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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7/02 19:01:41
Name 아루에
Subject [정치] 전혀 다른 두 공정함 : 조별과제의 공정함과 형제의 공정함 (수정됨)
일전에 과거제와 골품제에 관한 글을 썼었습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주간조선에서 인용해 가셨는데 출처는 안 밝히셨더라구요. 골품제 과거제야 역사적 개념이고 제가 역사를 전세 낸 것은 아니긴 하지만 유감이긴 합니다. 제 닉네임은 됐더라도 PGR 이름이라도 박히면 좀 나았을 텐데 말입니다. 별 수 없이 다른 글을 써야죠.

그 글에서 형식적 공정에 대한 2030의 요구를 과거제에 대한 요구라고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2030은 '실질적 공정'에 대한 요구를 전적으로 외면하는 것도 아닙니다. 2030은 과거제의 회복을 바라지만, 동시에 과거제로만은 달성할 수 없는 공정함도 요구합니다. 단지 지금은 골품제가 부활하게 생겼으니 일단 과거제라도 똑바로 하라는 것이지만, 2030은 한 때는 무상급식과 무상등록금에 열광할 정도로 "리버럴"했던 그런 코호트라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수많은 2030이 이준석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구호에 동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찝찝해 할 것입니다. 저도 그 중 하나구요.

골품제는 당연히 차치하고, 과거제도 필요하지만 과거제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공정함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형식적 공정, 실질적 공정.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주 부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이라는 말은 '속 빈 껍데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실질적이라는 말은 '참된 것, 진짜인 것, 중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뭔가를 '형식적', '실질적'이라고 네이밍할 때, 이미 '형식적인 것은 잘못된 것이고, 실질적인 것이 옳은 것'이라는 함축이 들어갑니다. 이것도 일종의 프레이밍이죠. 그래서 저는 형식적 공정, 실질적 공정이라는 용어 사용 자체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형식적-실질적'이라는 분류야말로 실질이 없는 형식적 분류라고 생각해요. 섣불리 '형식적-실질적'이라는 대립항을 쓰는 사람은 뭔가 내 맘에 안드는 결론에 '형식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뭔가 내 맘에 드는 방향에 '실질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정작 둘이 뭐가 다른 지는 포착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정함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고, 글들도 많은데, 저는 공정함에 전혀 다른 두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주로 팀플레이에서 요구되는 공정입니다. 저는 이걸 '조별과제 공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조직에서, 스포츠에서, 게임에서, 사냥에서, 모든 종류의 팀플레이를 할 때 반드시 요구되는 그런 공정함입니다. 이 공정함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기여에 상응하여 보상을 얻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보상에 상응하여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조장이면 당신은 최종 수합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받는 샐러리만큼 회사에 벌어다 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능력이 없으면, 당신은 빠져야 합니다. 당신이 팀에 짐이 되면, 당신은 팀에서 나가야 합니다. 당신이 제 몫을 하지 못하는 데도 팀의 일원으로 남는다면, 당신은 프리라이딩을 하고 있는 겁니다. 조별과제의 공정함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프리라이딩입니다. 능력이 없는 자가 보상을 받는 것. 이 조별과제의 공정함이 또한 혐오하는 것이 뷔페이즘 또는 부당이득입니다. 대가 없이 급부를 취하는 것. 자기가 원하는 것만 골라가는 것. 고생은 하지 않고 과실만 누리는 것.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중국인이 버는 것. 심지 않은 열매를 거두는 것. 일 하지 않는 자가 먹는 것. 이 모든 것이 조별과제의 공정함의 기준에서 혐오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공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자녀 양육 과정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공정함에 대한 감각입니다. 저는 이걸 '형제간의 공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두 명 이상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절대 자녀에게 조별과제 공정을 적용하지 못합니다. (적어도 좋은 부모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부모는 내심 그렇지 않을 지언정, 적어도 말로라도, 나는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하기 마련입니다. 일단 과자가 두 개가 생기면 하나 씩 주어야 합니다. 우유가 한 병이면 두 컵에 똑같이 따라 주어야 합니다. 파이는 애가 둘이면 반으로, 셋이면 셋으로 쪼개 주어야 합니다. 뭐든 기회는 한 번 씩 돌아가야 합니다. 형에게 하나를 주었으면 다음은 동생 차례입니다. 동생이 득했으면 다음은 언니가 득해야 합니다. 뭐든지 반 반이어야 합니다. 사실 왜 그래야 하는지 필연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함이 공정하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모든 형제 간에, 그리고 형제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왜 인류 최초의 살인이 났는가. 야훼가 먼저 이 형제 간의 공정함에 대한 감각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아벨의 양을 받아 주었으면 가인의 곡식도 받아주어야지요. 아무리 양고기가 더 맛있어도 말입니다. 그러니 형제 간에 살인이 나는 것입니다. 현행 민법은 균분상속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형제 간에는 형제 수대로 유산을 갈라야 합니다. 그런데 왜인가요? 능력 있는 자식, 그래서 앞으로 국가에 더 많은 세금을 낼 자식에게 더 많이 상속분이 가면 안 되나요? 누구도 이 문제를 능력주의, 실력주의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형제 간의 공정이란 그런 것입니다.

형제 간의 공정은 그러므로 출발선상의 차이에 주목하고, 출발선상의 차이를 없애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형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부모님께 받았잖아.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대체 왜인지 형은 출발선상의 차이를 교정하기 위해 동생 살림에 보탬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별과제의 공정은 출발선상의 차이를 무시합니다. 그것은 무지의 베일 너머의 영역입니다. 대학에서 조별과제를 할 때, 누군가가 자료 조사를 엉망으로 해오면, 그 사람이 무슨 출신인지, 그 사람의 과거가 어떠한지, 그 사람의 수저 색깔이 무엇인지, 그가 금수저인지 은수저인지 누가 따집니까? 그 사람이 다른 조원들과 출발선상의 차이가 있어서 그 차이가 누적되고 누적되어 어쩔 수 없이 지금에 이르렀는지, 그래서 지금의 자료 조사 퀄리티의 차이가 이렇게 날 수 밖에 없었는지, 그것을 감안하고 고려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당장 자료 조사를 남들만큼 못 해 왔으면 그 사정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간에 다른 팀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합니다. 목적은 형제 간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조별과제의 효율적인 달성이니까요. 조별과제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은 프리라이딩이지 출발선의 차이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두 판이하게 다른 공정 개념이 둘 다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둘 다 공정의 기준이 되어, 다양한 영역에서 결과가 공정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자녀 양육에 있어서는 형제 간의 공정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들에는 형제 사이라 하더라도 조별과제의 공정을 요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식별하여 헷갈리지 않는 것이 좋은 부모되기의 조건 같습니다. 만약에 동생이 혼자 열심히 알바를 해서 좋은 옷을 샀는데, 그 옷을 형이 '형제 간의 공정'을 기준으로 제시하며 자기도 입겠다, 자기도 한 벌 사달라, 왜 쟤만 좋은 옷을 입느냐 라고 조르기 시작하면, 부모는 그 때에는 '조별 과제의 공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하며 단속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정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구요. 앞서 민법에서는 균분상속이 원칙이라 했지만, 부모는 특정 자녀에게 증여를 할 수도 있고, 또 부모를 극진히 -장기간 비용을 감수해가며- 봉양한 자녀는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기여분이 인정되기도 합니다. 결국 형제 간의 공정에도 예외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말 많은 자원, 그리고 자원에 대한 접근 기회를 배분하는 선택의 영역들에 있어서, 우리는 이 조별 과제의 공정과 형제 간의 공정 사이에서 맹렬히 헷갈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상이한 공정 개념을 동시에 적용하기도 하고, 퍼센티지를 나누어 적용하기도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영역에서 게임의 룰은 형제 간의 공정과 조별과제의 공정 간에 적당히 밸런스를 맞추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그렇게 이뤄져야 합니다.

형제 간의 공정 대 조별과제의 공정을 결과의 평등 대 기회의 평등에 꼭 등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핀트가 다릅니다. 조별과제 공정은 기회의 평등까지도 사실은 개의치 않을 수 있습니다. 기회까지도 불평등했어도 무관합니다. 두 조원 후보자가 있는데, 어느 한 후보자가 능력치가 더 뛰어나다면, 그가 얼마나 많은 특혜를 받고 살아 왔는지는 무관합니다. 심지어 그 특혜가 부당한 특혜였다고 하더라도 무관합니다. 발표를 더 잘하는 친구, 자료 조사를 더 잘하는 친구, 자료 취합을 더 잘하는 친구, 하다 못해 미안하다고 밥값이라도 내는 친구와 조원을 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때로는 형제 간의 공정이 결과의 평등을 배반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 형제 간의 공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원 배분의 결과 값은 불평등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형제 중 형이 장애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형에게 더 많은 자원이 얼마가 되었건 더 많이 투입되는 것이 형제 간의 공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투입된 자원이 반환되지 않아도 무관합니다. 결과가 꼭 맞추어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때로 형제 간의 공정에는 '연대'에 대한 감각이 개입되며, '공감'이라고 하는 감정이 함께 작동하기 마련입니다. 버락 오바마가 그의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Yes I am my brothers' keepers(예 나는 내 형제를 돌보는 자입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그는 분열된 개인주의적 미국인들 간에 어떤 식으로건 형제 간의 공정에 관한 감각이 회복되어야 할 필요를 호소한 것입니다.

세를 얻고 있는 이준석의 실력주의를 학력주의, 정글보수, 실력주의 등으로 규정하고 경계하는데, 그것을 형식적 공정과 실질적 공정의 대립으로 말하기보다, "조별과제 공정이 더 확장 적용되어 형제 간의 공정이 내몰리는 상황"에 대한 경계라고 표현해야 좀 더 정확합니다. 모든 사회적 연대가 연대 없는 조별과제의 관계로 환원되는 것을 경계해야 겠지만, 우리가 형제 간의 공정을 적용해야 할 영역이 아닌 영역에까지도 형제 간의 공정을 들이 밀며 요구해 왔던 것은 아닌지도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공정함에 대한 새로운 관념들이 충돌하고 온갖 변화가 야기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은, 형제 간의 공정을 적용해야 할 영역에 조별과제의 공정이 적용되며 모든 사회적 연대가 박살나고, 자유, 평등과 함께 자유주의 국가의 기초가 되는 형제애(egalite)가 붕괴되면서, 또 정작 조별 과제의 공정이 적용되어야 할 영역들에서는 형제 간의 공정이 적용되어, 굳이 배려받을 필요도 없고 배려받아서도 안 될 특권들이 "형제애" 또는 "자매애"로 포장되어 배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조별과제의 공정, 그리고 형제 간의 공정이라는 개념 모두가, 도대체 누가 나의 형제인가, 과연 나는 어디까지 형제를 지키는 자인가 라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어떤 이들은 외국 난민 불법체류자까지도 모두가 형제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에서 왔고, 인류로서 한 형제이며, 그러므로 난민의 권리까지도 나와 동등하게 인정하고, 난민이 최소수혜자라면 그에게 각별한 배려까지도 기울여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심지어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까지도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라면 나의 형제가 아니며 그는 조별과제의 파트너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우리가 형제애에 호소하려고 하건, 또는 형제애를 배격하려고 하건, 우리는 누구까지가 우리의 형제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진보 정치란 결국 형제애가 미치는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 형제애의 확장으로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도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역설적이게도, 무턱대고 아무나 형제라고 가서 끌어안을 것이 아니라, 대체 어디가 형제애를 외칠 자리가 아닌가를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진보가 아무나 붙잡고 형제라고 선언할 때 공중은 분노합니다. 반면 진보가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소외되던 그 형제를 정확히 찾아내어 그가 형제임을 다시 확인할 때 공중은 진보에 동감합니다. 어떤 진보가 취업을 못해 괴로워하는 또는 기껏 취업했더니 그곳이 구의역이었던 2030 하층 청년을 "형제"라고 인식하는 대신, 개, 고양이, 아메바, 2D 캐릭터 이루다, 리얼돌 등부터 "형제"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비칠 때, 공중은 "형제를 지키는 자들"의 편에 서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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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2 19:19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루에
21/07/02 19:29
수정 아이콘
재밌으셨다니 다행입니다
21/07/02 19:50
수정 아이콘
추천이 있으면 추천을 드리고 싶은데 아쉽습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앞으로 2030과 그 미래 세대를 중심으로 공정의 문제는 계속 제기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의 해답이 공정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정한 경쟁과 능력주의가 기존의 연고주의나 탈법적 상속에 비해서는 확실히 더 좋은 사회에 가까워지는게 맞으니까 그것부터 하나씩 챙겨나가긴 해야겠죠. 하지만 그래서 사회의 공정성이 담보되면 청년실업이나 노인빈곤, 금전적 사유로 인한 출산포기 같은 사회 문제가 해결이 될까? 우리는 그때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면 사실 공정 이슈가 현실의 무게를 다루는데 조금 공허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루에
21/07/02 23:43
수정 아이콘
저도 동의합니다. 공정이라는 단어는 너무 넓어서 사실상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되고 그래서 그 단어만으로는 아무 것도 못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쓰우와와
21/07/05 10:12
수정 아이콘
저도 공정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부가적인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한 사회적 기초가 공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연소
21/07/02 19:51
수정 아이콘
정치글이라서 추천을 못하는게 너무 아쉽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루에
21/07/0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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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실제상황입니다
21/07/0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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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030 남성들이 느끼는 불만족의 이유도 실질적 공정, 에 그러니까 남매 간의 공정이 조별과제의 공정을 압도하는 상황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겠죠. 어쩌면 남매 간의 공정 그 자체마저도 불균형하다고 느끼고 있을 테고요. 저도 그 밸러스 감각과 식별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는데 현실파악이야 또 저마다 다른 법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이게 대화로 타협할 수 있는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뭐 저는 투쟁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공정"하게 말하자면 다들 그 과정 중에 있는 거겠죠
아루에
21/07/02 23:43
수정 아이콘
예 남매간의 공정 현재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는 그게 더 큰 문제이지요
라라 안티포바
21/07/02 20:14
수정 아이콘
비슷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많아서, 글을 읽고 많이 동감하게됐네요.
정치카테고리라 추천을 못드리는게아쉬울따름.
아루에
21/07/02 23:4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군령술사
21/07/02 20:26
수정 아이콘
저도 고민만 하고 있던 주제인데, 너무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버튼이 없는 게 아쉽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루에
21/07/04 02:0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1/07/02 20:40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간만에 정말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는 글 솜씨가 미천하여 생각대로 글을 풀어내질 못 하는 데 매우 부러운 글솜씨를 가지셨네요.
아루에
21/07/04 02:00
수정 아이콘
아이고 저도 일천합니다 표현 욕구를 절제를 못할 뿐입니다
이라세오날
21/07/02 20:5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아루에
21/07/04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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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1/07/02 20:57
수정 아이콘
휘리릭 봤는데 한번 더 곱씹어봐야겠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갸르릉
21/07/02 21:11
수정 아이콘
저도 같게 생각합니다. 경쟁이 좋아서 지지하는게 아니라 대안이 없어서 지지하는거에 가깝죠. 여기에 대해서 과거로 회귀 할 거냐고 해봐야 의미가 없죠. 사람들이 정시가 좋아서 정시를 선호 하는게 아니라 수시를 해봤더니 정시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시를 지지하는거니까요.
21/07/02 21:12
수정 아이콘
요즘 세간에서 요구하는 공정함과, 얼마전에 유행했던 공정함이라는 착각, 두가지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상반된 시선이 이렇게 쉽게 정리가 되는 이야기였네요. 덕분에 글쓴분의 시선에서 깔끔하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ioi(아이오아이)
21/07/02 21:16
수정 아이콘
공정이라는 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분배자에 대한 믿음, 신뢰 라고 봅니다.

당장 형제간의 공정의 예를 들면
3만원이 고등학생, 중학생 형제 2명에게 나누어준다면 3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합니다.
1.2명에게 공평하게 반반으로 준다 - 형제는 콩 무조건 반반
2.고등학생에게 2만원, 중학생에게 만원을 준다. - 형을 조금 더 챙겨주자
3.중학생에게 2만원, 고등학생에게 만원을 준다. - 동생을 조금 더 챙겨주자

3가지 다 공정할 수 있습니다. 형제 모두가 만족하면요.
어차피 부모는 형제 모두를 동등하게 사랑하고, 형제도 그걸 느끼고 있으니까 자원을 어떻게 나누는가는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좀 억울할 수는 있지만, 뭐 그렇게까지 차이 나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형(동생)한테 라면이나 끓여 달라고 하지 뭐 크크 이러고 넘어갈 수 있죠.

근데 부모가 형제를 차별한단 느낌을 가지면? 3가지 모두 불공정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투쟁으로 넘어가는 거죠.
실제상황입니다
21/07/02 21:27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렇죠. 거기에는 함정이 존재하죠. 사실 많은 부모들이 형제를 동등하게 사랑하지 않거든요. 본문에서 언급된 카인 아벨 이야기도 그렇고 얼마 전까지 자게글로 올라오던 성경이야기에서도 암시됐던 거지만, 신도 부모도 사실은 대체로 편파적인 법이죠. 물론 그만큼 더 분배받는 아이가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거 아니겠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불공평을 느끼는 형제에게 피해의식을 운운할 것입니다.
Arcturus
21/07/02 21:35
수정 아이콘
결국 말씀하신 두 종류의 공정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열세인 측을 끌어안느냐 마느냐의 문제인데
이걸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좌파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 우파..

위분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어느쪽이든 구성원 전원이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옳은 방향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최근 생기는 논란은 결국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쪽이든 일리있는 말이니)
구성원을 납득시키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결국 사람들을 가장 납득할 수 있게 하는건 계량화된 수치인데 (그게 감성을 배제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최근에 생긴 수많은 사건들이 그 숫자들의 신빙성마저도 의심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결국 답이 없는 문제지만 최소한 한쪽으로 생각하는 공정을 밀고 나갔다면
이것보다는 덜 논란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BibGourmand
21/07/0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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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과제의 공정은 자본주의고, 형제의 공정은 공산주의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번개맞은씨앗
21/07/0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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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공정에서 형제애로의 연결이 어떻게 되는건지 모르겠네요. 공정하고 애정은 같은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원인을 말씀하신 거라면, 현실을 놓고 볼 떄 공정은 증오와 폭력에서 비롯될 수도 있는 것이겠고요. 가정에서 똑같이 주는 것도, 그건 기본적으로 한 명만 주면 난리가 나기 때문이겠지요. 강아지 두 마리를 키워도, 한 마리만 주면 난리가 날 텐데요.

오늘날 진보 진영이 하는 일도 그런 부분이 상당한 거죠. 사람들간 신뢰를 쌓고 애정을 높이고 이를통해 평등을 실현하려는 부분과, 사람들간 불신을 만들고 혐오를 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평등을 실현하는 부분을 놓고 볼 때, 그 비중의 차이를 눈여겨볼 필요도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피우피우
21/07/0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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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형제의 공정'이 좀 비겁한 워딩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두에 쓰신 것처럼 '형식적 공정'과 '실질적 공정'이 마치 후자의 것이 더 진실되고 참된 것, 진짜인 것, 중요한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용어일 수 있고 일종의 프레이밍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는데, '형제의 공정' 또한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있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바로 위 댓글에서 지적하고 계시듯이 '형제의 공정'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것이 '형제애'에 기반한 공정이라고 논지를 전개하시면서, 이런 공정이 마치 가족과 같은 끈끈한 연대로 묶인 집단에서 필요한 공정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계신 것 같거든요. 의도치 않으셨더라도요.

그냥 많이들 사용하는 것처럼 '실질적 공정'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딱히 그런 느낌은 없지요. 실제로 '실질적 공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연대와 공감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꼭 그런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실질적 공정을 달성해야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손나은
21/07/0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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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된 내용이라 더욱 와닿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1/07/03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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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카테고리라 추천이 없나보네요?

좋은 비유를 적용한 좋은 담론인것 같습니다.
더 곱씹어보겠습니다.
21/07/03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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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울 정도로 글을 잘쓰십니다. 미묘한 차이를 이렇게 잘 풀어내어 이해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전즉퇴
21/07/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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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추천이 아쉽네요(2)
이렇게 직관적인 개념을 만드는 사유가 소중합니다. 서구에서 그런 식으로 만들어준게 한국에 들어오면 각이 꽉 잡힌 암기용 키워드가 되지요.

예수님의 과부의 헌금, 부처님의 꺼지지 않는 등잔, 공자의 입학식(?) 예물 이야기가 이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첫째, 처져도 뭔가 하긴 했고 둘째, 칼같은 비례는 아니라는 것이죠.
형제간에 차등분배든 혹은 사실상 불공정한 동등분배든, 결국 용납할 수도 있는 이유는, 가족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냥 '00니까'로 하다가는 가족도 해체되죠 결국. 오늘날 이 시국인 것도 인권 개념을 너무 편리하게 활용해서 그런 면이 없진 않습니다. 기본소득을 얘기할 때 정말 인권강도처럼 얘기하는 측도 있고, 설국열차처럼 얘기하는 측도 있는데, 저는 [마음이 있을 텐데 십분 발휘할 기회를 못 받은 것에 대한 보상] 정도로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뭘 잘 한 것은 공동체에 대한 호의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칼같은 비례보상으로 효율과 의욕을 증진한다는 논리는 실제로는 조금 위험한 전략입니다. 샌드박스식 사업 청산에서는 좋죠.(딱 교양 조별과제긴 하네요) 물론 비례 자체는 매우 중요해서 더 정교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보상을 [어떤 소속-직위에 공식/비공식으로 딸린 메리트 패키지]라는 둔중한 단위로 주고 받으려는 경향이 있어 문제가 커집니다. 다 같은데 원단위만 개별로 계산해주면 사회 차원에서는 차라리 나을 일이 많습니다.
시카루
21/07/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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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형제애를 외치는 선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가 변하겠죠
일단 현재는 축소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안군-
21/07/0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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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3원칙인 자유,평등,박애 중에서 "박애"에 대한 담론은 거의 나오질 않는 시대지요. 사실 자유와 평등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 조차도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박애까지 들어간다면 정말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깊은 통찰이 들어간 글 잘 봤습니다. 진짜 추천이 아쉽네요.
성큼걸이
21/07/03 15:43
수정 아이콘
통찰력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국밥한그릇
21/07/04 01:33
수정 아이콘
공정에 중한 점은 바로 원칙입니다.
이 원칙을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고 공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조별과제건 형제간이건 구성원이 불만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그 원칙은 다시 한번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페미문제의 경우는 이 원칙에 대해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 그 원칙도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20대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 라는 원칙을 이해할 수 없는 거죠.
그러면서 '모두를 위해서 20대 여성도 희생해야 한다' 라는 것은 절대 거부하고 있으니... 다들 거부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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