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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1 09:39
조훈현의 전성기 때에는 세계 대회가 없이 각 국가 별 리그만 돌아갔죠. 1989년에 최초의 세계 대회로 잉씨배가 열리고 여기서 조훈현이 우승하며 세계 최강 인증을 합니다만, 그건 전성기 끝물이었고 실제로는 80년대 초중반이 최정점이죠. 하지만 이때는 한국이 3류 취급 받고 있던 때라 저평가 되었고요. 쉽게 말해서 메시가 월드컵과 클럽 월드컵이 없던 시대에 30살까지 아르헨티나 리그에서만 뛰었다가 월드컵 초대 대회에서 우승하고, 30살 이후로는 자기 팀 후배에 이은 2인자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http://www.goratings.org/players/149.html 실제로 조훈현 데이터 보면 88년 4월 2일부터 시작됩니다. 그 이전 데이터는 아예 없는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여하간 전적 데이터 자체가 완벽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겠죠 아마...제 생각엔 90년대 이전 레이팅은 걸러봐야하지 않나 싶네요. 그리고 90년대 그 이후로도 모든 기사의 전 대국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 봐서는 표본으로 산정하는 기준이 있거나(세계 기전만 포함이라든가 리그 규모를 따진다든가 등등..) 아니면 전적 관리에 구멍이 있거나 둘 중 하나겠죠.
16/03/11 09:54
맞습니다. 물론 그게 그리 틀린 판단은 아니고, 실제로 조치훈이 세계 최강이었다고 할만도 한데, 과거부터 세계 대회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면 마냥 저렇게만 흘러가진 않았겠죠.
16/03/11 09:55
네.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현대바둑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일본 바둑계가 롤로 말하면 LCK 취급을 받다가 그게 80년대 중반에 녜웨이핑이 중일슈퍼대항전(팀리그처럼 연승제)에서 내로라하는 일본기사들을 상대로 연전연승하면서(두대회 도합 11연승인가) 파란을 일으키죠. 그래서 거기에 뽐뿌받은 바둑애호가이자 대만 부호 잉창치씨가 처음으로 세계대회를 개최하는데 그게 88년에 시작되어 89년에 끝난 바둑올림픽으로 불리는 잉창치배죠... 응창기배, 응씨배 등으로 불리는... 거기서 조훈현9단이 우승하면서 진정한 한중일 바둑삼국지가 시작되고 이후 이창호라는 괴물이 10~15년간 바둑계를 지배하고 89년 이후로 한국바둑이 LCK처럼 바둑계를 지배하다가 요새는 중국으로 많이 기운이 넘어간...
16/03/11 09:53
90년대 이후 레이팅도 걸러봐야합니다. 가령들어 95년 이창호의 총대국은 90국정도인데 저 레이팅을 산출하는 데 들어간 대국은 27국에 불과합니다.
16/03/11 11:58
근데 실제로 이창호 등장 이전은 일본리그나 중국리그가 한국리그에 비해서 확연히 강할 시기기는 했습니다.
조훈현같이 그야말로 개인이 특출난 사람이 있었고 그야말로 대항마 정도로 서봉수 9단이 있었지만 조훈현 전관왕 2회에 태클 걸 정도는 아닐뿐더러 서봉수 명인은 아무래도 세계최고급 실력이라고 당시에 볼 수는 없어서... 그래서 조치훈이 초대본좌인건 더 이상하지만 조훈현이 확연한 초대본좌라고 뵈도 어렵긴합니다. 이창호나 이세돌같은 경우는 ELO통계의 신뢰성 문제가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시대별 확연한 1인자가 맞고... 오히려 이창호시기 조치훈은 상대적 몰락기일때 조훈현은 전성기가 내려오고 있었음에도 세계대회를 나름 휩쓸고 확연한 2인자에 가깝다는게 응씨배 우승 외에도 조훈현 기력이 조치훈보다 더 강하지 않는 단서가 되지 않는가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실질적으로도 세계대회 우승 3위기도하고...이창호 이세돌에 이은 그리고 절대비교에서만큼은 커제는 역대최고의 기사라고 할만한게 전성기 지난 이창호가 스스로 인터뷰하길 전성기보다 지금 내가 더 강하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바둑또한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절대적 발전을 하니 ELO3600 유일돌파로 상대적으로도 포스가 정말 1위인가 이런건 아직은 더 봐야하겠지만 누가 되는 기록은 전혀 아니고 이제 부족한건 지속력과 커리어인데 알파고가 뙇
16/03/11 09:52
80년대까지는 일본바둑이 세계최정점이라고 평가받았으니 거기서 1인자였던 조치훈 9단이 1인자로 고려되었죠.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전은 90년대부터라서....
16/03/11 09:55
구밀복검님이 잘 설명해주셨네요, 그리고 조훈현 국수님은 군대를 다녀왔다는 것도 커리어에 좀 누락이 크죠..
일본에서 쑥쑥 크는 와중에 군입대 통보로 일본 생활을 접었으니... 군 제대 후 바로 한국을 재패했으나, 그때 당시는 한국을 3류 취급하는 바람에 세계 순위에는 들지도 못했다가 응씨배로 반전이 일어났죠. 아래의 기록을 보면, 커리어가 1970년 후반 ~ 1980년대 초반이 가장 좋습니다. ■조훈현 9단 주요기록 -세계 최연소 입단 (9세․1963년 10월 14일) -한국 최초의 9단(1982년) -전관왕 3회 기록(1980년 9관왕, 1982년 10관왕, 1986년 11관왕). -최우수기사 통산 8회(1978~1983년 6년연속, 89년, 94년) -1994년 세계대회 사이클링히트 달성(90년 응씨배,94년 후지쯔배, 동양증권배 우승) -1,000승 달성(1995년). 1,500승 달성(2001년) -타이틀전 최다연패 기록 보유 : 패왕전 16연패(77년 13기~93년 28기) -은관문화훈장 서훈 (1989년) -통산 최다승(1,875승 9무 793패) -통산 최다대국(2,677국) -통산 최다타이틀 획득(158회-세계대회 11회 포함) -타이틀전 최다 출전(235회)
16/03/11 09:56
조훈현이 대단하죠. 53년생이라 89년도만 하더라도 한국나이로 37살인데 여기서 세계를 제패했으니까요. 그리고 2002년까지 3위안에 들었는데 2002년이면 50살입니다. 이창호도 이렇게 오래 못버텼고 이세돌도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조훈현은 나이먹고도 활약했으니 대단하죠.
물론 이창호도 대단하구요. 이세돌은 뭔가 아쉽네요. 그리고 이제는 세계랭킹이 휴우... 말을 말아야 겠습니다.
16/03/11 10:01
제가 생각하는 연도별 최강자는 대충 이렇습니다. 주로 세계기전 성적을 바탕으로 해서 보면,
80~86년까지 = 조치훈(이때는 일본 자국 내에서의 성과가 많이 반영된 것이지만) 87년 = 녜 웨이핑 88년~94년 = 조훈현 95년 = 마샤오춘 96년~2005년 = 이창호 2006년 이후로는 이세돌이 가장 우위고 구리, 콩지에가 잠시 우위를 점하기도 했지만 1년 남짓이었다 보구요. 최근에는 역시 커제겠죠.
16/03/11 10:08
명단의 1위들 이름만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들여다보면 배태일세계랭킹보다 공신력이 낮은 자료입니다. 가장 대국수가 많은 이창호의 경우는 누락된 대국이 1000판정도 됩니다.
16/03/11 11:07
네. 일본 바둑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세계 정상권과 경쟁이 가능한, 한중 기사들도 인정하는 기사입니다.
일본 내에서는 적수가 없는 독보적인 실력이죠.
16/03/11 11:30
부연설명을 더하자면 일본 기전의 상금과 일본 내 영향력이 국제 기전보다 더 크기 때문에
일본 기사들은 국내 기전을 국제기전보다 우선시하게 됩니다. 2015년 일본 내 7개 기전을 다 제패했으며 지난 농심배에서는 이세돌 9단에게 불계패했습니다.
16/03/11 14:12
아..꼭 절대적 나이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게 김택용 있어도 그 당대에 이영호 있으면 그런것처럼... 세계대회용 국내용 이런거는 실력이 압도적이면 자연히 커리어야 따라오긴할건데 문제는 실력이 이영호인 선수가 있어서..
16/03/11 14:06
국내 1인자를 한동안 유지하면서도 세계대회 성적이 안 좋아서...
실력 문제라고 봐야겠죠. 지금도 국내 랭킹에선 성적이 좋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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