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끔씩 일본e스포츠에 관한 소식을 올리는 흔한 PGR유저입니다.
지난 번 LOL관련 소식을 올렸을 때 보여주신 많은 관심에 이 곳 도쿄에서의 많은 관계자들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스타크래프트2 관련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올 초여름쯤 도쿄에서의 바크래프트 소식을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https://cdn.pgr21.com/?b=6&n=51320
여기에서 소개해드렸던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일본인 청년 키타하시 마사노부(Vaisravana/Z/이하 Vais)군의 이야기입니다.
Vais군은 현재 데토네이션 소속으로 2013년 열린 일본내의 거의 모든 대회에 결승에 오르며,
결과물로는 JCG 시즌2, 시즌3 우승, WCG일본대표 선발전 준우승,CJ엔투스 한일전 이벤트 출전(대 김준호 전)등
일본 내에서만큼은 톱레벨인 저그 유저로서 브루드워 시절부터 게임을 해온 꾸준한 게이머입니다.
제가 Vais군을 처음 실제로 만난 건 지난 봄이었던 4월, 작은 오프라인 대회장에서였습니다.
일본은 거의 모든 대회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오프라인 대회가 흔하지 않은데요, 우연한 기회에
오프라인 대회에서 Vais군과 알게 되어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참 바르고 성실한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Vais군은 5월 데토네이션이라는 게임팀에 입단하며, 새로운 컴퓨터를 스폰받게 됩니다.
사실 일본에서 새로운 컴퓨터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가 큰 감이 안 오실텐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은 거의 모든 대회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집에 있는 컴퓨터의 상태가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Vais군은 이전까지 본인 컴퓨터에서 스타2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대회를 포기해야 한 적도 있고,
정상적인 연습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개인의 경제적 사정이 새로운 컴퓨터를 준비하기에는 그리 넉넉한
상황도 아니었던 듯 하구요. 그런데 새로운 컴퓨터를 스폰받은 이후, 바로 상기에 언급한 대회의 성적들을 거두기 시작한 것입니다.
Vais군을 포함한 여기서 게임을 하는 모든 친구들은 한국의 e스포츠라는 타이틀은 그저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선망의 대상입니다.
저는 그런 친구들에게 무언가 희망의 끈을 만들어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즈음, 루키리그(구 커리지)라면 출전해볼만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루키리그에 외국인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바로 확인하였습니다.
참가에 문제가 없다고 바로 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일본의 게이머가 어떤 형식으로건
외국으로의 원정경기에 대한 경비를 지원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데토네이션의 팀 대표, 노부유키 우메자키 씨는
직접 스폰서를 찾아가 현금으로 체제비에 대한 지원을 받아내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노부유키 우메자키 씨는 과거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게이머로서
2012년 WCG 일본 대표를 역임하는 등 우리가 가끔 말하는, 소위 게이머 출신으로서 게이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업계 관계자입니다.
사실 데토네이션 팀을 포함한 일본 내 게이머나 게임팀의 스폰서는 장비 지원 등의 간단한 형식의 현물 지원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일본의 선수가 해외 원정을 위해, 그것도 초청이 아닌, 자의에 의한 출전을 스폰서에게 경비로 지원받는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의 e스포츠 업계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을 노부유키 우메자키 씨가 해낸 것이었습니다.
2013년 12월 27일, 크리스마스가 막 지나고 한국에 다시금 한파가 찾아올 무렵, 저는 점심에 인천을 통해 입국했습니다.
Vais군과 우메자키 씨는 늦은 저녁 7시반에 한국에 도착했지요.
(연말이라 같은 시간대의 표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티켓팅 이야기만도 정말 몇 페이지 쓸 수 있을만큼 가혹한 과정이었습니다만 생략합니다..흑흑)
Vais군의 첫 해외오프라인대회, 첫 외국여행, 첫 비행기 탑승.. 왜 항상 "첫"이 붙으면 뭐든 설레이는 걸까요.
저는 Vais군의 한국에서의 "첫" 식사를 의미있게 만들어주기 위해 좀 더 의미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전 프로게이머 차재욱 선수가 운영하는 영등포의 오리고기집을 찾아갔습니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 하는 일본에서 온 프로게이머 지망생에게 차재욱 사장님은 콜라 서비스까지 주시며 절대 긴장만 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거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오리고기를 맛있게 먹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구요. 차 사장님 감사합니다.
호텔로 돌아가 하루를 지내고, 다음날 아침 찾아간 곳은 일산의 CJ엔투스 연습실이었습니다.
사실 Vais군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자신의 대회에 대한 긴장보다 CJ엔투스 연습실에 가서 연습을 하게 된다는 것에 더 큰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Vais군은 브루드워 시절부터 CJ의 팬이었습니다. 지금도 Vais군 트위터의 프로필 사진은 예전 CJ 마스코트였던 "원스터"입니다.
연습실에 들어가 박용운 감독님과 코치님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배정받으며 셋팅을 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 Vais군은 실로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화면속에서만 만나던 마음속의 영웅들이 눈앞에 있었거든요. Hydra, Effot, SkyHigh, Hero...등등
그들과 인사하고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연습을 하는 Vais군, 하지만 마냥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따끔한 지적이 이어집니다.
"일단 키보드부터 바꿔야하고, 해상도 셋팅도 바꿔야하고, 빌드도 처음부터 다시 가다듬어야 하고.."
한국의 프로게이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기본"조차도 아무 것도 지켜지지 않은 Vais군의 상태를 지적받은 팀의 대표 우메자키 씨는
"그런 상태에서도 지금까지 용케 좋은 성적을 내주었군요."하며 되려 Vais군에게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디바이스는 바로 바꿀 수 없었지만 게임내의 해상도 셋팅과 빌드 등을 지적받은대로 바로 고친 Vais군은 원포인트 레슨의 효과인지
손과 화면전환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프로리그 시즌이 코앞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아마추어 게이머에게 연습을 지원해준
CJ엔투스 박용운 감독님 이하 전 선수단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CJ에서의 연습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지만 아직 초저녁인 시간, Vais군은 연습을 더 하고 싶어했습니다.
근처 PC방으로 향하려 하자 우메자키 씨가 물어옵니다.
"한국의 PC방은 일본인은 못 들어가지 않나요?"
...아차 했습니다.
꽤 얼마전 한국의 웹사이트들에 일본인은 출입금지 라는 팻말을 붙인 어떤 PC방이 짤방처럼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그 게시물이 일본까지 넘어와 와전이 되어 요즘은 "한국의 PC방은 일본인 출입금지"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며 설명해주고
PC방으로 함께 동행해 한국의 PC방이 얼마나 좋은 시설인지 보여주고, 또한 그 짤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설명해야 했습니다.
12월29일 아침.
"Vais군, 컨디션 어떤가요?"
"너무 좋습니다."
"긴장되지는 않나요?"
"어제 CJ선수들 본 것으로 긴장을 다 써버려서, 오늘은 긴장할 여력이 없습니다.하하."
용산 보조경기장으로 향하는 Vais군의 표정은 너무나도 설레여보였습니다. 마치 도전해야 할 상대가 나타나야 즐거워지는 슬램덩크의 정우성 같은 느낌이랄까요.
경기장에 도착해 접수를 마치고, 자기의 자리를 정하고 셋팅을 하는 Vais군, 그러는 와중에 또 한번 믿기 힘든, 너무나 가슴벅찬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얼마전까지 웅진 스타즈의 감독님이셨고, 현재는 KeSPA의 경기위원회장을 담당하고 계신 이재균 감독님, 외국인 게이머가 루키 리그에 출전하신다는 소식에
바쁘신 와중에 경기장을 직접 방문해주셔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잊을 수 없는 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게임에는 언어가 필요없잖아요, 게임이 언어니까."
이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지만, 저 한마디로 모든 뜻이 함축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경기는 시작, 4명 1개조의 더블 엘리미네이션, Vais군의 조에는 Vais군 이외에는 모두 프로토스, 참고로 Vais군은 저그였습니다.
맵 순서는 전 경기 외로운 파수꾼, 벨시르 잔재, 연수의 3전 2선승제입니다.
첫 경기의 첫 세트, Vais군의 패배, 현장의 관계자들 모두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 결국 또 그저 그렇게 패배하고 마는 이방인 참가자가 되는 것인가라는
분위기에 휩싸일 무렵, 2세트를 승리하는 Vais군, 그리고 3번째 세트, 엘리전으로 가는 공방 끝에 자원줄을 지켜내며 상대를 엘리시킨 Vais군의 승리!
승자조에 진출한 Vais군은 앞 경기와는 다르게 무난히 1,2세트를 승리하며 2:0,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현장의 선수들과 관계자들, 모두 Vais군의 뒤로 모여들며, 한국 선수와는 조금은 다른 스타일로 경기하는 외국인 선수에게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경기 진행을 도와주신 관계자께서는 오랜만에 재밌는 스타일의 선수가 나타났다며 즐거워하셨고, 브루드워 시절의 목동저그를 보는 것 같다며
꼭 잘 되서 높은 곳까지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한마디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실시간으로 아프리카와 TV팟, 트위치에서 중계가 되는 것을 동시에 체크하던 저는 사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외국인 선수, 특히 일본 선수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갖는 웹상의 팬들이 있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했는데 채팅창을 바라본 저는
그것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Vais군을 응원하는 코멘트가 많았으며, 사실 모두가 바라는, 일본 e스포츠가 빨리 발전해서
스타던 롤이던 재미있는 한일전을 보고 싶고, 또 그러기 위해서 이러한 선수들이 잘 해주어야 한다는 응원의 메세지를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16강도 2:0으로 이긴 Vais군은 8강에서 전회 루키리그 준우승자, 브루드워 시절 SK텔레콤 2군 출신인 백승재 선수를 만나 0:2로 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실력의 차이를 절감했다며 백승재 선수 자리로 찾아가 악수를 나누며 루키리그 도전의 꿈은 8강에서 멈추고 맙니다.
Vais군에게는 즐거운 도전이었고, 꿈같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도전하고 싶고,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여정이었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이재균 감독님께서 시원하게 저녁식사를 쏴주셨습니다.(너무 감사드립니다. 맛있었어요 너무너무.)
여정의 마지막은 프로리그 개막전이었습니다. 저도 처음 가보는 넥슨 아레나를 함께 찾아가 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현장에서 직접 경기를 관람, 응원하고 소리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꿈만 같았던 Vais군의 한국 원정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다짐했습니다. 다음 루키리그에 꼭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도 아무 것도 없었듯이, 일본은 e스포츠에 있어서 아직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꿈을 향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려 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가끔씩 이 곳의 소식을 계속 전해드리려 합니다.
여기서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PGR 여러분들의 메세지와 지적은 너무나도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게임이라는 언어는 통역이 필요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