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텍 플러스' 기대주로 급부상
조용성(18, 케이텍)은 ‘케이텍 플러스’가 창단되면서 정식 프로로 입문했다. 고1때 조정웅 감독의 눈에 띄었지만 흔한 저그 유저라는 이유만으로 ‘IS’에 합류하지 못하고 때를 기다려 온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프로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그는 ‘케이텍 플러스’의 기대주로 급부상, 이제 곧 프로게이머 인증을 받게 된다. ‘럴커’나 ‘뮤탈’로 상대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전략이 주특기다.
‘케이텍’ 입단, 5년 간의 무명시절 청산!
그가 처음 컴퓨터게임을 접한 건 중1때. 사당동에 처음 PC방이란 게 생겼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시작했다. 이후 친구들과 팀 플레이를 하면서 ‘스타’를 알게된 것.
그는 고1때 지금의 케이텍 조정웅 감독에 의해 프로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드림테크(DT)팀’을 이끌어 가던 조 감독은 ‘IS’와 합류, 조용성을 영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 ‘IS’ 소속 선수의 과반수 이상이 저그 플레이어였고 아직 실력을 검증받지 못한 신예였기에 입단이 반려됐다. 이후 조 감독과 친분을 이어가며 실력향상을 위해 스스로 노력해 왔다. ‘IS’가 두 개 팀으로 분리되면서 조감독은 제일 먼저 그를 영입했고 곧 ‘케이텍’과도 인연이 닿았다.
6년 간 쏟아 부은 게임비가 차 한 대?
“지난 6년 간 게임을 하느라 쏟아 부은 돈이면 차 한 대는 샀을 거에요!” 누구보다 무명의 시절이 길었던 그는 현재 동작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조용성은 중학교 때부터 미친 듯이 PC방을 드나들었고 교내에선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를 잘하는 애로 소문이 자자했다.
친구들은 그를 보며 “한달 동안 PC방에 20만원 넘게 쏟아 붓는 친구”라며 놀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케이텍 소속으로 프로활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친구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친구들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교내에서도 이미 후배들 사이에서 조용성의 팬클럽이 생겨났을 정도다.
야밤에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PC방행
부모님은 게임에만 심취한 아들을 못마땅해 하셨다.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르면 “20살 성인이 되면 사줄 테니 지금은 공부만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PC방에서 밤새 게임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 날도 허다했다. 또 휴일이나 방학 때는 어머니가 현관문을 잠그고 보초를 서실 정도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그가 아니다. 밤이 되면 방안의 불을 끄고 자는 척하다가 어머니의 동정을 살핀 후 몰래 탈출 계획을 꾸민다. 우선 자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이불 안을 베개로 채워 넣고 2미터 아래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리곤 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어머니에게 번번이 덜미를 잡히기 일쑤였다고.
늦둥이 조용성은 ‘마마보이’?
조용성은 ‘마마보이’라 불릴 만큼 어머니와의 정이 각별하다. 그는 2남 1녀 중 막내이자 늦둥이로 형과 누나는 이미 결혼을 했다. 부모님은 늦둥이인 조용성을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어릴 적부터 그가 원하는 것들은 척척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론, 게임중독을 우려해 컴퓨터는 예외였다.
조용성은 1살 때부터 안고 자던 인형을 지금도 갖고 있다. 3개의 크지 않은 인형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그와 동고동락을 함께 해 온 동지나 다름없다.
케이텍 숙소에 입소하는 날도 조 감독에게 이들과의 동거를 승낙받았다. 20여 년 가까이 물고 빨아온 인형들은 이제 다 헤어져 볼품이 없지만 지금도 이 인형들을 곁에 두지 않으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게임’도 ‘학업’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고3 입시생으로 한동안 입시 스트레스에 빠져 게임을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학교와 연습실을 오가며 강행군을 계속해 온 그가 게임과 학업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된 것이다. 마음 편히 쉴 여유조차 갖지 못했던 그는 늘 피곤한 모습이었고 주위에서 그를 지켜보던 담임선생님과 조 감독은 게임과 공부 중에서 하나만 선택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는 게임과 학업, 두 가지를 다 해낼 자신이 있다며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그는 ‘케이텍’에 입단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실감하게 됐다. 결국 게임을 선택했고 이후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 졌다.
언젠가는 법관의 꿈, 꼭 이루고 싶다!
조용성은 어려서부터 ‘의사’나 ‘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법관의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이루고픈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는 의외로 게임에 심취하면서부터 성적이 쑥쑥 올랐다. 중하위권을 맴돌던 성적이 고2가 되어서는 반에서 3등을 차지하는 등 ‘게임’도 ‘공부’도 신명나게 했다. 그래서 ‘게임’을 하면서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는 길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슬럼프에 맞닥뜨리는 그 순간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내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줄 아는 현명한 프로게이머가 되겠습니다.!”
사진=유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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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게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