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프로게임단 여성 감독
삼성전자 '칸' 김가을 씨
[조선일보 백승재, 허영한 기자] “실력으로 말하는 세상 아닌가요. ‘여자감독’이기보다 ‘강팀의 감독’으로 불릴 겁니다.”
국내 최초 프로게임단 여성감독인 김가을 (25·삼성전자 프로게임단 칸)씨는 지난해까지 별명이 ‘저그(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한 종족) 여왕’이었다. ‘저그 여왕’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스타크래프트(스타크) 리그 10여개 대회를 휩쓸며, 프로 게임계에서 여성 게이머 중 최고수로 꼽힌 ‘스타’.
김씨에게선 날카로운 ‘여왕’의 카리스마가 금방 눈에 띄지 않았다.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 평범한 여대생처럼 보였다. “스타크만 아니었다면 자신의 친구들처럼 평범하고 게임을 가끔 즐기는 직장인으로 살아갔을 거예요.”
그의 인생은 지난 98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한양대 산업공학과 2학년이던 당시 과 선배와 스타크 시합을 가진 것이 계기였다.
“저한테 다른 게임을 진 선배가 복수전으로 스타크 게임을 해보자고 했어요. 웬만한 게임은 대충 하던 터라 자신있게 나섰죠.” 그러나 학교 인근 PC방에서 벌인 첫 스타크 대전에서 김씨는 깨끗하게 졌다.
승부욕이 남다른 김씨는 단념하지 않고 이튿날부터 밤을 새우며 게임에 매달렸다. “보통 한 달 걸리는 모든 스타크 게임의 단계를 2주 만에 끝냈죠.”
김씨는 재대결에 나섰고 그 선배는 몇 분 만에 ‘백기’를 들었다. 인근 PC방의 게이머들도 줄줄이 김씨에게 무릎을 꿇었다. 다양한 스타크의 전술에 빠진 김씨는 어학 공부를 핑계로 학교를 휴학한 뒤, 게임에 빠져들었다. 뜻밖의 열정에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하루 이틀 정도 밤을 새우는 것은 흔했어요. 게임밖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프로게임단 여성감독은 열정과 근성에 의해 만들어진 셈이다.
특기인 공격적인 러시(적진 돌입)를 화려하게 펼칠 때면, 공격적인 남성 게이머들도 혀를 내둘렀다. 프로게이머를 그만둔 지금도 그의 전술에 반한 온라인 팬 회원이 3000여명에 이른다.
올 초 잠시 휴식했던 김씨는 8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프로게임단 삼성전자 칸의 감독으로 프로게임계에 돌아온 것. 첫 여성감독이란 테이프도 끊었다.
“감독이란 게이머보다 훨씬 수수한 일입니다.” 그는 보통 새벽 6시에 출근해 일정을 챙기고, 회의를 하고, 대회라도 있으면 다음날 새벽 퇴근한다고 했다. 선수들이 좋은 성적으로 조명을 받을 때면, 뒤에서 박수를 치는 게 그의 일이다.
“누나처럼 선수들과 서로 대화하며 팀을 운영하다 보면 배우는 게 많죠. 실력으로 승부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노력한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프로게임계가 마음에 드는 점이고요.”
그의 다음 도전 과제는 갓 프로에 입문한 선수가 많은 자신의 게임단을 상위권으로 올려놓는 일.
“남성 게이머에게 실력과 체력에서 밀리지 않는 여성게이머를 꼭 만들어내고 싶어요.”
(글=백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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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허영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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