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2배 가까운 양의 게임이 출시된 올 하반기 PC게임 시장이 여전히 불법복제에 밀려 매출흉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기대작으로 손꼽혔으나 불법복제에 밀려 팔리지 않는 PC게임은 9월과 11월 사이에 발매된 '홈월드2'와 '피파 2004' '코만도스3' 등이 대표적인 예.
이 게임들은 발매 전부터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와 게이머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아왔지만 막상 시장에 발매된 후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불법복제를 전문으로 하는 와레즈 그룹과 P2P 서비스 등을 거쳐 국내로 유입된 게임 불법복제물이 하나포스나 팝폴더, 아이디스크 같은 인터넷 기반 저장 서비스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됐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급 계약 체결때부터 불법복제를 두고 설마 했지만 역시나 였다"며 "이래서는 PC게임 시장이 올해 말을 기점으로 완전하게 사장(死藏)될 수도 있다"라고 아쉬워 했다.
◆ PC게임 불법 복제 실태= 과거만 해도 복제된 게임을 구하려면 느린 속도의 PC통신망을 이용하거나 복제만을 전문으로 하는 업자를 통해 복제 디스크를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해외와의 교류가 원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게임 불법복제물에 대한 정보나 자료를 얻는 일이 쉬워진 것이 사실.
수천 개에 달하는 개인 웹사이트들이 하루동안 유출되는 PC게임과 가정용 비디오게임 등의 정보를 실어나르고 있어 자료를 내려받는 경로를 찾는 건 일도 아니라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인터넷에서 활동중인 한 게이머는 "인터넷을 통해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이용자들이 주고받는 것은 일종의 대세(大勢)로 자리잡았다"라며 "약간의 시간과 보유하고 있는 컴퓨터만 투자하면 몇만원에서 많게는 몇백만원에 달하는 소프트웨어를 확보할 수 있는데 과연 그 유혹을 뿌리칠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꾸준한 인터넷의 기술 발달도 게임 불법복제 시장의 파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ADSL이나 VDSL과 같은 신기술이 적용된 초고속통신망이 국내에 선보인 이후로 700MB가 넘는 대용량 자료를 짧은 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확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국내에서만 유독 인기상승 중인 인터넷 기반 저장 서비스가 그 세(勢)를 차근히 불려온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용자가 인터넷 상에서 주어진 저장 공간에 담긴 게임 불법복제물을 타 이용자와 자유롭게 공유하게 되어 과거와 달리 게임의 전파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저장 서비스에 접속만 하면 자신이 찾고자 했던 자료나 몰랐던 신종 자료를 실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동종 업계끼리 경쟁까지 붙어 간단한 절차를 거쳐 회원 가입만 하면 수백 개에 달하는 저장된 게임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 복제방지 장치? 단속? 백약이 무효= 인터넷을 통한 게임 불법복제물의 유통이 기승을 부리면서 국내 PC게임 배급사들은 여러 모로 이에 대한 방비 장치를 내놨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해외 게임이 대부분 일본어와 영어로 등장, 게임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단점에 착안해 순수 우리말로 게임을 현지화 시켜 국내 발매하는 정책을 배급사들이 꾸준히 시도하고 있지만 적잖은 어려움이 있다.
최근 선보이는 게임들이 단순한 진행법을 표방하고 나서 언어가 한글이 아니더라도 게임을 즐기는데는 하등의 어려움이 없기 때문. 영어로 구성된 게임이 가장 많지만 고등학교 이상의 영어 구사능력이 있다면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게이머들의 의견이다.
물리적으로 정품 디스크에 복제방지 장치를 하는 방법 역시 최근에는 헛품팔이로 취급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활동중인 전문 크래커들이 복제방지 장치의 허점을 파악해 이를 무력화 시키고 있다. 복제방지 락 자체를 무시하고 복제를 가능하게끔 해주는 프로그램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배급사 차원에서 불법복제 단속반을 운영, 적발된 와레즈 웹사이트나 인터넷 저장 서비스에서 게임 불법복제물을 거래한 이용자의 계정을 확보해 사이버수사대와 해당 업체에 통보하는 방법도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통보한다고 해도 업무 처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이미 낌새를 알아챈 업자나 게이머가 종적을 감추는 경우가 많고, 적발 후 처벌한다고 해도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어서 훈방 조치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관련 법령까지 개정하면서 인터넷에서 활동중인 와레즈 그룹과 불법 자료를 뿌리뽑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정보통신부나 문화관광부의 활동도 불법복제 앞에서는 역부족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 국내 배급사들 PC게임 시장 포기 안해= 과거부터 최근까지 PC게임 불법복제를 막기는 손으로 햇볕을 막는 것과 같다는 의견이 정설로 받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배급사들이 PC게임 사업에서 손을 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불법복제와 가정용 비디오게임과 온라인게임 및 모바일게임 등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90년대만 해도 국내 게임 시장의 80% 이상은 PC게임이 차지해 만족할만한 판매량을 보여왔다는 막연한 향수 때문이다.
더욱이 한빛소프트의 '스타 크래프트'를 비롯해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주 타이쿤', 아타리코리아의 '롤러코스터 타이쿤' 시리즈 등 불법 복제의 한파 속에서도 꿋꿋이 기대 이상의 판매량을 지켜나가고 있는 효자 상품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가정용 비디오게임 시장의 등쌀이 거센 해외에서 '하프 라이프2'를 비롯한 '둠3'나 '데이어스 엑스2'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준 높은 PC게임이 꾸준히 선 보이고 있는 사실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다.
◆ 게임 불법복제, 해결책은 없나= 현재 국내 시장에서 PC게임이 살아남기 위한 요건으로 업계인 들은 해외와 같은 날짜에 게임을 내놓는 동시 발매 정책과 PC 관련 산업과의 활발한 제휴 및 정부와 업계가 서로 힘을 합쳐 국내에서 게임 불법 복제물이 유통되고 있는 통로를 파악하고 이를 최대한 틀어막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PC게임들의 국내 발매일이 해외와 많은 편차를 두고 있어 불법복제물 만연에 한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며 "가능한 해외 배급사와 협의를 통해 동시 발매하는 쪽으로 유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PC게임 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과거 PC 하드웨어 업체와 공동 마케팅을 추진했는데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뒀던 기억이 있다"며 "현재 국내 모 하드웨어 업체와 앞으로 출시될 PC게임의 공동 마케팅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교섭 중에 있다"라고 말했다.
장규호 PC게임 전문가는 "정부와 배급사들이 나름대로 정책을 세우고 불법복제 단속을 뛰고 있지만 큰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서로 장단점을 보완하면서 불법복제물의 유입을 막고 불법을 저지른 업자나 게이머를 엄벌함으로써 정품을 구매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권영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