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 또는 게임포기…맹연습으로 ‘화려한 부활’ 꿈꾸기도
1998년도에 신주영이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의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스타’ 열풍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다. ‘쌈장’ 이기석의 CF 출연으로 프로게이머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상승, 프로게이머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들을 두고 1세대 프로게이머라 일컫는다. 지난 5년 간 프로게임리그는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생겨나고 사라져갔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프로게이머를 2세대, 3세대로 분류하기에까지 이르렀다.
2001년 6월. ‘신의 손’이라 불리던 신주영이 군 제대를 마치고 게임계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숨가쁜 변화를 거듭해 온 게임계는 이때부터 1세대 프로게이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1세대 프로게이머들의 속속 게임계로 복귀하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들려온다. 그렇다면 짧지만은 않은 5년 간의 게임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1세대 프로게이머들은 그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자취를 감추고 아직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경향게임스 창간 2주년 기념 특별기획의 일환으로 1세대 프로게이머들을 찾아 나섰다.
▶ 신주영
[honest] - “아직은 때가 아니다... ‘스타’ 후속작이 나오면 복귀하겠다!”: 2년 간 잠적, 여전히 게임광
‘1세대 프로게이머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이구동성 ‘신의 손’ ‘신주영’이라고 말한다. 국내 프로게이머 1호 신주영(26). 그의 본명은 ‘박창준’이다. 신주영이라는 가명은 사랑했던 연인의 이름이었다.
그는 국내 e-Sports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장본인이다. 당시 배틀넷에서 맵핵을 쓰는 ‘치터’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손이 빨라 ‘신의 손’이라 불리던 신주영은 98년 블리자드사에서 주최한 세계 게임대회인 ‘스타크래프트 래더 토너먼트’에서 1위를 차지해 월드 챔피언에 등극했다.
또한 우리나라 선수 최초로 세계 최고의 공식적인 게임리그인 미국의 PGL(프로 게이머 리그)에 등록돼 활동함으로서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로 급부상했다.
이로써 ‘스타’의 신화는 시작됐다. 99년 그가 펴낸 <신주영의 스타크래프트 무작정 따라하기>는 무려 20만 부가 팔려나갔다. 이는 스타 열풍에 힘입어 수십 권씩 쏟아져 나온 스타 공략집 가운데 진 기록을 수립, 출판계를 놀라게 했었다.
그렇게 최고의 자리에서 영광 누리던 그가 마음의 준비도 채 하기 전에 갑작스런 군 입대를 맞이하게 됐다. 그러나 휴가 때마다 복귀날짜도 잊은 채 게임에 심취했고 결국 ‘군무이탈’로 10개월 실형까지 받았다.
게임계에서는 신화적인 존재로 군림하며 3년 간의 공백기 동안에도 무성한 소문만을 남겼던 신주영. 드디어 2001년 6월. 베일에 가려진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억대 연봉 계약설이 나돌았으나 소속사 문제로 혼선을 빚는 과정에서 결국 계약 건은 흐지부지 끝이 났다.
고향이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방황한지도 2년이 넘었다. 안정적인 환경이 뒷받침 되어주지 못하다보니 ‘신의 손’이라는 예전 닉네임이 무색할 정도로 실력 또한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자신감 상실이 복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는 이젠 ‘스타’가 식상해졌고 흥미를 잃어서 더 이상 플레이하기 싫다고 말한다. 그가 제대 후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또 다시 잠적한 지 2년이 넘었다. 팬 카페도 잠잠해졌지만 아직도 “게임 하는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보여달라”고 애원하는 팬들의 글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다.
“너무 오랫동안 잠수를 타서 팬들에게 너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입장도 이해해주시길 바래요. 그 동안 주변의 기대감과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신주영은 현재 건대 근처 PC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하루 15시간 이상 게임을 한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여러 가지 게임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스타’의 뒤를 이을 대박 게임이 나올 때쯤 다시 인사드릴게요.”
▶ 이기석
[SSAMJANG] - “앞으로 1년 안에 기필코 ‘쌈장’의 권위 되찾겠다!”: - 재기 1년 만에 감 되찾아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쌈장’ 이기석(23). 1세대 프로게이머로 대 활약을 펼쳤던 이기석은 모 통신사 CF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 당시에는 게임방송이라는 것도 없었다. 때문에 유명 게이머들은 배틀넷에서의 활약으로 게이머들 입 소문을 통해 그 명성이 알려졌다.
베일에 가려진 실력자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 건 오프라인 대회가 하나, 둘 생겨나면서부터다. 그러나 방송리그를 통해 데뷔전을 치르는 지금과 다르게 당시 1세대 프로게이머들은 온라인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당연히 이름과 얼굴보다 배틀넷 아이디 더 유명했다. 초창기 땐 ‘스타’는 몰라도 ‘쌈장’은 알 정도로 그는 유명했다. 쌈장 이기석은 98년도에 ‘레드얼럿’을 하다가 싫증을 느낄 무렵 친구의 권유로 ‘스타’를 시작했다.
‘99 스타크래프트 브르드워 세계 챔피온’, ‘브루드워 시즌 2 래더토너먼트 우승’, ‘KPGL 1회 ,2회 개인전 우승’, ‘스포츠투데이배 싱크마스터즈대회 우승’ 등 이름에 걸맞는 화려한 수상경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PC방 프랜차이즈에 소속되면서 한동안 게임에서는 손을 놓았다.
그런 그는 지난 해 게임계 복귀를 선언, 게임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회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회에 참여했지만 번번이 본선진출이 좌절됐었다.
현재 이기석이 재기를 선언한지 어언 1년이 다되어 가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까지 ‘스타’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열악하고 힘든 시기에 게임을 했었는데 지금은 여건이 참 좋아졌어요. 쟁쟁한 실력자들도 많이 생겨났구요. 많이 깨지고 패배하면서 포기할까 도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예전의 자리를 되찾고 싶어서겠죠.”
최근 서서히 예전의 감을 되찾고 있어 앞으로 1년 정도는 더 도전해 볼 생각이다. 이기석은 현재 KTF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숙소생활을 하던 그는 실력 위주의 엄격한 팀 분위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지금은 숙소를 나와 자양동에서 김갑용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취미는 술자리 즐기기.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애마(아반떼)를 몰고 드라이브를 다닌다.
▶ 맹대호
[Hero.Mik] - “제대 후 신인 프로게이머를 발굴해 키워보고 싶다!”: 공익근무 중, 내년 5월 제대
맹대호(24)는 낙천적이고 여유 있는 성격 탓에 ‘백년 묵은 구렁이’라고 불린다. ‘스타’를 시작한 뒤 로렉스팀을 거쳐 스틱아이티 벤처투자 소속으로 맹활약했다. 주 종족은 프로토스로 침착한 게임운용이 돋보였던 선수다.
한 동안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 잠시의 슬럼프에 빠졌었다. 머리도 식히고 생각도 할 겸 잠시 쉰다는 것이 결국 군입대로 이어졌다. 3년 간의 프로게이머 활동을 접고 군에 입대, 현재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 중이다. 근무처는 서초구청 주차관리과. 월급은 긴급비밀(?)! 봉급(1만원선)에 교통비와 차비를 포함하면 일반 현역들보다는 조금 많은(?) 편이다.
맹대호는 아침 6시에는 어김없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7시에 출근한다. 불규칙적인 게이머 생활을 청산하고 공익근무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생활 리듬을 바꾸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현역복무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집에서 출퇴근하는 건 무지 행복해 할 일이다.
2002년 2월에 시작해 지금은 21개월 째. 앞으로 6개월만 지나면 소집해제(^^;)다. “짠밥이 되는 서열이라 1시에 퇴근해요.^^” 집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 오후 5시부터 8시까지는 주차 단속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는 근무 시간 외로 1만원의 아르바이트비를 따로 받는다.
“‘스타’는 질려서 하기 싫어요. 처음엔 재미있어서 시작했지만 한창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때에는 직업이니까 마지못해 했었거든요.” 요즘은 틈나는 대로 ‘워3’를 즐긴다. 주로 선릉역 근처에 있는 한소프넷 예카스테이션 PC방을 이용한다. 그 곳에 가면 봉준구, 김대호 등 절친한 프로게이머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맹대호는 운동을 좋아한다. 틈나는 대로 테니스나 보드 등을 즐기기도 한다. 제대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서슴없이 “돈을 벌어야죠”라고 답한다. “사업 아이템을 구상 중인데 일단 돈을 벌면 실력 있는 게이머들을 발굴해 키워보고 싶어요.”
▶ 최진우
[Freemura] -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3개월 후에 나는 최고가 된다! : - 14일 제대, KTF 숙소서 맹훈련
최진우(23) 그가 돌아왔다. 게임계를 떠난 지 꼬박 2년 2개월 만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현역 복무를 마치고 11월 14일 전역한 최진우는 제대도 하기 전인 9일(일)에 이미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무대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본 경기 전에 치러진 이벤트 형식의 행사였지만 2년 2개월만에 최진우를 만난 팬들의 함성은 우렁찼다. 제대 후 만난 그는 외형상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다만 볼 살이 조금 빠지고 남자다워졌다.
최진우는 현재 KTF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연말이나 내년 초 KTF와의 계약을 앞두고 트레이닝 중이다. “공백기가 길어서 키보드와 마우스 손놀림이 많이 둔해졌습니다. 또 예전의 키세팅과 요즘의 키세팅이 많이 달라 키세팅 적응훈련 중입니다.”
주변에서는 1세대 프로게이머들의 복귀가 성공을 거든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6개월 이상은 피나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리다.
“절대 6개월은 안되죠. 얼마나 하고 싶었던 게임인데... 지금의 상태를 봐서는 석 달이면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자신감이 넘쳤다.
군대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사회와의 단절이다. 그는 충동적으로 군에 입대했다. 왕중왕전 대회가 있던 전날 왼쪽 손바닥이 찢어져 10여 바늘을 꿰맸다. 근육이 잘려나간 상태로 꽤 심각한 부상이었다. 그러나 대회 주최측에서는 위약금을 운운하며 참가할 것을 강요했다. 결국 무대에 올라 5연패를 하고 실의에 빠졌다.
마침 영장이 나왔고 게임계가 싫어 군대를 도피처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2년 2개월 동안 모범적인 군대생활을 해 냈다.
“지금의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같은 팀 선수들의 여습상대조차 안되니까요. ‘왕년에 나는’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같은 팀원들과 빨리 친해지는 게 중요하거든요. 게임에서는 제가 배워야하는 입장이니까요.”
배 곯아가며 게임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라고 말하는 최진우. “저는 최고가 될 겁니다. 아니 될 수밖에 없습니다. 65만 국군의 힘을 모아 화이팅!”
▶ 김대기
[Aozora] - “새로운 도전에서 성취감 느껴, 이 다음엔 게임 마케팅!”: 조이온 게임 기획자로 근무
김대기(23)는 ‘스타’가 국내에 출시되기 전인 98년 3월부터 ‘스타’를 시작했다. 게임 해설자로 분주하게 활동하던 그는 지난 3월 조이온에 입사했다. 바로, 게임 기획자다.
“게임을 너무 오래하다 보니 나름대로 매너리즘에 빠져 살았어요. 더 이상 게임으로는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줄 수 없을 것 같았고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결국 게임방송 다음은 게임 개발이라고 느껴 길을 선택했습니다.”
김대기는 남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에 행복감을 느낀다. 게임을 할 때도 그랬고 방송을 할 때도 그랬다. 최근에는 마술을 배우고 있다. “아는 사람에게 배웠는데 이젠 정식 아카데미에 다닐 생각입니다. 마술 테크닉을 연출해 성공시켰을 땐 묘한 성취감을 느껴요. 꼭 게임에서 처럼요.”
그는 원래부터 한가지 일에 오래 동안 매진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어느 한 분야에서 1등이기보다 다양한 일들에 도전하는 일을 즐긴다. 김대기가 앞으로 더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는 바로 게임 마케팅이다.
“지금은 거상팀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라 게임개발에 전념하겠지만 나중에라도 마케팅 공부를 해서 게임 마케팅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 만드는 입장이 된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고. 개인적으로 꼭 만들어보고 싶은 게임은 전략시뮬레이션(RTS)장르다.
‘스타’의 독주로 국내 RTS 게임들이 대부분 빛을 보지 못했다. 이에 김대기는 “상업적이면서 온라인과 연계되는 새로운 개념의 RTS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RTS에서는 밸런스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유저와 함께 밸런스를 맞춰 나가고 해도 해도 싫증나지 않는 바둑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김수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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