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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5 10:48
창이 별로라기보단, 이것도 일종의 창과 방패(비유적 의미에서) 싸움입니다. 화기 발달 이전까지는 갑주도 계속해서 발달했죠. 체인메일 시대까지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체인메일의 방호력이 대단히 뛰어난 건 맞지만 '상대적으로' 찌르기에는 취약하고 무지막지하게 비싼데 관리까지 까다로워서(공기와 접촉면적이 넓다=녹이 잘슨다) 풀세트로 입기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방패를 들고다니는 식으로 보조했습니다.
다만 방패까지 집어던진(...) 풀플 시대로 오면 냉병기로 타격입히는게 엄청 힘들어지죠. 베기로는 어림도 없고 그래서 기사들은 아예 대놓고 찌르기 용도인 스틸레토같은 단검류나, 그걸 넘어서서 송곳이나 다름없는 런들 대거를 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지간한 타격으로는 뚫을수가 없으니 틈새 찾아서 쑤셔버리게요. 사실 그것조차 쉽지 않아서 풀플입은 기사들은 진짜 인간병기나 마찬가지긴 했습니다. 당연히 난전이 숱하게 벌어졌고, 난전이 벌어지는 이상 상대적으로 리치 중요성이 떨어졌죠. 이건 화기 발달 이전까진 계속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창이 진짜로 별로였느냐? 또 그렇진 않죠. 역사적으로 모든 시대의 전장에 죄다 갑주 빵빵하게 착용한 기사나 맨앳암즈류만 있던 건 아니니까요. 동양 쪽으로 오면 더 그렇고요. 결국 뭐가 더 우위냐는 시대에, 상황에 따라 자주 달라졌죠.
23/09/05 09:48
부빈 전투(1214)에 관한 기록에도 '가느다란 칼'로 투구 틈을 찔러 적을 살해하는 기사들을 비난하는 기록이 나오죠. 칼로 갑옷을 벨 수는 없지만 칼로 갑주를 입은 적을 제압하는 방법은 다양한 반면 창으로는 그게 어렵습니다. 심지어 랜스차징으로도 사슬갑옷까진 살상력을 기대할 수 있지만 코트 오브 플레이트 단계에서는 큰 살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죠.
23/09/05 10:00
영화나 게임 같은데서야 랜스차징하면 시원시원한 충격력으로 돌파하고 그러지만
현실에서는 본문 그림처럼 막 서로 엉겨서 정체상태가 되고 씨름하듯이 힘싸움하는 국면이 되죠
23/09/05 10:04
용도별로 다 쓸 데가 있으니까 따로 발전한거고 병사들한테 제식 병기로 뭘 줄거냐?
혹은 상대가 돌진하는 기사라면? 갑옷이 두껍다면? 방패가 있다면? 등 질문이 다 다른거죠. 단순히 무기 하나 딱 들고 무한한 공간에서 1:1로 듀얼을 뜬다 이런 상황이 잘 없죠.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곧은 창보단 날이 좀 긴 폴암류 승률이 높지 않을지?
23/09/05 10:24
근데 랜스차징할때 쓰는 기병용 랜스랑 땅개들이 쓰는 보병창은 또 다르지 않나요..?
보병들이 창을 쓸때는 1:1 백병전이 아니라, 대형을 이뤄서 찌른다고 알고있었는데 말이죠. 대형붕괴되면 망하는거야 창이든 검이든 똑같은거고..
23/09/05 10:30
기사의 창 하면 흔히 생각하는 원뿔형 랜스가 등장하기 이전인 14세기까지는 그냥 랜스 창대 반 잘라서 보병창으로 썼습니다.
기창을 스피어라고 부르고 보병창을 랜스라고 부르는 등 용어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고요. 그리고 요점은 인체의 급소를 강하고 정확하게 찌르지 않으면 저지력을 발휘하기 어려우며 이를 고려하면 대결의 양상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23/09/05 10:39
[[우리 방패병들과 쇠뇌수들이 도망치는 적들을 추격하면서 흩어지기 시작했을 때, 잉글랜드의 중장병들이 진군해왔다. 이 중장병들은 전열 가운데로 들어와서 페로 니뇨의 부대 앞에 이르렀다. 페로 니뇨는 이에 맞서 중장병들을 진군시켰다.
많은 강한 창 찌르기가 가해졌고 그 결과 양측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일부는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다. 창을 버리면서 중장병들은 도끼와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대혼전이 이어졌다. 어떤 이들은 면갑이 떨어져 나가거나 팔 갑옷과 다리 갑옷이 벗겨져 나갔고, 다른 이들은 도끼와 검을 손에서 놓쳤다. 어떤 이들은 서로 맞붙어 드잡이질했고, 다른 이들은 단검을 손에 쥐었다. 어떤 이들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이들은 다시 일어섰다. 많은 곳에서 피가 넘치게 흘렀다.]] 1406년 저지섬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카스티야 기사들이 도보로 싸운 전투에 대한 증언인데, 도보로 배치되고 진군했다는 설명을 떼놓고 전투 묘사만 보면 그냥 기병전이랑 구분이 안 됩니다.
23/09/05 10:35
비슷한게 그물+삼지창 조합 아닐까요.
수많은 실전을 통해 검증된 1대1 최강의 전투무기지만 그 어느 군대 제식에도 그물따윈 들어간 적 없죠. 창이 검방보다 무조건 좋아서 쓰였다기보단 높은 범용성과 가성비, 낮은 숙련도로도 가능하다는 삼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봅니다.
23/09/05 10:43
토탈워 해봐도 이게 제가 상상하던 기병 차지돌진이 상대진형을 뚫고 나가는게 아니고 쾅 하고 부딛힌다음 개싸움이 되더라구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상대가 가로 한줄로만 서있는게 아닌데 창기병 돌격력이 아무리 쎄봤자 1열은 뚫어도 2열 3열 4열을 뚫고나간다는게 불가능하죠
23/09/05 11:02
추가로 원거리 병과는 '상대를 쏴죽이기 위해'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현실에서 원거리 병과는 말을 노려서 상대의 기병 돌격을 저지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속도가 느려지면 당연히 충격력도 떨어지고 돈좌될 가능성도 커지죠. 지형 문제도 있고요. 십자군 원정에서도 투르크계 유목민들은 중무장한 십자군 기사(기병)들 상대로 활을 쏠쏠하게 써먹었죠. 그래서 독일 기병들은 그냥 말에서 내려서 방패들고 맞다이 뜨기도 하고 그랬으니. 사실 기병은 제약이 상당히 많긴 합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twar&no=1026264 당장 '압도적인 전력을 지녔던' 프랑스 중기병들이 고작 민명대 창병 상대로 패배하기도 했습니다 크크.
23/09/05 11:34
비싸다고 해봐야 일반인이 마련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13세기 영국 물가를 기준으로 싼 검이면 8페니면 구할 수 있고 좋은 칼도 25~50페니면 구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일용노동자의 하루치 보수나 닭 한 마리 가격이 1~2페니이니 목숨걸고 나갈 전장에 칼값이 부담되서 못나간다는건 말이 안되고, 실제로도 보조무기로 다들 들고 나갔습니다. 좀 특이사례로 분류되지만 조선 후기 기록인 만기요람에 따르면 일반 장창가격이 쌀 2석, 환도가 2석 5두로 큰 차이가 안나고, 로마 군단병들은 아예 도검을 주무장으로 썼구요(오히려 군단병은 소모품인 필룸 비용을 더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전국시대쯤 되는 미친 총력전 단계가 아니라면 칼 값이 비싸다는게 큰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23/09/05 11:39
추가로 최근에 본 글인데 이와 별개로 창은 휴대하기에 불편하기 때문에 회전에서 진형이 박살나서 난전이 됬을 때, 전과확대를 위한 추격전이나 소규모 유격전에서 검만큼의 효용성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긴 하더군요.
23/09/06 07:38
위에도 적었듯이 요점은 인체의 급소를 강하고 정확하게 찌르지 않으면 저지력을 발휘하기 어려우며 이를 고려하면 대결의 양상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갑옷 따위 입지 않은 맨몸이라도' 유튜브 영상들처럼 툭툭 치는 걸로는 거의 제압이 안 되고 급소를 강하고 정확하게 찔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창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찌르기의 타이밍과 궤도를 예측하기가 더 쉽고 창이 리치와 선제권을 이용해서 페인트와 잽을 섞어가며 압도하는 그림이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죠.
23/09/06 07:25
그런데 방어력은 창병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게다가 문화적 차이도 있는게 우리나라는 산악 원딜 민족이라 저런 떡장갑을 안입었고 우리 주변 오랑캐들은 미개해서 걍 갑옷을 안입었잖아요...
23/09/06 07:37
위에도 적었듯이 요점은 인체의 급소를 강하고 정확하게 찌르지 않으면 저지력을 발휘하기 어려우며 이를 고려하면 대결의 양상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갑옷 따위 입지 않은 맨몸이라도' 유튜브 영상들처럼 툭툭 치는 걸로는 거의 제압이 안 되고 급소를 강하고 정확하게 찔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창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찌르기의 타이밍과 궤도를 예측하기가 더 쉽고 창이 리치와 선제권을 이용해서 페인트와 잽을 섞어가며 압도하는 그림이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죠. 그리고 창날 안쪽으로 접근을 허용하면 짧은 무기가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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