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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10/18 17:28:34
Name 퉤퉤우엑우엑
Subject [E-야기] ─첫째 날
이 이야기는 픽션일 수밖에 없습니다.

───────────────────────────────────────────────────────────────

날라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전혀 밝지도 않고, 자명종 같은 걸 맞춰놓지도 않았지만, 몸이 스스로 거의 일정한 시간대에 눈을 떠 버린다.
아주 피곤할 경우에는 가끔 늦게 일어나 버리기도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늘 일어나던 시간대로 되돌아가 버리는 몸의 생체 시계 기능이, 아주 좋다고 생각하며 날라는 상체를 일으켰다.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지금이 5시 정도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세수라도 하기 위해, 어두운 방바닥으로 조심하며 내려왔다.
바닥만이 아니라 아직 주변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책상이나 침대 같은 경우는 어렴풋이 보이는 편이지만, 어제 바닥에 던져놓은 너저분한 옷가지라든가, 아니면 자신의 책상 구석에 밀어놓았던 흡혈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책 같은 것(일단 그 책은 검정색 표지였기에 더욱)은 눈에 띄지도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눈이 어두운 것에 익숙해 지겠지'

편하게 생각하고 혹시 바닥에 있을지 모를 무언가를 조심하며, 그것이 만약 듣기 싫은 불협화음을 낼 경우에는 나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걸어가다가, 갑자기 멈춰섰다. 날라는 '나다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좀 잘못 됐다고 느껴졌다. 오늘은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날. 그렇기에 어제, 이 방에 있던 두 사람은 당연히 집으로 갔을 것이다.
이유없이 새어 나오는 실소를 지었다.
'그 둘이 집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한 거니까, 나다를 밟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잘못 됐다고 느껴진 건 나다가 바닥에서 자고 있다는 생각이 잘못 됐기 때문이다. 어제만해도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봤으니까, 바닥에 있을 이유는 없어. 아니, 어차피 그 이후로 집으로 갔을테니, 역시 침대에 있을 이유도 없을텐데...아, 몰라. 너무 복잡하잖아.'

자리에 선 채로 혼자서 고민하던 날라는, 자신의 생각을 자신도 모른다고 느끼며 멈췄던 발걸음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걸음이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모든 생각이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불협화음 같은 건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 물컹한 것이 발에 닿았다. 닿았다기 보다는 밟았다고 해야겠지만, 날라는 발에서 느껴지는 느낌으로, 이 정도 깊이와 크기라면 나다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바닥에 푸딩같은 게 있는 것보단 신뢰가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단 아무래도──

"뭐...,,,"
아래에서 고통스러운 듯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 역시 우브인가."

──큰 체격을 가진 우브밖엔 없다.

"그...그..."
우브는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고 있는데 목에 동전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어정쩡한 발음만을 계속 한다.. 날라는 의아해하며 위에서 그를 계속 바라보았다. 잘 보지는 않았지만.
"그...바...바...알......"
"발......?"
우브의 말에 날라는 잠깐 자신의 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아직도 그 물컹한 것 위에 올라가 있다는 걸 자각했다.
"아,"
날라는 약간 놀란 것처럼 급하게 발을 치웠다.
"미안."
날라가 발을 떼자마자, 우브는 기침을 몇번하더니 바로 일어났다.
"이게 미안하다고 될 문제인 거 같냐?!"

우브가 벌떡 일어나자, 책상이나 침대 같이 커다란 것은 보였던 것처럼 그의 형상이 보였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덕에 더 잘 보이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다였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의 얼굴 형상이 보이는 위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밟았으면 빨리 치우던가 해야지 힘이 점점 더 들어가는 건 뭐냐!"
우브가 자주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는 표정을 자주 볼 수 없는 건 아니었기에, 날라에게는 그의 표정이 얼추 그려졌다.
"음...아......뭐야..."
그 때, 오른쪽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모두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소리는 나다의 침대 쪽에서 난 것 같았다. 게다가, 자다가 깨서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긴 했지만 나다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그 말은, 나다 역시 아직 학교에 남아 있다는 것이 된다. 날라는 그에 대해 조금 놀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우브는 어디론가 걸어가는 듯 발소리가 들렸다.

"빨리 일어나지 그래. 오늘 수업은 일찍 있다고."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난 뒤에, 갑자기 방에 불이 들어왔다. 우브가 스위치 옆에 서서 말하고 있다.
날라는 우브의 화가 금세 풀린 것과, 그 어둠 속에서 그 스위치를 쉽게 킨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화장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뒤에서는 우브가 나다를 잡아 먹으려는 듯한 소리를 내며 깨우기 시작했다. 날라는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나다가 일어나 있다면(그리고 살아있다면) 저들이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집에서 그냥 학교에 남아 있으라고 했단 거지?"
"그렇다니까. 이번 여름엔 좀 많이 놀아보려고 했는데, 미래를 위해서는 학교에 남아야 한다느니 어쩌느니...그런 핑계 있잖아, 왜."

결국, 우브나 나다나 비슷한 이유로 학교에 남았는데, 요지는 집에서의 반대였다.
그 실제 이유로는 정말 미래를 위해서와, 집에 돌아오는 것이 반갑지 않아서. 두개로 나눠질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오지 못하게 한 그 핑계에서는 둘이 비슷한 말을 했다.
날라는 그들이 가지 않은 것이 자신에게 방해된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남아 있는 편이 즐거운 면에선 더 좋은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들 본인들은 아주 싫어하겠지만.

"지금 몇시지?"
"6시 좀 넘었어. 수업이 9시니까 시간은 많지만, 그 수업에 대해 고민 해야할 시간으로 따지자면 좀 부족할 것 같은데."
나다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지겨운 듯 말했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 앉은 채로 자신의 책상으로 팔을 뻗어 시간표를 던지며 말했다.
"이거 봐. 오늘 9시에 있는 수업은 무려 역사란 말이야."
"아, 정말이네. 3시간 정도로는 걸리지 않고 잘 준비하기에 좀 모자랄지도 몰라."
아직도 바닥에 앉아 있는 우브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날라는 '확실히.' 라고 말하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너저분한 책들 중에서 역사 교과서를 골라내어 자신의 침대에 던져 놓았다. 워낙 특별한 일이나 대화 주제가 없다보니 우브와 나다는 그것을 끝까지 쳐다보고 있다가, 별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실망한 듯 했다.
"아침이나 먹으러 가자. 이러고 있는 것보단 낫잖아?"
"아, 그럴까. 그러는 편이 시간도 빨리 가고 좋겠지."
날라의 말에 우브와 나다는 여전히 이 시간에 일어난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아 졸린 듯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세명 모두 현관으로 향했다.



아침에 시작하는 수업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항상 수업이 시작하기 전부터 교실에 미리 들어온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시작한 오늘은 그렇지 않은 것이, 집으로 가지 않은 학생은 그 많은 수 중에서 서른명이 채 되지 않는 데다가, 모르는 선후배끼리 떠들지는 않는다는 일반적인 전제하에서, 그 학생들이 같은 학년일 경우만을 따지더라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날라와 우브와 나다는 뭔가 어색하게 속닥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교실의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드르륵하고 미닫이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멀쭉한 청년이 들어 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교실 맨 앞의 교탁에까지 걸어갔다.
"어, 뭐야. 선생님이 바뀐거야?"
"왜 다른 사람이지?"
교실 안이 웅성거렸다. 원래 역사과목 담당이었던, 학생들에게는 최면과목 담당이라고 불리는 러프킨의 허름한 체크무늬 셔츠가 아니라, 파란 티에 청바지 하나를 입고 있는, 심지어 키마저도 눈에 띄게 큰 남자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웅성거리던 교실의 술렁거림이 끝나자,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름방학 동안만 역사과목을 맡게 된 제이콥이라고 합니다."
그는 말을 끝마치고 교실에 있는 현 블리자드의 전교생을 바라보았다.
"제가 뭔가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손을 들고 질문해 주세요."
제이콥의 말이 끝나고도 교실 안은 조용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없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있지만 아직 교실 안에 너무나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있어서 가만히 있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결국,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제이콥이 말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별 다른 소개없이 바로 수업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날라는 제이콥의 말이 끝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바로 질문을 하려 했다고 생각했다. 러프킨의 최면수업은 그만큼 지겨웠기에, 모두들 역사 수업을 시작한다는 말에 움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날라는 어쩌면 그냥 자면 될 거라고 편하게 생각해버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반의 학생들은 전부 학년이 다르죠?"
수업을 시작하겠다던 제이콥은,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역사 수업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는 범위가 다르니까요. 안 그런가요?"
제이콥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마치 교실 안이 밝아진 듯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봤고, 미리 엎드려 버린 학생들은 몸을 다시 일으키거나 나다 조차도 머리를 들고 앞을 보았다. 제이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가지고 온 교과서는 덮어도 좋습니다. 지금은, 어떤 전설에 대해 얘기해 주도록 하죠."
제이콥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기다린 듯이 러프킨의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리저리 줄만을 그어 놓은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다시 엎드려 버리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지만, 적어도 날라가 보기엔 이 순간 만큼은 블리자드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 수업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제이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괴물' 이라 불리던 한 사람에 관한 전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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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다음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p.s2 선생님의 이름을 대신할 프로게이머의 아이디가 마땅히 없어, 임의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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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18 18:54
수정 아이콘
연성 선수 이야기인가요? 자주자주 업뎃해주세요~
퉤퉤우엑우엑
06/10/18 20:20
수정 아이콘
티티///비단 최연성 선수에게 압축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뭐, 다음화가 연재되면 앞으로의 전개를 알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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