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와 슈팅 게임 <스페셜포스>가 온라인 게임을 양분하고 있
다.두 게임은 스타일이 정반대다.
“<카트라이더>가 성공한 것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현상이다.” 지난 6월24일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은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세계시민기자포럼 개막식에 참석해
연설하며 온라인 게임 하나를 소개했다. 자동차 경주 게임인 <카트라이더>였다.게임
속 장면을 직접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진장관은 “한국인 7백만명 이상이 <카트라이더>
를 하고, 이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는 한 달에 30만 달러를 번다.게임 자체는 무료지만
수익은 ‘귀여운 헬멧’ ‘깃발’ ‘물폭탄’‘차를 꾸미는 데 필요한 아이템’ 등을 팔면서 나온
다”라고 설명했다. 진대제 장관의 <카트라이더> 브리핑은 2분간 이어졌다.
진장관이 <카트라이더> 게임을 주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지난 3월30일에도
진장관은 ㈜넥슨을 방문해 직접 <카트라이더> 플레이를 해 보이면서 “문화부장관과
직접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라고 말했다.5월17일에도 진장관은 제 40차 IEEE ICC' 기
조 연설에서 한국의 대표 IT 문화 트렌드로 <카트라이더>를 언급했다.
바야흐로 캐주얼 게임의 시대다.시대를 이끄는 주역은 ‘카트’와 ‘스포’다.카트는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의 줄임말이며 스포는 ‘총싸움 게임’ <스폐셜포스>의 줄임말이다.
이 두 게임이 시장을 양분한 형국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카트라이더>는 지난해 6월 출시 이후 여러 조사기관 집계에서 온라
인 게임 인기 1위를 차지하며 ‘국민 게임’으로등극했다. <카트라이더>의 매력은 극도로
단순한 사용법에 있다.정해진 경기장을 따라 차를 몰고 누가 빨리 목표 지점에 도달하
는가를 겨루는 게임이다.방향키 ‘→←↑’ 만 누를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카트라이더>
를 서비스하는 (주)넥슨은 회원이 1천1백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카트라이더> 회원 1천1백만명
<카트라이더>는 이제 게임을 넘어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2005년 상
반기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카트라이더>는 만년 1위 ‘로또’를 누르고 수위를 차지했다.
<카트라이더>를 흉내낸 ‘걸상 경주’ 동영상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카트라이더 증후군’
우스개도 퍼진다.‘차를 몰면서 괜히 가장자리로 빠지게 된다’거나 ‘길을 걸을 때 괜히 친
구가 진행하는 방향을 가로막는다’는 식이다. <카트라이더> 게임에서는 적의 공격을 피
하기 위해 가장자리로 차를 모는 것이 유리하다.
<카트라이더>가 정치 문제로 비화한 일도 있다.국회의원 재·보선 선거가 열렸던 지난 4
월30일,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 홈페이지에 ‘원희룡은 카트 폐인? ^^’이
라는 제목으로 그 날 <카트라이더>를 한판 했다는 글을 올렸다.이에 대해 박근혜 대표
는 당원들은 발이 부르트도록 뛰고 있는데 인터넷 게임이나 하고 있었다며 원희룡 의원
을 비난했다.원의원은 ‘천만 명이 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즐기는 그들의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체험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사저널 안희태
‘스포’와 ‘카트’ 게임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6월30일 서울 코엑
스 메가 스튜디오에서 <스페셜포스> 여성부 시합이 열렸다(왼쪽).
<카트라이더>가 인기를 모으자 ‘카트라이더 산업’도 흥하고 있다.(주)넥슨 관계자는
“<카트라이더> 관련 아이템 판매 수입이 월 30억원 정도다.나머지 PC방 이용료 수입
이 20억~30억원 된다”라고 말했다.아이템은 앞서가는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나, 차를
꾸미는 장식 등이다.편의점과 문방구에서는 <카트라이더> 아이템을 살 수 있는 쿠폰
과 카드를 따로 판다.가격은 3천원~1만원까지 다양하다.온라인 아이템을 현금 거래하
는 사이트인 아이템베이(itembay.co.kr)에는 ‘미사일 풍선 5백개 4천원에 삽니다’는 식
의 광고가 넘친다.
6월29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어린이 코너에는 <코믹 크레이지 레이싱 카트라이더>
<카트라이더 고대문명 역사탐험기> 등 네 출판사가 펴낸 만화책 열두 가지가 전시되어
있었다.책 내용은 <카트라이더> 게임과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린이 분야 베스트 셀러
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이 날 책을 고르던 초등학교 4학년 이승근군은 “하루에
<카트라이더>를 2시간 정도 해요. 아이템을 써서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 잡는 게 재미
있어요. 캐릭터 중에는 ‘다오’를 가장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차 뽑아줄 테니 내 아들 프로 선수로 뽑아라”
ⓒ한향란
오른쪽은 국내 <카트라이더> 게임구단 1호인 스프리스 스피드.
<카트라이더> 게임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이들도 생겨나고 있다.6월30일 서울 압구
정동 로데오 거리에 있는 의류업체 스프리스 매장 2층에 젊은이 4명이 모여 <카트라이
더>를 연습하고 있었다.이들은 스프리스가 후원하는 <카트라이더> 게임 구단 ‘스프리
스 스피드’ 소속 선수들이다.후원사가 제공하는 원룸에서 공동 생활을 하면서 매일 여
덟 시간 이상씩 <카트라이더>를 연습한다.선수 중에는 고등학교를 휴학한 열아홉 살
청년도 있었고, 군 하사관으로 1주일을 복무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프로 게이머의 길
을 택한 사람도 있었다.
선수 서형원씨(22)는 “연습을 하다 보면 경기 트랙 코너를 돌 때 0.1초 정도 미세한 차
이를 줄일 수 있다.이게 쌓이면 6개월에 6~7초 정도 단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빙글
빙글 공사장’이라는 경기장(맵)의 경우 2분20초에 주파할 수 있다고 한다.일반 사용자가
보기에는 신의 경지에 가까운 기록이다.김현욱씨(22)는 “몇 달만 연습하지 않으면 금방
순위가 처지기 때문에 게을리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스프리스 스피드’는 국내 <카트라이더> 구단 1호로 아직 프로게임협회가 인정하는 정
식 프로 게이머는 아니지만 이제 시작인 만큼 앞으로 리그가 활성화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들은 “PC방 가면 거의 다 <카트라이더> 게임을 하고 있다.여기저기서 뚜~뚜~뚜
(<카트라이더> 출발 신호음) 소리가 울린다”라며 <카트라이더>의 인기를 실감한다고
말한다.<카트라이더>가 인연이 되어 여자 친구를 사귄 선수도 있었다.다들 ‘국민 게임
의 대표 선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스프리스 스피드’ 팀 감독인 정민화씨(28)는 “<카트라이더> 프로 게이머가 되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팀에 들어오겠다는 대기자가 수백 명이 넘는다”라고 말했
다.지난 4월에 한 아주머니가 “자동차를 하나 뽑아드릴 테니 우리 아들 좀 받아달라”며
로비했다는 후문이다.
온라인 게임 대중화·다양화 이끌어
최근 들어 <카트라이더> 아성이 다소 흔들리는 조짐이 있었다.조사기관 ‘게임리포트’
의 PC방 점유율 순위에서 <스페셜포스>가 <카트라이더>를 앞지르고 1위로 올라서
는 등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스페셜포스>는 쉽게 말하자면 ‘총싸움
게임’이다.전문 용어로 FPS(1인칭 슈팅 게임)로 분류되는 <스페셜포스>는 마치 진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현실감이 매력이다.
6월30일 저녁 6시 서울 코엑스 지하 스튜디오에서는 게임 전문 케이블 채널 ‘온게임넷’
이 주관하는 오리온예감 <스페셜포스> 리그 시합이 있었다.이 날은 특별히 여성으로 구
성된 4개 팀(1팀 5명)이 나와 특별전을 벌였다.이 여성 전사들은 프로 게이머는 아니며
일반 동호회(길드) 소속 마니아들이었다.평생 군대 근처에도 안 가 보았을 여성들이지만
전투력은 대단했다.시합이 시작되자 “돌격!” “창고에 2명 있어!” “쏴버려!”라며 기합을
질렀다.시합에서는 ‘스타샥G’ 팀이 최종 우승했다.자기 계급이 중령2호봉이라는 스타
샥G팀 배주은씨(21)는 “총쏘는 것 하나는 어느 남자들보다 자신 있다.사이버 상에서는
남녀 구별이 없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같은 팀 김지현씨(22)는 “<스페셜포스>를 모
르는 친구가 거의 없다.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게임을 한다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한
선수의 손목에는 굳은살이 보였다.너무 오랫동안 마우스를 잡다 보니 생긴 것이라고
한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위)과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오른쪽 사진 앞)이 <카트라이더>
게임을 즐기고 있다.
‘카트’와 ‘스포’는 서로 PC방 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지만, 게임 성격이나, 유저들의 성
향이 아주 다르다.<카트라이더>의 최대 매력 중 하나는 만화풍 그래픽이다.자동차만큼
큰 얼굴, 얼굴만큼 큰 눈동자. 졸린 듯한 눈까풀 등은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나 여성들의 눈길을 모았다.반면 <스페셜포스>는 15세 이상 사용가로 수류탄과 총격이
난무하고 피가 튀는 게임이다.카트 마니아들은 스포가 너무 폭력적이라고 말하고, 스
포 마니아들은 카트가 너무 시시하다고 평한다.이용자가 겹치지 않아 두 게임이 행복한
공존을 할 수 있다.
PC방 점유율 1위인 <스페셜포스>는 <카트라이더>에 비해 사회적 파급력은 약한 편
이다.<스페셜포스>를 서비스하는 네오위즈측은 월매출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카트
라이더>의 5분의 1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때로 ‘카트’와 ‘스포’ 게임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지난 5월19일 인천에 사는 아
홉 살 소년이 이웃 승용차를 훔쳐 타다가 접촉사고를 냈다.소년은 경찰 조사에서 “인터
넷 자동차 경주 게임에서 배운 대로 운전해 보니 진짜로 됐다”라고 말했다.연천 중부전
선 G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때도 범인 김일병은 한 온라인 슈팅게임(FPS)을 즐겨 온
사실이 밝혀졌다.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카트라이더>와 <스페셜포스>가 도마 위에
오른다.넥슨은 자동차를 훔친 소년이 즐긴 게임은 <카트라이더>가 아니었다고 밝혔
다.GP 사고의 김일병이 즐긴 게임은 <스페셜포스>가 아니라 <카운터스트라이크>(상
자 기사 참조)였다.<스페셜포스> 마니아로 계급이 ‘중령’이라는 박지응씨(20)는 “<스페
셜포스>를 하면서 현실과 게임 사이에 혼란을 느낀 적은 없었다.게임 때문에 사고를 저
지른다는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한 온라인 게임 업체(캐주얼) 임원은 “<카트라이더>와 <스페셜포스> 덕분에 온라인 게
임이 대중화·다양화했다.또 국산 게임이 대세로 자리 잡은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한
때 국산 게임 <리니지>가 인기를 모은 적이 있지만, PC방 점유율은 외국 게임 <스타크
래프트>에 뒤져 있었다.오는 7월15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 'WEG2005 한·중전'에 정
병국·박형준 의원 등 국회의원 11명이 <카트라이더> 등 게임 시합을 할 예정이다.장관
과 의원이 시대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신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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