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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9/29 18:39:13
Name 번개맞은씨앗
Subject [일반] 니체가 읽었을 것 같은 책 16권 + 1권 (수정됨)

제가 읽은 책 중에,
니체가 읽었을 것 같은 책들입니다.

니체의 책은 7권 정도 읽은 적이 있는데요.

니체가 어느 순간 더이상은 책을 읽지 않고,
소수의 책들만 반복해서 읽었다고 들었는데,
그 목록이 궁금했습니다.

니체의 글은 난해한게 많은데,
그의 맥락을 알면,
그의 뜻을 더 잘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읽다가 내용을 보고 니체와 접점이 발견될 때
제 나름 직관적인 추측으로
기록해둔 것들입니다.

니체는 1844’에 태어났고,
주로 19세기 초중반을 전후하여 쓰여진 책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시점이 오늘날 우리나라와 유사성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지 수십년밖에 안 지났으니까요.


니체가 읽었을 것 같은 책

아이스킬로스 著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BC 5세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著 명상록 (AD 2세기)

홉스 著 리바이어던 (1651‘)(추가 : 241111)
스피노자 著 에티카 (1677’)
비코 著 새로운 학문 (1725’)

에드먼드 버크 著 숭고와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 (1757’)
칸트 著 판단력 비판 (1790’)
실러 著 미학 편지 (1795’)
멜서스 著 인구론 (1798’)

헤겔 著 정신현상학 (1807’)
헤겔 著 역사철학강의 (1837’)
랄프 왈도 에머슨 著 영웅이란 무엇인가 (1841’)
알렉시드 드 토크빌 著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 (1856’)

밀 著 공리주의 (1861’)
매슈 아널드 著 교양과 무질서 (1869’)
다윈 著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 (1872’)
필립 길버트 해머튼 著 지적 즐거움 (1873’)


매슈 아널드 著 교양과 무질서

최근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원제는 Culture and Anarchy 입니다.

즉 ‘문화와 혼돈’
이라 번역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추측이지만,

니체가 이 책을 읽고
<비극의 탄생>을 쓴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극의 탄생은
니체가 처음으로 쓴 책인데요.

그것에 다른 이름을 붙이자면,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문화와 혼돈>에 대응합니다.

1969년
<비극의 탄생> 1972년

이고,

아널드는 그 전에도 저 책과 관련하여
글을 쓰고 발표해온 걸로 압니다.

아널드 1822’ 출생
니체 1844’ 출생

입니다.

즉 니체가 어떤 맥락에서 말을 한 건지를
이 책을 가지고 유추해볼 수 있는 듯합니다.

이 책의 일부 내용을 가져오고,
약간의 설명을 평소 메모하듯 생각나는대로 붙여봤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중간계급이 정력, 자신, 자본으로 그 모든 것을 해냈다는 말을 듣는 데 비해, 민중은 그 모든 것을 손과 근육으로 해냈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민중더러 이런 유의 성취에 의존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대체하는 속물 대신에 자신이 속물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중간계급처럼 예복도 입지 않고 미래의 잔치에 참석하라는 청을 받을 것이고, 거기서 아무런 탁월한 것도 나올 수 없게 된다.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인 듯합니다. 그것의 이로운 점을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속물적인 것일 수 있음에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늘 저지르기 쉬운 과오를 아는 사람들, 그들을 지켜보았고 또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왔던 사람들은 새로운 민중에 훨씬 더 필요한 이념은 참정권이 복이라거나 그 자신의 산업적인 실행이 놀랍다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교양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완성의 이념. 증가된 단맛, 증가된 빛, 증가된 삶, 증가된 동감을 성격으로 하는 증가된 정신활동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산업화가 이에 해당하는 듯합니다.

다른 선의의 친구들은 중간계급 속물주의의 낡은 관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는 새롭고 아직 시험해보지 않은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민중의 발길이 쏠리게 되는 방향으로 이 새 세력을 이끌려고 한다. 그것을 나는 자코뱅주의(Jacobinism)의 방식이라고 부르겠다.

£.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이러한 의미의 자코뱅주의에 포함될 듯합니다. 즉 흔히 ‘이데올로기’라는 말로 가리키는 것을 프랑스혁명의 예로부터, 자코뱅주의라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코뱅주의와 교양(Culture)를 대립시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격렬한 분노, 대규모로 적용된 추상적 혁신체계, 미래를 위한 하나의 합리적인 사회의 형태를 세밀하게 그린 새로운 원리 이것들이 자코뱅주의의 방식이다. …

£. 한편으로는 분노와 증오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추상적 체계가 있어, 이를 급진적으로 완고하게 밀고 나갈 때, 자코뱅주의라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ChatGPT에 물어보니, 중앙집권적 특성이 있는 것 같고요.

해리슨 씨는 교양에 매우 적대적인데, 그럴 만한 충분히 자연스런 동기가 있다. 교양은 자코뱅주의를 나타내는 표식이라고 할 두 가지, 즉 격렬함과 추상적 체계에 대한 탐닉을 언제까지나 반대하기 때문이다.

교양은 인간 운명의 방향을 정할 때 체계와 그런 체계를 만드는 자들의 몫이란 그 지지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본다. 인민의 마음속의 흐름은 새로운 이념을 향한다. 인민은 자기 앞에 던져진 낡고 편협한 속물적 이념, 앵글로색슨 이념 따위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전체적인 흐름의 주도자로서 흐름을 법제화하라는 위임을 받아 인류를 이끌어나갈 자격을 얻게 되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벤담이나 콩트 같은 이들로, 이들은 새로운 흐름을 일찌감치 그리고 강하게 느끼고 그것을 도우려고 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렇게 느끼고 돕는다고 나서면서 거기에다 자신의 편협함과 실수를 숱하게 던져놓은 것이다.

£. 장점 내지 이로움 내지 공헌이 있는가 하면, 그와 함께 편견이나 오류나 해로움이나 위험이 있다는 얘기인 듯합니다.

로마 신화에 대한 탁월한 독일인 역사가인 프렐러가 빛과 치유와 화해의 신인 아폴론을 숭배하던 타르퀴니우스 왕가 치하의 로마에 대해 개설한 것을 보면, 로마에 새로운 아폴론 숭배를 가져온 것은 타르퀴니우스 왕가라기보다 그 당시 라틴족과 사비니의 종교적 이념의 구습에서 벗어나 이러한 종류의 새로운 숭배를 강하게 지향하던 로마 인민의 마음의 흐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아폴론이 등장했습니다. 아폴론을 빛과 치유와 화해라 말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아침 정오 저녁 새벽 이런 식으로,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하루’가 돌아갑니다. 아폴론은 빛이라 했으니, 낮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정오는 아폴론적인 것이 정점에 이르는 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니체에게 있어서는 ‘건강’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아폴론이 ‘치유’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니체는 건강을 지향하는 가운데, 병듦과 건강을 오가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걸 생각한 듯합니다. 정오에서 내려간다는 것은 뭔가 늙음이나 병듦이 일어난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혹은 불화가 일어난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와 유사하게 교양은 인간사 속에 존재하는 자연스런 흐름에, 그 계속적인 작용에 주목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어떤 특정한 사람과 그가 한 일에 묶어두지 않게 해줄 것이다. 교양은 그의 좋은 면뿐 아니라 그가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한계가 있고 또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아니, 교양은 그렇게 하는 일에서 즐거움마저 느낀다. 다시 말해 자유가 더욱 커졌고 미래가 더욱 넓어졌음을 느끼는 것이다.

£. 한계가 있고 일시적이라는 얘기는 곧 그 시점이 지나면, 적절성을 잃고 병들어간다는 의미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어떤 특정한 사람과 그가 한 일에 묶어둠’ 이것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자가 용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신의 의지를 창조하고 선언하죠. — 이어서 그 특정한 사람의 예가 나옵니다.

… 그래서 벤담을 근대 사회의 혁신자라 부르는 소리나 벤담의 정신과 이념이 우리 미래의 통치자라는 주장을 들을 때면, 나는 의무론(Deontology)을 펼친다.

£. 제가 읽어본 건 키케로의 의무론인데, 벤담도 의무론을 썼나봅니다. 여기에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거기서 나는 읽는다. "크세노폰이 역사를 쓰고 유클리드가 기하학을 가르치고 있을 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지혜와 도덕을 가르친다는 미명 아래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도덕이란 말에 있었으며, 그들이 말하는 지혜란 만인이 경험해 아는 바들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것을 읽은 순간부터 나는 벤담의 굴레에서 벗어나버린 것이다!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등장했습니다. 니체가 가장 강력하게 비판했던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 않았고, 플라톤이 쓴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한 인물로 간주해도 될 것입니다. 플라톤을 소크라테스에 포함시켜서 보는 것이지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용 중 일례가 소크라테스일 것입니다. — ‘도덕’과 ‘부정’이 키워드라 봅니다. 벤담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건, 사자로서 저자인 아널드가, 용으로서 벤담의 명령으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의 지지자들의 열광도 이제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 나는 그의 정신과 이념이 인간 사회의 규칙을 제공하기에, 즉 완성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 아널드의 완성이 곧 니체의 초인에 대응하는 거라 봅니다.

… 교양은 이러한 인물들 모두 또는 그들 가운데 몇몇에게 찬양할 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성구를 기억한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마라!" 그리고 곧 어떤 랍비든 지나쳐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자코뱅주의는 랍비를 사랑한다. 자코뱅주의 미래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완성을 좇아 랍비를 지나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 소크라테스와 자코뱅주의가 엮이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소크라테스 = 플라톤 이렇게 봐도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플라톤 사상의 이념적 완고함이 있죠. 현실에 대한 무시가 있고요. 앞서 저자가 의미한 자코뱅주의와 통합니다.

그것은 랍비와 그의 이념이 완성을 대변하기를, 좀더 권위를 가지고 세상을 재조형하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자코뱅주의에게는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고 찾아나가는 교양은 주제넘고 불쾌한 것이다.

£. Culture를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고 찾아나간다라고 할 때, 이는 니체의 ‘영원회귀’와 ‘힘에의 의지’를 연관지을 수 있는 거라 봅니다. 즉 자코뱅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힘에의 의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문화를 발전시키겠다는 얘기니까요.

그러나 교양은 세상과 자코뱅주의 자체에게도 진정으로 기여한다. 자코뱅주의가 진정한 이념의 기관이기도 하나 한계와 과오도 숱하게 지닌 그런 사람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에 저항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러하다.

£. 저자인 아널드가 이념 자체를 잘못된거라 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이념에 갇히는 걸 문제삼는 거죠. 이념에 갇힐 때, 그 한계와 오류와 해로움을 떠안고 병들어갈 테니까요.

그래서 자코뱅주의는 또한 과거와 또 그 과거의 죄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을 격렬하게 증오하는 가운데, 교양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끝없는 관용이라든지 상황을 고려하는 태도라든지 사람에 대한 판단은 자비롭되 행동에 대해서는 엄하게 판단하는 경향 같은 것을 참아내지 못한다. …

£. 자코뱅주의는 분노와 증오에 친하다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완성의 추구는 단맛과 빛의 추구다.

£. 단맛은 취향을 뜻하는 것 같고, 빛은 인식 내지 지성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비유로 말하고 있는 거죠. 더 원초적으로는 단맛은 생리, 빛은 감각에 매칭된다고 봅니다.

단맛과 빛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이성과 신의 뜻을 퍼뜨리기 위해 일한다.

£. 심오한 말 같습니다. 취향과 인지는 이성과 신성과는 다른 관념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기계 장치를 위해 일하는 사람, 증오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단지 혼란을 위해 일할 뿐이다.

£. 속물주의 기계와 자코뱅주의 증오를 비판하는 듯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나 ‘물질주의’라는 말로 무언가를 비판할 때, 그걸 ‘기계 장치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 매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양은 기계 장치 너머를 보고, 교양은 증오를 미워한다. 교양은 한 가지 위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니, 단맛과 빛을 향한 열정이다. 그것은 훨씬 더 위대한 것 즉 그것들을 퍼뜨리려는 열정이 있다.

£. 증오로부터 비롯된 열정과, 아름다움으로부터 비롯된 열정은, 분명 다른 것일 겁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완전한 인간이 될 때까지 만족하지 않는다.

£. 앞서 말씀드렸듯, 완전한 인간은 초인에 대응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소수의 단맛과 빛은 인류의 거칠고 빛을 보지 못한 다수가 단맛과 빛에 접촉하기까지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만약 내가 서슴없이 우리가 단맛과 빛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말해왔다면, 우리는 광범한 토대를 가져야 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한 단맛과 빛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겠다.

나는 국민적인 삶과 사유의 불꽃이 타오를 때, 사회 전체가 아름다움에 민감하고 지혜롭고 살아 있는 사유에 가장 충만하게 젖어들 때, 그때야말로 인류가 행복한 순간이며, 한 민족의 삶의 획기적인 시기며, 문학과 예술과 모든 천재의 창조적인 힘이 꽃피는 시절임을 거듭 주장해왔다.

£. 저자인 아널드의 낭만이자 지향점인 듯합니다. 19세기는 석탄과 산업혁명 그리고 열악한 환경속의 대중이 있던 때입니다. 인구가 급증했죠. 18세기는 천재의 시대였고, 19세기는 대중의 시대였다고 봅니다. 저자는 19세기 중반에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다만 진정한 사유이자 진정한 아름다움이어야 하고, 진정한 단맛이자 진정한 빛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그들이 대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대중의 실제적인 조건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준비되고 적용된 지적 음식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통상적인 대중문학이 대중에 대한 이러한 식의 작업의 본보기다. 많은 사람이 그들 자신의 직업이나 정당의 신조를 형성하는 이념과 판단의 틀을 대중에게 주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종교적 · 정치적 조직이 대중에 대한 이런 방식의 작업의 예를 보여준다.

£. 계몽주의는 2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주입 계몽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 계몽주의라 봅니다. 주입 계몽주의는 지식과 사상을 주입함으로써 사람들을 깨어나게 하겠다는 것이고, 자유 계몽주의는 이성적 사고력과 자율성을 통해 사람들을 깨어나게 하겠다는 것이라 봅니다. 이를테면 한국의 문학작품인 <상록수>는 주입 계몽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독일의 칸트는 자유 계몽주의라 봅니다. 자유 계몽주의에서 중요하게 강조될 것은 ‘이성’이라 봅니다. 스콜라 철학이 이와 관련된 것인데, 그들은 이성 = 신 이런 식으로 보았다고 봅니다.

나는 그 어느 방식도 비난하지 않으나, 교양은 달리 작업한다.

교양은 열등한 계급의 수준으로 내려가 가르치려 하지 않고 교양 자신의 이런저런 파당을 위해 기성의 판단과 구호로 그들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교양은 계급을 없애려고 하고, 이 세상에서 생각되고 알려진 최상의 것을 모든 곳에 통용시키려고 하고, 모든 인간을 단맛과 빛의 환경에서 살게 하려고 한다. 그 환경에서는 모든 인간이 교양이 그러하듯이, 이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 그 이념에서 자양을 얻지만 거기에 종속되지는 않는 것이다.

£.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꿀’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아마 아널드의 단맛에 해당하는 비유인 듯합니다. 아널드가 여기에 이야기하지 않은 비유 중에, 니체는 ‘중력’을 중요한 의미로 두고 이야기했습니다. 중력은 ‘죽음’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중력을 거스르는건 생명 내지 활력인 것이겠지요. 니체 철학은 ‘생명 철학’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이념이며, 교양인은 평등의 진정한 사도들이다. 위대한 교양인이란 당대 최상의 지식과 최상의 이념을 확산하고, 보급하고, 사회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전파하려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지식에서부터 모든 거칠고 어색하고 난삽하고 추상적이고 전문적이고 부차적인 것을 걸려내려고 애쓰며, 지식을 인간화하여 교양있고 학식있는 사람들의 동아리 바깥에서도 그것이 효력을 미치되 그러면서도 여전히 당대 최상의 지식과 사상이며, 따라서 단맛과 빛의 진정한 원천으로 남아 있도록 애쓰는 사람들이다. …
‘ 메슈 아널드 著 <교양과 무질서> 中

£. 이건 예술이 지향하는 바가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제 기준으로는 ‘고전주의’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고전주의라 할 때, 고대 그리스와 유럽의 르네상스를 떠올립니다. 그저 새로움을 추구하는게 아닌,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지, 가장 탁월한 것은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이를 보통 사람들도 그 감상에 참여할 수 있게끔 창조하는 것이 바로 고전주의라 봅니다. 조화, 완성, 통합, 화해, 아름다움, 미덕, 진리, 생명, 고귀, 인간을 높임. 이런 것들을 향한 거죠. 신성도 고전주의라 볼 수 있습니다. 신의 명령에 따른다는 의미에서 그런게 아니라, 신을 닮아간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신을 닮았다면 영웅이죠. 영웅은 고전주의 예술이라 봅니다. 인간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사라져야 한다라 한다면, 이건 고전주의와 정반대인 거라 봅니다. 인간을 낮추고 있는 것이며, 추한 것을 그리고 있고, 죽음을 가리키니까요. 실러, 괴테, 다빈치. 이들은 모두 고전주의라 봅니다. — 예술에 있어 무엇이 본질인지에 대한 제 생각에 따른 분류이지만요.

£. 가장 아름다운 것 ・ 가장 탁월한 것을 향하는 것, 이것이 예술을 분류할 본질 중 하나이며, 인간을 높이고 생을 긍정하는 인본주의가 예술을 분류하는데 쓰여야 할 또다른 본질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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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데이비스
24/09/29 22:54
수정 아이콘
좀 길어서 끝까지 정독하진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걸 찾기 않고 좋아하던 거 찾는건 대부분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게 이미 이만큼이나 모여있기 때문에 굳이 뭘 새롭게 찾아야 하나 싶은 거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즐기고 살아도 모자른 시간인 것을
그래서 몇살이 되어도 계속 개척하는 사람은 그냥 개척을 좋아하기 때문인 걸로... 좋아하는 개척을 계속 하는 것 뿐.. 듣던 비틀즈 계속 듣듯이
번개맞은씨앗
24/09/30 01:12
수정 아이콘
사람마다 취향과 성격이 다르니까요. 목적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겠고요. 니체는 창조적 힘을 위해서, 어느 순간 추가 인풋을 중단하고, 중요한 소수의 책만 반복해서 읽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베르테르
24/09/30 11:19
수정 아이콘
재밌는 사실이네요. 『비극의 탄생』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읽었는데 다음 문장이 깊은 울림을 주더라고요.

"학문은 예술가의 광학으로 바라보지만, 예술은 삶의 광학으로 바라본다......"
번개맞은씨앗
24/09/30 13:21
수정 아이콘
그런 문장이 있었군요. 예술가의 광학이라면 — 괴테가 떠오르네요. <색채론>을 조금 구경해본 적이 있거든요. 뉴턴의 광학과 대립하는 책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학문을 기계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던 것 아닐까 싶어요. 정해진 공리들이 있고 그걸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학문을 관찰할 때, 한계가 있겠지요. 예술가라면 공리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이를테면 자연관찰을 하면서 공리가 생성되는 거죠. 


삶의 광학은 아마도 생리를 가리키지 않을까 싶어요. 니체가 스스로를 생리학자라 한 걸로 기억하거든요. 몸으로부터 비롯된 생리의 이치란게 있고, 이를 생성철학 내지 생명철학 내지 건강철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런 관점에서 예술을 관찰하거나 감상한다는 의미로 해석해봤어요. 
번개맞은씨앗
24/09/30 13:23
수정 아이콘
이를 구조화한다면 시선의 방향은

니체 → 괴테 → 뉴턴

이렇게 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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