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
워킹맘하는게 힘들다는 지난글에 많이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힘든 시기라는 토닥거림이 이렇게 위안이 될지 몰랐네요.
그때 받은 조언을 가지고 힘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말에 아들을 위해 불태웠더니 오늘따라 일이 정말 하기 싫습니다.
이럴땐 딴짓하기가 최고입니다.
월급루팡을 하고있지만. 오늘 사실 월차를 내고 일하는 중이니 엄연하게 보면 월급 루팡은 아닙니다?
잡담은 이만 줄이고, 새로운 본론을 시작하겠습니다.
1.
인생의 확장팩이 열린지 24개월이 곧 됩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것은 돌이후, 그것도 24개월에 근접하고 있는 아기가 얼마나 안 '아기' 스러운가 입니다.
제 아이지만 볼때마다 놀라는것은 볼때마다 제 애가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꾸 길어지며 볼살도 줄어들고 사람 흉내도 내가며 아기아기함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분명 제 머리로는 아가고 가슴으로도 아가인데 제 눈은 아무리 봐도 아가로는 볼수 없죠.
이 인지 부조화를 느끼는게 과연 나뿐일까 싶으면서도 역시 예전의 아가아가함은 많이 찾아볼수 없습니다. 아동을 향해 가고 있는 유아정도이구나 라고 생각하는것이 제가 할수있는 최대한의 납득선입니다.
가끔은 옛날 아기 사진을 보면서 아가아가함을 그리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쪼그만 머리로 나름 사고라고 생각하는것이 눈에 보이는데 이건 또 새로운 맛이에요.
아 뭐 이렇게 귀엽지 ㅠㅠ
매일매일 새로워, 짜릿해 짤방이 필요합니다.
매일매일이 대환장의 콜라보이지만 정말 행복합니다.
'이때다, 싶을때 방심하지 말라' 라는 인터넷의 오래된 조언에 따라 정신 바짝 차리고 있습니다.
2.
아기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말을 안듣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이것은 참으로 미묘한데요
이게, 그동안 말을 못알아 들었거든요. 말을해도 인지를 못했어요.
이젠 말을 일부는 알아듣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들어요.
흠.
하지만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 정말 육아의 난이도를 많이 줄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배고프다고 우는 아기에게 곧 맘마를 가져다 주겠다고 이야기를 해도 배고프다고 그저 울기 나름이었는데,
이제는 곧 준비가 되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면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는 응! 하고 답하며 기다리기는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획기적이냐면 애엄마에게 인권이 다시 돌아오는 시점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무려,
이젠 문을 닫고 똥을 쌀수 있습니다!!
(비록 난 이제 충분히 기다렸다 애미야! 다시 문을 열어라! 탕탕탕! 할지언정 말이죠)
프라이버시 최고야!!
물론 아직은 쪼그맣고 작은 머리라 이해 못하는 것이 많기는 합니다.
아직은 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입니다.
왜 택배박스를 빨아먹으면 안되는지, 왜 식탁에 올라가면 안되는지, 왜 밥먹기 전에 요구르트를 먹으면 안되는지, 왜 엄마 아빠는 출근을 하는지 등등
이 왜를 알아들을 수 있는 시기도 곧 오겠죠.
그리고 새로운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그리고 속터짐을 가지고 올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24개월이 다가오면 아기는 어른의 행동을 모방하기 시작합니다.
이 포인트는 속터지지만 정말 귀여워요.
3-1.
저랑 남편이 빨래를 개고 있으면 씩씩하게 다가옵니다.
왜 엄마아빠는 나랑 안놀아주고 계속 천을 들었다 놨다 하는가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의 행동을 관찰하고 파악하죠
오, 바구니 안에 있는 저걸 바닥에 놓는구나, 접수완료.
내가 도와주겠어!
곧 아들은 바구니 안의 마른 빨래들을 파파팍 바닥에 집어 던집니다.
역시 부족한가?
바구니를 들어 빨래를 쏟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계속 천때기들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아, 저것도 도와줘야겠구나.
네모나게 게여 쌓인 천때기들도 모두 들어 바닥에 집어 던집니다.
역시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세탁실에 있는 다른 바구니도 들어서 가지고와 같이 바닥에 쏱아냅니다.
아빠가 외칩니다.
" 아, 안돼!!"
아들은 의기양양합니다.
' 하지만 빨랐죠.'
임무완료.
아들은 모르겠죠, 엄마아빠가 으아아 하면서 바닥에 섞여버린 세탁한 빨래와 세탁해야하는 빨래를 구분하는 이유를.
하지만 표정만큼은 큰 도움이 되어 매우 의기 양양합니다.
3-2.
아빠가 아들의 볼을 쭈물쭈물합니다.
아가아가함이 많이 사라져 가지만 여전히 볼은 포통 통통 뽀잉뽀잉 합니다.
엄마가 말하죠.
" 그렇게 볼이 좋아?"
이게 볼인가?
아들은 자신의 쪼그만 두 손으로 양볼을 잡고 쪼물쪼물 뽀잉뽀잉 주무릅니다.
아들인 모르겠죠, 왜 엄마아빠가 으아아 하면서 심장을 부여잡고 카메라를 들이대는지.
4.
24개월에 근접하면서 애교가 생겨요.
돌이 다가가면서 애교가 늘기는 했는데, 점점 더 늘어납니다.
4-1.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도어락 누르는 소리를 듣고 혀짧은 소리로 도도도 달려갑니다.
" 아빠!"
그리고 남편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동안 팔짝팔짝 뛰면서 외칩니다.
" 아빠 부부! 아빠 부부!"
아들이 외치는 부부가 뭘 뜻하는전지는 알지는 못하겠지만 저 혼자 뇌피셜로 보고싶었다고 하는 건가보다라고 생각하며 흐뭇해합니다.
아들은 신이 나서 거실을 빙글빙글 돌며 "아빠" "아빠" 하며 빙글빙글 돌고 팔짝팔짝 뜁니다.
남편에게 앵겨붙으며 안아달라고 합니다.
뽀뽀같지도 않지만 얼굴에 얼굴을 부비며 매우 침을 발라줍니다.
(하지만 아빠가 자신의 얼굴에 비비면 급정색)
자신이 보여줄수 있는 최고의 반가움을 보여주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심쿵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뜬금없게도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 이해가 됩니다.
4-2.
남편을 정말 좋아하는 아들이지만 역시 아들의 넘버원은 엄마죠.
가끔은 넘치는 사랑에 (나의 이 모든걸 엄마랑 할거야!) 너무 힘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은 사랑입니다.
힘들때나 슬플때나 놀랄대나 항상 엄마에게 위안을 찾는 아들을 보면 역시 나는 이 아이를 사랑 할수 밖에 없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되죠.
5.
사랑은 강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사람은 변하죠.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면서 놀랩니다.
더러움이나 역겨움에 대한 역치도 높아졌습니다. 회사에서 빡치거나 더러운 일을 당해도 좀더 참을 수 있게 되었죠.
회사에서 빡치면 바로 때려쳐? 라는 생각보다 아, XX. 빡치지만 이 돈 벌어서 우리 아들 ~~해줘야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주중엔 쉴틈도 없이 일하면서도 휴일을 오롯이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쓴다?
아이 이전의 나로는 쉽게 할수 없는 선택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체력이 못받쳐줘서 더 못해주는 것이 안타까울 나름입니다.
아이와 아이가 즐거울 만한 곳을 나들이를 다녀오거나
아이를 위해 하루종일 놀아주느라 힘들어도,
자기 전 아이에게
" 오늘 재미있었어?"
하고 물었을때 돌아오는
" 녜!"
하는 혀짧은 소리에 오늘 하루의 고됨이 모두 보상받아 버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다음날 피로는 나의 몫)
아이의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기만 해도 행복해져 버린다니.
아이 이전에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경험임은 분명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항상 행복만이 가득한것은 아닙니다만, 인생의 풍미는 더 깊어지죠.
결혼도 확실히 그런면이 있었지만, 아이는 그 차이가 확연하죠.
더 많이 기쁘고, 더 많이 화나고, 더 많이 절망하고, 더 많이 행복해집니다.
힘든데요, 행복하고,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이상 24개월을 앞둔 확장팩 경험담이었습니다.
선배님들의 꿀팁과 스포일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