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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3/11/05 22:52:15 |
Name |
배 |
Subject |
[일반] 보아의 No.1에서 보여지는 달 (by Apatheia) |
어둠속에 니 얼굴 보다가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어
소리 없이 날 따라오며 비춘건
Finally 날 알고 감싸 준거니
처음 내 사랑 비춰 주던 넌
나의 이별까지 본거야
You still my No.1
날 찾지 말아줘 나의 슬픔 가려줘
저 구름 뒤에 너를 숨겨 빛을 닫아줘(닫아줘)
그를 아는 이 길이 내 눈물 모르게
변한 그를 욕하진 말아줘
니 얼굴도 조금씩 변하니까
But I miss you 널잊을 수 있을까
(Want you back in my life, I want you back in my life)
나의 사랑도 지난 추억도 모두 다 사라져 가지만
You still my No.1
보름이 지나면 작아지는 슬픈 빛
날 대신해서 그의 길을 배웅 해 줄래
못다 전한 내 사랑 나처럼 비춰줘
가끔 잠든 나의 창에 찾아와 그의 안불 전해 줄래
나 꿈결 속에서 따뜻한 그의 손
느낄 수 있도록
하지만 오늘밤 날 찾지 말아줘
나의 슬픔 가려줘
저 구름뒤에 너를 숨겨 빛을 닫아줘
그를 아는 이 길이 내 눈물 모르게
보름이 지나면 작아 지는 슬픈 빛
날 대신해서 그의 길을 배웅 해줄래
못다 전한 내 사랑
You still my No.1
일본 국내 가수들도 오르기 힘들다는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요즘 일본에서 목하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중이라는 소녀 가수 보아의 히트곡 'No.1'의 가사이다.
노래 자체보다는 노래와 관계된 영상에 더욱 익숙한 사람이라면,
동경의 즐비한 마천루 스카이라인 위로 거의 전 화면을 차지하다시피 떠있던 만월과,
배꼽을 드러낸 탑과 청바지 차림을 한 채 역시 비슷한 차림의 백댄서들을 대동하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버금가는 현란한 춤솜씨를 자랑하던 보아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필자는 처음 이 노래의 '생각없는' 발랄함에 이끌렸던 사람이다.
아이돌 가수를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노랫말 속에서 사상을 찾는다는 건 무용한 짓이다.
그들은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 업인 사람들이지 대중을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듣고 듣고 또 들을수록, 이 노래의 가사는 웬지 이국적이고도 발랄한 뮤직비디오의 내용이나
생각없이 춤추기 좋은 비트와는 무언가 엇박을 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어느날 날을 잡고 찾아본 가사를 정독하는 순간, 그 느낌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보아의 No.1에 등장하는 사람(?)은 크게 셋이다. 나, 그, 그리고 너. 여기서 '너'는 '달'이다.
아마도 두 사람은 달 아래서 처음 만났던 듯하며, 또한 달이 뜬 밤에 이별햇던 것 같다
('처음 내 사랑 비춰 주던 넌 / 나의 이별까지 본거야').
대중가요의 특성상, 또한 번안가요의 특성상 '너'와 '그'라는 호칭이 군데군데서 혼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노래가 주로 '떠나보낸 그'에 대한, '달'에게 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가사의 서정적 화자는 꽤나 순정적인 여성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지만,
어디나 들여다 볼수 있는 달의 시각을 통해서라도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가사에 드러나 있다.
('가끔 잠든 나의 창에 찾아와 그의 안불 전해 줄래 / 나 꿈결 속에서 따뜻한 그의 손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이런 태도는, 떠난 사람의 뒤통수를 향해 차라리 잘됐으니 가버려라고 소리치기 마련인
현대의 일반적인 가사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전해 준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데를 드데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데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이것은 유명한 고려가요 '정읍사'의 전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이것은 행상나간 남편(혹은 님)을 기다리며
달에게 그 무사안녕을 비는 한 여인의 서정을 노래한 고대가요이다.
여기서 왜 정읍사가 나오는가?
No.1과 정읍사 사이에 상당한 심리적인 유사성이 발견된다고 하면 그건 지나친 생각일까?
그러나 님이 '즌 데를 드데욜셰라'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라 축원하는 정읍사의 여인과
'날 대신해서 그의 길을 배웅 해 줄래 / 못다 전한 내 사랑 나처럼 비춰줘'라 노래하는 이 소녀 가수간에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일까.
서정적 자아의 순정적인 태도는 여기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변한 그를 욕하진 말아줘 / 니 얼굴도 조금씩 변하니까' 라는 부분에서
'찼다가 기울며 수시로 변하는 저 달에게 당신의 애정을 맹세하지 말라
(O don't swear by the moon. It waxes and wanes. It is inconstant. I fear lest your love be fickle.)'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줄리엣의 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필자의 오버센스일까?
'하지만 오늘밤 날 찾지 말아줘 / 나의 슬픔 가려줘 / 저 구름뒤에 너를 숨겨 빛을 닫아줘 /
그를 아는 이 길이 내 눈물 모르게'라는 부분에서는
님 가시는 앞에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노라는 김소월의 서정적 자아와 겹쳐지고
'보름이 지나면 작아지는 슬픈 빛 / 날 대신해서 그의 길을 배웅 해 줄래 /
못다 전한 내 사랑 나처럼 비춰줘'라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님 가시는 길 앞에 진달래 꽃을 뿌려 축복하는 옛 여인의 정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철저한 기획을 거쳐 '만들어진' 한 아이돌 가수의 가사 하나에
지나치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떤가. 정읍사도 원래는 민중들의 속된 노래일 뿐이었지 않은가.
세익스피어의 희곡 또한 더러는 '저속하다'는 혹평까지 듣는 통속희곡일 뿐이었지 않은가.
우리 주변에 산재한 이런 대중가요 가사라고 해서,
문학의 범주에 넣어서는 안된다는 법 따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Apatheia, the Stable Spirit.
PS. 어느 달 좋은 날에, 반쯤 미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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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홈피에서 퍼 왔습니다. 2003년 4월 16일에 작성된 글이네요.
출처 apatheia.vv.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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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Apatheia님이 펌 허락하셨었는데 10년 지나서 여기서 올라올 걸 예상하셨을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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