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캐스터의 선구자’ ‘세계 최초의 게임캐스터’ ‘스타리그의 대부’.
아나운서 출신의 게임캐스터 정일훈씨(34)를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그가 바로 지난 99년 국내에서 처음 시작된 ‘스타리그’의 첫 게임캐스터이자 최장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일훈이 빠진 게임리그 중계는 재미가 없다’는 팬들이 많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각종 게임리그를 빠르면서도 정확한 발음으로 시원시원하게 중계하는 그의 스타일이 팬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덕분이다. 또 현재 게임리그에서 사용되는 용어의 대부분을 그가 만들어냈을 정도로 게임방송계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스타리그가 인기를 끌면 끌수록 ‘외국 게임사의 배만 불려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이 들어 화가 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게임리그는 게임사와는 별개인 우리만의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깨닳았죠. 게임이 1차 콘텐츠라면 게임리그는 게임에서 파생된 2차 콘텐츠예요.”
그는 이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최근 “한국을 ‘게임리그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게임리그’를 미국의 ‘메이저리그’와 같은 우리만의 독특한 스포츠문화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그는 “마치 야구선수들이 미국의 메이저리그를 동경하듯이 전세계 게이머들이 한국의 게임리그 진출을 목표로 삼을 수 있도록 세계적인 규모의 게임리그를 만들테니 지켜봐달라”고 당부한다.
그의 장담은 단순한 호기가 아니다. 그는 2000년초 게임대회 주관사인 게임맥스를 설립해 직접 ‘스타리그’를 열기도 하는 등 스타리그의 탄생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온 터줏대감으로 실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게임과 게임리그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는 남다른 면이 있다. “처음 스타리그를 중계할 때는 게임을 전혀 몰랐다”던 그가 어느덧 게임 전문가로 훌쩍 커버린 것도 게임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게임캐스터의 길이 순탄했던 것 만은 아니다. 그는 “처음에는 선배 아나운서들에게 ‘너 미쳤냐?’,‘할일이 없냐?’는 등의 걱정어린 전화를 숱하게 받을 정도로 초라했던 스타리그가 발전을 거듭해 어느덧 잠실야구장에서 결승전을 치를 정도로 급성장 했다”며 게임이 전국민의 사랑을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이미 ‘워3 리그’에 외국 선수들이 별도의 구단을 만들어 참여한 상태인 데다 내년 1월에는 블리자드사가 공인하는 세계대회도 개최키로 했다”며 자신의 계획이 이미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게임에 대한 그의 욕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고싶냐고 묻자 그는 서슴없이 “디지털철학이나 디지털사회학을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온라인게임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사실은 사회가 디지털시대로 급변하면서 나타나는 ‘아노미현상’이라 이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지털기술과 디지털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다.
아나운서에서 국내 최초의 게임캐스터로 변신했던 그는 이미 게임을 중심으로 한 사이버세상을 구하기 위한 ‘디지털철학자’ 또는 ‘디지털 사회학자’로의 또다른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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