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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2/03 16:42:33
Name 具臣
Subject [일반] 현송학을 아십니까? (수정됨)
1. 이모님께 오늘 듣게 된 사람입니다. 어쩌면 현대사에서 이름이 남았을 듯도 한데, 검색을 해도 찾을 수 없어서 여기서 여쭤봅니다. 그리고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저만 듣기엔 좀 아까워서 들은 걸 옮겨봅니다.

2. 이모님께서 현송학에게 들은 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송학은 함경도 칠보산 부근이 고향으로, 김일성이 만년필과 소련제 떼떼권총을 주면서 전라도(전남/전북은 모르겠습니다) 총책으로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그 뒤 지리산에서 마지막 날 팔에 총상을 입고 잡혔답니다(빨치산으로 있었던 모양이죠?).
북에서 그렇듯 당연히 죽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재판에 붙이더랍니다. 그런데 우연챦게 재판장이 현씨더라나요? 희성이라 친척이라고 봐준 건지, 당연히 사형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무기징역이더랍니다.

감옥에 있을 때 현송학을 전향시키려고 안기부(이모는 안기부라시는데 제 생각엔 중정같습니다. 전향이 70년대 초였다고 하니까요)에서 좋다는 관광명소는 다 데려갔답니다.

현송학은 '내가 죽지 않고 잡혔으니, 처자식은 이미 다 죽었겠구나'라는 생각에 70년대 초 전향을 합니다. 현송학의 부하 한 사람은 끝까지 버텨서 나중에 포로교환(이모님께서는 포로교환이라 말씀하시지만, 제 생각에는 비전향장기수 북송할 때 같습니다. 이태선생에 따르면 북한은 휴전협상에서 빨치산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죠. 그리고 뒤에 보듯 현송학이 80년대 초에 죽고 나서 북으로 갔다고 하니까요)할 때 북으로 갔답니다.

현송학이 전향하고 나오니, 출소 후 6개월은 나라에서 돈을 주더랍니다. 처음에는 갱생보호위원회(이모님께서 이리 말씀하셨는데, 정확한 명칭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회장 집에 얹혀살았는데, 그 집에 벙어리 아들이 있었답니다. 이 사람이 하도 못살게 굴어서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모님 집에 와서는 부엌 옆에 움막이라도 짓고 살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라나요? 그렇게 이모님 집에서 행랑살이를 시작합니다.

3. 이모님께서 보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송학은 인격이 대단히 좋았다고 합니다. 김일성이 가려뽑아서 보냈을 정도니 나름 인걸이었나봅니다.
출소 뒤에는 취로사업으로 근근히 살았다더군요. 그게 요즘은 농땡이 수준이고 저 어릴 때도 별로 힘들어보이는 일은 아니었는데, 그 시절에는 정말 고되었나봅니다. 돌아오면 배낭을 벗지도 못하고 툇마루에 뻗어있다가, 좀 힘이 돌아오면 들어갔답니다. 인텔리로 험한 일 안해봐서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뻥튀기 장수를 했답니다.

그런데 이모님의 시아버지가 좀 그런 분이었답니다. 술만 마시면 현송학에게 '왜 여기 사냐, 나가라'고 행패를 많이 부렸다더군요. 이모님께서도 시아버지에게 시달리고 나면, 현송학이 이모님께 '내 70 평생에 저런 놈은 처음봤다. 짐승이려니 생각해야지, 안그러면 새댁이 견딜 수가 없다'라며 달래주더랍니다. 유일하게 현송학을 돌봐주던 사람이 이모라서, 나름 신경을 썼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뒤 이모님 마을에 마을회관을 지었답니다. 그때 이모님 댁에서 현송학이 마을회관 한 구석에 생필품 몇가지를 놓고 팔 수 있게 해주었답니다.
여느 촌이 그렇듯, 장에 나가려면 한 나절은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죠. 그래서 그걸로 먹고살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답니다.

현송학은 거기 혼자 살다가 80년대 초 쯤 죽었답니다. 아무도 모르게 죽은 뒤, 제 사촌누나가 처음 발견했다네요. 나중에 현송학의 아랫사람이 북으로 갈 때 현송학의 제삿날과 무덤 위치를 알아갔다는데, 그 때 마을에서는 이모님 밖에 모르니 이모님께 물어보라고 했답니다. 다들 관심이 없었거나 엮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4. 참고로 저희 이모님도 빨갱이라면 쌓인게 많을 분입니다. 이모님의 외가(그러니까 외할머니 친정)가 좌익 손에 절단났거든요. 어쩌면 갱생보호위원회 집안이나 이모님 시아버지도 빨갱이 덕(?) 좀 봤던 분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현송학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었겠죠. 푸틴에게 권총을 받고 우크라이나로 파견된 사람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잡힌다면, 어떤 대접을 받겠습니까.
현송학은 자신들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의 유가족들의 도움으로 연명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제 할아버지께서는 좌익이셨습니다. 일제 때 학생운동을 하시다가 함경도 흥남으로 도망가셔서 계셨으니, 어쩌면 현송학은 할아버지의 윗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익으로 우익에 싹쓸이 당한 할아버지 집안, 좌익의 손에 절단난 외할머니 친정. 그들 모두의 후손인 저 ㅡ현송학의 이야기를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나누어봅니다.

ㅡㅡㅡㅡㅡ
보탭니다.
북한 고위층에 현용택, 현철해, 현철규 등이 있었던 걸 보면, 그 일가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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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군
22/12/03 17:01
수정 아이콘
이념 대결의 끝은 결국 자기파괴죠...

그런 의미에서 요새 벌어지고 있는 이념대결을 매우 씁쓸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건 한국처럼 결국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갈라지던가, 아니면 프랑스 혁명 처럼 다 때려부수고 나서야 진정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동안 무고한 사람들이 무수히 다치는 건 둘째치고서요
22/12/03 17:11
수정 아이콘
요새 벌어지는 이념대결을 보면 답이 안 나오는데...어찌보면 옛날 좌우대결보단 낫지 싶기도 합니다.
아이군
22/12/03 17:13
수정 아이콘
저 시절이 워낙 살벌했으니깐요. 당장 아래만 봐도....
설사왕
22/12/03 17:03
수정 아이콘
빨치산이면 정순덕 정도 되는 네임드 아니면 자료가 거의 없을 겁니다.
대다수가 추위와 배고픔에 죽든 국군에게 사살됐든 그냥 무연고로 묻혔을테니까요.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도 거의 없던걸로 압니다.
잘 봤습니다.
22/12/03 17:16
수정 아이콘
정순덕이 누군가했더니 마지막 여자빨치산이군요.
그런 사람보다는 이현상, 김삼룡, 이주하 같은 사람들이 자료가 많을 것 같습니다. 현송학도 혹시 그런 자료가 남아있을까 싶었습니다.
모두안녕
22/12/03 17:07
수정 아이콘
본인이 중요한거지 친척 누군가가 혹은 가족 누군가가... 그런겈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양집안은 경상도쪽이고 극우에 가깝지만 친형은 극좌 인생을 40년 넘에 살았습니다. (제가 늦둥이라 친형과 나이차가 좀 나네요) 그런 환경에서 저 자신은 중도에 가깝고 그동안 양쪽에 다 정치성향을 표시하던 때가 있지만(어쩔수없이) 양쪽에서 욕만 먹는 그런 취급이죠. 가족에 굳이 얼매이지 않고 원하는 쪽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담감 떨쳐내세요 힘내세요.
22/12/03 17:17
수정 아이콘
저야 뭐 부담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기분이 뭐할 뿐이죠.
재활용
22/12/03 17:46
수정 아이콘
이름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현송월하고 한글자 차이네요. 항렬이 같은건가..
22/12/03 17:52
수정 아이콘
나이를 생각하면 같은 항렬 같지는 않고, 북 고위층에 현씨가 있었던 걸 보면 그 일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22/12/03 23:57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90년대 나온 단편소설이나 소설을 읽던것처럼 장면 스스로 상상하면서 글을 재밌게 읽었읍니다 현재보다 그때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할수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글입니다
그리고 이글을 통해서 우린 상당히 복잡하게 엮여 있는데 그때도 8~90년대까지도 다들 동의했던것같은데 왜 요즘은 그걸 망각하고 있을까 생각도 하게됩니다
22/12/04 12:19
수정 아이콘
옛날에는 국가에서 검열을 했다면, 요즘은 벼라별 사람들이 제멋대로 검열을 하려드는 느낌입니다.
22/12/04 10:48
수정 아이콘
전쟁이라는 큰 시대의 흐름에 휩쓸린 보통 개개인들의 삶은 참 고달팠겠지요. 일제시대에 태어나셔서 광복과 6.25 전쟁을 거쳐오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가끔 들어보면 정말 한 명 한 명이 역사다 싶어요.
22/12/04 12:22
수정 아이콘
현송학 쯤이면 보통 사람은 아니었겠습니다만, 황석영선생 말씀처럼 그 시대는 이야기거리가 엄청나죠.
노둣돌
22/12/06 11:13
수정 아이콘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비교적 자세하게 당시 상황을 알고 계시네요.

제 외할아버지는 아들없이 딸만 셋을 두었기 때문에 제일 막내인 저를 포함한 외손자들이 한식즈음에 성묘를 합니다.
제 형제들이나 이종사촌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는데, 저는 제 외가의 상황을 좀 알고 싶더군요.
그래서 당시 상황을 대충 알고 계시는 제 어머니(한국 나이로 94세)께 질문을 해서 조금씩 파악하고 있습니다.

제 어머니의 외조부는 백범 김구와 꽤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때 일인데, 간재 전우선생의 제사(?)에 참석하러 평안도에서 충북 괴산을 방문했을 때, 상해 임정에 대한 얘기를 하다 염탐하던 사복 순사에게 발각되어 호된 고문과 함께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간재 문집을 전하려고 하인을 보냈다고 제 어머니는 알고 계시던데, 독립자금을 보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방후 제 어머니의 외삼촌은 먼저 서울에 가서 거처를 준비하겠다고 남하하게 되었는데, 바로 삼팔선으로 갈라지는 바람에 평생 이산가족으로 지내다 80년대 후반 작고를 하셨습니다.
백범의 도움으로 육사2기생이 된 후 한국전쟁때는 연대장으로 활약을 했다고 합니다.
연대장이 되기에는 시간상 너무 짧은 기간이라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전쟁때라 그런 것이 가능했던 모양인지 그렇다고 하네요.
그리고 제주도에서 3천명의 목숨을 놓고 결단을 내릴 때, 모두 석방시켜 살려냈다고 합니다.
그 때 석방된 부호의 딸과 두번 째 결혼을 하게 되었고, 슬하에 4남을 두었습니다.

제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9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고, 간재 전우의 마직막 제자였던 제 외조부는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유람하면서 훈장생활을 하시다 제 어머니가 14살 되던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제 외조부가 거둬 준 어머니의 사촌오빠에게 의탁하다, 위안부를 끌려갈 것을 염려하여 17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를 하게 되었답니다.

어머니를 거둬 준 사촌오빠에겐 배다른 4형제(남동생)가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3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제일 큰 동생은 사상이 달라 처형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보도연맹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세번 째 동생은 함경도 단천이라는 곳으로 끌려 갔다가 탈출해서 두달간 야간에만 이동하는 방법으로 천신만고 끝에 고향인 충북 진천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미친 사람처럼 식탐을 보이다 한달만에 세상을 떴다고 하네요.
네 째 동생은 전쟁때 의용군으로 끌려가서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 동생만 살아 남아 아들 형제를 두어 대를 잇게 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원글을 보고 저도 기억을 되살리는 차원에서 전해 들은 이념대립기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22/12/06 19:43
수정 아이콘
찾아보니 백선엽이 20년생으로 45년에 월남해서 46년에 중대장 맡고 49년에 사단장을 맡았군요. 그 시절이라면 연대장이 되었다는 게 거짓은 아닌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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