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는 선동렬과 이승엽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방어율이 두 자리 수인 패전 전문 투수도 있고, 10번 나오면 9번은 삼진이고 나머지 한 타석은 병살타 치는 타자도 있다. 그래서 야구 글러브엔 땀 말고도 남몰래 흘린 눈물 자국이 남겨져 있는 법이다.
그런데 어느날 이 투수가 노히트노런을 하고, 이 타자가 4연타석 홈런을 친다면? 게다가 이 선수가 파란 눈의 외국인이라면?
2003년 지금, 한 외국인이 순수한 열정으로 프로게이머의 길을 걷고 있다. 호주가 고향인 파란 눈의 게이머 피터(Peter James Naete, 22)는 올해 초 게임이 좋아 무작정 한국에 왔다.
섣부른 환상은 금물. 기욤이나 베르트랑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외국인 선수와 비교하지 말 것. 10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기업이 후원하는 구단 소속도 아니고 뚜렷한 성적을 내지도 못했다. 생활이 어렵다. 영어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를 하며 게이머 생활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던 그가 ‘사고’를 쳤다. 지난 달 30일 치러진 ‘라이프존 KPGA 팀 리그’에서 소속팀인 POS의 선봉으로 나서 파죽의 4연승을 올린 것. 연승제 방식의 최고 명예인 ‘올킬’(상대팀을 혼자서 모두 이기는 것)에 성공했다. ‘없는 게 당연하지’라고 여겼던 다음카페도 올킬 이후 세 개나 만들어졌다. 낯선 땅 한국에서 고되지만 즐겁게 <스타크래프트>에 젊음을 건 피터를 만났다.
▲ 내 돈을 써도 좋다. 그 곳에 승부가 있다면.
“자기 예금을 쓰면서도, 왜 한국 생활을 고집하나요?”
“고수가 많아서 멋진 승부를 할 수 있잖아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집에는 언제 돌아갈 예정인가요? 돈 떨어지면?”
“글쎄요…. <스타>가 싫증나면 돌아 가겠죠?”
피터는 POS(Pirates of Space)팀 소속이다. 아직 후원해 주는 스폰서는 없지만 피터에게는 숙소와 식사, 연습상대를 해결해주는 고마운 곳이다. 그래도 현실은 최소한의 생활비가 보장되기 힘든 상황.
그래서 영어 과외와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호주에서 틈틈이 모아둔 예금을 아껴 쓰면서 생활하고 있다. 1000 호주달러(약 80만원) 중 지금까지 100 달러를 꺼내 썼다. 피터는 돈이나 명성 때문에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상대와 멋진 경험”이 주는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프로게임 원년인 99년 이후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안정된 스폰서와 기반을 잡지 못해 돌아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터도 그런 케이스다. 하지만 그는 남아있다. POS팀의 하태기 감독과 성재명 감독도 “피터의 열정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그의 열정이 한국인 팀원들을 자극해 연습에 열중하도록 만든다.
▲ 어렵게 배운 젓가락 질이 컨트롤 향상에
피터는 2001년과 2002년 WCG(월드사이버게임즈) 호주 <스타크래프트> 대표로 한국에 왔다. 각종 사이트나 온게임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한국의 게임리그 열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최초의 희망은 단 한가지였다. TV에 나가서 게임을 하는 것.
소원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2001년 WCG 대표로 한국에 와서 iTV의 <스타크래프트> 특별전에 출전해 당시 군대를 갓 제대한 이기석과 대결했다. 결과는 피터의 승리. 이듬해에는 아예 작정하고 3개월짜리 비자로 입국해서 WCG가 끝난 뒤에 한국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지난 1월말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전자랜드배 MBC게임 스타크래프트 아마최강전’ 8강에 올라 지난 6월 12일 준프로게이머로 등록됐다. POS팀에 들어간 것은 지난 7월. 아직 한국 음식에는 적응 못해 매운 김치를 먹지 못한다. 한국어도 인사만 건네는 수준. 상당히 불편하지만 새로운 문화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즐겁다.
얼마 전 <스타크래프트> 관련 해외 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젓가락질이 마우스 컨트롤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터는 “그 때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았다는 것은 농담이었다. 호주에서부터 조금씩 배웠던 젓가락질과 한국 게이머들의 손놀림을 보고 컨트롤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화려한 생활도 좋지만 내 스타일대로 산다.
따뜻한 남태평양에 위치한 호주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 지난 겨울 생전 처음으로 눈을 보고 감격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강아지처럼 날뛰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평일과 주말을 안 가리고 숙소에서 연습에 열중한다. 취미는 판타지 소설 읽기.
답답하면 팀원들과 어울려 농구를 한다. 193cm의 장신인 피터가 속한 편이 항상 승리하기 때문에 매번 그를 차지하기 위한 실랑이가 벌어진다. 친하게 지내는 베르트랑(22, AMD)이나 기욤 패트리(21, AMD) 등 다른 외국 선수들이 주말에 ‘무도회장’을 찾거나 게임방송 게스트로 나들이를 하는 것과는 180도 다른 생활이다. 여자친구도 없어 데이트도 하지 않는다.
“연봉을 받고 유명해진다면 분명 기쁠 것이다. 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 피터는 한국 게이머들과 승부를 겨루면서 <스타크래프트>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됐다. 물론 챔피언에 대한 열망도 갖고 있다. 한동안 손 빠르고 공격적인 한국 스타일에 고전했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다짐하고 있다.
숙소에서 고생하는 게이머들을 직접 지켜봐 온 피터는 “좀 더 많은 게이머들이 풍요롭게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피터팬( 피터의 팬)임을 자랑스럽게 해드리겠다”고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피터의 씩씩한 한국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우러나온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피터팬 토스’가 탄생하는 것은 아닐지.
이재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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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피터(Peter James Naete)
나이> 22세(5월 24일생)
주종족> 프로토스
소속> POS 프로게임단
고향> 호주 던도우란(Dundowran) 해변
가족관계> 엄마와 두 살 위의 형(군인)
스타입문> 원본이 출시된 98년 봄부터
여자친구> 돌아갈 때를 생각해 사귀지 않음
스트레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해소
최강게이머> 임요환과 이윤열,
최고라이벌> 기욤 패트리와 강 민
입상경력> 전자랜드배 MBC게임 아마추어 최강전 8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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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래터> 서울시 구로구 신대방동 400-1 금강리빙스텔 4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