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제 2 도약 위한 제도적 틀 마련.
미디어다음/ 심규진 기자
문화관광부는 15일 e스포츠의 제 2 도약을 위해 2007년까지 국고 140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e스포츠 중장기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문광부는 이날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e스포츠 정책간담회’에서 한국e
스포츠협회와 프로게임단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이 같이 밝혔다.
문광부 계획에 따르면 2005년에 책정된 예산은 20억원이며 2006년과 2007
년에는 e스포츠계의 숙원 사업인 전용 구장 건립 등의 사업이 진행된다.
이로써 그 동안 인력과 예산 문제로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전용구장 설
립, 단일리그 출범 등 e스포츠계의 숙원 사업들이 원활하게 추진돼 e스포
츠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제도적 틀이 마련됐다. 또한 중국 등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e스포츠가 한류의 새로운 주력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
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동채 문광부 장관은 격려사를 통해 “e스포츠 발전을 위한 법 제도 정비
와 지원 시스템을 강화하는데 문화관광부가 앞장설 것”이라며 정부 차원
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을 약속했다.
문광부 게임음악산업과 김용삼 과장은 “향후 3년간 e스포츠에 140억원을
지원할 생각”이라며 “게임 산업 활성화와 전용 구장 건립, 대전용 국산 게
임 개발 등 e스포츠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e스포츠협회 김영만 회장은 2기 협회의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 김
회장은 “프로게임단과 게임 방송사 등이 이사진으로 참여하는 제 2기 e
스포츠협회는 실질적으로 e스포츠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힘있는 협회’
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게임단 및 게임방송 9개 단체 대표들
은 e스포츠 관계자 공동 협의문을 발표하고 새로운 협회 구성과 e스포
츠 발전에 적극 협조하기로 결의했다.
이-스포츠 정책 비전 발표, e스포츠 어떻게 달라지나?
e-스포츠 관계자들이 게임 발전을 위한 협약을 하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e스포츠 발전안은 프로게임 발전에 필수적 요소로
인식돼온 숙원사업등에 대한 제도적 지원 방안을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문광부는 이날 기초 인프라 조성, e스포츠 문화 조성, 국제협력 강화, 법
제도 및 지원 시스템 강화 등 4개 중점 과제를 발표했다. 과제들 가운데
는 공인리그 출범 및 표준화 작업을 이루고 전용 경기장을 추진하는 방안
외에도 우수 게이머 등록 및 관리와 이들에 대한 포상제도도 포함돼 있
다. 문광부는 또 중국 등 이웃나라와 연계해 ‘아시아 e스포츠 대전’을 개
최함으로써 프로게임의 한류 열풍을 확산할 계획이다.
한편 게임산업진흥법에 e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명문 규정을 만들고 한
국게임산업개발원에 e스포츠 전담 조직을 신설해 민관 협력 창구를 제
도화한다. 또 협회 중심으로 민자를 유치해 3년간 250억원 안팎의 투자
를 유도할 계획이다.
그 동안 인력과 재정 등 어려움을 겪었던 협회의 조직 구성과 위상도 대
폭 달라질 전망이다.
2기 e스포츠협회는 프로게임구단, 프로게이머협의회, 게임 방송사, 한국
게임개발연구원 등 민관을 아우르는 협의체로 구성돼 프로야구의 KBO처
럼 e스포츠의 모든 사업을 주도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공신력 있는 기
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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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게임스] e-스포츠 빛낸 7인방 ①
e-스포츠 3년을 회상하며…
경향게임스가 12월 18일이면 창간 3주년을 맞이한다. e-스포츠계에
있어서 지난 3년의 시간들은 마치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다. e-스포츠
가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시간이 바로 지난 3
년이기 때문이다. 경향게임스 창간과 더불어 함께 성장해 온 e-스포츠.
지난 3년의 역사 속에서 e-스포츠를 빛낸 프로게이머 4인방과 프로게
임단 감독 3인이 털어놓는 지난 3년 간의 회상이다.
[SK텔레콤-임요환] “프로게이머 임요환으로 다시 거듭난 3년”
이제 한달 후면 나도 26살이 된다. 1997년 19살 때 ‘스타’를 처음 접
한 이후, 내가 프로게이머로서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나 자신도 생각
지 못했었다. 그런데 ‘PC방 죽돌이’에서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지 벌
써 6년이 다 되어간다.
돌이켜 보면, 1999년에 내가 프로게이머로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게임단이나 감독, 선수의 개념이 없을 때였다. 기획사 혹은 PC
방에서 게임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아서 프로게이머들과
연습을 했고, 각종 게임대회 참가 신청을 해주면 이후 일정을 따라서
선수가 경기에 임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한국e-Sports협회가 생
기며 제도화되고 프로게이머 등록제 등을 실시하며 전문적인 직업으
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프로게이머가 소속된 프로
게임단이 11개 구단이나 존재하게 되었다.
그간 프로게이머 ‘테란의 황제’로서의 활동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많
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로 2002년
WCG 대회이다. 그간 몸담고 있었던 IS 팀과 계약기간이 끝나고, 무
소속으로 활동할 때였다. 연습상대 구하기도 어려웠고, 상대 선수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재경기까지 치르며 16강을 힘겹게 통과했고
결승전에서 홍진호를 누르고 WCG 2연패를 달성했다. 좋은 성적을
거둬 새로운 팀을 구해야했던 나 혼자서 준비한 대회였기에 그 결과
가 더 값진 것이다. 그 위기 상황에서 큰 힘이 되어 주셨던 주훈 감독
님, 게임연습을 도와주셨던 소울의 김은동 감독님, 조용호 나경보 박
상익 선수에겐 아직도 고마울 따름이다.
가장 힘든 시기를 극복해냈기에, 동양 오리온시절의 고난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고진감래(苦盡甘來)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리
고 지금은 SKT 프로게임단 T1 소속선수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프로게임단은 11개가 존재하며 프로게이머 앞에는 늘 소속이 붙
어 다닌다. 내가 무소속일 때의 상황을 우승으로 극복하며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섰던 것처럼 이제 프로게이머는 혼자 설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스토리 라인이 없어 게이머의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전략시뮬
레이션게임 ‘스타’로 인해 생겨난 프로게이머와 프로게임리그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기업들이 게임단을 창단하기에 이르렀고,
e-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면서 여타의 스포츠와 같이 구단-코칭스태
프-선수로 이어지는 제반환경을 구성해 냈다.
이런 환경에서는 얼마나 프로의식을 가지고 자기관리를 잘하느냐에
따라, 선수 생명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나의 프로게이
머 생명은 3년 전인 2002년, 홀로서기를 감행했을 때 끝이 날 수도 있
었다. 때문에 경향게임스 창간 3주년과 나의 게이머 인생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는 듯 하다.
이제 e-스포츠로 문화 경제 사회적으로 파급효과를 미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직업인 프로게이머로서의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좀 더
체계적인 리그 일정진행, 체계적인 대회 규정 확립과 프로로서 자기관
리를 할 수 있는 정기적인 기간이 주어졌으면 한다. 프로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자신의 선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소속
팀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프로란 이름을 위해 최상의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KTF 매직엔스-강민] “또 한번, 양대 리그의 우승을 위해 뛴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프로게이머의 꿈을 가지게 됐다. 지방에서의
게임방 생활 4~5개월 (산에 올라가 수련을 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을 마치고 난 나는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어 서울로 오게 됐다. 마우
스와 키보드, 마우스 패드만을 가지고 서울의 수많은 게임방을 거
치면서 연습에만 몰두했다.
당시 나의 목표는 MBC스타리그와 온게임넷 스타리그. 메이저에
오르기 위해선 꼭 거쳐가야 할 관문이었기에 양대리그 예선을 통
과하기 위해서 엄청난 연습을 했다. 대회가 생기면 가릴 것 없이
모두 참가했다. iTV를 포함해 소소한 게임방 대회까지 닥치는 대
로 참가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좌절을 맛보았다. MBC스타리그
예선에도 연달아 3번은 떨어진 기억이 난다.
온게임넷 챌린지 예선 마저 연이은 4번의 탈락, 하늘이 비웃듯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 끼 끼니를 때울 돈도, 잠잘 곳이 없어
떠돌아다닐 때 내게 구세주와 같은 형을 만나게 됐다. (김)성필
이 형의 도움으로 119직장인 클랜의 힘을 얻어 후원회가 생겨났
다. 하루 하루를 힘겹게 생활할 때였는데 후원회의 후원금이 내
게 큰 도움이 되었다.
후원회 분들을 위해서라도 기필코 우승을 해야했고 죽도록 연습
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탈락이었다. 아마도 이시기가 내 인생
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절대로 포기하
지 않았다. 내 가슴속에서는 오기가 발동했다. 더 이를 악물었다.
‘흥! 열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열고 들어가겠다’라는 의지와 고집
이 하나로 뭉쳐져 지금까지 했던 연습보다 더욱 혹독하게 연습했다.
마침내... 드디어... 난 제1회 MBC스타리그(이전 KPGA) 16강
에 올랐다. 그리고 첫 본선 진출에 우승까지 거머쥐는 기적 같
은 일이 벌어졌다. 프로게이머를 시작한지 1년 6개월만에 첫 우
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다. 바로 이날은 내 생애 가장
기쁘고 감격적인 순간이며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경험이
다. MBC스타리그에서 우승한 후 MBC팀리그 마저 우리 지오팀
이 우승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아직 온게임넷 스타리
그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MBC스타리그 우승, 팀리그 우승 후 바
로 온게임넷 스타리그도 본선에 올랐다. 4번의 탈락이후 5번째 본
선 진출이므로 온게임넷도 첫 본선 진출인 것이다. 최고의 전성기
를 누리던 때였는지는 몰라도 온게임넷 마저 첫 본선 진출에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나는 우승만을 생각했다. 탈락하면 탈락했지 2등은 생각해보지 않
았던 나였다. 당시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던 나는 어떠한 경기에서
도 떨거나 긴장하지도 않았지만 문제는 내 마음속 깊숙이 자만심이
자리잡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 결승전을 시작한지 두 어시간. 3:1이
라는 스코어로 패배하면서 난 준우승에 머물렀다. 쥐구멍에라도 숨
고 싶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4번의 예선 탈락, 다섯 번 째 준우승. 그러나 여섯 번째 도전에서는
드디어 우승을 거머쥐게 됐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당시 첫 우
승부터 지금까지의 과정들과 여러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한 장면
한 장면 재빠르게 지나갔다. 기뻤던, 시련을 겪었던, 슬펐던, 긴장
했던 순간들이 모조리 내 머리 속을 휘어 감았다. 난 세상을 다 가
진 듯 했다. 아마도 이시기가 프로게이머 생활 중 가장 기쁜 날이
아닌가 싶다. 프로리그와 팀리그 개인전 양대 방송사의 우승을 하
고 난 뒤 나는 KTF 매직엔스로 스카웃 됐다. 프로게이머 역사상 억
대 연봉으로 장기계약을 한 첫 게이머가 된 것이다.
이적 후 반년이 지났다. 지난 6개월간 나는 많은 패배로 인해 양
방송사 개인전에 탈락한 상태다. 그러나 3년 전에 그러했듯이 난
절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3년 간 기필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KTF매직엔스의 명예를 건 양방송사
의 단체전은 물론 개인전의 영광까지 모두 거머쥐게 될 날이 꼭 오
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오팀-서지훈] “WCG2004 우승과 내게 큰 발전을 가
져다 준 지난 3년”
지난 3년은 나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평범한
학생의 신분으로서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학교에 있는 시간외엔 게
임에 매달리며 살았었지만 내가 프로게이머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참가했던 제1회 온게임넷 챌린지리그 예선을
통과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에 잘나가던 프
로게이머들과 게임을 해도 난 전혀 주눅들거나 밀리지 않던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프로게이머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온
라인 예선과 오프라인 대회들을 치르면서 자신감은 신념으로 바
뀌고 꼭 최고가 되리라 다짐했다.
게임에 매달린 지 2년째가 되던 19살 때 처음으로 나를 인정해주
신 분이 바로 조규남 감독님이다. 제2회 온게임넷챌린지리그 1위
결정전에 진출하면서 지오팀에 입단하게 되었고 꿈에 그리던 프
로게임단에서 나는 미친 듯이 게임에 몰두했다. 그 당시의 지오팀
은 눈물의 팀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
다. 밥 한끼 사먹을 돈이 없어서 끼니를 굶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우리 팀원들은 항상 ‘잘될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
심히 했다. 그 첫 결실이 올림푸스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이다.
결승전무대에서 마지막 5경기를 이기고 난 후 무대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신 엄마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덩달아 눈물이 흘렀다.
스타리그 우승을 시점으로 슈마가 스폰서가 되어 슈마지오라는 이
름으로 재 탄생했고 우리 팀은 팀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승승장구하
며 우승을 이어갔다.
그 이후 마음가짐이 해이해져서인지 나는 개인전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정신을 차리자며 또다시 마음을 다잡았고 2004 WCG에서
우승을 하게됐다. WCG 대회는 여러 국가가 참가하는 세계적인 대
회이지만 ‘스타’ 종목에선 우리나라가 독보적이다. 때문에 그랜드
파이널보다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중점적으로 준비했다.
예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본선에
서 우승까지 차지했지만 더 의미있는 일은 우리 지오팀이 국가
대표 자리를 모두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본선을 치르기 위해 샌
프란시스코로 먼 길을 떠났지만 이재훈, 전상욱 선수와 조규남
감독님이 대표감독으로 동행해 더더욱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지난 3년 간 내가 생각했던 일들을 100%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앞으로의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 밑거름이 된 시기였다고 생
각한다. 오늘도 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게이머가 되려고 노력
할 것이며 앞으로의 3년은 지금보다 더 빛날 것이다.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이윤열] “큐리어스 창단식,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이윤열이 15연승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오랜만
에 느껴보는 값진 결과였다. 하지만 나는 내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기
위해 나의 친정이나 마찬가지인 SG패밀리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금
전적인 풍요로움보다 심적인 풍요로움을 위해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
정이었다.
그러나 웃음을 되찾기 위해 옮긴 팀이지만 숙소생활은 ‘암울’ 그 자체
였다. 너무 힘겨웠다. ‘내가 너무 경솔했나? 팀을 옮기지 말았어야 했
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정감 넘치는
우리 팀원들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다. 우리 팀원들은 나에게 웃음을
만들어주었다. 난 내 개인적인 성공에 앞서 SG패밀리인 우리 팀원들
이 다 잘되기를 빌었다. 그렇게 8개월 정도를 계약 없이 지내왔었다.
기다림 끝이 낙이 온다고 했던가? 우리 팀은 결국 팬택앤큐리텔이라는
든든한 스폰서를 얻었고 성대한 창단식까지 치렀다. 큐리어스 창단식이
있던 날. 행사장에는 팀원들의 부모님이 모두 참석했다. 부모님들은 아
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격려를 보내주셨고 팀원들의 각오도 남달라 보
였다. 난 내 개인의 성공이 아닌 팀원 전체가 행복해진 것에 대해 감사
하고 또 감사했다. 그 동안의 힘든 시간들이 모두, 국내 최고 기업, 최
고의 스폰서를 얻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지난 3년 간의 기억들을 회상해 볼 때 가장 감격스럽고 뿌듯했던 기억
이 바로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 팀의 창단식이었다. 팬택앤큐리텔 큐
리어스는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덩달아 내 자신도 달린다. 서서히 웃
음을 되찾은 나는 이제 몸도 마음도 편해졌으니 혼신의 힘을 다해 경
기를 준비할 것이다. 더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3년 후에는 팬택앤큐
리텔 큐리어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김수연 기자 <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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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빛낸 7인방 ②
e-스포츠 3년을 회상하며…
[KTF 매직엔스-정수영 감독] “선수들과 동고동락하
며 살아온 지난 3년”
2001년 6월에 KTF매직엔스 감독으로 임명됐다. 난 회사 근처
고기집으로 주변 선수들을 다 불러모았다. 정식으로 대기업의 게
임단을 만들고 이끌어 나가는 입장에서 선수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였다. 당시엔 선수숙소라는 개념이 없었다. 이에 대해 선
수들의 의견을 수렴해보니 우선 숙소, 자동차, 컴퓨터, 집기 등
이 필요했다. 선수들의 연습환경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에 그 환
경부터 만들어 주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
이밖에 선수들의 기량이 얼마 만큼인가 하는 데이터도 필요했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막막함까지 느껴졌던 상황이었
지만 선수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썼다.
KTF 입단 후 4개월 동안 숙소를 마련하고 스타크래프트 밴을 장
만했다. 컴퓨터, 책상, 옷장, 침대, 식기 등을 모두 들여 제대로 된
숙소를 꾸민 뒤 선수선발을 시작했다.
그동안 KTF를 거쳐가거나 몸담고 있는 선수들은 송병석 성
준모 서지훈 장진남 장진수 김갑용 이기석 변성철 박신영 박
정석 강민 이윤열 홍진호 변길섭 김정민 최진우 조용호 조병
호 윤정민 한웅렬 신주영 등....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지
금까지 같이 있는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나의 보물이기도 하
다. 이들이 있기에 지금의 e-스포츠가 있다고 확신한다.
KTF는 타 게임단에 비해 많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
나 선수 모두가 최상급의 기량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특히
이기석 최진우 신주영 등 오랫동안 게임계를 떠나있던 노
장의 선수들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의견이 분분하다. 감독인
나로서도 리스크를 안고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솔직히 회사
에서 보면 아무런 명분이 없지만 지난 시절 영웅이었던 그들
과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해보고 싶은 내 개인적인 욕심이 작
용한 것이다.
오랜 시간을 e-스포츠와 함께 해 온 인생에서 제일 안타까운
일이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중도에 포기하
고 산을 내려가는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만큼
가슴아픈 일은 없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은 시간동안 게임을
하고 같이 대회장을 오가는데 이러한 트레이닝 속에서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선수들도 보면 애처롭다.
게임단 감독으로서 가장 힘든 때는 회사에서 어떤 선수에
대해 계약해지 조치나 방출조치가 내려 졌을 때다. 약 6개월
간 회사와 싸워가며 나의 한 부분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선
수를 계약시킨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성적은 안나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수가 게임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어떻게 입단을 시켰는데..) 어떤 선수는 마치 자신이 S
급 선수인양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남들보다 덜
자고 더 노력해도 힘든 곳인데 말이다.
지금은 선수들도 체계를 제대로 잡아 나가고 있다. 이제
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알고, 자신보
다 남을 더 생각하는 마음이 보인다. 하루에 10시간이 넘
는 훈련과 2시간이 넘는 체력훈련, 2시간의 이미지 트레
이닝. 이제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이것이 내가 선수들과
싸워온 지난 3년 간의 결과물이다. 나는 곧 있을 동계훈
련을 준비하면서 또 그들과 싸울 일을 즐기고 있다! 앞으
로 3년도 기대된다.
[한빛스타즈-이재균 감독] “내게 자신감을 심어준 e-스포츠”
게임계에 뛰어든지도 내년이면 횟수로 7년째다. 아무 생
각 없이 팀을 만들어 시작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뒤돌아
보니 너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의 흥행보증수표인 4대 천
왕들이 중·고생일 때부터 봐 왔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짐작할 만 하다.
굳이 내가 게임계에 뛰어든 7년 전의 세월까지 거슬러 올
라가지 않고 지난 3년의 시간들만을 더듬어 보더라도 나
자신조차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e-스포츠는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해 왔다.
변변히 연봉이란 것도 없이 상금에 의존하며 생활해오던
게이머들이 이젠 당당히 국가에서 인정받는 프로게이머
라는 직업을 가지게 됐다. 연예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기
던 밴을 타고 다니며 수많은 팬들까지 거느리는 ‘스타’가
된 것이다. 이젠 대기업들도 e-스포츠에 뛰어들고, 스폰서
끼리 경쟁까지 붙게 됐다. 이 모든 것이 불과 지난 1~2년만
의 일이다.
10만 관중 시대를 열었던 sky2004 광안리 결승전 때. 우승을
했기에 망정이지 패배했더라면 평생 땅을 치고 통곡을 할 뻔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 그 기쁨이 더 컸다. 처음 e-
스포츠를 시작했을 때 ‘얘들이나 하는 게임을 가지고 무얼 하
냐’고 비아냥거리던 이들이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
다.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며 시작했지만 지금은 당당히 인정을
받는다는 것,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공부도 썩 잘하지 못했고 사고만 치던 나에게 “거봐 너도 할
수 있잖아” 라는 자신감을 심어준 e-스포츠. 아직 완전히 체
계를 갖추지 못해 약간 불안하기는 하지만 팬들이 있고 대회
가 있으며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스폰서들이 같이 뛰어준다
면 분명 e-sports의 미래는 밝다.
짧은 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거듭한 e-스포츠. 뛰어갈 수 있을
때 힘껏 뛰자! 많은 이슈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발전을 할 수 있
도록... e-스포츠가 마땅한 놀이공간이 없는 청소년들의 건전
한 쉼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e-스포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놀이터를 잃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서 앞으로의 3
년, 그리고 30년 까지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하는 e-스포츠가
되길 기대해 본다.
[지오팀-조규남 감독] “경향게임스 3년과 함께해 온 최
고의 GO”
GO라는 팀명으로 2002년 4월에 새 출발을 시작했다. 횟수로
3년의 시간이 흘렀고 내년 3월이면 만 3년을 맞게된다. 그래서
현재, 숫자 3은 내게 남다른 의미를 부여해 준다. 경향게임스
의 창간 3주년처럼 말이다.
지난 3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
었던 것도 사실이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지금의 팀원들 그리고
GO팀을 거쳐 다른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 모두에게 고맙
다는 말밖엔 더 할말이 없다. 3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지금의
시점까지 선수들 모두가 팀의 색깔에 어긋남이 없이 함께 노력해
주었던 점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난 지오팀 만의 지오스러움이 좋다. 점점 게임리그가 커지고 게임
단들이 체계화되어 프로화를 이뤄 가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
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 또한 분명히 있
다. 정도와 경우를 지켜 나가야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프로’이다.
어떤 경우에는 나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고, 어떤 판단을 함에
있어 어쩔 수 없이 가장 합리적이고 좀더 나은 선택을 해야할 경
우가 생기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도와 경우를 지켜주기를 강
조한다. 나는 자신의 어떤 곤란이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상
대에게 떠넘긴다거나 힘있고 강한 사람 앞에서의 약함과 약한
사람 앞에서의 강함은 정말 최악이라는 점을 참 많이 강조해 왔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믿고 따라오는 선수들에게서는 지오스
러움이 묻어난다. 지금 이곳을 떠난 동생(프로게이머)들도 있지만
어디에서건 지오만의 향이 풍기는 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향은 우리만이 맡을 수 있다는 것을 GO선수
들도 아는 듯 싶다.
고생이 고생인줄도 모르고 지내는 지오팀 선수들에게 내적인 것
에 버금가는 외적인 요소를 갖춰주고 싶은 것이 지금의 나의 작
은 바람이자 욕심이다. 난 이들이 게임뿐 아니라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지오스러움을 잃지 않고 큰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김수연 기자 <
[email protected] >
★★★ 12월 7일자 기사입니다만, 올려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여 업로드 합니다.
게이머 앙케이트 조사는 이미 올려져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