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9/14 01:56:22 |
Name |
네로울프 |
Subject |
소년들은 본부를 만든다. |
소년들은 본부를 만든다.
아랫 골목의 필이 형이 팔뚝 만한 굵은 나뭇가지와 한참을 시름하더니 겨우 마지막 이음새에 그 가지를 끼워 넣었다. 비슷한 크기의 가지들로 이루어진 둥그런 아치가 팔을 쭉 뻗었을 때 손 끝이 닿을락 말락 한 위치에 만들어졌다. 아직 코흘리개 였던 우리들은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미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필이 형과 형의 친구들은 의기양양하게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 노상골목의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들은 짧은 팔 가득히 풀을 안고 있었다. 우리들 품에서 한웅큼씩 풀들을 떼낸 형들은 아치 사이사이의 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너무나 감탄한 나는 고개를 들어 아치의 지붕을 쳐다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여름의 풍성한 나뭇잎이 가득달린 아치가 된 나뭇 가지들은 훌륭하게 하늘을 가리고 있었지만 드문 드문 난 틈새로 7월의 태양이 묻어 들어와 아치 안은 부드러운 금색으로 조명되고 있었다.
“자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의 본부다. 우리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여길 알려주어서는 안된다.”
우리 노상길의 골목대장인 필이 형의 목소리는 근엄하다 못해 사뭇 떨리고 있었다.
이제 막 기세를 떨치기 시작한 여름의 해가 금방 모를 낸 논들의 물을 차츰 말려가고 있을 때 우리는 그렇게 마을 뒷길의 낮은 야산 중턱에 나무와 풀로 이은 작은 본부를 짓고 그 속에서 우리만의 비밀스런 의식을 치루었다. 네살 터울이 나는 막내 여동생이 아직 보행기를 타고 가는 흙이 부드러운 노란 마당을 헤집고 다니던 그 해에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았던 나는 드디어 소년이 되었다.
아버지는 휴일이면 항상 다리 건너 일광역앞의 청다방엘 다니셨다. 바닥이 깊은 정지에서 저녁 준비를 하시던 어머니는 밥이 다 될 때쯤 되면 항상 내게 청다방으로의 전화를 맡기셨다. 패들을 돌리는 자석식 전화기의 사용법은 이미 익숙해져 있엇다. 빠르게 패들을 세바퀴 돌리고 수화기를 든다. 전화국 누나가 나오면 난 숨을 한번 몰아 쉬고는 또박 또박 말을 했다.
“청다방 좀 부탁합니다.”
그러면 잠시 후 잦은 통화로 익숙해진 청다방 누나의 목소리가 건너왔고 그러면 난 아버지의 이름을 대며 바꿔줄 것을 부탁하곤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진지 드시로 오라시는데요.”
전화 후 20분 쯤이면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셨다. 나는 그 당시에 아버지가 청다방에서 무얼 하시는 지 몰랐다. 그냥 회사가 쉬는 날이면 아버지는 항상 청다방에 가신다고만 생각했었다. 내가 처음 청다방에 가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무언가를 가져가라는 아버지의 전화가 있었고 어머니는 나를 청다방에 보내셨다. 역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며 난 무척 긴장했던 것 같다. 무척 엄하셨던 아버지셨기에 아버지가 늘 계시는 청다방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바짝 얼어 있었다. 역전 약방 2층의 청다방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땀이 많았던 나는 뒷덜미를 흠뻑 적시고 말았다.
“어머 얘가 그 꼬마에요? 매일 전화 하던… 상당히 똘똘하던데…귀엽게 생겼네.”
“어 진탁이 왔나? 공부 잘하제?”
전화로 목소리만 듣던 청다방 누나의 호들갑에 가뜩이나 쫄아있던 나는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거기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한번씩 돌아보며 나를 을러대는 통에 난 꾸벅거리며 인사하느라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있었다. 등어리를 적시던 땀이 급기야 얼굴 위로 확하고 번져왔다. 청다방 누나는 내가 땀을 너무 흘린다며 선풍기 앞으로 나를 데려다 앉히고는 차가운 요구르트 병을 안겨주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요구르트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겨우 안정을 찾은 나는 그때까지도 아버지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내 손과 팔을 조물락 거리는 청다방 누나의 매끄러움에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거 엄마한테 갖다 줘라!”
등뒤에서 갑자기 넘어온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입안에 머금은 야구르트를 후다닥 삼키고는 일어났다. 아버지에게 누런 포장지에 담긴 물건을 받은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달아나듯 청다방을 빠져나왔다.
“ 다음에 또 놀러와 꼬마야.”
달아나듯 빠져나오는 형편임에도 장난기 묻은 청다방 누나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매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건네준 것은 개고기였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휴일이면 항상 친구분들이랑 그 곳 청다방에서 마작을 하셨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그 곳이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의 본부였던 것이다. 어른들도 본부를 만든다.
내가 두번째로 본부를 만든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동수, 동우, 나 이렇게 아이들이 모두 인정하는 삼총사였던 우리들은 가을 걷이가 한참인 때에 본부를 만들기로 했다. 학교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길을 거의 다 간 곳 쯤에 우리 할아버지의 가묘가 있었다. 그 가묘를 타고 넘으면 야트막한 세개의 산등성이가 둘러 싼 골짜기가 나타났다. 그곳은 사람의 출입이 흔치 않은 곳이기도 했다. 우리는 골짜기의 혈이 만나는 곳에 본부를 지었다. 경사진 흙을 파내느라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강가에서 키높이 두배만한 대나무를 수십개 쪄와 높은 쪽의 벽에 박아넣고 반대쪽 끄트머리는 집에서 가져온 빨래줄로 엮어매었다. 일어서면 정수리 끝이 닿는 높이였다. 앞쪽은 그냥 터 두기로 했다. 그 곳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골짜기 아래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우리는 거기서 누군가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가를 살피곤 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진 않았다. 우리는 본부에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물건들을 가져다 놓기로 했다. 구슬과 딱지들을 모아 땅을 파고 묻어두었으며 마을 골목에서 주은 각종 망가진 잡동사니 들도 모두 가져다 놓았다. 어느날은 집에서 냄비를 가져오고 라면을 사와서 마른 나뭇대를 꺽어 불을 피워 라면을 끓여먹기도 했다. 물을 퍼올 곳이 없어 산 아래 논의 물꼬에서 물을 떠오고 젖가락 대신 가는 아카시아 나뭇가지를 꺽어 썼었다. 산허리에서 긁어모은 섶들을 바닥에 깔고 낮잠을 잤다가 온통 벌레에 물려 일주일 내내 가려움증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2주일쯤이 지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 곳이 심심해진 우리는 다시 마을로 내려가 골목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 동우가 도시로 전학을 갔다.
어느날인가부터 필이 형은 더 이상 우리와 놀지 않았다. 난 골목 어귀에서 필이 형과 마주치면 항상 경례를 했지만 필이 형은 경례만 받아주었을 뿐 다시는 내 손목을 잡아 끌며 마을 뒤터 쓰레기장으로 보물을 주으러 가주지도 않았으며 구슬과 딱지를 따러 신작로 건너편 골목으로 함께 건너가지도 않았다. 가끔 길에서 필이 형을 보기는 하지만 필이 형은 동네의 큰형들과 어울려 다니고 있었다. 그 형들 중에 덩치가 큰 형이 필이 형의 대장인가 보았다. 그 후로 나는 혹시 필이 형을 만나도 더 이상 경례를 하지 않았다. 필이 형은 가끔은 ‘이 녀석 왜 경례 안해’ 하면서 웃곤 했지만 대부분은 그냥 내 머리통을 한번 쓰다듬고는 지나가 버렸다. 그 떄쯤 난 혼자서 필이형이 만들었던 본부를 찾아갔었다. 몇가닥 길게 누운 나뭇가지들이 눈에 띄었지만 더 이상 본부의 흔적은 없었다. 이제 아무도 다니지 않게 되어 본부로 난 길들도 어느새 풀들이 무릎만치나 높게 자라 있어서 주변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1시간여를 옛본부 주위를 다녀보고 산마루 위로 올라가 얕은 잔디자락에 누워 햇볕을 쬐다 내려왔었다. 나도 그 이후론 본부에 다시는 가보지 않았다.
스무살을 몇 년 넘긴 어느해에 어머니와 함께 역엘 가다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어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아이고 필이네. 결혼했제. 잘 지내나? 진탁아 필이 형님 모르겠나?”
난 다소 낯설었지만 필이형을 기억해 내고 인사를 했다. 이제는 결혼한 필이 형이 말했다.
“어 진탁이가? 니 내 기억하제? 니 대장 아이가?”
난 싱숭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반가운 척을 했지만 솔직히 낯이 설어 어색했다. 그러다 필이 형이 우리를 스쳐지나가고 난 뒤돌아 보다 문득 묻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형님 본부 기억합니까?’
하지만 난 묻지 못했다. 그리곤 필이 형을 만난 적이 없다.
방위 소집해제를 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서울로 올라가 복학을 했다. 아직 연애를 시작하기 몇 달 전 무렵 난 서클의 복학한 선배와 동기 몇 명과 함께 ‘JL16’ 이란 재즈 까페에 매일 드나들었다. 우린 거기 모여서 병맥주를 홀짝거리며 음악을 듣다 당구를 치러 나가곤 했다. 재수할 때 이미 150을 쳤던 난 겜빼이에서 거의 진 적이 없었다. 당구가 싱거워지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내 자취방으로 몰려갔다. 우린 밤새도록 포카를 쳤다. 방학 땐 때로 몇일을 합숙하며 포카를 치기도 했다. 포카를 치며 미국 월드컵의 한국 경기를 응원했고 포카를 치며 처음으로 실시된 통신 수강신청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포카를 치러 가기 전엔 항상 ‘JL16’에 들려 맥주를 마시고 그 다음엔 겜빼이 당구를 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우리 멤버들은 가끔씩 만나 당구도 치고 술도 마시고 또 때론 포카를 치기도 했다. 역시 그렇게 두어달 만에 만나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때였다. 선배 한명이 ‘JL16’ 이야기를 꺼냈다.
“야 그 땐 거기가 우리 본부였는데…”
그래 그랬다. 나도 어른이 되고도 아버지처럼 본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시간을 죽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본부는 청다방이었고 나의 본부는 ‘JL16이었다. 아버지는 거기서 마작을 하셨고 난 그 곳에서 포카를 쳤다.
동우가 전학을 간 후 한달쯤 뒤에 동수와 난 우리들의 삼총사 본부를 찾아갔었다. 바로 며칠전에 늦가을의 때 아닌 큰 비가 오고 난 다음이었다. 우리가 거길 떠난 한달여 사이에 본부는 어느새 무참히 뭉게져 있었다. 어쩌면 며칠 전의 큰비 때문이었는 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그 전에 벌써 무너져 내렸던 건지도 모른다. 산 위에서 흙이 잔뜩 내려와 우리의 본부를 완전히 뒤덮어 버렸던 것이다. 무너져 내린 흙더미 사이로 몇 개의 대나무가 삐죽히 솟아나 있었다. 딱지와 구슬을 생각해낸 동수와 나는 흙을 한참 파헤쳤다. 하지만 우리는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던 탓에 어느새 산자락에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던 것이다. 동수와 난 본부에서 내려와 마을 어귀의 굴다리에서 헤어져 각자 집으로 갔다. 동수와 나의 집은 굴다리에서 각자 다른 길로 가야만 했던 것이다.
동우가 전학을 간 후 이상하게도 동수와 난 서로 조금씩 멀어졌다. 각자 따로 어울리는 무리가 생겼고 학교에서 집에 같이 가는 경우도 거의 없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난 부산으로 전학을 갔고 그 때 까지나마 같은 학교여서 가끔식 보곤 하던 동수와 난 그 이후론 몇 년에 한번씩 우연히 보는 것 외엔 따로 만나지 않았다.
대학 3학년 때의 여름에 집에 내려갔을 때 초등학교 친구들과 몇 명 만나 술을 마셨다. 그러다 술자리 끝무렵 쯤에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온 동수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또 자리를 옮겨 술을 마셨다. 그리고 헤어질 때쯤 동수가 내게 말했다.
“야 우리 옛날에 삼총사였잖아. 동우하고 니하고 내하고 말이다. 그자? 우리 본부도 만들고 했다 아이가.”
난 동수의 얼굴을 쳐다보고 웃었다. 동수도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자리가 끝나 친구들은 모두 다음의 자리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동수와 함께 신작로를 걸어 집으로 가다 우리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 어귀에서 동수와 난 헤어졌다. 동수의 집은 우리 집에서 신작로 윗쪽으로 이백미터쯤 더 간 곳이다.
동우가 전학을 간 그 해에 우리가 함께 본부를 찾아간 이후로 동수도 나처럼 그 곳엘 다시 찾아가 보았는지 궁금했다.
사람들이랑 어릴 때 이야기를 하다보면 항상 본부에 대한 기억을 만나게 된다. 누구나 어릴 땐 본부를 지었나 보다. 최근에 열독하고 있는 ‘20세기 소년’ 이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에도 보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만들었던 본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본부는 그들의 적이었던 사상 최악의 쌍둥이 완보와 맘보에 의해 박살이 났다 한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본부라 하지 않고 요새라 했다고도 한다. 이름만 달랐지 어쨌든 본부는 본부다. 우리처럼 산골짜기에 만든 이들도 있고 마을 외진 곳의 짓다만 건물의 공사장에 만든 이들도 있다.
우리처럼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이들도 있고 그 본부를 참호로 아랫마을 녀석들과 연탄재를 집어 던지며 싸운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본부는 본부다. 똑같다.
그러고보면 소년들은 항상 본부를 만드나 보다. TV나 만화나 영화의 영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두근거리게 하는 은밀함, 또래간의 결속감, 공유감이 주는 만족, 무언가가 된 듯한 허영심. 그런 것들이 본부엔 어려 있다. 그런 본부를 만들면서 소년들은 자란다. 본부를 바탕으로 꼬마에서 소년이 되고 소년에서 어른이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도 무언가를 위해 본부를 만든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거기에 무언가 깊은 의미를 두진 않게 된다. 다만 시간을 죽이거나 또는 술을 먹거나 도박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한 핑계로 본부를 만들 뿐이다.
허나 가끔은 아주 오래전의 소년처럼 두근거리는 은밀함으로 색다른 본부를 만드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하고 여태 소년인체로 남은 자들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옛날의 소년을 깊은 기억에서 꺼내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이유이든 어른의 모습인 소년들은 본부를 만들면서 다시 찾아온 그 두근거림에 신 레몬을 씹은양 어깨를 움츠리며 살짝 몸을 떤다. 어쩌면 소년들은 다시한번 진지하게 동료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뇌까릴지도 모른다. 아주 엄숙하고 당당하게 말이다.
“이 곳은 우리들만의 비밀 본부야. 이 곳을 다른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어선 안돼. 맹세하자.”
그렇게 소년’들’은 본부를 만든다.
………………zzt
언젠가 썼던 글인데 어쩌다 좋은 곳을 만나면 여기다 본부를 틀까 이런 생각에 이 글을 남기곤 합니다. 여기가 세번째네요…..
가입한지는 꽤 됐는데 이제사 pgr에다 본부를 틀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며...
예전에 못남겼던 가입인사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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