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KF-21 초도 비행 기념 T-50/FA-50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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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공군 참모 차장님. 저는 현재 진행중인 KFP 사업(F-16 혹은 F-18 120대 도입 사업으로 공군의 주력 전투기를 교체하는 대 사업이었다.)이 공군 전력 증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뭐?"
"차장님, 만약 전쟁이 난다면 결국 전쟁의 형태는 2가지, 즉 미국이 도와주는 전쟁, 미국이 도와주지 않는 전쟁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만약 미국이 도와준다면 우리가 F-16이나 F-18이 없어도 자기네 최신 항공기를 가지고 와서 도와줄 겁니다. 그러나 만일 어떠한 이유로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기로 한다면 F16, 18보다 더 좋은 전투기가 있어도 아무 쓸모가 없을겁니다. F-14를 가지고 있던 이란을 보십시오. 그러니 우리가 KFP 사업으로 F16/18을 가지고 있든 없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결국 스스로 항공 무기 체계를 개발해야만 실질적인 전력 증강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영훈 박사/중령, KTX-2 사업을 위해 고등 훈련기 소요를 7년 늦춰줄 것을 공군참모차장에게 설득하며….
[꿈의 시작]
F-4 팬텀 조종사였던 전영훈 소령은 공중전 훈련 비행 중이었다. 격렬한 기동 끝에 가상 적기의 후미를 잡고 사이드 와인더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려던 찰나 적기와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 기관포로 무기를 변경해야 했다. 조종실 앞면 하단에 있는 무기 전환 스위치를 누르기 위해 잠시 시선을 돌린 순간 그만 적기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겨우 스위치 하나 누르려고 하다가 다 잡은 적기를 놓치게 된 전영훈 소령은 분한 생각이 들었고 또한 목숨을 걸고 공중전을 치뤄야하는 조종사로서 이런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전투기에 당연히 사용되는 HOTAS, 즉 각종 무장 조작 및 자주 쓰는 기능을 위한 각종 버튼이 주렁 주렁 달린 조종간은 1970년대에는 아직 개발 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전영훈 소령은 안면이 있는 미 공군 조종사에게서 F-4 후기형을 위해 HOTAS라는 새로운 형태의 조정간이 개발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이러한 개량은 미 공군을 위한 F-4 후기형에는 적용 되지만 한국 공군의 F-4D에는 적용 되지 않을 거란 이야기도 함께.
이렇게 그냥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전소령은 직접 각종 도면과 회로도를 들고 납땜을 해가며 HOTAS를 흉내 낸 형태의 조종간의 개량 방식을 개발해서 정비사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정비사에게 "정말 잘 만들어 오셨습니다만, 우리는 F-4D에 단 한 군데도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적용이 불가능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엄연히 돈주고 구매한 대한민국 공군의 전투기지만 미국의 허락이 없이는 버튼의 위치를 옮기는 아주 단순한 개량도 불가한 상황이라는 현실에 전소령은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된다.
또한 전시에도 미국이 부품 공급을 끊으면 전투기를 띄울 수도 없다는 사실과 각종 부품, 심지어 전투기 주기 중 바퀴에 고이는 나무토막 하나도 미국이 부르는 대로 막대한 돈을 주며 구매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전영훈 소령은 반드시 자기 손으로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상관에게 이러한 결심을 설명한 후 국비 유학을 허락 받은 전영훈 소령은 이후 미국의 항공 명문인 미시시피 주립대로 진학하여 석, 박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국과연 근무 - KTX1 사업을 살려내다]
이후 전영훈 중령/박사는 공군 소속으로 국방과학연구소(ADD)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된다. 초기에는 KFP 사업을 맡아 기종 선정을 지휘하게 되며 이후 KTX-1 기본 훈련기 사업(현 KT-1 프로펠러 훈련기 개발 사업)팀에 팀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업은 설계가 어느 정도 진행 된 상태에서 공군이 소요 제기를 취소하여 사업이 중단 된 상태였다.
전영훈 중령은 이 사업을 살려내기로 마음먹고 각종 자료를 준비하여 공군 참모 총장 예방을 신청한다. 공군참모총장에게 브리핑을 하던 도중 총장은 "브리핑 따위 필요 없어. 우리는 사서 쓰겠다"라며 말을 자른다.
전중령은 KTX-1 개발은 안 해도 좋으니 제발 브리핑은 끝까지 들어달라며 읍소를 하고, 이게 좀 측은해 보였던지 총장은 허락을 하게 된다.
전중령은 열과 성을 다해 브리핑을 했으나, 총장의 의견은 똑 같았다. 공군에겐 필요 없는 프로젝트라고.
전중령은 마지막으로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다시 한 번 총장께 진언을 드리게 되는데…
"총장님, 우리가 여기서 KTX-1 개발을 중단하면 소요시기를 놓쳐 구매를 해야하고, 구매하게 되면 20-30년을 써야하고, 그렇게 되면 20-30년 후에나 개발할 기회가 옵니다. 우리 공군 전력을 100% 외국에서 구매해 들여오기 때문에 판매국이 군수 지원을 지속적으로 해 주지 않으면 공군력 운용은 어렵게 됩니다. 하루 속히 항공기를 개발하여 우리의 자주적 능력을 갖추기 위한 시작점이 바로 KTX-1입니다……(이하 생략)"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전 중령을 바라보며 공군참모총장의 얼굴도 약간 상기 되었다. 아마도 4스타 참모 총장 앞에서 감히 자주국방을 논하는 중령 나부랭이가 어처구니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생각에 빠진 총장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전박사, 내가 공군 생활 하면서 내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네".
그리고 총장은 기획관리 참모 부장을 호출한다.
"참모부장. KTX-1 개발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이렇게 KTX-1 사업은 천신만고 끝에 기사회생하고 전박사는 팀원으로 설계 회의 등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미팅 중에 타 팀원들과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기존 설계팀은 항공기나 전투기를 직접 조종하거나 정비 해 본 경험이 없는 인력들이었고 전박사는 공군 출신으로 조종사나 정비사 입장에서 각종 의견을 제시했는데 기존 팀원들 입장에서는, 신참 팀원이 기존 작업에 대해 각종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과연의 항공담당 본부장은 전박사에게 직접 KTX-1 개발 프로젝트를 맡아 볼 것을 권하기도 하였으나 전박사의 입장에서는 예산이나 기획상의 문제가 많은데 완전히 처음 부터 다시 개발을 하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고 이는 허락 되지 않았기에, 스스로 KTX-1 프로젝트를 떠나게 된다. (이후 실제로 KTX-1 프로젝트는 전박사의 예상대로 주익이나 엔진 변경 등 각종 난관을 겪으며 예산과 기일이 초과되며 어렵게 마무리 되게 된다.)
[KTX-2 프로젝트를 꿈꾸다]
KTX-1 프로젝트를 떠난 전영훈 박사는 항공 사업 본부장을 찾아가 고등 훈련기인 KTX-2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을 건의하지만 본부장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프로펠러 항공기인 KTX-1 프로젝트도 각종 난관과 어려움이 많은데 제트 훈련기인 KTX-2까지 진행하기엔 너무 벅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박사는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공군이 고등 훈련기 교체 프로젝트를 시작할 1996년까지 시기를 맞출 수 없고 그럼 다시 2,30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강력히 개발을 주장했다.
그 덕분에 본부장으로부터 "그럼 전박사가 알아서 해 봐" 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간신히 본부장의 허락이 떨어졌지만 이것은 시작의 시작도 못 되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를 승인 받은 것도 예산이 배정 된 것도 아니고 기획을 해 볼 수 있을 정도일 뿐이니….
아무튼 전박사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5가지 우선 과제를 생각해 보았다.
1. 명칭
2. 인력 양성
3. 필요한 기술 습득
4. 예산 및 재원
5. 항공기 연구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의식 자체가 전무함(국과연, 공군, 국방부 모두…)
1번 항목의 명칭은 우선 KTX-2 사업으로 하고, 2번 인력 양성만 해도 일천명 이상이 필요한데 이는 어찌할 것인가? 그것은 당장 어찌 할 수 없는 과제였고. 일단 본부장님께 허락을 받아 2명의 연구원을 충원 받게 된다.
3번의 기술 습득과 관련해 전박사는 당시 진행 중이던 KFP 사업 (F-16과 F-18의 경쟁으로 120대의 주력 전투기 도입 사업)에 30%의 절충 교역 항목이 있었다. 당시 절충 교역은 모두 생산 물량 확보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를 모두 기술 도입으로 바꾸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전박사는 국방부를 설득해 생산 물량을 기술 확보로 돌리고 이를 국과연에서 담당하도록 한다. 또한 당시 이런 관리 업무를 귀찮게 여기던 국과연 연구계획실을 설득해 모든 항공 산업에 관한 절충 업무를 본인이 담당하도록 하고 KFP의 절충 교역 내용을 모조리 KTX-2 개발에 필요한 기술 전수 과제로 변경한다.
당시 KFP 사업은 F-16과 F-18 중 기종이 결정 되지 않고 있었는데 전박사는 두 회사의 중역을 모두 만나 기술 이전 및 기술 이전에 필요한 장비나 시설 등에 대한 비용까지 모두 지불하도록 확약을 받아낸다.
또한 당시 해군의 해상초계기 구매 사업에 대한 절충 교역도 마찬가지로 KTX-2에 개발에 필요한 복합재 기술 이전 등으로 채운다.
[예산 확보]
국방 무기 체계 개발은 기초연구, 탐색개발, 체계 개발로 이루어지는데 당장은 기초연구를 위한 예산을 확보 해야만 했다.
국과연에서 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은 국과연 3 본부 내 심의회 -> 연구소 전체 심의회 -> 국방부 -> 재경원 -> 국회 승인을 모조리 통과 해야만 하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80년대 말 대한민국 국방 예산, 특히 연구 개발 예산은 지금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적었으며 그 중에서도 항공 관련 예산은 가장 후 순위였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항공 관련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거의 없었다.
전박사는 일단 기초연구과정 2년(1989-1990)을 설정하고 첫 해에 1.5억 두번째 해에 2.5억의 예산을 책정한 계획서를 만들었다. 예산 확보의 첫 단계인 항공 부서가 속한 3 본부 심의회에서 위원들의 반응은 심드렁했으나 전박사는 제발 국과연 전체 심의회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읍소하여 겨우 통과 될 수 있었다.
국과연 전체 심의회에서는 이 과제는 너무 이르다며 단칼에 기획안이 탈락 당하고 말았다. 말 한마디 더 못해보고 방으로 돌아온 전박사는 너무나 허망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 잡고 심의회를 찾아갔다.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심의회는 계속 되고 있었고 전 박사는 계속 회의실 밖에서 기다렸다. 3시간 후 심의회가 끝나 심의회 간사인 연구계획실 실장님을 쫓아가 읍소하였으나 역시 일언지하에 거절 당한다.
전박사는 다시 한번 망연 자실 하였으나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다음날 새벽부터 연구계획실 앞에서 기다렸다. 연구실장님이 출근을 하자 바로 사무실로 쫓아가 기관포처럼 과제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연구계획실장은 여전이 단칼에 거절이었으나, 전박사는
"예산이 없어 그러신다면 예산은 삭감해도 좋으니 출생 신고만이라도 해 주십시오" 라며 설득한다.
아무리 예산이 없더라도 일단 사업이 시작되면 어떻게든 키워 나가보리라는 계산이었으나 이 역시 일언지하에 거절 당하고 만다.
전박사는 좌절에 빠졌으나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당해 안에 사업을 출범시키지 못하면 일 년, 이 년 지나면 이제는 공군의 소요제기 시기까지 개발 기간이 모자라서 안 된다고 거절 당할 것 같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해 안에 사업을 출범 시켜야겠다고 결심한 전박사는 다음날 아침에도 연구개발 실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역시 거절. 그러나 전박사도 이제 오기가 생겨 '누가 이기나 해 보자'라는 심정으로 될 때까지 부딪혀 보기로 한다.
그렇게 연구개발실장실로 출근하던 일주일 째, 결국 연구개발 실장이 "전박사, 정말 자네 같은 사람 처음 보네." 하며 사업을 출범 시키고 530만원의 예산을 배정해 주게 된다. 원래 요청한 1.5억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만도 못한 금액이었으나 어찌 되었든 우여 곡절 끝에 KTX-2 사업은 공식적으로 출범 하게 된다.
[공군 설득]
이렇게 우여 곡절 끝에 사업이 출범하였으나 이제 겨우 기초 연구 시작일 뿐 이걸로 탐색 개발이나 체계 개발이 진행 될 거라고 확정 된 것은 아니었고 도리어 까딱 잘못하면 사업이 엎어질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러나 착실히 여러가지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리게 되는데…... 국방부에서 공군의 차기 고등 훈련기 소요시기인 1996년까지 개발 시기를 맞출 수 없으니 훈련기는 직구매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또 2,30년 이상 고등 훈련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업은 엎어지게 되는 것이고 항공 자주국방의 꿈은 또 다시 사라지게 되는 꼴이었다.
전박사는 본부장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으나 공군이 그렇게 결정한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얘기밖에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국방과학 연구소장을 직접 찾아가서 설득을 했으나 마찬가지 대답이었다. (사실 이건 극히 상식적인 반응임).
이에 전박사는 공군이 소요시기인 1996년까지 개발 기간이 짧아 개발이 불가능 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아예 공군을 설득해서 소요 시기를 뒤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소장은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 했지만 전박사는 자신이 해 보겠다며 연구소장의 측면 지원을 부탁한다. 연구소장은 이에 동의한다. (이 정도도 사실 매우 고마운 일이었음)
이 얘기를 본인의 연구실 실원들에게 하니 육군 헬기 조종사 출신 실원이 펄쩍 뛰며 말렸다. 군의 생리를 잘 아는 그로서는 이게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었고 '잘못하면 실장님 대령 진급에 문제가 생긴다'며 끝까지 반대를 했다.
전박사는 "나 진급 안 돼도 좋아. 이것은 진급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라며 자료 준비를 지시했다.
이튿날 국방부 작전참모부장인 조근해 소장을 찾아간 전박사는 단도직입적으로 이 기회를 놓치면 2,30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고등 훈련기 소요를 1996년에서 2003년으로 늦추어 줄 것을 부탁 드렸다. 작전참모부장은 일리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공군의 소요를 늦춘다는 것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참모차장님께 말씀드려보도록 조언을 했다.
참모차장실을 찾아가면서 전박사는 본인도 공군 출신이기에 일이 쉽지 않을 것을 직감한다. 공군은 항상 최고의 비행기를 원하고 조종사의 안전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에 과연 국과연이 개발한다는 고등 훈련기를 믿을 수 있을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주식 공군참모 차장은 전박사의 생도 시절 훈육관으로 잘 아는 사이였다. 반갑게 전박사를 맞이 했으나 이야기를 듣고는 호통을 치며 강력히 반대했다. 사실 이것은 극히 당연한 반응으로 훈련생의 안전과 국방소요 기간의 엄중함을 생각했을 때 공군참모차장이라도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박사는 이제는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게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할말은 다 하고 나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하
[들어가며] 부분 중복)
"차장님. 저는 현재 진행 중인 KFP 사업(F-16 혹은 F-18 120대 도입 사업으로 공군의 주력 전투기를 교체하는 대 사업이었다.)이 공군 전력 증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뭐?"
"차장님, 만약 전쟁이 난다면 결국 전쟁의 형태는 2가지, 즉 미국이 도와주는 전쟁, 미국이 도와주지 않는 전쟁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만약 미국이 도와준다면 우리가 F-16이나 F-18이 없어도 자기네 최신 항공기를 가지고 와서 도와줄 겁니다. 그러나 만일 어떠한 이유로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기로 한다면 F16, 18보다 더 좋은 전투기가 있어도 아무 쓸모가 없을 겁니다. F-14를 가지고 있던 이란을 보십시오. 그러니 우리가 KFP 사업으로 F16/18을 가지고 있든 없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결국 스스로 항공 무기 체계를 개발해야만 실질적인 전력 증강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박사는 말을 너무 심하게 질렀나 싶어 쥐죽은 듯 조용히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참모차장은 3,4분 정도 골똘히 생각하더니
"전박사, 자네의 말에 일리가 있네. 내가 무엇을 도뫄주면 되나?"
"감사합니다. 차장님. 공군의 소요시기를 2003년 이후로 연기해 주시고 고등훈련기에 대한 연구개발 소요제기를 해 주십시오"
"그래, 검토하도록 지시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박사는 참모차장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이렇게 폐기 직전이던 KTX-2 계획은 공군에서 공식적으로 소요제기를 함으로서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게 된다.
국과연 원장과 본부장 역시 대단히 기뻐하였으며 그해 전영훈 중령은 대령으로 무사히 진급한다.
[개발사1편을 마치며]
T-50/FA-50 소개에 해당하는 지난 1편을 마치며 원래 2편은 가능한 빨리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프로젝트 중간 업데이트가 생기면서 한 2주 너무 바빠 손을 못 대고 이제야 올리게 됩니다. 이 2편은 원래 한편으로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앞으로 짬짬이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짧게 쓰려면 한 문단으로 끝낼 수도 있는 얘기지만 제 필력으로는 짧게 써서는 이 과업이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었는지 실감나게 표현이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대사도 살리고 하다 보니 글이 길어지는 게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