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 강민 <3>
동네 오락실 평정한 ‘게임 신동’
“그때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에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샜다. 머리맡에 놓인 책가방과 노트와 필기구들, 새하얀 실내화. 자다 벌떡 일어나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기를 수 차례.
그 날 밤은 유달리 길었다. 2대8 가르마로 머리를 빗어 넘기고 꽃단장하고 집을 나섰다. 종종 걸음으로 어머니와 손을 꼭 잡고 만안초등학교로 향했다. “두세 폭을 걸어야 어머니의 한 폭과 맞먹는 걸음이지만 어머니 손을 이끌며 앞장섰던 기억이나요.” 집과 학교는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곳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민이는 유독 관심 있는 친구들 괴롭히기를 즐겼다. “관심의 표현이죠. 관심 없는 친구들에겐 아예 무관심해서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알고있는 친구들도 많았으니까요.” 좋아하는 여자친구들 주위를 맴돌며 툭툭 건드리거나 집요하게 말을 건다.
“제가 잘생기진 않았지만 여자애들에게는 꽤 인기도 많았어요.” ‘00가 너 좋아한다더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두 볼이 발그스레한 일명, ‘촌병’이란 걸 늘 달고 살았지만 착한 성격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가장 먼저 달려가 돕는 ‘바른 생활 어린이’였다.
민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미 동네에서 알아주는 ‘게임신동’이였다. 못하는 게임이 없을 정도의 탁월한 게임감각을 지녔고 처음 접하는 게임도 금새 척척 플레이 해냈다.
그가 오락실에 입장하면 모두들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인접해 있는 고등학교 형들까지 민이의 플레이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고 게임비까지 지원해 줄 정도였다.
“그땐 한 게임에 50원이었는데 200원만 있으면 종일 놀았어요. 구경하는 사람들이 게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계속 돈을 넣어주기도 했죠.”
한 게임을 1시간 넘게 플레이 한 적도 있었다. 해지는 줄 모르고 게임에 열중하다가 형에게 붙들려 가기도 수 차례. ‘어린 게 커서 뭐가 되려고 자꾸 오락실만 들락 거리냐’며 매를 맞기도 했다. 그는 결국 국내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됐지 않은가!
[1] 짝궁과 찍은 유치원 졸업사진. 강민의 어릴 적 사진의 이렇듯 살포시 눈을 감을 사진이 대부분이다. 왜일까?
[2] 양반다리로 늠름하게 앉아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구멍난 양말에서 엄지발가락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3] 개구쟁이 강민이 전쟁놀이를 하며 뛰어 놀던 뒷산에서 한 컷! 입술을 꼭 다문채 한 쪽 다리는 진흙범벅이 된 모습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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