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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3/11 09:28:00
Name 계층방정
Subject [일반] 혐오의 과학으로 상나라를 돌아보다

혐오의 과학 매슈 윌리엄스 / 노태복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것이 우리를 결속시키는 원동력이다.

그들에 대한 적개심과 비인간화는 우리를 결속시키기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일단 한번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사랑 호르몬이라는 옥시토신이야말로, 우리를 사랑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아낌없이 희생하고 혐오하게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간이 아닌 그들은 죽어 마땅한 존재까지 된다. 이 생각은 의례와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의 정체성까지 만들게 된다.

상나라 정벌 리숴 지음 / 홍상훈 옮김

현대에는 나치가 유명하지만, 문자가 있는 중국 최초의 문명 상나라도 이와 유사하다. 초기 상나라는 진한대에나 다시 나타나는 거대한 곡식 창고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이를 뒷받침하는 관료제도 있었을 것이고, 장강 유역의 현 우한 시에 있는 판룽청에까지 상나라 문화를 이식하는 등 상상 이상의 엄청난 확장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의외로 상족은 처음에는 단일한 민족이 아니었으니, 여러 문화가 결집한 최초의 상족의 정체성은 바로 얼리터우 문화에 대한 민족말살적 혐오였고, 상 문화가 아닌 모든 문화에 대한 꾸준한 인신공양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극단주의적 의례와 이데올로기로 뭉친 상나라에도 인신공양을 포기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상 본토가 아닌 외부 식민지에서 일어난 것이었기 때문에, 상 본토에 이 개혁운동이 유입되자 본토인들은 오히려 상나라의 정체성에 위협을 느끼고 저항했다.

다시 말하지만, 상나라는 여러 다문화 인간들이 우리 빼고 나머지는 다 제물이라는 종교적 의식으로 결집한 나라다.

이런 전통에 대한 위협은 상나라가 당대에는 이례적으로 고도의 관료제를 갖춘 나라였기에 더 심각하게 느껴졌는데, 관료들은 왕에게 충성하지 종교 의례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상나라는 상나라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개혁도 포기하고, 식민지도 포기하고, 관료제도 포기했다.


※ 이 글은 밀리의서재에 올린, 두 책을 읽고 든 짧은 생각인데, 여기에도 공유합니다.

아직 상나라 정벌은 다 못 읽었고, 두 책 모두 긴 책이지만 저는 추천합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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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11:00
수정 아이콘
저 시대 기록이나 유적이 남아있는 중국애들 보면 정말 부러워요.
계층방정
24/03/11 11:07
수정 아이콘
저 상나라 정벌 책에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상나라 유적은 현대에 많이 발굴되긴 했으나 기록은 주나라에서 철저하게 말살했다는 것이긴 합니다. 다행히도 갑골문이 남아서 주나라가 말살한 상나라의 실상을 현대에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분서갱유 사건이나 문자의 옥 같은 기록말살도 은근 중국의 전통 같습니다?
24/03/11 11:31
수정 아이콘
와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인터넷에서 간간히 상나라 은허 얘기 나올때마다 아즈텍이랑 똑같네..란.. 생각들었었는데..크크
계층방정
24/03/11 12:43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이 책에서는 아즈텍의 인신공양은 건축물과 조각상이나 부조 등의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전시적 요소가 있었지만, 상나라의 인신공양은 단지 제사와 점에 대한 글을 적은 갑골문만 있을 뿐 아즈텍에서와 같은 전시적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성야무인
24/03/11 12:30
수정 아이콘
아마도 상나라는 중화라는 중국내 영토외에도 다양한 문명과 맡닿아서

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잉카나 마야처럼 제신위주의 인신공양을 하는 정책을 펼치기는 어려웠을겁니다.
계층방정
24/03/11 12:46
수정 아이콘
다양한 문화와 맞닿아서 인신공양이 생겨났고, 다양한 문화와 맞닿아서 인신공양을 하지 않는 문화도 유입될 수 있었고, 또 다양한 문화와 맞닿아서 인신공양을 하는 문화를 버리면 자기 정체성조차 버릴 위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4/03/11 12:52
수정 아이콘
중국사는 한번 공부해 보고 싶기는 한데 분량 때문에 엄두가 안나더라구요. 이런 책은 참 단비 같습니다.
계층방정
24/03/11 17:04
수정 아이콘
상나라 정벌이 꽤 두꺼운 책이긴 한데, 역사책임에도 유적과 유물에 대한 묘사가 생동감이 있어서 지치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나라나 주나라 다루는 책이 몇 없어서 단비 같다는 말씀에 저도 동감입니다.
러브어clock
24/03/11 14:04
수정 아이콘
오~ 관심이 있던 분야인데. 좋은 책 추천은 언제나 따봉입니다.
계층방정
24/03/11 17:0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고우 고우
24/03/12 11:30
수정 아이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두 권 모두 주문했습니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함으로써
그들을 "악마화"하면서 "우리"를 결속시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이들을 혐오합니다.
행동: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의 저자 새폴스키에 따르면,
그러한 인간의 속성을 잘 이용한 이들 중의 하나가 히틀러였죠.
계층방정
24/03/13 07:0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책을 보면, 참 인간 본성에 대한 슬픈 이야기 같은데, 이런 혐오를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는 지도자가 인기를 끌게 되는 조건이 바로 “죽음과 필멸성 인식”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와 그들을 구분함으로서 그들을 악마화하고 우리를 결속할 수 있는 지도자가 지지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삼성전자
24/03/12 14:23
수정 아이콘
홀린듯이 상나라 정벌 책 주문했습니다.
계층방정
24/03/13 07:0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저 책을 끝까지 읽으면 공자 얘기까지도 나온다고 해서, 공자를 이 책에서 어떻게 묘사할지 기대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제라툴의 명대사를 비틀어서 표현하자면, 공자는 과연 “난 장막을 들추고 과거를 엿보았지만, 거기엔 오직 야만뿐이었어.”를 외칠까요? 어째 숨겨져 있던 상나라의 끔찍한 역사를 알아버리고 다시 묻어버리는 공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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