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전혀 볼 수 없어도 소리와 감각만으로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현재 국립 서울 맹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이민석군(16)이 바로 그 마법의 주인공이다. 2000년 9월 학교 선배가 <스타크래프트> 하는 것을 알고 호기심에 시작했다는 평범한 동기와는 달리 이군이 <스타크래프트>를 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그냥 게임을 하는 정도구나 했어요. 이렇게까지 집착할 줄은 생각도 못했죠." 이군의 어머니 김현주씨(43)의 말이다. 그러나 김씨는 어려서부터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해내는 아들의 성격을 보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이군은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배울 당시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일반인들과 달리 종이에 건물 설명 및 유닛과 일꾼들의 특성을 적어 언제나 가지고 다니며 외웠다. 게임 방송도 많이 봤다. 화면을 볼 수 없어도 해설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게임의 전반적인 구성과 전략을 익히고 또 익혔다. 이러기를 5개월, 2001년 초 드디어 정식으로 게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이군이 게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엄청난 집중력과 소리에 대한 뛰어난 감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모니터요? 켜놓든 꺼놓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소리로 알 수 있으니까요."
처음 컴퓨터를 켜면 마우스 커서를 대각선으로 조금 움직여 커먼드센터 아래 모여 있는 일꾼들을 찾는 일부터 한다. 그렇게 일꾼의 위치를 파악한 뒤 키보드의 화살표 키로 자원을 찾아낸다. 건물들은 바로 바로 단축키에 입력해 숫자로 외운다.
"상대방의 게임 진행 상황은 게임을 오래 하다보면 감이 생겨요. 예상이 안될 경우는 상대위치의 일꾼을 찾으면 알게 되죠. 자원채취 소리, 웹 소리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이군은 친구가 만들어준 별도의 맵을 사용한다. 무한 맵으로 자원이 없어지지 않아 자원의 위치를 한번만 파악하면 계속 이용이 가능하다. 또한 언덕을 많이 설치해 드라그(자원을 옮길 때)할 때 현위치를 알기 쉽게 개조했다. 하지만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 직접 찾아야 하므로 자원 채취속도는 일반인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세 종족을 모두 사용하는 랜덤 유저인 그의 주종목은 테란이다.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워 종종 혼나기도 하지만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베틀넷의 경우 매너 좋은 게이머를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베틀넷을 할 때 상대방이 뒤에서 공격을 해올 때가 제일 속상해요. 그럴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죠. 맵핵(지도를 볼 수 있게 만드는 해킹)을 쓰는 경우도 정말 싫어요. 빨리 보안프로그램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요즘에는 음악에 빠져 예전에 비해 게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요즘도 5∼6시간은 <스타크래프트>를 즐긴다고 한다.
"요즘 한창 재미있다는 <워크래프트 3>를 해보려고 공부했던 적도 있어요. 그러나 각 종족의 유닛들의 싸우는 소리가 비슷해서 구분하기가 힘들었죠. 게다가 경기가 지루하게 진행돼 흥미가 금방 떨어지기도 했고요. 게임은 역시 <스타크래프트>예요."
하지만 이군은 게이머라면 한번쯤 소망하는 프로게이머의 꿈을 간직하고 있지는 않았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장애가 부담스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신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의 경쟁에서는 조금도 질 생각이 없다. 한빛 소프트 주체로 열리는 전국 맹학교 스타대회에 참가해 기량을 과시해 볼 요량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인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안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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