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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11:02
증조할아버지: 쿠데타 (위화도회군)
할아버지: 쿠데타 (1차 왕자의 난) 아버지: 계승순위변경 (양녕폐위) 수양: 않이 난 외않되?
23/07/05 10:15
근데 진짜 수양대군이 반정을 하지 않은 역사는 어찌되었을까 궁금하네요. 단종도 특출났고 세종 문종 단종에 이어지는 미래의 조선은? 이순신 장군이 중용되었을지...
23/07/05 10:17
사실 세종이 처가 외가 풍비박산의 트라우마로 후대 가지치기에서 손 놓은 시점에서 어차피 필연적으로 무언가 발생했을겁니다. 어린 왕 단종은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23/07/05 11:04
근데 솔직히 왕도 갈아넣고 신하도 갈아넣는 세종 시스템은 세종만 감당 가능한거라 생각해서...후대가 어찌 되었을지는 정말 몰루?입니다.
23/07/05 12:52
문종의 능력은 감당할 만 했죠. 건강이 못 버텨서 문제였지ㅠㅠ
근데 그 이후는? 그 이후이후는? 왕들이 다 세종 문종같지는 않죠. 저 시스템은 왕에게도 엄청한 과부하가 걸리는데 순조같은 왕 나오면 "장인이 알아서 해 주시오~" 하면서 말아먹는것도 순식간이라.
23/07/05 11:05
증조할아버지: 쿠데타 (위화도회군)
할아버지: 쿠데타 (1차 왕자의 난) 아버지: 계승순위변경 (양녕폐위) 수양: 내 유전자 속 작은 아이가 엎으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다
23/07/05 11:09
첫째를 빨리 안낳은 문종이 잘못한거임 (세종 - 17세 첫째 득남, 문종 - 27세 첫째 득남)
자식을 많이 안낳은 문종이 잘못한거임 (세종 - 18남 4녀, 문종 - 1남 1녀) 네번째 장가를 안 간 문종이 잘못한거임 (대비전이 비어있어서 수양이 뒤엎기 편했음) 빨리 죽은 문종이 잘못한거임 (세종 - 52세 사망, 문종 - 38세 사망) 문종대왕니뮤ㅠ 가 잘못한거임ㅠㅠ
23/07/05 11:14
그리고 수양의 업보를 후손들이 진짜 제대로 받아버린게... 수양대군이 똘똘한 왕족 + 꾀돌이 + 건달 몇놈만 있으면 나라를 엎어버릴 수 있다는것 보여주면서, 조선왕조 내내 왕족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습니다. 조금만 능력 있다고 소문나면 바로 (잠재적) 역적의 우두머리로 찍혀버려서요. 실제로 세조가 그렇게 아낀 구성군은 세조가 죽자마자 바로 숙청당했죠.
23/07/05 11:43
수양이 단종 탄생 전부터 역심을 품진 않았을 겁니다. 일단 문종이 젊다보니 언제든 자손 생산이 가능했을테고, 문종 건강 악화는 단종 탄생 이후 국왕업무 대리에 부모 삼년상 할때 구체화되었으니, 형의 즉위 즈음 슬슬 마음이 올라왔을거라 봅니다.
23/07/05 13:00
문종은 이미 대리청정 때부터 종종 등창으로 드러누워서 세종이 대리청정의 대리(?)를 보기도 했습니다. 세자빈에 후궁까지 거느린 여자가 다섯이었지만 아이는 셋(그나마 하나는 출생 후 사망), 사실상 둘에 불과했구요. 전 수양이 이때부터 이미 각을 재고 있었을 거라 봅니다.
세손 탄생 전: 이대로 기다리면 Hoxy? 세손 탄생 후: 조카 하나만 치우면 Nanga?
23/07/05 13:33
왕의 적장자가 1순위고 차남이 2순위하다가, 적장자가 아들을 낳으면 순위가 밀리는건 그냥 너무 당연한거 아닌가요? 이게 딱히 수양대군한테만 그런 것도 아닌데요.
하긴 문종-단종이 정통성 끝판왕이라 그렇지, 저런 교과서적인 계승 순위가 이어지는 일이 별로 없긴 했겠네요.
23/07/05 13:43
특히 조선은 세종까지 적장자 계승이 된 적이 없쥬 세조 입장에서는 세종-문종 라인의 정통성이 넘사라 참고 있었을뿐 훼까닥 돌만도 하다고 생각해요
23/07/05 14:35
당연한 게 맞습니다. 그런데 또 정치의 세계에서 당사자들에게는 그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죠.
여담으로 수양대군이 왕이 된 후 세자가 사망했는데, 다음 후계자 자리가 세자의 첫째아들(월산대군)이 아니라 차남(후일의 예종)에게 갔습니다. 이유는? "능력있는 둘째"가 다음 왕위를 이어받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린 임금과 야심만만한 숙부"의 구도가 자기 자식들에게 재현되는게 싫었을 수도 있죠.
23/07/05 15:03
공화정의 세계에서도 경쟁자 가지치기가 늘상 일어나는데, 혈통만 기대서 삼촌 노릇 잘부탁해..가 먹힐 턱이 없죠. 세종이 아버지 본받아서 적정 시기에 세조를 쳐냈어야 한다 봅니다. 정말 아무일 없을거라 생각했을까요
23/07/05 16:37
킹갓세종대왕느님이야 본인 왕위의 직접적 경쟁자인 큰형님(폐세자 양녕)도 극진히 모셨으니 아들을 제거?하지 못한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대왕느님의 치명적인 실수는 수양을 정치판에 끌어들인 거였다고 봅니다. 말년에 몸이 편찮으신 대왕느님이 수양(과 안평)을 사실상 비서실장으로 부렸는데, 왕을 최측근에서 모시고 왕의 일정과 동선과 만날 사람을 조율하는 비서실장은 예나 지금이나 직급과 상관없이 정치판의 최고 핵심이자 실세중 하나거든요. 세종의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수양의 야심(왕? 아빠 하는걸 보니 내가 해도 되겠는데?)은 제어 못할 정도로 커져갔을 거라 추측해 봅니다.
23/07/06 19:47
세종은 성격이 그렇지 못해다 치고, 태종이 처리해줬어야한다 생각합니다. 구실도 잡자면 충분했을테구요. 그러나 아비랑 형제랑 처가랑 사돈에겐 얄짤없어도 아들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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