. 누, 루, 부 중에 하나 같습니다.
저는 경찰서에 가져가기 위해 해당 화면을 USB에 옮겨담고, 해당 마트에 전화를 걸어 주차장 CCTV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가해자가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상황에 대비해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더 수집하기 위함이었죠.
하지만, 아쉽게도 해당 마트의 주차장에는 CCTV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대에 해당 차량이 출입한 흔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해당 마트는 출입시 영수증을 체크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그 마트 주차장에 있었다는 증거가 성립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역시 입출입 내역을 저장하지는 않는다고 하여 패스.
결국 저는 USB에 블랙박스 영상만 담은채로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당직근무를 합니다. 교통사고는 휴일에도 일어나기 때문이죠.
또한, 제가 사는 지역이 아닌, 사고가 일어난 지역의 관할 경찰서를 가야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동하면서 들었던 걱정은, 해당 영상을 보고 나는 백프로 증거라고 보지만, 혹시나 해당 경찰이 인정해주지 않을 경우,
또는 가해자가 무조건 발뺌할 경우 사건이 복잡해 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해당 경찰관 분은 제가 사고가 일어난 장소, 시간, 해당차량의 번호와 차종을 이야기 하자 곧바로 검색을 해주었습니다.
중간에 한글이 안보인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정확한 숫자를 알고 있고 차종을 알고 있으니 곧바로 찾아주시더군요.
빠르게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내려가던 경찰관 분은 영상조차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갖고 있으라고만 하시더군요.
그냥, 나의 진술이 일관성이 있다고 보았는지 곧바로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경찰도 이런 경험이 한두번이 아닐테니 곧바로 견적이 나온듯 했습니다. 전화 말투는 일부러 고압적으로 하더군요.
"여기 XX경찰서 사고 조사계 인데요, 21일 15시 경에 XX마트에서 주차중에 다른 차량 박은거 있죠?
영상 다 찍혔어요. 아저씨.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상다방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고를 순순히 인정합니다.
어찌보면 경찰서에서 전화를 해서 고압적인 자세로 이렇게 디테일하게 증거가 있다고 들으대는데,
끝까지 둘러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진짜 악질에 경찰서 들락날락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말이죠.
"여기 피해자분 와계시니까 빨로 오세요. 지금 바로 오시라구요."
그렇게 전화를 끊은 경찰은 저를 향해, '피해자도 이렇게 성가신 걸음 하셨는데, 가해자도 귀찮게 해야죠' 라고 하시네요. 아.. 믿음직.
그리고는 제가 끌고온 와이프 차량을 함께 확인하고 증거사진을 찍어두십니다.
피해자가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았기에 저는 불편한 경찰서 안보다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결국 도착한 가해자는 아버지뻘 되는 (존칭은 생략합니다. 제 기분상.)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경찰관 아저씨가 한창 뭐라뭐라 하던 참인 듯 했습니다.
"자 두분 다 오셨으니까, 이 안에서든 밖에 같이 나가셔서든 사고 처리에 대해서 합의 보세요. 아저씨는 다시는 그러지 마시구요"
어라? 대물접수 정도는 받아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어짜피 대인사고가 끼지 않은 뺑소니는 형사로 처벌할 거리는 없고, 인사사고 관련 합의도 필요없으니
가해차량에 대한 처리여부만 서로 합의보라고 합니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합니다. 아까 가해자 불러놓고 이야기도 하셨고..
가해자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많이 상한줄 몰랐다는 둥, 옆자리 주차공간이 좁았다는 둥...
화기 치밀지만, 대꾸할 가치도 없을 뿐더러, 빨리 처리하고 집에가고 싶은 맘 뿐이었습니다.
운전은 와이프가 했답니다. 옆에 있던 자기도 치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쩌구 저쩌구..
"아저씨 됐고요, 변명하실 필요 없고 빨리 대물이나 접수해주세요. 저는 대물접수번호만 받고 갈꺼니까요."
"그게.. 어떻게 하는건데요?"
"아저씨 보험사에 전화 거셔서 이래저래 사고나서 대물접수 한다고 하시면 되요. 피해자 관련 정보는 저 바꿔주시구요."
저는 자동차 보험관련해서는 어느정도 지식이 있습니다. 사고도 몇번 경험했고, 그 이후 필요하다 싶어 따로 공부도 했기 때문이죠.
이 경우 저는 상대방이 대물접수를 한 것을 확인하고 그 번호를 받는 것으로 끝입니다. 제 과실이 전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한참을 전화번호부를 찾던 아저씨는 해당 보험사로 전화를 했고, 중간에 제가 넘겨받아 제 신상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아저씨가 보험사에 본인 과실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정확히 확인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대물접수번호를 문자로 수령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저씨는 아직도 상황파악이 잘 안되시는 듯 했습니다.
"끝난거에요?"
"네, 저는 이 접수번호로 차 공장에 넣어서 고칠꺼고, 아저씨한테는 보험사에서 연락 갈꺼에요."
더 궁금한게 있는건지 이것저것 물어오는 아저씨에게, 더 궁금한건 내가 아니라 보험담당자나 해당 보험사에 물어보라고 하고
전 그냥 등을 돌려 집으로 와버렸습니다. 벌써 시간은 저녁 7시를 향해갑니다.
이 사고건으로 피같은 일요일 오후를 날린 생각에 다시금 짜증이 밀려옵니다. 그래도 가해자를 찾은게 어디냐 싶네요.
지금은 내일 차량을 입고할 중앙 센터 위치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와이프가 당장 차가 없으면 불편한 상황이라 대차도 해야죠.
제가 그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해당 사고가 발생한 곳은 훤한 대낮이었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소리에 놀라 쳐다보는 모습도 찍혀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유히 사라지던 가해차량의 모습은 지급도 짜증이 밀려옵니다.
오늘의 교훈은,
1. 블랙박스는 괜찮은 녀석으로 사자.
2. 가끔 방전되는 불편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시녹화는 켜두자. (요즘 제품은 대체로 괜찮다고 합니다.)
3. 증거만 있으면 경찰관님이 잘해주신다.
4. 차에 타고 내릴때 가끔은 범퍼를 확인하자.
5. 여자의 부탁은, 내몸이 피곤해서 해결된다면 들어주자. (오늘 집에서 퍼져 있어서 차량을 확인 못했다면!?)
입니다.
좋은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