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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6/17 14:22:51
Name 두괴즐
Link #1 https://brunch.co.kr/@cisiwing/6
Subject [일반] 도둑질 고치기 (下편) (도둑질 후기)
앞 전에 쓰다만 도둑질 후기 하편입니다.
https://cdn.pgr21.com/freedom/98984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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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고치기 下편
-훔친 사탕은 여전히 달았지만, 맛은 없었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구멍가게 한 곳과 슈퍼마켓 세 곳이 있었다. 그중 단골은 단연 집 앞 슈퍼마켓이었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고, 그냥 제일 가까웠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이기도 했다. 코인 뽑기를 비롯해 여러 오락기기, 장난감, 만화책 등이 있던 문방구와는 달리 슈퍼는 간식을 구매할 수 있는 제한적인 곳이었다. 물론 문방구의 과자와는 그야말로 클라스가 다른 간식이 쌓여 있었기에 아이들에겐 또 다른 보물 창고였다. ‘우리집이 슈퍼집이었으면!’ 하고 바랬던 숱한 얼굴들이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돈 없이도 장시간 삐댈 수 있던 문방구와 달리 슈퍼는 돈 없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앞슈퍼에도 뭔가가 설치됐다. 그것은 펀치기였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누워있던 쿠션이 튀어나와 전투력을 측정해 줬다. 득점 여부에 따라 수준도 알려줬는데, 이런 식이다. 신기록을 세웠다면, “당신은 세계챔피언입니다.” 꽤 높은 점수를 얻으면, “핵펀치 작렬!”, 그럭저럭 강하면, “꽤 하는데?”라고 응답한다. 나 역시 드래곤볼을 보며 나름의 기 수련을 했던 터. 자칫 펀치기가 부서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지만, 그건 내 소관은 아니다. 전신의 기를 오른손 주먹에 모았고, 이를 개방하면서 쿠션을 날렸다. 숫자칸이 빠르게 돌다가 멈춘다. 전투력을 확인한 펀치기가 말했다.



“지구를 떠나거라.”



지구에는 상대가 없으니 우주로 나가라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점수를 보니 최하점이었다. 그러니까 “에게게? 솜방망이잖아”였고, 달리 말해 "나가 죽어라."라고 한 것이었다. 아니, 지구인에게 지구를 떠나라니,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어제 했던 문방구의 뽑기기계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꽝~! 아이고, 돈 아까워 라~” 아니, 내 돈을 지가 먹어 놓고 이딴 소리를 하다니, 같은 동네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져도 된단 말인가!



그래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는 두 해전 뽑기를 주워서(훔쳐서) 다시 타 먹으려고 하다가 뽑기 아저씨에게 걸려서 엄마의 핵펀치를 맞은 바 있고, 그때 지구를 반쯤 떠났었다. 그리고 이제 마저 떠날 때가 왔다.



집앞슈퍼는 사용처에 따라 몇몇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내게 의미가 있는 구간은 껌과 사탕을 시작으로 바, 스낵, 쿠키, 크래커, 칩, 누가, 풀빵, 뻥튀기가 진열되어 있는 중앙 구역이었다. 그 끝에서부터 코너를 도는 구석에는 시리얼류와 라면류가 진열되어 있는데, 계산대에서 보면 완벽한 사각지대였다. 역사는 준비된 자의 것이고, 나는 예비된 자였다. CCTV는 어떻냐고? 그때는 금은방에서도 그런 걸 보기 힘든 시대였다.



야바위꾼의 손놀림처럼 이것저것을 들고 놓았고, 결국 하나를 빼돌렸다. 사각지대에 진입하여 후처리를 진행했다. 나의 호주머니는 깊고 넓었고, 오른손이 챙긴 상품은 조그마했다. 땀이 났고, 머리에 정전기는 났지만, 감쪽같았다.



주도면밀했던 나는 새콤하고도 달콤한 캐러멜 하나를 계산대에 올렸다. 과자를 훔쳐 냉큼 달아난다면 의심을 받겠지만, 나의 손은 위풍당당했다. 여느 때와 같이 100원을 내고 10원을 받으려고 기다리는데,  10원은 오지가 않고, 100원도 가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100원을 돈 통에 넣고, 그 통에서 10원을 꺼내서 내게 주는 그 쉽고 자연스러운 일을 아주머니는 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은 무얼 하고 있었던가. 우주에도 지구인이 살 수가 있는가. 이윽고 세모가 된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주머니에 있는 것도 꺼내라.”



이게 무슨 일인가? 완전범죄를 꿈꾸던 아해의 대가리에 운석이 떨어졌다. 나의 공룡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녔고, 세계는 곧 멸망했다.



주저하고, 침묵했다. 그러니까 나는 주저하고 아주머니는 침묵하고, 나는 주저하고 아주머니는 침묵하고, 그런 주저와 침묵의 줄다리기 속에서 결국 주저가 졌다. 나는 오른쪽 주머니에 있던 신호등 사탕을 꺼내 올렸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의 사탕 세 개가 들어있는 50원짜리 폭탄이었다.



떠올려라, 선조의 지혜를! 호랑이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공지진과 화산폭발이 된 양볼 사이에서 왔다. 지혜의 뱀이, 구원이 되어. “이거는, 이거는, 어, 다른 가게에서, 옆가게에서, 거기서 산 거예요, 그 구멍가게, 거기……”



통하였는가?



침묵의 아주머니는 내 눈을 가만히 보셨는데, 나의 동공은 진도 12에 육박했기에 초점이 없었다. 그렇게 한 세월, 두 세월. 이윽고 네모가 된 아주머니의 입에서 판결이 나왔다.



“자, 여기 10원. 맛있게 먹어라.”

“네? 네,네,네,네. 아, 안녕히, 계십시요오욧.”



도저히 쑥과 마늘을 견딜 수 없어서 뛰쳐나갔던 단군신화의 호랑이처럼 나는 슈퍼에서 튀어나왔다. 집 앞까지 왔던 운석은 다행히 우회했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우리집이 집앞슈퍼의 단골이듯, 집앞슈퍼 아주머니도 우리가게의 단골이었다. 그러니 심판은 취소된 것이 아니라 유예된 것이다. 2심과 대법원 판결이 내 생의 불꽃을 삼키려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중생아, 어찌하여 겨우 얻은 보너스 목숨을 소중히 하지 않았더냐. 땅에 버려진 뽑기를 주운 것에 비해 이 신호등 테러는 심각한 범죄였다. 그날 밤 신호등의 소식을 들은 엄마가 맹수가 되어 나의 목덜미를 물 예정이다. 그랬는데, 응? 엄마는 일찍 곯아떨어지셨다. 그날이 오늘은 아니구나. 내일이구나. 내일은 아주머니가 우리집에 쳐들어오겠지?



다음날은 매일 늦게까지 축구하던 친구들도 유독 빨리 가버리고, 초여름이었는데도 해님은 한겨울처럼 바삐 퇴근했다. 동네에 산적한 공룡의 무덤을 돌면서 마음을 다 잡는 수밖에 없었다. 온 우주가 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굳은 결심을 하고 전우의 시체를 넘어 집의 현관을 열었다. 맹수여 오라.



그랬는데, 그날도 엄마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갔고 다음날도 갔다. 또 다른 하루도 가고, 또 갔다. 계속 계속 가고 또또 갔다. 아무도 운석을 제거하지 못했는데, 그냥 사라졌다. 그러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계속 일에 지쳐 까무룩 했고,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너무 많은 일이 마음에서 일어났다.



죄송했다. 나를 믿었던 아주머니에게 죄송했고, 어이없었고, 황송했고, 송구스러웠다. 현상수배는 내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현상수배자가 되어 1년 동안 숨어 다녔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우리집의 단골이었지만, 아주머니는 단골 하나를 잃었다. 나는 한참을 돌아 구멍가게를 가거나 오락실 옆 슈퍼를 가곤 했다. 엄마의 심부름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집앞슈퍼를 갔을 때,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았고, 나는 아무렇게 되어 심히 부끄러웠다. 그런 상태였지만, 뱀의 대가리는 끝내 고해성사를 하지 못했다.



완전범죄를 꿈꿨던 아이는 완전하진 않았지만 성공적인 도둑질을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이는 도둑질을 못하는 아이가 됐다.



집앞슈퍼 아주머니는 이제 더 이상 슈퍼 아주머니가 아니다. 동네는 재개발됐고, 슈퍼 건물은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명절이 되면 부모님 가게에 오셔서 선물을 사 가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는 건 흔한 일이었고, 여러 아이들이 쥐어 터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나도 그 숱한 사건들 중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주머니는 나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허나 나는 여전히 그 기억에 머리가 솟는다. 나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솟은 머리를 하며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전 나의 유년시절을 닮아갈 아기가 유성을 타고 지구에 떨어졌다. 이 아이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한참 다를 테지만, 빨간 신호등이 들어올 때가 올 것이다. 훔쳤던 신호등 사탕을 한참 동안 먹지 못했다. 책상 서랍 구석에서 썩기를 기다리던 그놈을 겨우 입에 털었을 때, 여전히 달았다. 너무 달았고, 기대했던 바로 그 단맛이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도 맛은 없었다. 깨 부셔서 삼키기에 바빴다. 달아도 맛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 사탕의 맛을 나의 아이에게 가르칠 때를 기다리며 솟은 머리를 정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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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7 14:27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에 댓글이 없는 것 같아서... ^^
두괴즐
23/06/18 14:2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zig-jeff
23/06/17 16:37
수정 아이콘
상편 읽고 기다렸었는데 드디어!

재밌게 잘 읽어지게 쓰시는 글솜씨 정말 부럽습니다.
두괴즐
23/06/18 14:29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으셨다니 보람이있네요 :)
23/06/17 23:44
수정 아이콘
글을 찰지게 잘쓰시는듯
두괴즐
23/06/18 14:2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새마을금고
23/06/19 12:26
수정 아이콘
저도 미니쉘 초콜릿을보면 쓴기억이 떠오르네요
두괴즐
23/06/19 13:46
수정 아이콘
저와 같은 동네 잡범이셨군요. 크크.
아난시
23/06/20 08:27
수정 아이콘
글맛이 좋습니다 덕분에 쌉싸름한 제 어린 시절도 생각나구요. 감사합니다
두괴즐
23/06/22 18:16
수정 아이콘
잘 읽어주셔서 저도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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