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6/12 03:10:35
Name 알렉스터너
Subject [일반] 금사빠 혹은 스며들기 (수정됨)
오늘 오랜 친구들에게 연애 상담 겸 수다를 떨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금사빠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에게 대쉬할 때 단기간에 승부보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내 행동이 누군가에겐 여유 주지 않고 몰아치는 스타일이고, 금사빠일 수 있겠구나"라는 점입니다.

30대 중반이고, '머가리 꽃밭, 항상 밝기만 한' 전형적인 특징을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제 MBTI는 ENFP입니다.

과거 연애 경력을 보면 8:2로 대부분 자만추였습니다. 학교나 주변에 있는 무리 혹은 이벤트에서 알게 된 케이스죠. 어쨌든 자만추든 인만추든 맘에 들기 시작하고 첫 만남이나 첫 유의미한 이벤트가 시작됐을 때부터 한달 이내에 썸을 타고 가끔은 두달 안에 승부가 났습니다. 쫑이 나든 사귀든요. 좀 더 세부적으로는 첫 데이트를 하고 나서, 그다음은 2주 이내에 혹은 정 시간 조율이 안 되거나 바쁜 시기면 3주 안에 다음 약속을 잡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 잦고 빈도 높은 연락은 필수였고요.

그러나 고민의 주제는 그런 패턴에서 좀 다른 분으로 추정(?)되는 분을 최근에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MBTI는 ISTP로 제 주변에 많이 없는 부류였습니다. 주말엔 방콕해서 혼자만이 시간이 정말 중요하고, 친구도 많지 않고, 업무 카톡 이외에는 연락을 매우 왕성히 하지 않는 부류랄까요.


그러나 친구들과 나눈 고민 주제는 이거였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다음날 제가 카톡으로 간단한 물음을 했는데 그분이 읽씹을 했다는 것이었죠.. 주말 내내 답이 없다는 사실..!

오랜 친구들에게 이 과정들을 브리핑해주며 설명해줬습니다. 속으로 이 과정에서 제가 어떤 생각들도 했는지도요. 가령, 셋이서 있었던 자리에서 그 사람 말 한마디에서 의미 부여를 해서 알맹이가 있을 거 같다거나 다음 번에 만나자고 했을 때 거절이 아닌 날짜 옵션들을 제시한 게 좋은 시그널 아니느냐 뭐 이런 식입니다. 과하게 보면 확대해석이긴 하죠. 근데 친구들이 이런 줄거리를 듣더니 핀잔을 좀 주더랍니다.

"너는 왜 이렇게 성급하냐, 그런 생각하면서 자꾸 있었던 일에 매달리지 말고, 조금 텀을 두고 접근하거나 다음 만남을 기약해보는 건 어떄?"
그러니까 단기간에 몰아쳐서 썸과 사귐을 완성하는 금사빠식 말고 장기전으로 내다보면서 천천히 접근하고 상대 생각을 변화하게 하는 스며들기 방식을 해보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제 연애 스타일과 직관은 이렇습니다. 한번 오프라인 만남이 가졌고 너무 마음에 들면 어떻게든 다음주에 약속을 잡을지 머리를 굴리는 거죠. 그러나 친구들은 그렇게 하면 상대에게 조급해보이고 '이 사람이 날 좋아하네' 판단을 쉽게 하게 해서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니까 깔끔하게 만남을 털고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다음을 기약하라는 겁니다. 의식적으로라도 이런 노력을 해보라고 합니다.

한 친구는 심지어 자기가 한번 적극적인 제스처라든지 한걸음 다가가면 한번은 끝까지 기다리기만 한답니다. 상대방이 먼저 제스처를 취하거나 좀 과격하게 말하면 답답하거나 안달이 날 때까지 말입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썸을 타왔다고 합니다. 옆에 있는 다른 친구도 이 얘기에 적극 동의해줬고요.

그게 전략적으로 일부 이성들에겐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금사빠식 전략을 쓰든 스며드는 전략을 쓰든 상대에 따라 리스크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자의 경우, 판단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에겐 반감을 사는 스타일이어서 관계가 성사되지 않을 수 있고, 후자는 연애에 적극적인 사람에게 '이 사람 나한테 관심이 없나보네. 다른 사람 찾아보자'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정리하자면, 금사빠식이든 스며들기식이든 어떤 연애 전략이든 상대에 따라 유불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당연하고 맞다고 생각한 연애전 전략이 누군가에겐 희한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생경함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친구들이 준 조언이 맞는지는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중요한 건 서로 맘에 들면 어떤 방법론이 됐든 잘 될 거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많진 않으니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공실이
23/06/12 05:05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연애는 모든 케이스가 다 다르니 게임처럼 다 깰수 있는게 아니고 운없게도 안맞는 경우도 생기죠. 그래서 모든 연인들은 일종의 운명인거죠.
레이미드
23/06/12 12:01
수정 아이콘
어떤 방법론이 '정석'이기는 (사람에 따라서) 어렵다는 게 연애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가장 큰 장벽인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예쁜 사랑 하시길..
무냐고
23/06/12 13:30
수정 아이콘
서로 맘에 들어도 엇갈리면 '인연이 아닌가보다' 하는 상황들이 종종 생기긴 하죠..
라울리스타
23/06/13 07:46
수정 아이콘
맞춰가야죠. 제 여자친구는 사귀고 난 이후에도 읽씹은 기본....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8986 [정치] 단통법 드디어 [72] 악질17261 23/06/15 17261 0
98985 [일반] 플레시의 인상깊은 장면들에 대한 감상(스포) [6] rclay6283 23/06/15 6283 1
98984 [일반] 도둑질 고치기 上편 (에세이) 두괴즐7568 23/06/15 7568 10
98983 [일반] [넋두리] 아니, 국과수도 모르겠다는데 대체 왜 항소한 건가요? [70] 烏鳳13731 23/06/15 13731 52
98982 [일반] 세상은 넓고 못찾을 건 없다(feat.타오바오) [8] 여기에텍스트입력9875 23/06/15 9875 6
98981 [일반]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겪은 버튜버 걸그룹 "이세계 아이돌" 감상기 [44] 잠잘까13239 23/06/14 13239 15
98980 [일반] [강스포] 플래시 : 최고의 한시간 반, 아쉬운 30분 [27] roqur9042 23/06/14 9042 2
98979 [일반] (노스포) 더 플래시. 만족감 반, 아쉬움 반 [24] Rorschach8429 23/06/14 8429 4
98978 [일반] 초보자 입장(?)에서 게이밍 컴퓨터 부품 간단히(?) 보는 법 [26] manymaster11607 23/06/14 11607 15
98977 [정치] 이용호 "방통위원장에 합리적·상식적 사람 곤란‥이동관 같은 사람이 가야" [101] 베라히14825 23/06/14 14825 0
98976 [일반] 참을 수 없는 해방감, 야외배변 [33] 만렙법사11225 23/06/14 11225 40
98975 [정치] 조국 파면 및 민주당 의원 돈봉투 의혹(제목수정) [131] 후마니무스13863 23/06/14 13863 0
98974 [일반] [역사] 순대에 찍어 먹는 양념장, 근본은? / 순대의 역사 [40] Fig.112377 23/06/14 12377 38
98973 [일반] 법제처 법령해석(정부 유권해석) 경험담 [13] up8901 23/06/13 8901 4
98972 [일반] 삼성전자, ‘월1회 주4일’…월급받는 주 금요일 쉰다 [93] 톤업선크림18200 23/06/13 18200 10
98969 [일반]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사망 [24] KOZE12137 23/06/12 12137 0
98968 [일반] 추천게시판을 재가동합니다. [3] 노틸러스6366 23/06/01 6366 6
98967 [정치] 한덕수, ‘후쿠시마 괴담’에 “도 지나치면 사법당국이 적절한 조치할 것” [346] 빼사스21446 23/06/12 21446 0
98966 [일반] 넷플릭스 시리즈 추천 <사냥개들> [40] coolasice12294 23/06/12 12294 1
98965 [일반] 흔한 기적 속에서 꿈이가 오다 (육아 에세이) [14] 두괴즐7248 23/06/12 7248 16
98964 [일반] 아쉽게 끝나가는 수성의 마녀 (스포) [21] 피죤투8883 23/06/12 8883 3
98963 [일반] 추천 게시판이 재가동 중입니다 [11] bifrost8564 23/06/12 8564 15
98962 [정치] 4년 전 이동관, 윤통 향해 “도덕성 기본인데 밥 먹듯이 말 바꿔” [50] Taima12464 23/06/12 12464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