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파이널 11회전의 탈락자가 오현민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데스매치 종목은 오현민이 가장 자신을 보였던 십이장기였고, 대결 상대는 장동민이었습니다. 장동민은 사실상 지니어스 속 오현민의 유일한 적수이자 인생 선배였고 든든한 아군임에 동시에 넘기 어려운 산이었습니다. 데스매치가 메인매치보다 흥미로웠던 건 두 시즌을 교차하면서 이어진 이 두 사람의 드라마성 덕분이었겠죠. 결과적으로 장동민은 이 리벤지 매치에서 승리했으며 유일하게 두 시즌의 결승에 진출한 플레이어로서 두 번째 우승를 목전에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원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방송이니만큼 지니어스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어를 고르자면 다양한 답이 나올 겁니다. 기발한 전략과 뛰어난 관찰력으로 지니어스의 아이콘이 된 홍진호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명실상부 지니어스의 최강자로 불리는 장동민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몇 번이나 배신당하면서도 생존을 게임으로 즐겼던 이준석을 프로타고니스트로 이입하는 저같은 사람도 있겠죠.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니까요.
그러나 지니어스에서 가장 반짝였던 플레이어를 한 명 꼽는다면 저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오현민을 고를 겁니다. 물론 오현민이 무결점의 플레이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뚜렷한 장점만큼 단점 역시 선명하죠. 아마 누구나 지니어스 내 오현민의 플레이를 보면 이 친구의 넘침과 부족함을 동시에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오현민은 이기고 생존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지니어스의 섭리에서 누구보다 약고 민첩했으며 그런 스스로를 잘 알기에 욕심이 많고 서툴렀습니다.
저는 오현민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307 별자리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회차에서 오현민은 게임을 보자마자 필승법을 만들어냅니다. 다섯 명이 만들어지면 두 명은 무조건 배제당하는 룰을 간파한 오현민은 그 즉시 블랙가넷으로 구제받을 수 없는 두 명을 상정하고 다섯 명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배신당하죠.
꼴찌가 된 오현민은 복수심에 이종범을 고르고 탈락시킵니다. 그 이후에 울어버려요. 자기는 누구를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 모순되는 맥락에서 오현민은 항상 진심입니다. 자기의 전략을 뺏어서 자신을 데스매치로 떨어뜨린 이종범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거고, 정말로 이기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유리해지자 들뜨다가도 종래에 친한 형이 서바이벌에서 자기 손에 의해 낙오되었다는 사실에 눈물을 떨굽니다. 오현민이 가장 스무 살처럼 빛날 때는 이 미묘한 굴절에 존재합니다. 소위 ‘어른’처럼 갈고 닳아져 평평해지지 못한 거죠. 이 플레이어는 지니어스에서 매사 감정에 솔직하고, 이기적이고, 정에 쉽게 휘둘리니까요.
그랜드 파이널에서의 오현민은 블랙가넷에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주던 장동민에게 자립하고자 합니다. 장동민보다 더 노련한 어른처럼 보이는 이상민과 연합하고, 배신당한 후 결국 다시 돌아와 한동안 같이 플레이를 하다가도 자기의 게임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죠. 장동민을 속이려다가도 자신이 되레 읽혀졌다는 걸 모르고 결과에 상처받고 그러면서도 온전한 개인전에 들어가서는 긴장감에 떨리는 손으로 퍼즐을 맞추며 이기기 위해 승부욕을 불태웁니다. 저는 지니어스 속의 오현민이라는 플레이어를 볼 때마다 어떤 성장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이 서사 안에서 오현민이라는 플레이어는 거듭 실패하고 자기의 부족함으로 인해 무너짐으로서 오히려 주인공으로 존재합니다.
지니어스 바깥의 오현민에 대해서 저는 전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지니어스 안의 플레이어 오현민이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단순화된 캐릭터로서의 미숙한 소년 오현민이 더 매력적이게 그려질 수 있는 거겠죠. 오현민에게 각자의 스무 살을 대입하는 많은 플레이어들도 그 이유로 인해 그들이 가장 빛났던 모습을 플레이어 오현민에게서 찾는 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어서 고마웠고, 덕분에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