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단의 심장이 출시된지 5일이 지났습니다.
본작이 출시전부터 많은 유저들로 하여금 기대를 품게 만들고,
출시 되자마자 앞다투어 켐페인을 클리어하게하고,
출시 5일이 지난 현재까지 각종 커뮤니티에서 떡밥을 투척하고 덥썩 물고 게시판 리젠율을 올리고 트래픽을 잡아먹도록 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이 군단의 심장이라는 작품의 스토리일겁니다.
전작인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 그리고 디아블로3에서 나타나듯 블리자드의 최근작들은 대체로 부담없고 직선적이며 너무 무겁지 않은 스토리라인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극장에서 팝콘 주워먹으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볼 때처럼 스토리 자체보다는 장면과 연출에 감탄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죠.
본작 군단의 심장의 스토리 역시 이런 노선의 연장선상에 있는듯 합니다. 역시나 호불호가 갈리는 중이구요.
개인적으로는 그냥저냥 나쁘진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테란과 저그 측 중요인물들간의 갈등구도를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하고 해결함으로써, 차기작이자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마지막편으로 예정된 공허의 유산 편에서는 가장 큰 적인 혼종과의 싸움에 집중적으로 포커스를 맞출 수 있게 된 게 긍정적이었죠.
그런데 군단의 심장 발매와 더불어 최근에 접하게 된 스2 공식 소설 시리즈
[플래시포인트]라는 작품을 읽고 나니, 켐페인 클리어 과정만으로는 고만고만 무난무난하기만 하던 군심의 스토리가 더욱 와닿고 케리건 등의 행동이 납득이 가게 되었으며, 전개 상의 의문점도 상당부분 해소되더군요.
군심 뿐 아니라 자날까지 포함한 스2켐페인을 즐기셨던 많은 분들께 충분히 추천드릴만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어 소개글 남겨봅니다.
1. 플래시포인트?
블리쟈드는 여러 작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게임 세계관을 소재로 게임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내용들을 외전 형식으로 소설화시켜서 출판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공식설정으로 취급됩니다.
본작인 플래시포인트는 자유의 날개 엔딩 시점(인간화된채 실신 상태의 캐리건을 놓고 벌어지는 타이커스와 레이너의 대립)에서부터 시작하여 군단의 심장 직전 시점에서 마무리되는 이야기입니다.
작중에서 레이너특공대와 발레리안 함대는 차행성을 탈출하는 도중 악튜러스 맹스크 황제의 자치령함대에 추격을 받게 되고, 레이너와 발레리안은 서로 연합하여 용병대장 미라 한이 관할하는 망자의 항구로 도주합니다. 여기서도 군심에 등장하는 모종의 세력에 의해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하지만 레이너와 발레리안의 주인공 포스, 레이너특공대의 활약, 혼란한 와중에 스스로가 지니고 있던 힘을 각성시킨 케리건을 필두로 위기를 벗어나 군심의 첫무대가 되는 지역인 우모자 실험실로 향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중간중간 스1 오리지널 또는 자유의 날개 당시의 케리건과 레이너, 맹스크에 대한 회상씬이 섞여 있습니다.
2. (군심 켐페인에서는 생략된) 작중 인물들에 대한 이모저모
① 제임스 레이너
"자네가 그립군, 타이커스. 배신한 자네가 아니라...예전의 자네가 말이야. 빌어먹을...녀석을 그리워할 줄이야."
"당신이 아니었어. 칼날여왕이었지. 놈들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어. 당신은 이제 사라로 돌아왔어.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함께할거야. 그러니 진정해, 사라."
"우리는 괜찮아, 맷. 대원들과 함께 벗어나. 수천 명의 목숨을 어느 한 사람의 목숨과 바꿀수는 없어. 이제 너희가 레이너특공대야. 살아서 이어나가야 해."
"...내가 옳은 일을 했기를..."
- 차행성에서 미쳐날뛰는 저그무리에게서 도망칠때도, 자치령의 추격을 뿌리칠때도 타이커스에 대한 애증과 그리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를 이용했던 악튜러스에 대해 더욱 분노를 불태웁니다.
- 제라툴이 전한 예언을 염두에 두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와는 별개의 이유로 케리건을 철저히 지키려 하며, 인간 케리건과 저그 칼날여왕이 다른 인물임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주변 동료들에게도, 케리건에게도, 레이너 자신에게도.
- 발레리안 맹스크라는 인물에 대해 계속 의심을 거두지 않으나, 결국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그 아버지와는 다른 인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 악튜러스 맹스크를 따르던 스1 오리지널 시절에 대한 회상에서는 악튜러스의 권력지향적 본질에 대한 갈등과 유령요원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케리건을 이해하고 애정을 갖게 된 계기들이 묘사됩니다.
- 어쨌든 발레리안과 티격태격하랴 자치령에게서 도망치랴 부하들 납득시키랴 케리건 뒤치닥거리하랴 정신이 없지만 자날의 그 간지가이로서의 면모는 그대로입니다.
② 사라 케리건
"걱정하지 말라고? 짐, 어떻게 그런말을 할 수 있지? 난 내가 저지른 짓을 알고 있어. 기억한다고. 수억 명의 사람들이 죽었어....바로 나 때문에!"
"그만 하는게 좋을거야, 맹스크 이 개자식. 이번에는 아니야. 다시는 안 돼."
- 군단의 심장 프롤로그를 보신 분들은 정신줄 놓은 목소리로 그저 맹스크를 죽여야 된다며 기승전맹을 시전하는 케리건의 모습을 기억하실텐데요.
그녀의 복수심은 단지 맹스크가 자신을 배신하고 저그무리속에 던져놓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케리건은 칼날 여왕 시절 진심으로 살육을 즐기던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있으며, 이는 모조리 맹스크에 대한 분노로 돌아갑니다.
또한 자치령은 정말 집요하게 레이너와 케리건, 발레리안을 추격합니다.
본작 플래시포인트 이야기 내에서 레이너 일행은 안전하다고 믿었던 모든 도피처에서 배신을 겪고 맹스크에게 꼬리를 잡히죠. "맹스크를 죽여야 이 모든걸 끝낼수있어"라고 뇌까리는 군심 프롤로그의 케리건이 이해갑니다. 군심 미션 3 클리어 이후 접하게 된 레이너 처형 소식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죠.
- 케리건은 레이너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스1 오리지널에서부터 최고급 유령요원인 케리건은 상대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수준이라는 설정이었는데요.
(레이너와의 첫 만남에서 난데없이 "이 변태가!"라고 면박주는 에피소드가 있죠.)
플래시포인트 작중에서 닥친 위기상황 와중에 케리건은 자신도 모르게 레이너의 심정을 감지하게 되는데, 이때 레이너의 마음은 '케리건을 지켜야 한다'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 각성 이후 인간화된 상태에서도 혼종 2마리를 단신으로 잡아내는 등 무쌍을 펼칩니다-_-
- 나루드 박사와 대면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디선가 다른 모습으로 본 것 같다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제작진과 작가가 브루드워 설정 아예 까먹진 않았더군요.
- 레이너와는 달리 발레리안을 계속 불신합니다. 군심 켐페인 중 우모자 탈출과정에서 레이너가 실종되자 대뜸 발레리안부터 의심하며 포스 그립을 시전하는 장면이 있죠.
③ 발레리안 맹스크
"아버지, 벌써 수천 명을 죽이셨습니다. 저를 위해 죽어 간 사람들의 목숨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전 제가 믿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믿지 않는 것은...아버지와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난 상관하지 않소!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차원 도약을 할 것이오. 레이너 씨, 당신이 그 기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가 당신을 완전히 잘못 판단한 거겠지."
"미라 한의 소위 그 용병 조직의 휘장일거요. 그들이 이 사람들에게 식량을 주고 있소. 폭력배와 살인자와 용병들이 내 아버지의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진 것 같소."
"케리건 양, 나는 당신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을 가져갈거요."
- 기존 이미지가 가장 와장창 박살나는 인물이었습니다.
게임만 했을 때는 그냥 느끼하고 치기어린 애송이 왕자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좀 능글맞긴 하지만 문무겸비에 인품까지 갖춘 개념인입니다. 자날 후반부 차행성 공격에 자치령함대 절반이 동원되었다는 소리는, 곧 자치령 함대 절반이 차행성 공격이라는 희대의 정신나간 작전에도 군말없이 이 왕자에게 기꺼이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따라왔다는 말이었던거죠.
그리고 애정, 신뢰 같은 인간의 긍정적인 측면의 존재와 그것이 발휘하는 힘을 믿고 있습니다.
- 케리건을 확보하려는 이유는 저그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음으로서 인류를 저그의 위협으로부터 구해내는것, 그 칼날여왕과 그 레이너를 자기 편으로 만듦으로써 자신이 현 황제인 악튜러스 이상으로 황제의 재목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 장차 닥쳐올 혼종의 공세를 막아내려는 것 등이 있습니다.(레이너가 결코 극소수 측근외에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않았음에도 독자적인 조사를 통해 제라툴이 접했던 예언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자날에서 타이커스와 레이너를 조종하여 유물수집 알바시켰던게 이 때문이었죠.)
- 혼자서 부랑자강도 세사람 정도를 제압할 체술쯤은 익히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좀 심하단 생각이 듭니다.
- 차행성을 탈출한 직후 모든것을 계획에 넣고 있었던 아버지 악튜러스 맹스크가 남은 자치령함대를 모두 이끌고 공격해오자, 아버지를 설득해보려하지만 비웃음만 산 채 함대전에 돌입합니다. 여기서 자기가 데려온 대부분의 함대를 잃게 되고, 소중히 여겼던 자기 사람들이 아버지로 인해 죽게 되자 레이너특공대 측과 연합전선을 펼치는 등 점차 행동을 같이 하게 됩니다.
④ 맷 호너, 로리 스완, 이곤 스탯먼 등 레이너특공대
"이제 우리는 아크튜러스 멩스크를 뒤에 달고 이십오 퍼센트의 보호막과 절반의 엔진으로 가장 위험한 소행성대를 빠져나간다"-멧 호너
"어이, 촌놈. 이 넓은 우주 어느 구석에 박혀 있나? 우리는 망령 전투기에, 바이킹에, 또 보이는 놈들은 모두 해치우고 집결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고."-로리 스완
"무슨 말씀을요. 돌아가면 대장님께 보고할 것들이 많을겁니다!"-이곤 스탯먼
"매슈 호너, 난 아직 과부가 될 준비가 안 됐다고."-미라 한
- 플래시포인트란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레이너특공대의 주요 대원들이 자주 등장하며 각자 멋지게 활약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군심 켐페인을 플레이하며 많은 분들이 아쉬워했던게 자날에서 출연했던 히페리온 함내 인물들의 비중이 적다는 점이고 저 역시 그 중 한명이라 더 반갑더군요.
호너는 레이너 부재시에도 카리스마있는 2인자의 역활과 더불어 지략가의 면모까지 보여주고,
스완옹은 자날과 마찬가지로 정겹죠.
스탯먼은 취급이 좀 안습하지만 너드 이미지에 가려져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내면의 용기를 발휘해 위기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라 한은 군심이 아니면 이쪽 플레시포인트 둘 중 하나는 설정오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레이너 일행과 호너에게 선의를 베풀구요.
*기타
- 악튜러스에게 젤나가유물을 넘긴 건 나루드였습니다.
- 레이너특공대의 배신자는 타이커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자날 켐페인 진행시 히페리온 휴게실에서 대화 가능하던 인물 중에 하나가 더 있었더군요.
- 한편 마찬가지로 히페리온 휴게실에서 대화 가능하던 인물 중에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이 쪽은 래더에서 사용가능한 기본 초상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죠.)
급박한 상황에서 모두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다가 막 끝낸 참에, 힘을 각성한 케리건이 자치령의 방해를 뚫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힘을 미처 제어하지 못해 스플래시데미지를 입히는 바람에 비참하게 죽고 말죠.
이 일로 인해 레이너는 주위 인물들로부터 케리건의 위험성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되고, 결국 레이너의 설득으로 케리건은 우모자 실험실에서 실험을 받게 됩니다.(군심 프롤로그에 나오는 그 실험)
3. 총평
- 군심 발매전 켐페인 스토리에 대해 많은 분들이 기대했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는 이미 군심 켐페인 직전까지의 상황을 담은 외전 소설인 플레시포인트에서 다뤄버린듯 합니다.
이미 워크래프트 소설시리즈(대격변 직전의 상황을 그린
[부서지는 세계]등)와
스타크래프트의 다른 소설시리즈(브루드워와 자유의 날개 사이 프로토스 진영 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그린
[다크템플러 사가])를 통해 블리자드 세계관을 여러번 재현해낸 적이 있는 작가 크리스티 골든의 필력도 괜찮은 편이고, 번역도 깔끔하다 생각됩니다.
군심 켐페인을 즐기셨던 분이라면 한 번 봐둘만한 소설이라고 봅니다.
군심 켐페인 스토리가 맘에 안드셨던 분이라면 두 번 보시구요.
자날 켐페인을 즐기셨던 분이라면 세 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