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프로로서의 목표의식 생겨
프로게이머 이창훈(19, 동양제과 오리온)의 진가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이창훈은 고2때 NISSI팀에 소속되어 잠시 활동하다 1년 넘게 공백기를 보냈다. 당시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메이저리그마다 본선에 진출해 주목받았으나 번번이 16강에서 좌절을 맛보았다.
이후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재미로 시작한 게이머 생활이었기에 미련없이 프로게임계를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임요환 사단이라 불리는 오리온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프로로 활약하게 됐고
오리온의 프로리그 우승 이후에 진정한 프로로서의 목표의식이 생겼다.
단지 게임이 좋았을 뿐
이창훈이 온게임넷 프로리그 초대 MVP를 차지했다.
지난 달 30일 올림픽공원에서 치러진 온게임넷 프로리그에서 동양 ‘오리온’이 한빛 ‘스타즈’를 4:1로 격파하고 챔피언에 등극, 이창훈은 임요환과 맹활약을 펼친 공로에 힙 입어 MVP를 수상한 것.
이창훈은 “팀리그 우승에 일익을 담당한데 대해 뿌듯하다. 이제는 개인전에서도 꼭 우승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창훈은 2년 전 단지 게임이 좋아서 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꿈도 없었다. 특별한 목적의식을 갖기보다는 게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당시 프로의식을 갖고 덤볐더라면 아마도 좀 더 일찍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게임 때문에 경찰대학의 꿈 접어
187센티미터에 훤칠한 키의 이창훈은 운동이라면 다 좋아하지만 특히 농구와 볼링에는 선수 못지 않은 기량을 보인다. 어려서부터 중학교 때까지 이창훈의 꿈은 한결같이 경찰관이 되는 것.
이 세상에서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찰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가족들과 이창훈 자신의 한결같은 목표였다. 이러한 꿈이 깡그리 무너진 건 게임에 빠지면서부터다.
공부는 뒷전이고 게임에만 열중 하다보니 성적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이창훈은 중 3때부터 게임을 시작했다. 친구들의 관심사는 온통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였고 ‘스타’를 모르면 대화에 낄 수조차 없었다.
이후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스타’ 대결이 벌어졌다. 자존심이 강한 탓에 죽을힘을 다해 ‘스타’를 배웠고 친구들과의 대결에서 이기는 재미 때문에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고 2때 배틀넷에서 인연이 된 프로게이머 김수한을 알게됐고 NISSI팀에 합류하게 됐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신념 같은 건 없었고 그저 재미로 시작한 것이다. 학교 담임선생님께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어 큰 어려움 없이 프로게이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할머니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외동아들
이창훈은 외동아들이다. 아빠가 차남이지만 이창훈이 첫 손자였기 때문에 할머니는 이창훈을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하루에 꼭 사과 3개를 먹어야 피부가 고와지고 건강해진다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과를 챙겨 먹이셨다. 지금의 뽀얀 피부를 갖게 된 건 모든 게 할머니 덕분이라고.
할머니는 물론 부모님도 이창훈이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이라면 다 수긍하고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면 공부를 포기하다시피 했을 때에도 할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로 승낙을 얻어냈다.
70의 나이신데 40대로 보일 정도로 ‘멋쟁이’이신 할머니는 이창훈에게 있어 정신적인 지주. 하지만 지금은 일본에 살고 계신다.
“언제나 할머니께서 먼저 전화를 하셔서 너무 죄송해요. 문득문득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운데 멀리 떨어져 있어 속상해요.”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기대가 컸던 탓에 그 기대에 거스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자랐다. 술·담배는 전혀 입에 대지 않았고 스스로 절제된 행동으로 부모님 기대에 부응해 왔다. 그런 그가 ‘게임’ 때문에 ‘경찰관’이 되리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져버렸지만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은 변함이 없다.
5개국어 섭렵하고 세계여행 하며 살고파!
늘 조용하고 말이 없는 이창훈은 게임을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넉살좋은 성격으로 바뀌었다. 숫기가 없어 남들 앞에 나서기조차 꺼리던 그가 이제는 여기 저기 끼어들기 좋아하는 ‘왕 오지랖’이 됐다.
올해 초부터 프로게이머 활동을 재개한 이창훈은 저조한 성적 때문에 게임을 다시 시작한데 대해 후회도 많았다. 차라리 고 2때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그 당시에 좀 더 확고한 신념으로 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프로리그를 계기로 새롭게 마음을 다졌다. 이제는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가 됐다.
사진=유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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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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