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를 함유하고 있으니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은 본문을 피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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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 보고 느낀 점은, 리부트 이전의 슈퍼맨에서 받은 평가들을 충실히 피드백한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리부트 전의 슈퍼맨 영화인,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 등의 영화에서 말이지요.
많이들 지적하듯이, 슈퍼맨 영화는 '슈퍼맨이 너무 강력해서 밸런스를 맞추기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전작들에서는 슈퍼맨은 거의 무적에 가까웠습니다. 슈퍼맨의 맞수는 뱃대슈에서 나왔던 둠스데이 정도고
저스티스 리그에서는 슈퍼맨이 부활하자마자 모든 걸 일사천리로 해결해서 빈정거리는 말도 나올 정도였었죠.
이번 슈퍼맨은 다릅니다. 영화 첫 시작이 슈퍼맨의 패배로 시작됩니다. 물론 슈퍼맨은 여전히 충분히 강력한 메타휴먼이지만, 제가 보기엔
역대 최약의 슈퍼맨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강력함은 낮췄지만, 대신 슈퍼맨의 인성은 돋보이는 쪽으로 비쳐줍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 작품에서 항상 이야기가 나왔던
'왜 슈퍼맨이 주변 인명 피해를 무시해가며 싸우는가?'
에 대해 철저히 피드백한 듯 합니다. 이번작의 슈퍼맨은 인간 뿐 아니라 강아지나 다람쥐처럼 인명이 아닌 생명들까지 살리려 노력합니다.
작품 내내 슈퍼맨의 이런 생명 구조 활동을 강조해서, 충분히 슈퍼맨의 인간미를 살려줍니다.
슈퍼맨이 이전작보다 권능이 떨어졌는데, 생명 구조 활동을 해야 해서 할 일은 더 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슈퍼맨을 보조해 줄 동료들이 필요해졌고, 작중에서는 '저스티스 갱'이라는 집단으로 등장합니다. 이 또한 슈퍼맨이 혼자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협업해서 사건을 해결해나감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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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슈퍼맨 시리즈가 대체로 묵직한 분위기와 진중한 스토리(퀄리티와는 상관없이)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이번 리부트 슈퍼맨은 상당부분 그런 분위기를 덜어냈습니다. 극 중 심각한 분위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오래 가진 않습니다.
다들 가오갤 느낌이 난다고 많이 하시던데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의 감상을 말하자면,
저는 재밌게 봤습니다. 영화적으로서는 큰 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슈퍼맨이 불호입니다.
일단 슈퍼맨의 권능을 줄이고, 동료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렇다치는데, 슈퍼맨의 비중을 너무 줄였습니다.
특히 애완견으로 등장하는 슈퍼독 크립토가, 슈퍼맨이 할 일의 상당 부분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작중 내내 꽤 많이 지고 있는 슈퍼맨인데 잘못 보면 크립토 없는 슈퍼맨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슈퍼맨은 훨씬 다양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SNS 해시태그에 신경을 쓴다거나 하는 부분 말이죠.
다만 그게 지나쳐서, 슈퍼맨 자신이 '나도 기자이니 인터뷰는 할 수 있다' 라고 하는게 무색하게 감정적으로 로이스 레인의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은 안타까웠습니다. 이지적인 기자의 면모는 거의 찾기 어렵고, '인간미나는 슈퍼맨' 에 집중하기로 한 듯 합니다.
메인 빌런인 렉스 루터는 충분히 강력함을 보여줬습니다. 뱃대슈에서 입만 털었지 실질적으로 한 것은 없었던 찌질이의 이미지를 탈피해서,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군수기업의 수장으로서, 그리고 뛰어난 과학자로서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다만 제 기준에서는, 렉스 루터의 강력함을 보여 준 건 긍정적인데, 렉스 루터의 사악함은... 좀 지나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렉스 루터도 다루는 작가마다 오락가락하긴 하는데, 일단 슈퍼맨을 질시하는 빌런인 건 분명합니다.
다만 슈퍼맨을 질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류의 파멸을 걱정하는 양면적인 캐릭터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의 렉스 루터는 그냥 두 말 할 것 없는 빌런입니다. 너무 벌인 일들이 커서 재평가가 불가능해요.
적어도 영화판 렉스 루터는 '슈퍼맨을 질시하긴 하지만 인류의 메타휴먼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걸 걱정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슈퍼맨을 죽일 수 있다면 살인 포함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는 미치광이 과학자' 입니다.
사실 그래서 영화의 마무리도 별로 마음에 안 드는게
작중의 렉스 루터는 진짜 온갖 짓으로 슈퍼맨을 괴롭힙니다. 육체적, 정신적 모두 말이지요.
그런데 슈퍼맨은 이전 작들보다 훨씬 인간미있는 성격이면서도
렉스 루터를 너무 쉽게 용서합니다. 아니 용서라기보다는 렉스 루터와 대면해서 아무것도 안 해요.
본인의 본질에 대해서 연설을 하는데, 그나마 그 자리도 크립토가 망쳐버리는 바람에...
차라리 시원하게 한 대 때린다거나, 렉스 루터가 저지른 끔찍한 짓에 대해 처벌을 하거나 지적을 해야 하는데... 그런게 없어요.
중간에 크립토를 납치해갔을 때 화낸 게 훨씬 인간적이었어요.
렉스 루터는 사기적으로 유능하게 이것 저것 꾸몄고, 특히 '해머'의 정체는 놀라웠습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이번 작의 슈퍼맨은 살인에 질색하거든요. 그런데 '해머'의 정체를 알면, 사실 살려두기가 어려웠어요.
작중에서 어떻게 처리하나 봤더니... 역시였습니다. 다만 다람쥐는 필사적으로 구해줘놓고 해머는 걍 허무하게 버리는 건... 간접살인 아닌가?
전반적으로 영화가 크게 어렵지 않고, 재미 요소도 많고, 나름 전작의 피드백을 잘 챙겼다 생각하긴 합니다.
다만 저는 강력한 초인 슈퍼맨을 기대하고 갔는데, 저처럼 그런 슈퍼맨을 기대한다면 많이 실망할 겁니다.
액션씬이 볼거리가 적은 건 아닌데, '슈퍼맨을 중심으로 하는 액션신'은 실망입니다. 잡졸 털때나 좀 쎄고 대체로는 신나게 맞습니다.
여러모로 슈퍼맨 단독 네이밍 영화라기보다는 '슈퍼맨과 저스티스 갱'에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